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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앤별 작가님의 서재입니다.

1940-나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완결

별앤별작가
작품등록일 :
2023.01.10 22:05
최근연재일 :
2023.04.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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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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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글자수 :
20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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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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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스물 여섯 번째 이야기

DUMMY

독립군의 소식을 들은 동포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독립군이 일본군을 모두 쳐부셨다하네!"


"정말 속 시원하네. 일본놈들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기 바쁘다네."


독립군들은 서로 승리에 기뻐하며 김좌진 장군의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하하하, 우리 김좌진 장군, 정말 대단하구만."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한 곳에 승리가 존재하면 다른 한 곳은 실패가 존재할 것니니.


김좌진 장군의 활약으로 분노한 일본인들이 만주에 사는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총을 날려갔다.


"만주에 사는 조선인들을 모두 죽여라! 독립의 씨를 말려라!"


일본군은 독립군에 대한 분풀이로 만주의 간도에 사는 1만명이나 되는 조선인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냈다(간도 학살 사건).


****


1920년대 초반. 상하이.


당시 우리나라의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되기 전에는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서울의 한성정부, 상하이의 임시정부까지 총 3개가 있었다.


상하이파는 상하이 임시정부를 지지했고, 이르쿠츠크파는 연해주 대한국민의회를 지지했다.


자유시는 극동공화국 땅이었고, 자유대대는 극동공화국 소속 부대였기에 한인 무장 부대는 이르쿠츠크파의 자유대대에 편입이 되어야만 했다.


"상하이파 쪽으로 박일리아의 이항군대가 자유대대 편입을 거부하고 이를 극동공화국 한인부에 알리고 있네."


당시 극동공화국 한인부는 상하이파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에 맞춰 이동휘를 도와 움직이던 별하단의 수장 현진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들은 대한국민의회나 자유대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박창은, 그리고 리예프를 파견하여 극동공화국과의 협의하에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것 같네."


"아무래도 박일리아의 이항군대를 사할린의용대(대한의용군)로 만들어 모든 한인 무장 부대를 이 밑에 두려는 것 같아."


조용히 현진의 이야기를 듣던 의병 선호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합니까? 우리의 목적은 독립을 위해 움직이는 의병들을 도우는 일이지 않습니까? 이리 가다간 저희의 목표의 방향이 흐트러질 것 같습니다."


"흐음...... 여기서 길을 잡는게 맞겠지? 우리는 그저 독립에 도움이 될 신문에 열중하는 것이 맞는 거겠지?"


결국 별하단 쪽 의병들은 정치에 관련된 길을 멈추고선 원래의 길로 돌아섰다.


1921년 2월 중순 자유시에 도착한 박창은 일행은 총사령관으로서의 지휘권을 행사하려 하다가 실패하고 총사령관직을 사임했고, 한인부는 그리고리예프를 연대장, 박일리아를 군정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두 사람은 즉시 군대관리에 착수했다.


박일리아는 자유대대에 편입되었던 이항군대와 다반군대를 마사노프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간도에서 온 독립군이 주축이던 대한독립군단도 자유시에서 강제로 내보냈다.


이때 자유대대는 끝까지 불응하여 장교들이 체포되었고, 이항군대와 다반군대에 의해 무장해제되었다.


자유대대는 극동공화국의 지방수비대로 격하되어 강제로 편입되었다.


이렇게 자유시에 집결한 한인 독립군 부대에 대한 통수권은 상해파와 박일리아가 가지게 되었다.


그러자 자유대대를 이끌었던 오하묵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이르쿠츠크에 있는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동양비서부에 가서 한인무장부대의 통수권을 자기들이 가질 수 있도록 교섭했다.


코민테른은 극동공화국을 조종하고 있었기에 충분한 힘이 있었다.


코민테른 동양비서부는 이르쿠츠크파와 오하묵의 손을 들어주었다.


동양비서부는 임시고려혁명군정의회를 조직하고 총사령관에 네스토르 알렉산드로비치 칼란다리쉬빌리, 부사령관에는 오하묵, 군정위원으로는 김하석, 채성룡을 임명하였다.


박일리아 등은 이에 맞서 한인군사위원회(전한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극동공화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장군, 서찰이 도착했습니다."


박일리아는 서찰을 읽기 시작했다.


'8일 박일리아에게 군대를 인솔하고 자유시로 들어오시오.'


그에 군사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흐음, 1921년 6월 6일 자유시에 도착한 칼란다리쉬빌리는 7일 자유시에 있는 전부대를 소집하여 자신이 고려혁명군정의회 총사령관임을 선포하는군."


하지만 박일리아는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대한독립군의 홍범도와 안무의 군대는 명령에 따라 자유시로 들어갔다.


그러나 박일리아는 임시고려혁명군정의회에 계속 반항했다.


1921년 6월 27일 오후 11시 사할린의용대(대한의용군)의 연대장 그리고리예프까지도 칼란다리쉬빌리에게 투항했다.


칼란다리쉬빌리는 사할린의용대(대한의용군)의 무장해제를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사할린의용대(대한의용군)에는 상하이파 뿐만 아니라 간도에서 온 대한독립군 부대도 함께 있었다.


28일 자유시수비대 제29연대에서 파견된 군대가 사할린의용대(대한의용군)에 접근했고, 이후 제29연대 대장은 사할린의용대(대한의용군) 본부에 들어가 복종할 것을 종용했다.


사할린의용대(대한의용군)은 무장해제 명령에 불응했고, 자유시수비대 29연대는 공격명령을 내려 무장해제를 단행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칼란다리쉬빌리가 이끄는 소련의 적군과 오하묵의 자유대대가 사할린의용대(대한의용군)와 대한독립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기관총, 장갑차, 대포를 이용해 몰아부쳤다.


독립군 뒤쪽에는 강이 있어 도망가지 못해 피해를 더욱 키웠다.


독립군의 사상자는 대략 최소 36명에서 수십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970명은 포로가 되어 볼셰비키 혁명군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칼란다리쉬빌리의 명령을 이행하여 자유시로 미리 들어왔던 홍범도, 지청천도 함께 이르쿠츠크로 이동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르쿠츠파와 상하이파 간의 공산주의 권력다툼에 대한독립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참변이었다.


이 사건으로 대한독립군단은 와해되었고,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던 서일은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두 달 후 밀산에서 자살했다.


당시 이범석, 김홍일 등 일부 독립군은 러시아 이만으로 가지 않고 만주에 남아 있었고, 김좌진은 이만까지 갔다가 만주로 돌아왔기에 병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홍범도와 같이 이르쿠츠크로 이동한 지청천은 그곳에서 오하묵 등과 함께 고려혁명군(1921.8)을 결성하고, 같은 해 10월 고려혁명군관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1922년 4월경 소련 당국이 학교 교육방침을 문제삼아 지청천을 체포했으나, 지청천은 동년 7월 임시정부의 노력으로 석방되었다.


이후 고려공산당 상하이파와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의 대립이 극심해졌고, 코민테른이 강제로 이들을 해체시킨 후 1922년 1월 극동총국 산하 꼬르뷰로를 설치하여 한인 공산주의 세력을 통일시켰다.


그리고 1920년 8월 평양 기독교계의 민족 지도자들은 민족 기업의 건설과 육성을 촉구하고자 평양 야소교서원(耶蘇敎書院)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발족하였다.


이 운동에 호응하였던 서울의 조선 청년회 연합회에서는 1922년 말부터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일간지를 통해 조선 물산 장려 표어를 모집하는 한편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는 지방 순회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물산 장려 운동이 점차 민중 속으로 퍼져나가자 마침내 1923년 1월 서울 낙원동 협성 학교(協成學校) 강당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의 전국적 조직체가 탄생하였다.


그에 맞춰 만주에서 의병 상욱이 돌아왔다.


****


도하단 비밀 조직 거처.


“만주에서 동지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조국에 있던 의병들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감사합니다.”


도원이 제일 먼저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고, 그에 맞춰 의병들은 서로를 인사하며 안부를 물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의열단과 따로 움직이기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저희는 활동 중인 의병들을 지켜드리는 단체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오히려 폐가 될 것 깉더군요. 그래서 각자의 위치에서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도움이 필요하면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서로의 목적이 다르면 그리 활동할 수도 있죠.”


도원이 평양에서 토산품 애용 운동이 시작되었음을 동지들에게 말하였다.


"그러고보니 오는 길이 토산품 애용 운동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을 도와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욱의 물음에 도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숨 좀 돌리며 움직입시다. 상욱 동지 방금 만주에서 돌아왔습니다. 숨 좀 쉬십시오.”


“아, 미안합니다. 내 마음이 급하여......”


그에 연화가 입을 열었다.


“걱정마세요. 저희 도하단에서는 토산품 애용 운동을 시작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언제 또 일제가 총을 들지 모를 사고를 대비해 각자의 위치에서 그들을 주시하고 있으니 상욱 동지는 잠시 좀 쉬십시오.“


연화의 대답에 상욱은 웃으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렇듯 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독립을 이룩하려는 민족의 의지는 더욱 높아졌다.


****


당시 서울의 고무 공장 노동자들은 경성 고무 직공 조합을 결성된 상황이었다.


그러고 나서 임금 삭감을 중단할 것과 무례한 일본인 감독의 해고를 요구하기로 하고 업주 측과 교섭에 들어갔다.


하지만 업주 측은 교섭 대표를 만나기는커녕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모두를 해고하기로 결정하였다.


심지어는 파업 참여자 명단을 전국의 고무 공장에 돌려 아예 취업조차 못 하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크게 낙담하였다.


"이제 어찌 사나, 병든 남편이랑 올망졸망한 자식들이랑······."


"내 월급 기다리는 고향 어머니는 이제 어떡해······."


통곡하는 사람도 많았다.


"당신 해고야!"


이 말은 그들에게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행여 해고당할까 봐 숨죽이며 살아온 시간들, 못된 일본인 감독의 성희롱과 민족 차별에도 견뎌 왔던 날들이 더욱 설움을 돋우었다.


그래서 이들은 밤새 공장 앞에서 비를 맞았다.


어차피 죽을 것이니, 이 자리에서 굶어 죽겠노라고 아사 동맹을 조직한 것이다.


빗속에서 진행된 이날 농성 이후 전국에서 지지와 성원이 이어졌다.


노동자들의 단결과 여론 앞에 업주 측은 결국 파업 노동자의 전원 복직과 임금 인상, 상여금 지급을 약속하였다.


****


농민 외에도 어부들 역시 존재했고, 또 그들의 피해는 만만치 않았다.


그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상대로 의병들은 한 명, 한 명씩 다가가 그들의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현재 암태도 소작농민항쟁에서 이야기가 오고 있습니다."


상욱이 회의 장소에 입을 열었다.


"이로 인해 각계각층의 여론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소. 현재 이에 따라 서울·광주·목포 등지의 한국인 변호사들은 무료변론을 자청하였다 하더군요."


"맞습니다. 서울·평양 등 지에서는 지원강연회와 지원금 모금활동이 전개되었다고도 하더군요. 또, 목포에서는 시민대회가 계획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상욱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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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서른 아홉 번째 이야기(완) 23.04.04 42 1 13쪽
39 서른 여덟 번째 이야기 23.04.01 30 1 11쪽
38 서른 일곱 번째 이야기 23.03.30 28 1 11쪽
37 서른 여섯 번째 이야 23.03.28 28 1 12쪽
36 서른 다섯 번째 이야기 23.03.25 26 1 11쪽
35 서른 네 번째 이야기 23.03.23 29 1 11쪽
34 서른 세 번째 이야기 23.03.21 31 1 12쪽
33 서른 두 번째 이야기 23.03.18 33 1 11쪽
32 서른 한 번 째 이야기 23.03.16 25 1 11쪽
31 서른 번째 이야기 23.03.14 29 1 12쪽
30 스물 아홉 번째 이야기 23.03.11 29 1 11쪽
29 스물 여덟 번째 이야기 23.03.09 47 1 12쪽
28 스물 일곱 번째 이야기 23.03.07 31 1 11쪽
» 스물 여섯 번째 이야기 23.03.04 31 1 11쪽
26 스물 다섯 번째 이야기 23.03.02 29 1 12쪽
25 스물 네 번째 이야기 23.02.28 28 1 13쪽
24 스물 세 번째 이야기 23.02.25 33 2 11쪽
23 스물 두 번째 이야기 23.02.23 34 2 12쪽
22 스물 한 번째 이야기 23.02.21 38 2 12쪽
21 스무 번째 이야기 23.02.18 50 2 12쪽
20 열 아홉 번째 이야기 23.02.16 35 2 12쪽
19 열 여덟 번째 이야기 23.02.14 33 1 11쪽
18 열 일곱 번째 이야기 23.02.11 36 2 11쪽
17 열 여섯 번째 이야기 23.02.09 39 2 11쪽
16 열 다섯 번째 이야기 23.02.07 36 1 12쪽
15 열 네 번째 이야기 23.02.04 38 2 11쪽
14 열 세 번째 이야기 23.02.02 45 2 12쪽
13 열 두 번째 이야기 23.01.31 42 2 11쪽
12 열 한 번째 이야기 23.01.28 53 3 12쪽
11 열 번째 이야기 23.01.26 5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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