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줄 건 줘
이들은 손바닥의 무법자 무리인 ‘자믄뵈아크’ 소속이다.
왼섬의 암시장과 뒷세계를 장악한 갱단으로 손바닥에서 만나면 안 될 조직 1위로 뽑힌다.
그중 소지에서 약지로 가는 길을 담당한 ‘에크트리’. 그는 언제나 가장 약한 녀석을 인질로 잡아 원하는 바를 이루는 악랄한 남자였다.
그리고 지금, 여자가 나약한 꼬맹이를 쿨하게 버리고 가려 한다.
“어이. 이 꼬맹이를 버리고 가겠다고?”
“응. 죽이지만 말고 오래오래 키워줘.”
어차피 대마법사를 찾는 길이 짧지만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누가 노예처럼 오래 묶어둔다면 죽을 걱정도 없고 나쁘지 않지.
“으어어어..”
그때 뒤에서 조용히 쫓아오던 비비가 옷자락을 잡았다. 카힐이야 소환된지 10년이 넘어 타락(?)했다지만 막 소환된 비비는 주인인 앙피를 버릴 수 없었다.
“...썅. 알았어. 구해주지 뭐.”
카힐이 한숨을 쉬며 다시 갱단에게 맞섰다.
이래 봬도 카힐은 마족이다. 인간과 마족의 차이는 쉽게 좁혀질 거리가 아니다. 실제로 카힐이 살던 시발 마을 숲에도 건방진 녀석들이 가끔 있었다.
그런 한 실력 한다는 인간들을 벌레 잡듯 잡은 게 바로 카힐이다.
“야, 좋은 말할 때 걔 풀어줘라. 시발새끼들아.”
시발 마을에서도 혀를 내두를 인사다.
“후. 시발 마을 출신들은 하나같이 입이 더럽단 말이야. 얘들아 그냥 다 잡아 와라.”
우두머리인 에크트리의 명령에 부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벌레 놈들이.”
카힐이 비비를 안전하게 뒤로 보냈다.
손이 묶이고 목이 고정되었지만 그 정도로 이런 엑스트라 같은 녀석들한테 질 리가.
카힐은 가볍게 맨 앞의 적을 어깨로 흘리며 그대로 등을 내리찍었다.
지잉- 내리찍은 손이 울린다.
“윽. 뭐야!”
맞은 놈은 멀쩡하고 오히려 카힐의 손이 욱신거렸다. 이건 마치 바위를 치는 듯한 느낌이다.
“...나. 강해졌나.”
김슨방, 남자, 20세.
살면서 처음으로 다른 이의 공격을 버텨내다.
“후후후후.”
자신감을 가득 얻은 김슨방 씨가 호기롭게 웃으며 카힐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비비의 카운터 펀치.
김슨방 씨는 늘 그렇듯 첫 번째로 바닥에 쓰러졌다.
“으어어?”
“이 녀석! 우리 슨방이를! 강한 펫을 데리고 있었구나!”
“끄어어!(펫이라니!)”
“강하다니! 이상해 뭔가. 비비가 나보다 강하다고?”
카힐이 방방 뛰는 비비를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흥분해서 방방 뛰던 비비는 혼자 발목을 접질렸다.
“역시 이 구속구, 내 힘을 다 봉인하고 있잖아. 야! 앙피! 이거 당장 풀어!”
카힐이 붙잡힌 앙피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앙피는 무슨 마법이라도 걸린 건지 맹하니 있었다.
그사이 다른 부하 셋이 일제히 카힐에게 달려들었다.
뻑-. 카힐의 얼굴에 꽂힌 주먹을 필두로 부하 셋의 공격이 연달아 날아왔다.
“ㄲ···.”
카힐이 비비 같은 신음을 뱉으며 겨우 방어했다. 옆의 비비는 그녀를 도와주려다 칼을 든 녀석에게 조각나버렸다.
그렇게 카힐과 앙피가 린치를 당하는 사이 에크트리는 조용히 품속에 손을 넣었다.
“걱정 마라. 꼬맹이. 저 녀석들과 함께 노역장에 팔아줄 테니까. 그리고 고문은 내 전문이라. 정신이 개조될 때까지 실컷 시켜주지.”
에크트리가 더러운 웃음을 보이며 가루가 든 약을 꺼냈다.
“너 같은 약한 녀석들을 위한 약이야. 기대되지? 어차피 듣지도 못하겠지만.”
에크트리 그 역시도 마법사였다. 커다란 도끼가 그의 마법 지팡이다.
그의 마법은 약자 멸시, 자신보다 약한 자의 정신을 외부와 차단한다.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못 듣는 텅 빈 공간에 버려진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들어 정신을 붕괴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외부와 차단된 앙피.
“.... 편하다.”
엄청나게 만족 중.
마치 홀로 우주를 부유하는 이 느낌. 여유롭고 평화롭다.
‘그나저나 이상한 산적 같은 아저씨가 붙잡았던 건 기억나는데. 그 아저씨가 좋은 버프(?)를 걸어준 건가.’
앙피가 그렇게 딱히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무렵. 갑작스럽게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뭐지 이 썩은 냄새..... 비비가 가까이 있나?”
비비는 의도치 않은 욕을 먹었다. 그리고 앙피는 그 악취에 결국 에크트리의 마법에서 깨어났다.
앙피는 공주처럼 에크트리에게 안긴 채 말했다.
“입 냄새나요..”
“야!! 앙피!!! 구속구 풀어!”
그 소리를 들은 카힐이 소리 질렀고 앙피가 반사적으로 카힐을 향해 손을 뻗었다.
-툭. 카힐의 손을 봉인했던 구속구가 풀렸다.
“...시발. 드디어.”
아직 목에 구속구 하나가 남아있지만 괜찮다. 카힐은 마족답게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단 2초.
칼을 박아넣고 복부를 가격하던 부하 셋의 심장이 뜯긴 시간이다.
그리고 0.5초.
에크트리의 머리통이 주인을 잃었다. 마치 몇 분 전 비비처럼.
카힐은 순식간에 에크트리 무리를 휩쓸고 앙피의 멱살을 잡았다.
“개새끼야. 구속구를 이제야 풀어?”
앙피는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다.
‘... 구속구 풀어 달래서 바로 풀어줬는데.... 부탁 바로 들어줬는데... 왜 욕하는 거지...?’
“죄송해요...”
그러나 앙피는 사과했다. 왜냐고? 무섭잖아. 마족인데.
“...봐준다.”
막상 사과를 받아버린 카힐은 앙피를 놓아주었다. 앙피가 정신 마법에 걸렸다는 사실은 어림잡아 알고 있었으니까.
“구해줘서 감사해요.”
앙피가 자신의 소환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됐어. 내가 죽일 때까지 넌 못 죽어.”
카힐이 자유로워진 두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녀가 오랜만에 돌아온 힘을 체감하듯 주변의 나무를 쉽게 부쉈다.
“흠. 이래도 절반밖에 안 되네. 목에 이것도 풀어주면 안 되냐?”
카힐이 목에 묶인 구속구를 깡깡 두드렸다.
“...사실 아까 전부 풀려고 했는데 하나만 풀렸어요.”
카힐을 구속구로 묶은 건 순전히 앙피의 본능이었다. 그 때문인지 구속구를 해제하거나 추가로 만들어내는 것 또한 앙피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소환술만큼이나 제멋대로라는 뜻이지.
“그렇ㄱ···.”
-철컥.
그리고 그 제멋대로인 구속구가 다시 카힐에게 날아가 묶였다.
“아니 시발! 이거 왜 다시 채워!!”
“아니에요! 아니에요!”
카힐이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앙피의 머리를 깡깡 내리쳤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힘이 봉인되어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젠장!!”
카힐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
순식간에 지쳐버린 세 명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날도 어두워지기도 했고 하루 자고 가는 게 낫다고 본다.
“...밥은 대충 때웠으니까 저는 잘게요...”
“으어어!”
피곤해하는 앙피와 달리 비비는 쌩쌩해 보였다.
“근데 쟤는 분명 조각났었는데 어떻게 멀쩡한 거지.”
카힐이 비비를 쿡쿡 찔러봤다.
비비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카힐의 손가락을 와작 물었다.
“꺄아아아악! 미친년이!!”
카힐이 비비를 발로 차버렸다.
누우려던 앙피도 깜짝 놀라서 후다닥 거리를 벌렸다.
“미친. 나 좀비한테 물렸어!! 나 좀비 되기 싫어어어어어.”
카힐이 이빨 자국 남은 손가락을 앙피에게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추하게 울먹거렸다.
사실 앙피에게는 마족이나 좀비나 큰 차이는 없다고 느껴졌다.
둘 다 피부도 창백하고 회복력도 좋고. 비비는 말을 못 하긴 하지만.
‘...카힐 님까지 말을 못 하게 되면...... 나쁘지는 않나...?’
“비비 님. 좀비가 물면 좀비가 되나요..?”
앙피가 들러붙는 카힐을 떼어내며 물었다.
“끄어?”
비비가 무슨 헛소리냐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으어어어!”
비비가 같은 좀비여도 특성이 다르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알아듣는 이는 없었지만.
“이 시발! 놀랐잖아!!”
카힐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비비를 밟아댔다. 밟히는 비비는 우억 우억 하는 좀비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별일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앙피는 멀리 떨어져 다시 누웠다.
그날 밤 시야 공유한 소환수가 얌전한 덕에 오랜만에 푹 잘 기회였다.
1시간마다 일어나서 비비를 패는 카힐과 그걸 피해 도망 오는 비비, 그리고 앙피는 그런 비비의 습격을 피해 도망가느라 오늘도 숙면은 물건너갔다.
“아오! 시발!”
퍼억-.
“꾸엙!”
‘...혼자 왔어야 했나.’
앙피는 평소와 다른 이유로 잠을 설쳤다. 아니지, 결국엔 소환수 탓이니 같은 이유인가?
***
다음 날 아침. 앙피 일당은 부지런히 움직여 약지의 반지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여기 반지 경비병은 유했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팔 꺾이는 건 질색이야. 익숙하지가 않아서 시발... 칼에 찔린 거보다 아파.”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하듯 반지에서 곧장 창 하나가 날아와 카힐의 팔에 꽂혔다.
“꺄아아아아악!”
이상, 찔리는 고통에 익숙하다는 카힐의 비명이었다.
반지에서 긴 머리를 축 늘어뜨린 여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꺄하핳. 습관적으로 공격해버렸네. 어머, 버티네? 너네. 강하구나?!”
그녀의 늘어진 앞머리 사이로 광기가 들어찬 눈이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얀’. 약지의 반지를 담당하고 있다.
얀은 등에 가득 맨 창 중에 하나를 또 꺼내 들었다.
회복력 따위 없는 평범한 인간인 앙피는 서둘러 변명거리를 찾아냈다.
“잠시만요! 저흰 소지에서 온 평범한 여행객이에요...!”
“평범한?”
얀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곧장 창을 집어 던졌다. 날아온 창은 비비의 이마 정 가운데에 꽂혔다.
“끄어어어?”
소리를 지르던 누구보다 얌전한 반응이었다. 사실 비비는 딱히 고통을 느끼지도 않았지만.
“평범한지는 살을 맞대기 전엔 모르는 거야. 히히.”
“아오 씨. 아파라. 저 미친년 말이 맞아. 여긴 힘에 미친 마을이라고.”
카힐이 팔에 꽂힌 창을 뽑으며 앙피를 꾸짖었다.
약지의 마을 이름은 ‘시티롱 마을’. 도시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마을인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힘에 미친 마을. 모두가 강한 힘을 추구하는 곳. 하지만 이 약지는 야만적으로 힘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다.
그들은 ‘정의’가 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도와준다]
이것이 그들의 신념이다.
이 때문에 이곳은 약할수록 더 많은 권력을 더 높은 지위를 얻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약자를 도와주는 정의로운 마을이라더니, 저 미친년 보니까 헛소문이었나 보네.”
카힐이 멍하니 있는 비비에게 박힌 창을 빼주었다. 퐁-. 비비가 정수리에 시원한 바람구멍이 난 채 헤헤 웃었다.
“한 번에 안 죽은 녀석은 오랜만이네. 너네... 마음에 든다. 흐흫.”
얀이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냈다. 확실히 시티롱 마을의 신념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여자였다. 그녀는 행복하단 표정으로 앙피네를 바라봤다.
“있잖아. 하악. 난 강한 녀석만 보면 피가 돌아... 못 참겠다고!!”
얀이 지나치게 상기된 표정으로 뛰어왔다.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표정이다.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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