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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성마소천(聖魔燒天)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6.26 14: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3: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5,205
추천수 :
48
글자수 :
30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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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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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복수행 - 5

DUMMY

진호연의 기세에 경악한 철장비웅이 앞으로 나서려 했다.


진호연이 피식 웃었다.


“감히 어디서.”


말을 마치는 즉시, 비파줄을 잡아당겨 또다시 탄지를 튕겼다. 이번에는 부인의 정강이가 꿰뚫리며 피를 흩뿌렸다.


“흐아아아악!”


겨우 손을 지혈했는데, 이번에는 정강이가 관통당하는 바람에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녀는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남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아아악! 살려, 살려줘요!”

“그마아아안! 그만, 제발 말로 하자!”


간곡하게 애원하는 그에게 진호연이 물었다.


“아, 혹시 무성왕의 비보는 찾았습니까?”

“모, 모른다. 무성왕의 비보는 없었어.”

“그랬습니까?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다리를 늘어뜨리고 걸어앉아있던 진호연이 발꿈치로 담벼락을 차서 몸을 띄웠다. 누더기 옷을 펄럭이며 표홀히 날아 탁자 곁에 내려섰다.


강아지처럼 순둥했던 눈매에 잔뜩 날이 서서는 광마살귀의 몰골로 돌변한 그가 부인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와작!


진호연이 손을 돌리자, 부인의 목이 찢어지며 머리통이 허무하리만치 손쉽게 뜯겨나갔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피분수를 뿜으며 바닥을 헤집는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딱히 부인에게 원한이 있는 건 아니니 못 볼 꼴을 보기 전에 보내드렸습니다.”


진호연이 그녀의 머리를 철장비웅의 앞에 집어던졌다. 부인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는 참혹한 몰골을 목도한 철장비웅은 얼이 빠져 입에서 침까지 흘렸다.


“여, 여보? 여보! 이 개자시···!”


진호연은 그가 분노를 터뜨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분노한 철장비웅이 달려들 여지도 없이, 진호연의 손아귀에 큰아들의 머리통이 붙들려버렸다.


“방금 개자식이라 했습니까?”


우득.


진호연이 힘을 주자 큰아들의 머리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고통 탓에 깨어난 큰아들이 안간힘을 써서 입을 벌렸다.


“끄에에엑, 아, 아빠아···.”

“이번에는 이놈입니다. 이게 큰아들이라 했던가요?”


진호연 정도 되는 고수에게 사람 머리 으깨는 것 정도야 간단한 일,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아들이 처참하게 죽을 것이 자명했다.


미치광이의 복수 앞에서는 무당파의 외문제자라는 감투도 소용이 없었고, 이 절대고수의 앞에서는 일류고수의 실력도 하잘것없었다.


이리 된 이상 구차하게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리는 수밖에, 자식의 목숨을 건질 수만 있다면 뭔들 못 할까.


“제발, 이놈의 목숨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거둬가셔도 좋습니다! 부디 죄 없는 자식놈들은 살려주십쇼!”

“살려달라? 그럼 뇌진도 방환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하십쇼.”


철장비웅은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속을 억누르며 애써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맹세코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라? 인륜지대사를 앞둔 자식이 죽는 꼴을 보고 싶다는 말이 맞겠지요?”


진호연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큰아들의 두개골이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눈알이 서서히 앞으로 튀어나오며 코와 귀에서 핏줄기가 흘렀다.


여기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밥도 혼자 못 처먹을 병신이 되거나, 잿밥이나 받아 처먹는 귀신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구에에엑! 아쁘으으아아아···.”

“어르신! 아니, 전하! 전하아아!”


진호연이 사칭하는 사기꾼이건, 진짜로 주검조차 찾지 못했던 진왕가의 적장자건 말건 상관이 없었다. 당장 자식의 목숨을 건질 수만 있다면 전하가 아니라 폐하라 부르며 만세삼창을 외칠 수도 있었다.


“참죄의 벌은 이 무도한 놈이 다 받겠사오니 자식놈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철장비웅이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이마가 터져 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진호연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킬킬 웃었다.


“내 어머니에게 개만도 못한 짓을 하며 지껄였지 않습니까.”

“뭐···.”

“아들 하나 뒈지는 게 대수냐고, 지금 내가 새 아들을 만들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었던가?”


우즉, 뻑!


손아귀의 힘줄이 일시에 불거지더니 큰아들의 머리통이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시뻘건 뼛조각과 뇌수가 철장비웅을 향해 쏟아졌다.


“어차피 작은아들 있잖습니까. 애새끼 하나 줄어서 아쉬우면 새로 장가 들어서 더 낳으십쇼.”


큰아들의 살점을 뒤집어쓴 철장비웅의 눈이 돌아갔다.


“으아아아! 이 개자식아아아아!!”


그는 지면을 박차며 쌍장을 내질렀다. 별호대로 불곰과 같은 기세에 쇳덩이같이 묵직한 장법이었다.


진호연은 날아드는 쌍장을 보고도 피할 생각이 없었다. 하다못해 쳐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건만, 그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있을 따름이었다.


“훔!”


쌍장이 닿기 직전, 진호연이 기합을 넣자 넝마 같은 옷이 팽팽해졌다. 돼지오줌보에 바람을 가득 채운 것처럼 순식간에 부풀어오른 옷에 쌍장이 닿았다.


두우우우웅!


바윗덩어리도 으깰 장력이었으나 진호연의 옷을 뚫을 수 없었다.


잘게 떨리는 옷자락에서 대범종의 종명이 퍼지며 되려 공격을 감행한 철장비웅이 뒷걸음질쳤다. 게다가 자신의 뿜어낸 장력이 역류한 터라 손바닥에서부터 팔꿈치까지 저릿했다.


“으아악!”


대체 이게 무슨 호신공(護身功)인지 어안이 벙벙했으나, 아무리 고민해 봐야 철장비웅 따위가 진호연이 익힌 무성왕의 신공절학을 알아볼 리 만무했다.


뒤 이어 기갑(氣甲)이 깃들어 잔뜩 부푼 누더기 옷이 공력을 견디지 못하고 편편이 찢어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퍼엉!


암기처럼 날카로운 파편이 철장비웅의 전신을 휩쓸었다.


“크학!”


폭발과 동시에, 철장비웅은 급히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다행히 눈을 보호했지만 시계가 가려지는 치명적인 빈틈이 생겼다.


너풀너풀 쏟아지는 천 조각 사이로 나신을 드러낸 진호연이 성큼 다가와, 철비파를 휘둘러 철장비웅의 옆을 후려갈겼다.


와자작!


철비파에 맞은 철장비웅의 오른팔이 그대로 으스러지며 어깨 위로 뼛조각이 솟구쳤다. 바닥을 한 바퀴 구른 철장비웅이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끄하아아악!”


다급히 손을 뻗어 우반신을 죄다 점혈했다. 그래도 살과 뼈가 으깨진 고통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점혈로 인해 우반신이 마비되다시피 한 철장비웅은 민달팽이처럼 꿈틀거렸다. 겨우 왼손을 뻗어 진호연이 꼬나쥔 철비파를 가리켰다.


“···이럴 줄 알았···.”


진호연은 또다시 비파를 들어올렸다. 철장비웅의 염려 대로 묵직한 철비파를 철퇴처럼 휘두르며 발목과 무릎을 차근차근 으스러뜨렸다.


와작, 와작!


뼈마디가 부러지고 관절이 분리될 때마다 철장비웅이 비참하게 몸을 비틀었다.


“흐악! 캬아악!”


진호연은 철장비웅의 하찮은 몰골을 보며 코웃음쳤다.


“뭐? 더 낳으면 되니 걱정 말라? 그게 내 가족을 욕보이면서 할 말이더냐!”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다 분노로 눈이 뒤집힌 진호연은 작은아들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네놈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으니 기분이 어떻냐.”


커다란 손아귀에 붙들린 작은아들이 서서히 정신을 차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끄으···.”

“아, 안돼!”


철장비웅은 자신이 과거에 뱉었던 말을 흐릿하게나마 떠올리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으나, 돌이킬 방법만 있다면 당시의 진호연을 참수하여 화근을 없애고 싶었다.


철장비웅의 괘씸한 눈빛을 본 진호연은 더더욱 거친 숨을 뱉어냈다. 놈의 얼굴에 악행에 대한 후회가 아닌, 후환을 남겨둔 일에 대한 한탄과 후회가 엿보였다.


진호연이 코를 벌름거리며 이를 질끈 물었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며 작은아들도 큰아들과 마찬가지로 눈알이 돌출되며 얼굴의 구멍들에서 피가 흘렀다.


“꺄아아아악!


진호연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작은아들을 높이 들어올렸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들었는지라 아이가 더욱 고통스러워하며 머리를 붙든 손아귀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마지막 하나 남은 아들놈마저 뒈지는 꼴 보기 싫으면 당장 방환이 있는 곳을 말해라.”


그는 뇌진도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몰랐다.


난리가 수습된 후, 뇌진도의 무리는 사분오열했다.


애초에 그들에게는 별다른 신념이 없었다. 그저 천하제일을 넘어, 승천을 이루게 해준다는 무성왕의 비보를 찾아 모였던 자들이었다.


흑도에 몸을 담았던 자들은 백도의 배신을 의심했고, 백도에 몸을 담았던 자들은 흑도의 밀고를 경계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암계를 꾸며 배신을 대비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밤잠을 설치며 아무것도 없는 어둠을 두려워했다.


그들 중, 철장비웅 같은 몇몇 이들은 포상으로 받은 재물로 새 인생을 시작하며 악행에 물든 과거를 묻어두기 위해, 살얼음판 같은 이 바닥을 벗어나려 금분세수를 하고 다른 이들과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모르···옵니다.”

“모른다라?”

“어찌, 어찌 이 상황에 거짓을 고하리이까.”


철장비웅은 만신창이가 된 몸을 겨우 가누어 진호연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부인과 큰아들을 죽인 원수 놈을 당장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았으나, 작은아들을 살려야 하기에 뒤틀린 속을 억누르며 비굴하게 흐느꼈다.


“전하! 천지신명께 맹세코 이놈은 아는 바가 없사옵나이다!”

“아는 바가 없어? 그딴 거짓말을 믿으라는 거냐!”


진호연이 손아귀에 더욱 힘을 줬다. 작은아들의 머리뼈가 뒤틀리며 대량의 코피가 쏟아졌다.


“꺄아아아악! 아빠아아!”


하나 남은 자식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자, 철장비웅은 지렁이처럼 땅을 기어 진호연의 발치로 다가왔다.


“모르옵니다! 방가 놈이 있는 곳을 안다면 소인이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천참만륙을 낼 것이옵니다!”

“그럼 네놈이 아는 건 대체 뭐냐!”

“소, 소인이, 소인이 아는 것은···.”


철장비웅이 겁에 질려 덜덜 떨자, 미친놈처럼 악을 쓰던 진호연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시 잠깐 사이, 광마살귀 같던 눈빛도 다시 서글서글하게 돌아오고 구겨진 입매도 얌전해졌다.


그가 차분하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제가 좀 흥분했군요. 쓸만한 정보가 하나라도 있다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철장비웅이 흠칫 놀랐다.


지금 진호연이 뱉은 말은 칠년대한에 찾아온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뭐라도 하나 정보를 뱉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쓸만한 것.

진호연에게 쓸만한 정보.


애석하게도 뇌진도 무리와 연을 끊은 지 오래였기에 낡아빠진 기억밖에 없었다. 혹여 말을 했는데 이미 알고 있는 정보면 진호연이 어떤 돌발행동을 보일지 두려웠지만 우선 뱉고 보는 수밖에 없었다.


“방가 놈의 소재는 모르겠사오나! 다른 놈들 몇몇이 사는 곳은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흠, 말씀해 보세요.”

“그 쳐 죽일 것들, 지옥에도 못 갈 천고의 역적 놈들이 어디에 살고 있느냐 하면···!”


철장비웅이 조심스럽게 진호연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눈에 비친 진호연이란 인간은 굉장히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한가롭게 노래를 부르다 말고 혼자 광분했다가, 징조도 없이 차분해지는 등 감정의 기복이 몹시 심각했다.


또, 다른 자객들처럼 몰래 숨어들어 목표 대상을 살해하고 조용히 떠나는 게 아니었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숨어들어온 주제에 담벼락 안의 사람을 몰살하질 않나, 자신의 신분을 명확하게 밝히고 대상이 죽어야 할 이유를 거론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봐도 진호연은 미치광이였다.


복수를 탐닉하는 심각한 미친놈이었다. 원수에게 핏값을 철저하게 받아내는 복수의 집행자이자 증오의 화신이었다.


복수의 대상이 된 철장비웅의 입장으로는 항시 냉정을 유지하며 지령에 의해 움직이는 살수가 아닌, 감정의 격류에 휘말려 사람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대는 진호연이 훨씬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소림사의 멍청한 당나귀 놈과 어린 계집애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더러운 색마가······.”


철장비웅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이 아는 것들을 줄줄 읊었다.


자신처럼 금분세수를 하고 떠났다거나 거처 없이 강호를 유랑하는 자들은 알 도리가 없었지만, 확고한 기반을 갖춘 세력에 몸을 담은 자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이름만 대면 세 살 아이도 알 법한 명문대파의 제자들도 있었다.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진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맘에 드는 정보로군요. 혹시 더 있습니까?”

“소인이 아는 것은 모두 고하였나이다! 이놈이 숨기는 게 있다면 천벌을 받아 죽을 것이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호연은 손아귀의 작은아들을 내려놨다. 그리고 붉은 등롱이 주렁주렁 매달린 골목으로 발을 옮겼다.


어둑한 붉은빛 속으로 사라지는 진호연의 뒷모습은 피웅덩이에 잠겨드는 마귀처럼 보였다.


그가 꽤나 멀어졌을 때쯤, 작은아들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서럽게 울었다.


난데없이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웬 괴한이 자신을 공격하질 않나, 어미와 형은 죽어버렸고 아비 또한 병신 피칠갑을 하고 바닥을 구르는 중이었다.


“아빠아! 흐아앙!”

“이놈아, 이놈아. 괜찮냐? 응?”


철장비웅은 몸을 뒤틀며 멀쩡한 손으로 아들의 볼을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이 애비 탓이다. 다 애비 탓이야.”

“아빠앙···.”


녀석이 아비를 부르짖으며 피에 절은 품에 안기려는 찰나였다.


투웅.

퍼거억!


난데없는 빛줄기가 작은아들의 미간에서 솟아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머리통을 산산조각 내고 점점이 흩어졌다.


“···아?”


바닥에 드러누운 철장비웅의 얼굴로 작은아들의 피와 뇌수가 쏟아졌다.


굳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누가 무슨 짓거리를 저질렀는지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아, 아아아악! 안돼애애!”


처자식을 모조리 잃은 그의 마음에서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올랐을 때였다.


퍼걱!


다시 한 줄기 시퍼런 빛이 뻗으며 철장비웅의 몸을 관통했다.


“···억.”


그는 자신의 배에 손을 올렸다. 커다란 구멍이 뚫려 창자가 구물구물 흘러나왔다. 진호연을 저주하고 욕을 퍼붓고 싶었으나 그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숨을 들이마시려 해도 뱃가죽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허파에 남은 바람만 힘없이 새어나왔다.


“끄르륵···.”

“저런, 많이 아픈가 봅니다?”


어느새 되돌아온 진호연은 탁자 앞에 앉았다.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선 아까까지 철장비웅이 즐기고 있던 술병을 집어들었다.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잡은 술병을 찰랑찰랑 흔들었다.


“끄륵, 끅.”


철장비웅은 피가 맺힌 눈으로 진호연을 노려봤다. 피거품이 일어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소리 없는 저주를 퍼부었다.


연신 움직이는 입술을 본 진호연이 씨익 웃더니,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오늘 밤 그대의 가락에 귀가 맑아 다시 한 곡을 청하노라, 그대의 비파를 위해 나도 노래를 한 곡 하리니. 당신의 말에 소낙비 퍼붓듯 현을 만지오, 손가락에 실린 마음이 처량하기 그지없어 모두가 얼굴 묻고 우는구나.”


진호연은 또다시 술로 목을 축이고, 피눈물을 흘리는 철장비웅의 얼굴로 다가가 노래를 마무리 지었다.


“그중, 누가 제일 설웁게 울었던가? 바로 그대의 옷이 붉게 젖었구나.”


철장비웅은 죽음이 임박했음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노래를 마치고 흡족하게 웃는 진호연의 얼굴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가솔이 도륙당하고 자신도 끝난 마당에 이 미치광이와 오래 엮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칠 정도였다.


다시 탁자로 돌아간 진호연은 술병을 들어올렸다. 죽어가는 철장비웅의 눈빛을 안주 삼아 술을 들이켠 진호연이 달큰한 숨을 내뱉었다.


“혈채를 받으러 왔는데 하나라도 살려두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머리통이 터지고 뜯겨 죽은 세 모자를 보다가 다시 철장비웅의 눈을 지그시 노려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나 하나를 놓쳤던 당신 꼴을 보십쇼.”

“···아으···아, 크륵.”


철장비웅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고개를 떨궜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진호연은 깨끗한 잔에 술을 따라 진설하고 밤하늘의 달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왕위를 되찾는 날에는 황실의 칼날이 너희를 겨누고 백만대군이 역도들의 터럭 하나도 용납하지 않을 테니.”


그리 말하는 진호연의 눈동자는 몹시 공허했다.


눈에 비친 보름달도 이 어둠을 채우지 못할 만큼 텅텅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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