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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성마소천(聖魔燒天)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6.26 14: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3:20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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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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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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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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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복수행 - 29

DUMMY

진호연이 인자검을 죽일 듯 노려봤다.


“옷 벗어.”

“···뭐?”


인자검이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자, 진호연은 짜증스럽게 발을 비틀었다.


뿌득!


딸의 등에서 뼈가 부러지며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만!”

“딸내미 죽는 꼴 보고 싶다면 지금처럼만 해라.”

“알았으니까 그만!”


진호연의 성질머리를 파악한 인자검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옷을 벗었다. 쉬이 벗겨지지 않는 부분은 칼로 찢어서라도 옷을 벗었다.


그는 딸 앞에서 나신을 드러낸 치욕에 이를 질끈 깨물었다.


“···됐나.”

“자아, 내 가족을 유린하고 수많은 여인들을 겁간한 음구가 자신이라고 인정해라.”

“나, 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단···.”


뿌득!


이제 딸의 얼굴이 터지기 일보직전이 되었다. 눈알이 불거지고 퍼런 핏줄이 도드라진 혀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마아아안!”

“그럼 빨리 이실직고해라.”


얼굴이 뻘겋다 못해 시꺼메진 꼴에 인자검이 기겁했다.


“그만! 그만그만그만! 내가 음구다!”


진호연은 기대에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소녀를 지르밟는 발의 힘을 슬슬 풀었다.


“내가 자식 보는 앞에서 어미를 겁간하고, 어미 보는 앞에서 자식을 겁간했다! 인정할 테니 내 딸은 제발 살려줘, 제발 부탁이다!”

“진작 인정했으면 쉽게 끝났을 일을 왜 어렵게 만들었습니까. 저도 나름대로 인자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진호연의 시퍼런 안광을 내뿜던 눈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표정과 말투 또한 돌연 차분하게 변했다.


“소저, 들으셨습니까?”


그가 매우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불렀지만 그게 더 끔찍하게 다가왔다.


소녀의 눈동자에는 아름다운 청년을 갈망하는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렇지 않아도 진호연이 무서워 미칠 노릇인데, 미친놈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에 공포심이 배가 되어 아픈 것도 잊어버렸다.


“끄어! 으어어어!”

“저 음구라는 놈이 그런 작자입니다. 애를 밴 여인이고 아이고 가릴 것 없이 겁간하고 다녔는지라 아주 지저분한 별호가 붙은 색마지요. 지금껏 어찌 정체를 숨기고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으흐흐흑, 흐어어어!”


통곡하는 것은 딸만이 아니었다. 인자검 또한 하나 남은 손으로 땅을 치며 울고 있었다.


“젠장! 젠자아앙···.”

“끄으으, 아빠아아,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사람이 어떻게···.”

“내가, 내가 미쳤었다! 내가 미쳐서 그랬어! 미안하다. 미안해!”

“이런 개만도 못한, 어떻게 우리 아빠가···.”


두 부녀의 애틋한 모습에 진호연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혹시, 당신 어미가 어찌 당신을 잉태하고 낳았을지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까? 당연히 있었겠지요?”

“서, 설마, 설마아! 아냐아아!”


그녀의 절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지독한 혐오가 덧씌워졌다.


“설마 엄마를? 엄마를 그렇게 해서 내가 태어난 거야?”

“클클클, 모를 일이지요. 참 모를 일입니다.”


인자검이 손을 뻗으며 절규했다.


“아냐아아악! 네 어미는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었어! 그렇게 태어난 게 너였다!”

“거짓말!”

“진짜다! 애비를 믿어다오!”


진호연은 인자검 부녀의 눈물나는 대화를 안주 삼아 병나발을 불었다. 뜨거운 술맛에 혀가 얼얼해지는 느낌이 몹시도 맘에 들었다.


“후우, 이만하면 됐으니 살려드릴까요?”

“진짜냐! 진짜라면 우리 딸내미부터 바깥으로 보내줘!”

“그전에 한 가지 물을 것이 있습니다.”

“뭐든 물어봐라! 전부 말해주겠다. 어서!”


인자검은 만신창이가 된 중에 만면에 화색을 띠었다. 그를 구경하던 진호연이 또 병나발을 불었다.


“크흐, 우선은 말입니다. 뇌진도 방환의 무리가 있는 곳을 아는 대로 말하십쇼. 철장비웅도 아는 바를 전부 털어놨었습니다.”


인자검의 화색 돌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잠깐, 설마! 우리를 죽이고 다니는 게···.”

“네, 접니다.”

“설마 방가 놈을 찾으려고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그렇죠. 그러니 아는 바를 실토하십쇼.”


인자검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무언가를 궁리했다. 얼굴에 의문의 기색이 점점 번지며 진호연을 쏘아봤다.


“···너, 대체 누구냐. 대관절 누구관대 그 나이에 이런 경지에 다다랐어.”

“아까 말했잖습니까. 사라졌던 세자라고.”

“설마, 그게 진짜라고···.”


엄청난 내공과 달리 끽해봐야 약관이나 되었을 법한 얼굴, 사실 옛적에 마주쳤던 꼬맹이의 나이를 헤아려 보자면 약관도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당 중의 누군가가 더러운 과거를 지우기 위해 살수를 키워 보낸 게 아닐까 생각도 해봤으나, 방환의 일당이 옛일을 들먹이며 복수를 하니마니 떠드는 건 이치에 맞지 않을뿐더러 이런 소년을 십수 년 만에 절대고수로 만들 바에는 자신이 절대고수가 될 영약과 신공절학을 독차지하는 게 이득이었다.


지금 상황에 진호연이 진왕가의 세자라는 말을 믿기 어렵다 하더라도 믿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진호연이 술을 마시고는 술병을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역모를 일으킨 소종이 방환을 자객으로 보낸 겁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당신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놈에게 당한 겁니다.”


인자검이 꽉 다물고 있던 입을 벌렸다.


“방환 이 개새끼가아아아! 방가 노오오옴! 우리를 속였구나아아아!!”


지켜보던 진호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당신들은 내가 세자라는 걸 알면 방환을 욕합니까? 어떻게 된 게, 방환 욕을 안 하는 사람이 없군요.”

“욕을 하지 않게 생겼나! 그놈, 대체 무슨 꿍꿍이로···!”

“그런데 그런 말을 듣는 내 기분이 어떨지도 생각해 보십쇼. 방환의 실수로 살아남았는데 말입니다.”

“큭···.”


이를 질끈 물고 무언가를 궁리하던 인자검은 어느 순간 진호연을 노려보던 눈빛을 달리했다. 이전까지는 분노가 가득했다면 이제는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럼 진왕가의 소종이, 지금의 진왕야가 왕위를 찬탈하자고 역모를 일으켰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당신들은 역적의 뜻을 따라 세자인 나를 해치러 온 자객무리이지요. 언젠가 태후마마를 뵈옵게 된다면 꼭 이 일을 고하겠습니다.”

“이런 미친! 방환 개새끼! 이런 씹새끼를 봤나!”


인자검은 또 뇌진도를 욕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진호연의 표정이 떨떠름해졌으나 한바탕 화를 낸 이후인지라 별다른 행동 없이 넘어갔다.


“몰랐단 말입니다! 제 딸만은 살려주십쇼!”

“몰랐어도 해친 건 해친 거죠. 내 목에 독침을 박았잖습니까.”

“그건 제가 아닙니다! 독침을 가져온 것은 방환이고 던진 것은 비연자(飛燕子)입니다!”


진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묻겠습니다. 비연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모릅니다. 작년 여름에 여기에 들렀다 갔는데, 주화입마에 빠져 완전히 정신이 나간 놈이라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을지···.”

“그럼 비연자의 행방을 알만한 사람은 있습니까?”


인자검이 잽싸게 대답했다.


“환조선생(幻爪先生)! 예전에는 흉취(凶鷲)라는 도적으로 살던 놈인데 뭐 하나라도 알고 있을 겁니다. 올여름에도 방환 무리의 몇몇을 모아놓고 은밀하게 회합을 열어···.”


그는 남녕제일루에서 벌어졌던 회합에 관해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떠들었다. 같이 악행을 저지른 사이에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것처럼 모조리 실토했다.


하오문의 흑시이자 하늘 아래에서 가장 큰 흑시, 매귀시장으로 향한 도도화가 자신에 관한 정보를 캐고 있다는 일과 영경루(靈境樓)의 회합에 참석했던 이들의 신상과 근황 등이었다.


“환조선생이 도도화를 매귀시장으로 보냈다라···.”

“그것만이 아니라 일대의 흑도와 백도를 모두 꽉 잡고 있습니다.”

“어떻게?”

“특제 아편을 유통하고 고리대를 놓아 죄다 놈의 노예나 다름없게 됐으니, 세상을 위해 쳐 죽여야 할 마귀가 바로 그놈입니다!”


흐흥, 콧소리를 내며 턱을 긁던 진호연이 질문을 새로 던졌다.


“그럼 또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이 끌고 간 내 가족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어머니와 누이들 말입니다.”

“제가 살고자 하여 변명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말했던 것처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진호연의 삼 척 앞까지 기어 온 인자검은 짓눌린 딸을 보고, 목숨도 던질 결연한 각오를 했다.


“그 일이 있고 해산했습니다. 방환은 방환 대로 아무런 소득도 없으니 끝내자며 떠나갔고, 백도 놈들도 끼리끼리 흩어졌습니다. 흑도에 몸을 담은 이들도 각자 길을 갔었는데, 제가 속했던 무리에 모산파의 파문제자인 소용요주(笑容妖蛛)라는 개 같은 년이 있었습니다.”

“아아, 그 금서를 훔쳐 달아났다는 모산파 제자 말입니까? 철장비웅에게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년이 이틀 만에 세 사람을 모두 데리고 떠났습니다.”


이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진호연이나 적오원군이나 수양어미인 유모와 두 딸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처참하게 살해되어 산골짜기 어딘가에 버려졌을 거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에게 끌려갔다면 최소한 윤간을 당하다가 살해당한 최악의 결말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호연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럼 설마! 어딘가에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단 말입니까?!”

“저, 저기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지요···.”

“무슨 말입니까? 기대를 말라니.”


진호연의 마음과 반대로 인자검의 목소리는 땅을 파고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죽음을 각오했음에도 이 말을 하기에는 두렵기 짝이 없었다.


“···그게, 같이 다니다 아주 우연히 보게 됐는데 소용요주는 사람을 잡아먹는 년이었습니다. 아마도 저만 알고 있는 비밀일 겁니다.”


식인.


기근으로 굶어 죽기 직전이 아니라 먹을 것이 충분함에도 사람을 잡아먹는 짓거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최악의 행위였다.


진호연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소용요주, 그년은 어디에 있습니까?”

“행방은 모릅니다. 해산한 그날 이후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황실과 진왕가에서 논공행상을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아예 종적을 감추고 얼굴도 비치지 않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소용요주였습니다.”


모산파에서 엄중히 보관하던 금서를 훔치기 위해 제자들을 해치고 사라져버린 소용요주.


대노한 장문인의 명으로 모산파 제일추살대상이 된 데다가 진충맹에서도 무림공적으로 수배한 악적이었다.


진호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금서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모산파에서 그리 엄중하게 보관을 할 물건이었다면 필시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닐 터였다. 게다가 식인을 일삼는다니 금서의 내용이 대강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식인을 행할 적에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내공을 쌓는 것이 목표라면 마공 중에서도 금기 중의 금기로 분류되는 마공이었다.


그런 마공을 연마하는 자에게 잡혀갔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가 만무했다.


산 채로 잡아먹혔으리라.


이는 진호연과 적오원군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참하고 끔찍한 결말이었다.


“···음구.”

“예, 예에!”


눈동자나 얼굴이나 빛이 아예 사라져 회반죽처럼 변한 진호연이 음울하게 말했다.


“······내가 기뻐할만 한 이야기를 아무거나 하나 해보거라.”


또다시 돌변한 진호연의 태도에 바닥에 엎드린 인자검과 딸이 동시에 긴장했다. 아까는 화를 내며 사람의 사지를 병신으로 만들었으니 이번에는 목을 뜯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 기뻐할만 한 일이라 하시면···.”

“아무거나. 우선 아무거나 말해보아라.”


인자검이 고개를 들었다가 기겁하며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진호연의 눈에서 안광이 뿜어지다 못해 머리 주변으로 날개깃 같은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불상의 광배처럼 빛이 솟구치고 산발한 머리카락은 하늘로 치솟으니 그야말로 명왕(明王)이 앉아있는 듯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에 두 부녀의 턱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렸다.


사지가 멀쩡한 상태에서 정면승부를 했다 하더라도 과연 일초지적이나 될 것인가, 본능을 갉아먹는 죽음의 공포에 오줌을 지리고야 말았다.


“전하!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놈이 더 이상 고할 게 없사옵니다!”


멍한 눈의 진호연은 잠시간 생각을 하더니 매우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없습니까. 그럼 됐습니다.”


그리 말하고는 어인 일인지 그대로 일어나더니 대청의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고생했습니다. 안녕히···.”


인자검은 비파를 안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혹여 진호연의 마음이 돌변해 되돌아올까 두려웠다.


“황감하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이 천한 놈이 천복만복 만수무강하시길 치성드리겠나이다! 천세 천세 천천세!”


이윽고 진호연이 저 멀리 걸어갔을 때, 인자검은 바닥에 엎어진 딸에게 손을 뻗었다.


“일어날 수 있겠···.”

“내 몸에 손도 대지 마아아악! 손끝도 대지 마, 이 개만도 못한 새끼!”


딸이 발작을 일으키며 악다구니를 쳤다.


“이게 뭐야, 뭐냐고오오!”

“미안하다. 애비가 그 일은 아직도···.”

“제바아아알! 아빠, 제발! 지금 아빠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라구요. 그 개만도 못한 짓거리 때문에!”

“미안하다. 미안해. 지금껏 이를 들킬까 두려웠다. 너를 볼 때마다 애비의 죄업으로 네가 해를 입을까···.”


부러진 다리를 부여잡고 악을 쓰는 딸과 사지가 병신이 되어 겨우 허리만 세운 인자검이 부녀지간의 정을 돈독하게 나눴다.


대청을 뒤로하고 걷던 진호연이 문득 발을 멈췄다.


몸을 돌려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비파의 현을 지그시 잡아당겼다.


인자검이 절망하고 몰락하는 모습은 매우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맛이었다. 이 달콤 쌉싸름한 맛에 마음이 흡족했으나 아직 한 가지 맛이 부족했다.


용의 눈에 점을 찍어야 승천을 하듯, 복수의 맛이란 피의 비릿함으로 방점을 찍어야 하는 법.


진호연은 잡아당긴 현을 중지탄지공으로 튕겼다.


따앙!


쇳소리와 함께 쏘아진 기탄이 인자검의 가슴을 관통하며 주먹이 들어갈 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끄륵···.”

“아빠?!”


인자검은 딸에게 뭐라도 마지막 말을 남기고 싶었지만 허파가 통째로 날아갔는지라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염통에 이어진 핏줄도 뜯겨버려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인자검은 최후의 순간까지 딸을 보며 눈물을 흘리다가 절명했다.


이제 자신이 죽은 뒤에 소중하고 소중한 딸이 어떤 참혹한 꼴을 마주하게 될 것인지, 죽어가면서도 그것만을 걱정했다.


저벅저벅, 느긋하게 걸어온 진호연은 인자검의 칼을 집어들었다.


그는 인자검의 얼굴을 발로 몇 번 굴려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한 뒤에 아비의 검을 딸의 손에 쥐여줬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칼자루를 쥐여준 진호연의 눈을 마주했다.


“···이건?”

“죽이 맛있어서.”


진호연은 딸의 흔들리는 눈을 보며 무뚝뚝하게 답했다.


“소저, 제게 베풀어주신 호의에 대한 답례입니다. 아비의 원수에게 몸을 더럽히기 전에 스스로 끝내십쇼.”


차가운 말과 다르게 진호연의 손은 몹시도 뜨거웠다. 그의 뜨거운 손가락은 소녀의 손에 들린 칼자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꽈악 붙들고 있었다.


“···개새끼.”

“맘껏 욕하셔도 됩니다.”

“너도 개새끼고 우리 아빠도 개새끼야.”

“그렇군요.”


그녀는 진호연과 얽힌 자신의 손을 보다가 구슬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런데······이렇게 복수하게 된 거, 다 아빠 잘못이잖아요.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사과는 됐습니다. 그런다고 바뀔 건 없으니.”

“나도 바꿀 생각 없어요. 왜 아빠가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그리 정색했는지 이제야 알 거 같네요.”


이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왕가의 정당한 후계자인 진호연이 혹여라도 제자리를 찾게 되는 날에는 창칼을 앞세운 군사가 역도의 잔당을 찾아 구주사해를 들쑤실 터이니 멸문지화를 피할 수 없으리라.


구차하게 연명하다가 결국 역적의 자식으로 잡혀들어가 사지가 찢겨 젓갈이 되느니 차라리 자진하는 게 낫지 않던가.


이미 아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인자검의 딸이었다.


“혼자 할 수 있어요.”

“예.”


그녀가 진호연의 뜨거운 손을 밀어내며 칼날과 칼자루를 홀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공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해도 돼요? 아침에 한 곡조 들려준 보답으로요.”

“예, 말씀하세요.”

“공자는 웃는 게 더 멋있어요. 나도 지금은 원망하는 그 마음 알 거 같은데요, 그래도······.”


눈물 가득한 눈으로 진호연을 보며 애써 웃음을 드러냈다.


“그래도 앞으로는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많이 웃어봐요.”


그리 말한 인자검의 딸은 아비의 칼을 들어 자신의 목을 깊이 찔렀다.


목덜미로 삐져나온 칼끝에서 진득한 피가 떨어졌다. 이어 앞쪽에서도 피가 줄줄 쏟아지더니 몸뚱이가 바닥에 허물어졌다.


“···끄윽.”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도 절명했다.


부녀의 죽음을 지켜본 진호연은 술병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아까까지는 그리도 향기롭던 술이 어인 영문인지 지독하게도 쓰고 비렸다.


진호연은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혀뿌리를 억누르며 술을 삼켰다.


“······네, 그날이 온다면 많이 웃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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