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대는 사형이다. 그럼 안녕
“주인님!”
어린 소녀 하나가 말을 걸어온다. 창백한 피부의 그녀는 나의 첫 소환수. 첫 만남부터 눈물바다에 약하면서도 나를 지켜주려고 했다.
하지만 나도 어린 소년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ㅈ.저 그.. 아...”
아무리 내 소환수래도 또래의 여자애는 너무 어렵다. 명령은 무슨 말조차 못 걸겠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 그 애를 혼자 두고 도망갔다. 미안함에 차마 소환 해제는 못 했고 그녀가 먼저 나의 의도를 이해한 듯 마을을 떠났다.
그런 식으로 떠나보낸 소환수가 몇인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차라리 이런 능력 같은 게 없었다면...
***
“으으... 또... 또 잠을 설쳤네.”
앙피가 찌뿌둥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요즘 잠을 자도 잔 기분이 아니다. 숲을 헤매거나 바다에 가라앉거나 엄청나게 걷거나, 이상할 정도로 생생한 꿈들 때문에 피곤해 죽을 지경이다.
“오늘도 잘 못 잤니? 요즘 계속 심해지네. 사제에게 치료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앙피의 고모가 방 앞에 기대서있다. 어릴 적부터 앙피를 지켜봐 왔지만 요즘 들어 부쩍 수척해진 그를 걱정하고 있다.
앙피는 다크서클 가득한 눈을 비볐다. 그래도 좀 피곤할 뿐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참으면 괜찮아, 라는 그였다.
“괜찮아요. 식당 물려받을 시기라 바쁘잖아요...”
“그래. 그보다 요새 손님이 안 와서 문제다. 네가 가서 손님들 좀 불러올래? 마지막 날이니까 요리는 고모가 할게.”
아, 앙피는 입을 다물었다. 호객행위라니 앙피에게 딱 질색인 일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고모가 잘 걸렸다는 듯 말했다.
“그럼 소환수를 시키면 어때. 무료 인력인데 얼마든지 써도...”
앙피가 시선을 흘렸다.
소환수를 소환하면... 먼저 통성명하고, 호칭을 정하고... 도와줄 건지 물어보고... 호객행위도 알려줘야 되는데...
앙피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냥 제가 할게요.”
처음 보는 소환수보다야 몇 번이라도 본 마을 사람들이 나으니까. 앙피는 꼼꼼히 준비를 마치고 마을 광장으로 나섰다.
여긴 시발마을. 욕설이 아니라 시작의 의미다. 지친 사람들, 혹은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들이 찾아와 새 인생을 찾는 마을이라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
어떠한 특색도 없는 곳이기에 어떠한 일이든 할 수 있는 좋은 마을이다.
그리고 앙피는 이곳에서 작은 식당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일명 슾밥집. 각종 스프류나 스튜에 곡식을 말아주는 식당이다. 든든함으로 나름 인기가 많았다.
문제는 앙피가 잠을 설치며 요리에 집중을 못 하니 손님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 고모 말대로 소환수라도..”
앙피는 잠시 소환수와의 어색한 첫 만남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고모가 요리하니까 괜찮을 것이다.
앙피는 광장에 덩그러니 서서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을 살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가게에 와달라는 건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앙피의 선택은 전단지를 돌리는 거였다.
「앙피의 슾밥집
그날그날 새로운 재료로 만든 스프에 곡식을 말아드려요.
그렇게 싸진 않지만 먹으면 든든해요.」
전단지 밑에는 작은 글씨로 ‘제 요리가 싫으신 분은 고모에게 부탁해주세요.’라고 쓰여있다.
앙피는 힘들게 만든 전단지가 효과가 있길 바랐다. 혹시 몰라 하나하나 그려 넣은 슾밥 그림이 삐뚤빼뚤 귀여웠다. 비록 다른 사람 눈엔 그게 슾밥으로는 안 보이지만.
어쨌든 그는 쭈뼛쭈뼛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뻗었다.
“시발 안녕.”
“시발 반가워.”
마을 사람들이 흔쾌히 전단지를 받아주며 훈훈하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하루 보내라는 ‘시발’을 붙여주는 게 이곳의 예의다. 다만, 아침이 아닐 때 쓰면 그냥 욕설이니 조심해야 한다.
“ㅅ..”
앙피는 대답 대신 바람 빠지는 소리만 했다. 이 욕설 같은 인사법은 앙피에게 잘 맞지 않았다. 대신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때 앙피의 몇 안 되는 또래인 골푼이 다가왔다.
“야. 시발 뭐하냐 여기서.”
저건 그냥 욕설이다.
어렸을 때부터 앙피를 꾸준히 괴롭혀온 골푼은 다음 촌장을 물려받을 예정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앙피에게 자랑하러 친히 찾아오셨다.
“아, 손님이 없어서..”
“그래? 많이 한가해 보이네. 나는 위임식 준비로 아주 바쁜데. 부럽다, 그렇게나 한가할 수 있어서.”
골푼이 부담스러운 얼굴을 씰룩거렸다.
‘그래. 골푼이는 촌장 일을 물려받느라 바쁘겠지. 시간 뺏지 않게 빨리 보내주자.’
“그럼 그거 하러 가.”
“뭐? 너 내가 촌장 되면 식당 잘 되게 해줄 수도 있는 거야. 알아? 나한테 잘 보이라고. 내가 너 도와줄 수도 있다니까?”
골푼이 앙피의 가슴팍을 쿡쿡 찔렀다.
앙피는 전단지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도와준다고? 고마워...”
앙피는 꾸벅 그에게 인사를 하고 그대로 도망갔다. 멀어지는 그를 보며 골푼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골푼이 화가나 던진 전단지는 마을 곳곳에 잘 뿌려졌다.
다행히(?) 전단지는 전부 뿌렸지만 식당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고모가 가게 때문에 걱정이 많아 보이셨지...”
‘잠을 설치지만 않아도...’
앙피는 자신이 고모에게 짐이 되는 것만 같았다. 이럴 바엔 불편하더라도 소환수를 소환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용도 안 들고 소환과 해제를 반복하면 식비나 잠자리를 제공할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본인의 소환수이니 마음껏 부려 먹을 수 있다.
‘돈 안 주고 일 시키면 미안하니까... 매일 5골드 주고... 음식이랑 침대도 구해놔야지...’
앙피는 이번에야말로 소환수를 제대로 이용해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늘 결과는 방목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가 떠나보낸 소환수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고 결국 문제가 터졌다.
“안녕... 아니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앙피가 소환수와의 첫인사를 연습하며 가게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이봐! 앙피라는 자가 여기에 있나!”
한창 바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가게 앞이 북적북적했다. 앙피가 매일 돌린 전단지가 효과가 있던 걸까.
그는 혼자 고생하고 있을 고모가 걱정돼 얼른 가게 앞으로 뛰어갔다.
“죄송해요! 서비스 드릴 테니 기다려주세요!”
오랜만에 북적여서 다행이야, 앙피는 냅다 가게 앞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대가 앙피인가?”
모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머리가 흰 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얼핏 봐도 고급원단을 휘휘 감은 모습이 이 마을 사람은 아닌 듯했다.
왕국의 표시가 곳곳에 박힌 그는 다름 아닌 왕국의 칙사였다.
휘리릭, 착. 파앗. 칙사는 요란하게 품속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이 남자의 유일한 업무이자 즐거움이기에 이렇게나 진심이다.
이게 몇 달만의 업무인지, 그는 양피지를 쓸데없이 이리저리 돌리다가 촥- 하고 펼쳤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헛기침과 함께 양피지에 적힌 내용을 앙피에게 읊어줬다.
“짐은 그대의 소환수가 날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노라. 이는 나라 전체에 해를 끼칠 수 있으니 조속히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그에 짧게 명령하겠도다.
한 달 안에 소환수를 책임지고 제압해라.”
“......네?”
앙피는 눈을 끔뻑였다. 자신의 소환수가 어떻게 날뛰었길래 왕의 귀까지 들어간 것일까.
게다가 그가 지금까지 방목한 소환수가 한둘이 아니기에 어떤 녀석이 말썽을 피웠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어디에 있나요...?”
“그거라면 이걸 봐라.”
칙사는 다시 한번 요란한 춤을 추며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주변에 구경꾼들이 몰려온 탓인지 더욱 격한 춤이었다.
마침 그 소란을 듣고 나온 고모가 앙피에게 속삭였다.
“저 미친놈은 뭐니? 진상이야?”
그녀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칙사를 바라봤다.
칙사는 3분여 만에 지도를 펼쳤다. 얼굴엔 땀방울과 뿌듯함이 묻어있다.
“허억... 자.. 여길 보면...”
그는 헐떡거리며 지도를 가리켰다.
이 세계엔 단 두 개의 섬만 있다.
손을 본뜬 모양의 왼섬과 오른섬. 이름 그대로 양쪽에 나란히 놓인 두 섬이다. 현재 앙피가 있는 곳은 서쪽인 왼섬이다.
왼섬은 각 손가락마다 마을이 하나씩 존재한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각 마을은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산다.
그중 앙피가 사는 마을인 ‘시발마을’은 소지에 위치한다. 새끼손가락에 위치한 이 마을은 다른 이름으로 시발샊···.
“자. 여기 소지 끝부분이 이 마을이다. 그리고 밑에 손바닥 직전의 이곳. 이곳에 있는 숲에 그대의 소환수가 있다고 한다.”
칙사가 왼섬의 지도를 보며 꼼꼼히 말해줬다. 그가 이렇게나 친절한 이유가 뭘까.
어쨌든 앙피는 열심히 지도를 살폈다.
“어... 그렇게 멀진 않네요..”
비교적 가까이 있는 걸 보면 소환한 지 얼마 안 된 소환수일 가능성이 컸다. 앙피는 빠르게 기억을 되짚었다.
‘최근에 소환한 애들이... 물고기랑 도마뱀인데. 숲이니까 도마뱀이려나..?’
앙피는 소환술에는 조금의 문제가 있다.
첫째로 누가 소환될지 알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누구든지 소환된다는 점.
말 못 하는 물고기랑 도마뱀도 일손이 부족할 때 소환했었다. 하마터면 고모가 식재료인줄 알고 삶아버릴 뻔했지만. 앙피가 무사히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근데 그 조그만 도마뱀이 무슨 사고를 친 걸까.
앙피는 창고에 박혀있는 잠자리채를 떠올리며 칙사에게 물었다.
“한 달 안에는 잡을 수 있어요. 잡으면 칙사님에게 말씀드리면 될까요..?”
“크흠. 그게. 그거 말인데.”
칙사가 슬쩍 지도를 집어넣으며 앙피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나 친절했던 이유를 말했다.
“내가 실수로 이 칙령을 까먹고 있었어서, 나르여앙 님께서 새 칙령을 주셨다.”
“...나이가 많으시니 그럴 수 있어요.”
앙피가 고작 25세를 넘은 칙사에게 말했다.
하지만 칙사는 화도 내지 않고 오히려 콧수염을 배배 꼬며 새 양피지를 꺼낼 준비를 했다.
“오. 시작한다.”
“오오.”
이젠 구경 온 마을 사람들이 그의 춤사위를 기대하고 있었다. 고모도 어느새 그사이에 끼어 앉아있었다.
“ㅋ..크흠.”
그러나 칙사는 평범하게 양피지를 꺼냈다.
우우, 한쪽에서 야유가 나왔다.
“아까 보여준 건 한 달 전 내용이다. 이게 오늘 거다.”
“네??”
앙피가 오랜만에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까 본 내용에 분명 한 달 안에 처리하랬는데, 그게 한 달 전 명령이라는 건···.
앙피가 급하게 새 양피지를 펼쳤다.
그리고 그곳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 나르여앙의 명령을 무시하다니 용기가 가상하구나. 그 무모함을 칭찬하며 딱 하루만 더 주겠노라.
내일까지 그대의 소환수가 제압됐다는 소식이 오지 않는다면..
앙피, 그대는 사형이다. 그럼 안녕.」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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