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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성마소천(聖魔燒天)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6.26 14: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3:20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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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8
글자수 :
30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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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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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복수행 - 11

DUMMY

“일어나 새꺄!”

“여기가 어딘지 알고 판을 깔았어!”

“씨발, 다 밟아!”

“저 새끼 끌어내!”


개방의 거지들이 달려들어 바가지를 밟으려 하자, 화산파의 중년 검객이 손을 점잖게 내밀었다.


“그만들 두시지요. 젊은 청년을 핍박하면 사람들이 무어라 생각하겠습니까.”


그의 제지에 거지들 중 까무잡잡하고 둥글둥글한 중년의 거지가 앞으로 나섰다.


“석 조장(石組長), 이건 개방의 일입니다.”


거지는 화산파의 중년 검객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사람의 이름이 아니며 강호의 별호라기에는 애매한 호칭을 불렀으나 거지의 태도는 경박하지 않았고, 이를 듣는 화산파 검객의 표정도 불쾌하지 않았다.


검객의 이름은 석관평(石關平).

화산파에 적을 두고 있는 벼슬아치였다.


“개방의 일은 어찌 보면 관의 일이기도 하지요.”


개방의 거지들을 추켜세워준 석관평이 빙긋 웃으며 손을 겹쳤다.


“흑단개(黑蛋丐), 그간 무탈히 지내셨습니까.”

“허허허! 백호대 삼 조장께서 이 그지의 이름을 잊지도 않으셨습니까.”


석관평은 짐꾸러미에서 술이 담긴 호리병을 꺼내 흑단개에게 건넸다. 술을 받아 시원하게 들이켠 흑단개는 진호연을 쫓아내려던 걸 잊었다는 듯 석관평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석 조장, 휴가 나오셨습니까?”

“아닙니다. 맹의 일로 왔습니다.”

“허어, 요새 진충맹이 난리라 하더니···.”


무림에서 무력을 기반으로 발호한 갖가지 세력들, 문파라거나 가문을 비롯한 여러 집단은 언제나 위정자들의 골칫거리였다.


천명을 받들고 봉기하여 걸주(桀紂)의 재래라 불린 폭군으로부터 만백성을 구원한 태조는 지금의 나라를 세운 이후, 난세를 틈타 각지에서 발호한 무장세력을 억제하고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병부(兵部) 산하에 어용 무림맹을 세워 무림세력들을 모조리 등록시켰다.


앞으로도 제대로 된 활동을 하고 싶다면 어용맹에 등록을 하고 정파가 되어 조정의 명을 따라야 했으니, 새끼 고양이 하나도 빠짐없게 명부를 작성하고 곳간의 보리알과 부뚜막 위의 부엌칼까지 세세하게 헤아려 태조에게 고해야 했다.


그게 싫어 거부하거나 제멋대로 해산했던 세력들은 태조의 불벼락을 맞고 씨몰살을 당했으니, 불벼락과 피로 세워진 진충맹(盡忠盟)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후, 인구에 회자되던 태조의 위업도 서서히 흐려질 즈음 대환란이 닥치고, 하늘에서 홀연히 내려와 지상을 구한 천인이 바로 무성왕이었다.


그는 말과 글로 다 하지 못할 재조산하(再造山河)의 충공을 쌓았기에 제자였던 꼬마 황제로부터 상방보검과 구석(九錫)을 하사받았다.


하늘 아래에서 가장 강한 사내의 손아귀에 하늘 아래에서 가장 존귀한 이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이 있음으로 무성왕이 천인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몰락했던 황실에 천명이 이어진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데 그로 그치지 않고 제자였던 황제가 무성왕의 여식을 취해 여식은 황후가 되고, 손자는 태자에 봉해지자 정치적으로 탄탄한 기반까지 갖추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움켜쥐게 됐다.


그가 황제의 뜻에 따라 맹주의 자리에 앉아 상방보검을 휘두르며 때로는 관무불간(官武不干)을 선언하고, 때로는 관명무종(官命武從)을 외쳐 태묘와 사직을 안정시켰던 탓에 이후 무인들의 꿈은 진충맹주에 올라 상방보검의 칼집이라도 만져보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무성왕의 승천으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고관대작이 겸하던 진충맹주는 전후가 뒤집혀 맹주가 병부상서를 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요직 중의 요직이 되었다.


하지만 맹주에 오르고 싶다 한들 진충맹에 발을 들여야 뭐라도 시작하는 법, 맹에 적을 올린 문파와 가문 중에서 뛰어난 인재를 추리고 심사하여 시험를 치르니 아무나 기웃거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명문대파와 고문대벌마다 내로라하는 인재들을 몰아넣으니 입맹시가 점점 어려워지다 못해, 문과 급제만큼이나 어렵고 치열하여 최종시험에 합격한 이들은 진사(進士)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다.


그리하여 입시 날의 진충맹 문지기는 삼공과 육상서보다 목소리가 크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이니 백호대의 조장에 오른 석관평의 위세는 어떠할 것인가.


하나, 그는 후덕한 몸집처럼 시종일관 둥글둥글하고 물컹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런 태도의 기저에는 석관평이라는 인간 자체의 성품도 있을 것이나, 외적인 무언가가 그를 지치고 주눅들게 만들었으며 삶의 무게가 더욱 변변찮고 보잘것없는 사내로 몰아갔다.


“요새 내부 분위기가 좀 그렇습니다. 허허···.”

“혹시 그겁니까?”


석관평은 이곳에서 할 말이 아니라는 것처럼 턱을 작게 꺼떡였다. 그의 반응을 확인한 흑단개가 괜한 기침을 했다.


“크흠흠, 바쁘실 텐데 우선 본산으로 올라가시지요.”

“그렇긴 그런데···.”


송덕비를 보던 석관평은 죄스러운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말꼬리를 흐렸다. 바닥을 보며 머뭇거리던 그가 바닥에 앉은 진호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진호연의 신묘한 솜씨 한 곡조만 더 듣고 본산으로 오르고 싶었다. 악공이야 기루를 가면 찾을 수 있다지만, 비파의 신선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악공은 찾기가 드물었으니까.


“언제부터 여기가 이리 엄해졌습니까? 예전에도 종종 이곳에서 악공들이 금을 타고 피리를 불지 않았습니까.”

“그게, 작년에 타지에서 온 그지새끼 둘이 쌈질을 하다가 한 놈이 대석에 대갈통 쳐박고 뒈졌지 뭡니까.”


흑단개의 말대로 송덕비를 받치는 대석에는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희미한 얼룩이 있었다.


그런데 그 위치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머리통이 터지며 용호의 입으로 피가 튀었는지 입안에 혈흔이 남아버렸다. 꽤나 불길하고 기분 나쁜 일이었다.


송덕비를 살피던 석관평이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두 손을 포개며 흑단개에게 읍했다. 화산파의 중진이자 진충맹에서 백호대의 조장을 맡은 그의 체면을 생각하자면 과례였다.


“저 청년은 타지에서 온 듯한데, 적당히 타이르고 다른 곳으로 옮겨 비파를 뜯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음···.”

“떠나면 언제 올지 모르는 이 아닙니까. 젊은이에게 아량 좀 베풀어 주십쇼.”


흑단개는 진호연의 심상치 않은 기골과 묵직한 철비파를 노려봤다.


송덕비 앞에서 상연을 하는 정체불명의 악공이 고까웠지만, 석관평이 개방의 일은 관의 일이라 떠들기도 했고 그의 체면과 화산파의 위신을 봐서라도 한발 물러서는 게 옳았다.


하지만 그러자면 이 송덕비를 지켜온 거지들의 규율이 어지러워질지도 모르기에 고민하는 찰나였다.


“이거 받으십쇼.”


진호연은 동전이 담긴 바가지를 밀어 흑단개의 발치로 내놨다.


“거리마다 터주가 있고 각각의 업장이 있는 법인데 짧은 생각으로 그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으니 재주값은 놓고 가겠습니다.”


아주 의외라는 듯, 흑단개와 거지들이 눈썹을 올렸다.


진호연의 덩치를 보아하니 거지들이 달려들면 철비파를 휘두르며 싸우고도 남을 거라 여겼는데, 의외로 군소리 없이 동냥바가지를 내놓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허락도 없이 비파를 뜯던 악공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던 주먹에서 슬그머니 힘이 빠져버렸다.


“흠, 경우 있는 녀석이구만.”

“이거 어떻게 할깝쇼?”

“어떻게 하기는, 이 그지 새끼야.”


흑단개는 바가지를 들어 어린 거지에게 건넸다.


“도로 돌려줘라.”

“도로 돌려주랍신다! 돈 주인들은 나오시오!”

“돈 냈던 이들은 도로 가져가시우! 어서 가져가우!”


거지들이 돈을 나눠주는 동안, 석관평은 진호연의 앞에 쪼그려 앉아 대화를 나눴다.


“자네 괜찮나? 저게 오늘 밥값 아닌가?”

“제 비파를 기쁘게 들어주시는 걸로도 만족합니다.”

“허어 참, 미안하게시리···.”


석관평의 입으로 나긋하게 말하면서도 눈은 연신 삿갓에 가려진 진호연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다들 그러했듯, 기도는 느껴지지 않지만 기골이 장대한 진호연이 은근히 신경 쓰이는 탓이었다.


또, 묘한 매력이 있었기에 계속 눈길이 갔다.


털 수북한 항문에 양물을 넣어 비역질이나 일삼는 비역쟁이들이 느끼는 색욕 따위가 아닌 칼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무인으로서의 이끌림이었다.


투웅···.


현을 가볍게 튕긴 진호연이 물었다.


“그런데 ‘소군출새’ 후에 ‘춘강화월야’를 청하신 연유가 있습니까?”

“뭐, 그냥 듣고 싶은 걸 즉흥적으로 말했을 뿐이네. 문제라도 있나?”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둘을 연결하니 뭔가 서글퍼서 말입니다.”

“허허, 서글프다라···.”


둘이 떠드는 동안, 저쪽에서는 거지들이 구경꾼들에게 동전을 죄다 나눠줬다.


일을 마친 어린 거지가 빈 바가지를 돗자리 앞에 내려놓자, 흑단개가 진호연에게 일렀다.


“얌마, 돈 받는 게 아니면 싸움 날 일도 없으니 맘껏 뜯어.”


진호연이 빙긋 웃으며 네 줄기의 현에 손가락을 올렸다.


“춘강화월야, 시작하겠습니다.”



***



진호연의 상연이 끝나고, 거지들이 원림에 들어온 이들을 가급적이면 정중하게 내보냈다.


이제 송덕비 주변에 남은 것은 개방의 흑단개, 화산파의 석관평, 떠돌이 진호연이 전부였다.


“고맙네.”

“별말씀을.”


거지들의 텃세 탓에 삯도 받지 않고 힘든 연주를 한 진호연에게 공연히 미안한 마음을 품은 석관평은 후덕한 얼굴에 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허허헛, 아직 어린 친구가 아량이 넓구만.”

“하하, 딱히 아량이 넓은 건 아닙니다.”


흑단개가 송덕비의 주변을 둘러보며 더러워진 곳이 있나 꼼꼼하게 살피는 동안, 석관평은 진호연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이게 아량이 넓은 게 아니면 뭔가? 어깨가 넓은 만큼 아량도 넓구만 뭘.”

“과찬이십니다.”


진호연은 비파의 멜빵을 어깨에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에 쪼그려앉았던 석관평은 진호연과의 신장 차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꼽 아래를 우러러보게 됐다.


입안에서 혀를 한 바퀴 굴린 석관평이 매우 씁쓸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어깨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군.”

“예??”

“아,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네.”


칠척장신의 진호연은 아래를 내리깔아보며 그게 무슨 말이냐 또 물었지만, 석관평은 그저 혼잣말이라며 어색하게 변명했다.


저쪽에 외따로 있던 흑단개가 고개를 꺾어 높다란 송덕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린 동생, 아까는 지랄 떨어서 미안했다. 가진 거 없는 그지들이 원래 개보다 개지랄 잘 하니까 니가 이해해라.”

“아닙니다. 저도 무적자 떠돌이인데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에 진호연이 공손히 대답했다. 흑단개는 진호연에게 슬쩍 눈길을 보내며 곁으로 오라는 내색을 했다.


“미안하게 됐어. 그래도 동냥바가지는 안 밟았잖아?”


그리 말을 하며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진호연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내관혈(內關穴)에 손끝을 올림과 동시에, 미리 손끝에 몰아넣었던 기를 주입하여 혈과 맥의 반응을 살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함부로 신체를 접촉하는 일은 꽤나 무례한 일이건만, 그게 칼밥을 먹고 사는 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면 더욱 큰 무례였다.


게다가 타인의 맥을 함부로 살피고 단전을 관조하는 것은 무림의 규율로 따지자면 칼을 뽑아들고 서로 죽이자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거리의 거지답게 뻔뻔스러운 탐색법이었다. 화를 내면 몇 대 맞고 끝내고, 손을 자르겠다 하면 거지들이 떼로 몰려와 아우성을 치면 될 일이니까.


아무리 담이 큰 무림인이라 하더라도 개방의 거지들을 떼로 죽이고 달아날 위인은 드물었기에 이런 방법이 잘 먹히는 편이었다.


“음?”

“······.”


진호연은 단전을 여는 순간, 폐맥을 하고 내기를 어그러뜨려 단전을 보호하는 술수와 기척을 지워 존재를 희미하게 만드는 은신술의 수법을 이용해 자신의 내공을 숨겼다.


이미 삼단전을 열고 하단전에 금단을 품어 구체품(具體品)에 발을 들이고 반박귀진을 이룬 진호연이 작정하고 속임수를 썼기에, 흑단개가 아니라 옆에 있는 석관평이 찰맥관혈(察脈觀穴)을 한다고 해도 알아낼 도리는 없었다.


흑단개의 기감에는 그저 너덜너덜하고 답답하도록 비좁은 기혈의 반발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주둥이를 나불거렸다.


“뭐야, 좆밥이잖아. 븅신이네 이거.”

“예??”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자리에 있는 누가 못 들었을까, 흑단개의 경솔한 발언에 진호연은 물론이고 석관평도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방금 분명 좆바···.”

“아니 씨발, 내가 그지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상관도 없는 말이 막 나올 때가 있다니까? 길바닥에서 밥 처먹다 보면 나처럼 미치니까 빨리 자리 잡어. 젊은 놈이 왜 길바닥을 전전하고 지랄이야.”


눈알을 굴린 흑단개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어쨌건 우리도 말이야, 암만 궁해도 여기서 구걸은 안 해. 여기가 어떤 곳인데.”

“······그렇습니까.”


송덕비로 다가간 진호연이 비신의 면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무성왕, 무공성덕비(武功聖德碑)···.”


진호연은 눈빛을 완벽하게 감추고 싶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후손이자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존경해 마지않는 무성왕, 그를 직접 보필했던 적오원군으로부터 구구절절한 사연과 무수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얼굴도 모르는 친부모와 흐릿한 양부모보다도 무성왕의 형상을 생생하게 그릴 듯했다.


스승 외의 가족이 없는 그에게 있어 무성왕이란 할아버지 같으면서 종종 형제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다.


“잘 아는구만, 우리 거지들이 매일같이 쓸고 닦는 거야. 관리가 아주 잘 됐지?”

“그렇습니다. 그렇네요.”


옆에 선 흑단개가 진호연에게 고개를 돌렸다가, 그의 가슴팍만 보이자 고개를 위로 꺾어 올려다봤다.


이제서야 얼굴이 눈에 들어오게 됐지만 워낙 앞머리를 늘어뜨려 얼굴을 가려놨는지라 전체적인 인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턱과 콧구멍만 보였다.


“다른 지방 것들 보다 훨씬 나을걸? 구주사해에서 제일 깨끗한 무공성덕비라 자신한다 이 말이야.”


흑단개가 무성왕에 대한 존경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무공성덕비를 이리 관리했노라 떠들자, 진호연이 표정이 슬며시 풀렸다.


“우리가 이걸 조석으로 돌보는데, 하루는 어떤 애새끼가 엿을 먹다가···.”


이 작은 원림을 관리하는 데에 들어가 봐야 얼마나 많은 품이 들어간다고, 온갖 생색을 내며 그간의 시시콜콜한 일까지 떠드는 흑단개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무성왕이지만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며, 진호연 자신만이 아니라 세인들이 친근함을 느낀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애새끼가 어찌나 표독스럽던지, 사갈 같은 새끼가 애미애비를 쏙···.”


흑단개의 지리멸렬한 잡설을 끊은 것은 갈 길이 바쁜 석관평이었다. 진충맹의 일로 본산에 올라 장문인에게 고할 일이 있었기에 어서 출발해야 했다.


석관평은 삿갓 아래의 어둑한 얼굴을 올려다보며 양손을 모아 가볍게 흔들었다.


“허허허. 아까 들었겠지만 나는 화산의 석관평이라 하는 아저씨일세. 지인들은 보통 석 조장이라 부르는 편이야.”


그가 자기소개를 한 이유는 비파선재인 진호연의 이름을 듣고 싶어서였다.


강호무림을 누비는 자신이 천하를 유랑하는 악공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인사라도 건네기 위해서.


진호연은 코끝을 슬쩍 긁고는 석관평을 향해 손을 모았다.


“석 아저씨, 저는 흰둥이라 합니다.”

“허헛! 이름 귀엽구만.”


옆에 있던 새카만 달걀 같은 흑단개도 뽀얀 살결의 진호연을 보고는 웃었다.


“거 이름 훤칠하니 좋네. 잘 어울려.”

“하하, 감사합니다.”

“흰둥아. 그리고 말이다.”

“예?”


흑단개는 미안하다는 듯 진호연의 등을 두들겼다.


“우리 규율 탓에 밥벌이 방해했으니까 그지새끼들 업장으로 같이 가자고. 거기서 구걸을 하건 낮잠을 자건 맘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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