7화. 어서 오세요. 시티롱 마을에
“네. 어서 오세요. 시티롱 마을입니다.”
역시 발전한 마을이라 그런지 입구 초부터 세련된 검문소가 반겨줬다. 검문소에는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인상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방심하면 안 돼.’
하지만 다짜고짜 창을 날리던 경비병이 생각났기에 섣불리 다가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쭈뼛대는 앙피와 달리 카힐이 성큼 검문소의 안내원에게 말을 걸었다.
“야! 하이드로라는 놈 여기로 지나가지 않았냐?”
“..그렇게 대놓고 물어봐도 돼요? 저 사람도 살인광일 수도 있잖아요...”
앙피가 처음 보는 분을 살인광으로 몰아가고 있다.
“네! 그런데 답변 이전에 먼저 저희 마을에 와보신 적이 있으실까요?”
안내원은 생각보다 개의치 않아 했다. 게다가 딱히 마족과 좀비의 존재도 신경 안 쓰는 듯했다.
“없으시군요! 그럼 잠시 전투력 측정이 있겠습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냥 어딨는지 먼저 말해.”
“카힐 님 그러다 죽어요..”
“전투력. 측정. 먼저. 하겠습니다.”
검문소 안내원이 친절하게 웃더니 밖으로 나왔다.
“와..”
앙피가 안내원의 커다란 떡대를 보고 감탄을 뱉었다. 아니 근데 갑자기 전투력 측정은 왜.
안내원이 자신의 배를 있는 힘껏 때려보라 시켰다.
“...저흰 그냥 사람만 찾을 거라 안 싸울 거에요.”
“걱정 마세요. 반격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희 마을에 입장하려면 필수 코스라 꼭 해주세요.”
어쩔 수 없이 앙피가 제일 먼저 그의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앙피가 누군가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파하시면 어쩌지.’
앙피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앙피는 안내원의 배에 주먹이 닿자 손목을 비틀었다.
‘이래야 더 세겠지.’
“네. 500입니다.”
주먹으로 쓰다듬는 수준인데 500점이나 나오다니. 점수가 후한가 보다.
그다음으로 카힐과 비비가 테스트를 받았다.
각각 490과 600. 큰 차이는 없다.
“자 그럼 이 목걸이를 받아주세요.”
테스트가 끝나자 안내원이 얇은 종이가 달린 목걸이를 건넸다. 종이는 앙피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술이 담겨 있다.
목걸이에는 각자의 이름과 알 수 없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앙피(251)」
「카힐(247)」
「비비(258)」
“역시 높게 나오셨군요. 손바닥을 건너온 여행객치고 대단하세요.”
“뭔데 이 숫자는?”
“랭킹입니다. 저희 시티롱 마을은 철저히 랭킹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랭킹이 곧 힘이며 랭킹이 곧 법입니다. 이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안내원이 거대한 뱃살을 출렁거리며 설명했다.
‘난 240위인 건가...? 근데 왜 저 사람은 530위지?’
“...내가 이기나..?”
안내원이 손가락만 튕겨도 앙피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안내원의 랭킹이 더 낮은 걸까.
그건 당연히 약할수록 보호받아야 하니 높은 랭킹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카힐은 궁금증을 못 참는 성격이었다.
“근데 뭐하러 약한 놈을 우대해주는 거냐? 너 눈엔 이 병신들조차도 막 대단해 보이냐?”
카힐이 소중한 동료인 병신1과 병신2를 가리켰다.
“꿔.”
병신2가 동의한다는 듯 끄덕였다. 본인이 무엇에 동의한 지 모른다는 당당한 표정이다.
그런 그들에게 안내원이 무심하게 답했다.
“약할수록 생존에 불리하니까요. 강한 힘을 약한 분들을 위해 쓰는 게 뭐가 나쁜 거죠?”
“...카힐 님은 살육에 흥분을 느끼시나요.....?”
앙피가 정말 걱정된다는 듯 덧붙였다.
“아니거든! 난 먼저 시비 안 걸면 안 싸운다고! 야, 그리고 너 말대로면 아까 그 반지의 경비병은 뭔데? 잘못하면 우리 걔한테 다 죽을 뻔했다니까?”
카힐의 추궁에 괜히 옆에 있던 앙피가 경비병 얀과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아, 얀 씨 말씀인가요. 조금 과격한 분이시긴 하지만 강한 분이 마을에 못 들어오게 하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심성은 착하신 분이라고요.
뭐, 애초에 강한 분이 들어와도 상관없지만요.”
안내원이 앙피 머리통보다 두꺼운 팔뚝을 들어 보였다. 어지간히 강한 녀석이 아니고서야 얀과 이 안내원을 뚫고 시티롱 마을에 들어가긴 어려워 보인다.
“전 오히려 손바닥을 뚫고 왔으면서 이렇게나 약하신 게 신기하네요. 요즘 손바닥은 조금 조용한가 보죠?”
“...생각보단 괜찮았어요.”
“넌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비비 님도 아무것도···.”
“꾸어어!”
비비가 헛소리 말라는 표정으로 앙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앙피는 그런 괴물을 피해 시티롱 마을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어휴. 병신들.”
자신은 정상이라 생각하는 카힐이 구속구를 절그럭거리며 따라 들어갔다.
“그럼 랭킹 등록은 완료되었으니 시티롱의 여행을 마음껏 즐기세요!”
이미 멀어진 그들을 보며 안내원은 제 임무를 다했다.
‘특이한 녀석들이네.’
***
마을 검문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엔 나지막한 기차역 하나가 있다. 기차역이라고 해도 사실 초원에 덩그러니 놓인 플랫폼과 역장용 간이 시설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이 멀리까지 나오는 이들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
약지의 영토는 소지보다 훨씬 넓어서 기차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한다. 물론 그런 편한 교통수단은 나약한 녀석들을 위한 거지만.
앙피가 도착한 곳은 [마을 입구 역]. 굳이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역 이름이다.
그리고 역에 붙은 기찻길을 따라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왜 다들 힘들게 걸어가시는 거죠. 설마 기차가 운행을 안 하는 걸까요...?”
“아, 지랄. 우리도 걸어가야 해?”
카힐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기찻길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기차가 괜히 발달한 게 아니다. 여기서 다음 역까지 걸어간다면 아마, 앙피는 중간에 지쳐 쓰러질 것이다.
“...무식한 마을...”
그때 근육이 우락부락한 아줌마 하나가 앙피 일행에게 다가왔다.
“어이 씹새끼들. 어딜 기웃거려. 다리 멀쩡하면 걸어가!!”
아줌마가 다짜고짜 호통을 치며 위협했다.
‘.....무식한 아줌마...’
“...아. 죄송해요.”
아줌마는 쭈굴거리는 앙피를 보더니 무심하게 목에 걸린 명찰을 확인했다.
“어머. 251위? 약한 아이였구나? 미안하다. 어서 들어오렴. 옆에 친구들도 고만고만해 보이는구나.”
아줌마가 급격히 태도를 바꿔 살갑게 그들을 역 안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이곳의 역장이었다.
역은 초원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흙먼지 한 톨 없었다. 혹여나 약한 것들이 먼지를 먹고 콧물을 질질 흘릴까 봐 그런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렴. 한 5시간 뒤면 기차가 올 거다. 아무래도 그 정도 랭킹의 사람은 여기까지 올 일이 없다 보니 오래 걸리는구나. 이해해주렴.”
“하. 더럽게 오래 걸리네. 더 빨리 갈 방법은 없어? 난 빨리 쉬고 싶다고!”
카힐이 구속구 안쪽이 간지럽다는 듯 긁어댔다.
“흠. 이 년은 딱 봐도 약해 보이진 않는데. 어디 보자···.
어머! 250위 이상의 아이였잖아!?”
카힐의 랭킹은 현재 247위. 앙피 일당에서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았다.
그리고 250위보다 높은 사람이 역에 온다면 역장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역장 아줌마가 갑자기 선로로 훌쩍 뛰어내리더니 건너편에 덮인 커다란 천을 치웠다.
그리고는 번쩍.
“으라차차차!”
천에 덮여있던 작은 기차를 꺼내 선로에 올렸다.
‘...무슨 장난감처럼 저걸... 무식해...’
“그래도 멋있다...”
“자! 이렇게나 약한 녀석을 5시간 기다리게 했다간 죽을지도 몰라! 당장 출발하자!!”
“이 시발! 약하다는 소리 좀 그만해!!!!”
뿌뿌-
기차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시티롱 마을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며 역도 세 개뿐이다.
[마을 입구]와 [강한 마을], [약한 마을].
마을 이름을 지은 게 누군지 몰라도 직관적이긴 했다. 게다가 중간도 없이 ‘강함’과 ‘약함’ 둘 뿐이라니. 얼마나 단순한 인물의 작품인가.
어찌 되었든 앙피 일당은 [마을 입구 역]에서 벗어나 [강한 마을 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찾아야 하는 하이드로 님은 약한 마을로 가셨다고 했죠...?”
앙피가 30분 동안 고민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 안내원이 말했잖아. 벌써 까먹게 병신이냐?”
카힐이 뇌를 거치지 않은 답변을 했다.
‘그럼 얼마나 걸리려나...’
앙피는 기차라는 것을 처음 봤기에 기차 안을 조심히 돌아다녔다.
‘기차란 건 이렇게 조그만 건가..?’
앙피는 고작 1칸짜리 기차 구경을 금방 끝내버렸다.
기차는 정말 단조롭게 생겼다. 고작 좌석 8개가 전부인 짧은 기차. 기술력이 엄청나서 그러냐고? 아니다.
강한 자는 기차가 필요 없고 약한 자는 마을 밖으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게다가 이 기차가 움직이는 법도.
“...마법이네. 이 문양.”
앙피가 기차 뒤편에 그려진 문양을 유심히 바라봤다.
‘..네모 안에 이상한 모양이 잔뜩 있네..... 토사물인가?’
문양을 그린 마법사의 얼굴이다.
그려진 마법은 보존 마법. 마법사(?)가 직접 기차를 미는 힘을 저장해두고 서서히 방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역 사이 거리를 직접 기차를 밀어 이동시킬 힘이 있어야 가능한 마법이다.
앙피는 기차 바닥을 쑥 훑어가다 단단해 보이는 기둥 하나를 발견했다.
“이건 무슨 부품이지.”
“뭐 보냐?”
단단한 기둥, 그러니까 단단한 종아리의 주인인 카힐이 앙피를 내려다봤다.
앙피는 차가운 피부색의 다리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기계 부품 같아요.”
“뭐? 뭐가 기계 부품인데.”
앙피가 조용히 자리에 앉더니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티롱 마을도 듣던 거랑 다르게 평화롭네.’
“야. 뭐가 부품···.”
“우와... 저런 데서 어떻게 살지...”
드넓은 초원과 간혹 보이는 집들. 이런 야생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사나 보다.
그리고 역시 초원인지라 뻥 뚫린 개방감에 마음이 시원해진다.
“하...”
앙피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참으로 한가롭고 평화롭다.
저 녀석들만 빼면.
“후! 후! 질 수 없다!”
“으랴랴랴!”
“으엙...”
앙피는 폐에 들어온 땀 냄새에 구역질을 했다.
“유산소 우마이!!”
약한 녀석들이 기차를 탄다면 강한 녀석들은 어떻게 마을을 이동할까?
답은 당연히 ‘뛰어서’다.
웬 미친 근육 덩어리 놈들이 기차의 속도에 맞춰 나란히 뛰고 있다. 개중에는 눈을 감은 채 졸면서 뛰는 정신 나간 녀석도 있었다.
초원의 근육 무리. 그야말로 장관이다.
“...전사 무리인가....?”
“어이. 기차 안은 편한가?”
그때 기차 옆을 나란히 달리던 근육 남자가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온몸을 문신으로 도배한 그의 몸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표정은 태평했다.
“...네. 쿠션이 푹신해요.”
“하! 하! 다행이군! 내가 만든 기차거든 그거!”
자랑스럽게 기차 자랑을 하는 그의 이름은 문박, 랭킹 540위다. 본인이 만든 기차를 본인은 못 타서 뛰어가는 신세다. 정작 문박 자신은 하체가 단단해진다는 이유로 좋게 생각하지만.
문박은 본인의 기차가 칭찬받았단 사실에 기뻐하며 기차보다 더 빨리 뛰어 사라져버렸다.
“특이한 사람이 정말 많네요...”
“우어어!”
특이함 하면 뒤지지 않는 비비가 앙피 옆으로 다가왔다. 앙피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구경하는 게 내심 신기했나 보다.
비비가 앙피 옆에 찰싹 붙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비비의 푸른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나풀거렸다.
앙피는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하려다가 가만히 있었다.
“꿔!”
비비는 창밖으로 내민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게 기분 좋았다. 그 왜 강아지들이 달리는 차 밖으로 혀를 내미는 그런 기분이다.
비비는 바람을 더 맞고 싶어 상체를 쭉 빼 머리를 완전히 밖으로 내밀었다.
“...위험해요.”
“우어어어어어어~”
비비는 강한 바람이 기분 좋다는 듯 입을 쩌억 벌렸다. 그러다 순간 불어온 강한 바람에 머리가 툭 하고 떨어져 버렸다.
“......으어...”
비비 머리가 기차 뒤편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며 소리를 냈다. 머리를 잃은 몸이 머리를 찾아 옆에서 휘적거렸다.
그 모습을 직관한 앙피는 올라오는 신물을 삼키며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머리가 사라진 비비가 새 머리를 또 뽑아내는 사이, 기차는 달리고 달려 어느덧 [강한 마을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 앉아있어도 사방에서 “으랴랴!”하는 힘찬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절대 안 내려야지. 조용히 있자.’
어차피 그들의 목적지는 약한 마을이었기에 앉아서 기차가 다시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10분이 지나도 기차는 움직일 기세가 없었다.
“음... 250위 이하는 오래 기다리다 다친다고 했는데요...”
“...다치겠냐고.”
247위의 카힐이 이젠 지쳤다는 듯 답했다.
“...얼굴은 지쳐보이시는데...”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나도록 기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앙피는 큰 결심을 했다.
‘....밖에 잠깐만 볼까...?’
작은 결심으로 정정하겠다.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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