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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성마소천(聖魔燒天)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6.26 14: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3:20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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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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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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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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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복수행 - 10

DUMMY

진호연은 오랜만에 번화한 고장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섬서의 화음(華陰).


천하에서 손꼽히는 명문대파인 화산파의 앞마당으로 동서에 천년고도 장안과 낙양이 자리한 덕에 큰 상로(商路)가 있어 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땅이었다.


진호연은 이 화음의 번화가에 객실을 잡고 며칠 머무르며 그간의 여독을 깔끔하게 풀었다.


아침의 냉수목욕을 마치고 돌아온 진호연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보드랍고 윤기가 흐르는, 살짝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바짝 동여 허름한 나무 비녀를 꽂았다. 그러고는 일부러 남긴 앞머리를 아래로 내려 얼굴을 적당히 가렸다.


깔끔한 듯하면서도 수더분한 촌민 같은 차림새가 완성되었다.


손거울을 몇 번 확인한 진호연은 침상에 앉아 운기조식을 하던 적오원군에게 눈을 돌렸다.


“할매, 몸은 좀 괜찮아?”


적오원군은 잘려나간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볼기를 만년거암처럼 견고하게, 등골은 청죽 같이 세우고 어깨는 산마루처럼 넓게 펼쳤다.


그렇게 앉아 팔을 쭉 뻗어 손으로 구름을 잡듯 좌우로 왕복하며 운기를 하면서, 때로는 숨을 가쁘게 쉬었다가 또 아주 천천히 내뱉으며 토고납신을 했다.


“흘흘흘, 아주 날아갈 듯하옵니다.”


적오원군은 병세가 완전히 가셨다.


부드러운 이불에서 잠들고 기름진 밥을 먹으며 몸을 다스리니 쾌차하는 것은 당연지사.


얼굴이 난도질 된 터라 안색이 크게 달라지는 건 없지만서도, 거친 잠자리에서 거친 밥을 먹을 적에 비하면 확연히 몸 전체의 때깔이 달라진 게 드러났다.


“할매, 곧 밥 먹을 거니까 적당히 해. 땀 좀 봐.”


진호연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점소이가 방문을 두드렸다.


퉁퉁!


“공자, 아침밥 대령할깝쇼?”

“말씀드린 대로 준비했습니까?”


계단을 오르기 전부터 목을 가다듬은 점소이가 목청을 길게 뽑았다.


“암요! 부분하신 대로 준비했습니다!”


진호연은 지금 재물이 넉넉했다. 철장비웅을 죽이고 흔적이 남지 않을 만한 재물을 꽤나 약탈하여 여비로 사용하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집요한 추적자를 피해 곤궁하고 힘겹게 살아왔던 진호연은 돈의 중요성과 활용도에 대해서는 장사치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너무 과하게 보이지 않으면서 불편함 없이 쉴만한 객실을 잡고, 몇날며칠 투숙하며 돈을 넉넉하게 쓰니 자연스럽게 객잔주가 이모저모를 신경 써주게 됐다.


점소이 입장에서도 매일같이 행하(行下)로 동전 몇 푼이라도 챙겨주는 진호연은 아주 귀빈 중의 귀빈이었다.


한두 번 행하를 베푸는 손님은 있어도 진호연처럼 매일 베풀며 술까지 사주는 손님은 매우 드물었다.


“숙수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제일 실한 놈으로 잡아다가 푹 고았습니다요!”

“그럼 반 각 후에 들여주세요.”

“예—이! 알겠습니다요!”


잠시 후, 조반상이 들어왔다.


요청대로 질솥에 약재와 마늘을 듬뿍 넣고 닭 한 마리를 푸욱 고아 낸 탕이었다.


적오원군은 상아를 깎아 만든 틀니를 끼우고 진호연이 건네주는 닭살을 씹었다. 그간 바닥을 드러냈던 기력을 보충하려는 듯, 열심히 먹는 모습에 진호연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할매 먹는 모습 보니까 앞으로 백 년은 더 살겠네.”

“흘흘, 아무쪼록 그래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얼마 전의 맥없이 대답조차 하지 않던 모습과는 천지차이였다. 적오원군은 닭뼈에 들러붙은 살과 뼛속의 골수까지 알뜰하게 빨아먹는 중간중간, 활짝 열린 창문으로 머나먼 북쪽의 어딘가를 바라봤다.


이 객실의 창문이 열린 방향을 똑바로 나아가면 장안의 북쪽에 있는 산간지방에 다다르게 됐다.


적오원군은 그곳을 향해 애타는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진호연이 뻣뻣한 밀떡을 뜯다 말고, 적오원군의 시선을 따라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아가고 싶어?”

“아니옵니다.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 죽이고 싶사옵니다.”

“아, 그렇지.”


적오원군의 애타고 애타는 눈에는 살의가 깔려있었다. 그 지독한 시선을 따라가면 나오는 산간지방은 바로 진왕부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무성왕이 자리를 잡고 고향으로 여겼던 땅, 원래는 어느 일족의 집성촌으로 과거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그 땅은 무성왕의 식읍이 되어 진왕가의 소유로 남아있었다.


적오원군이 백 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보금자리이자 진호연이 태어난 곳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원수들의 소굴에 지나지 않았다.


임금과 어버이와 스승의 원수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니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쫓아 죽여야 하고, 형제의 원수는 항시 칼을 품고 다니다 눈에 보이는 즉시 쳐 죽여야 하고, 친우의 원수는 같은 땅에서 살 수 없는 법이니 그 또한 살아있음을 알면 땅끝까지 가서 심장에 칼을 박아 넣어야 함이라.


이를 두고 눈을 감는다면 체면과 명예도 모르는 패륜이며 난신적자요,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원수의 심장에 칼을 꽂으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충효이며 의협이라, 불구대천의 원한을 갚기 위해 손을 피로 물들인들 세상 그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진호연이 입술을 달싹였다.


“마도를 걷는 마귀가 되어서라도, 강호무림이 혈겁의 환란에 빠진다 하더라도 원수를 찾아내 죽이겠다···라.”


그의 혼잣말에 적오원군은 창밖에 뒀던 시선을 진호연의 눈동자로 돌렸다. 매우 흡족하게 웃으며 내려놨던 젓가락을 들어올렸다.


“전하.”

“응?”


적오원군의 부름에 그의 진한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왜? 진전이 얼마나 있었냐고?”

“흘흘, 명우공을 익히기 어려웁지 않사옵니까?”


무성왕이 말년에 창안한 명우공(鳴宇功).


주작이 비천하여 춤을 추듯 세상을 뒤덮는 화염으로 천하를 평정했던 무성왕은 자신이 접했던 모든 무학의 묘리를 담아 심법과 투법, 건신비법까지 아울러 명우공으로 집대성했다.


당시 무성왕은 세 명의 호법인 삼락삼절에게도 태청신단을 내리고 명우공을 사사했으니, 대호법인 적오원군이 이를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좌우호법의 천명이 다해 소천한 뒤 홀로 남은 그녀는 언젠가 신공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하여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내용을 외고 또 외웠다. 그리하여 분량만 해도 책을 몇 권 빽빽하게 채울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진호연에게 전할 수 있었다.


“어렵지.”

“당연한 일이옵니다. 이 명우공이 어떤 신공인데 어렵지 않겠사옵니까.”


젓가락을 뻗어 진호연을 겨눈 적오원군이 뜬금없이 물었다.


“일백이청삼황사홍(一白二靑三黃四紅).”


그에 진호연이 답했다.


“화리생련(火裏生蓮).”


흉터 가득한 얼굴에 미묘한 웃음을 띤 적오원군은 곧장 젓가락을 내질러 하나 남은 닭다리를 집었다.


“지독한 불길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보셨사옵니까?”

“아니, 아직.”

“이년도 아직 보지 못하였나이다.”


진호연도 스승이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젓가락을 뻗었다. 적오원군의 젓가락 사이로 자신의 젓가락을 집어넣어 넓게 벌려서는 닭다리를 떨어뜨렸다.


“나도 닭다리 좋아해.”

“호오?”


적오원군이 눈을 부릅떴다. 손아귀에 힘을 줘 벌어진 젓가락을 조이자, 진호연의 젓가락 끝이 맥없이 오므라졌다.


젓가락 머리가 활짝 벌어지며 손아귀를 짓이기자 진호연이 앓는 소리를 냈다.


“끙···.”

“전하, 식사를 마치고 어디로 가실 예정이시옵니까?”

“개방 거지놈들 염탐하러.”


진호연은 적오원군의 젓가락에 꽉 잡힌 자신의 젓가락을 빼내기 위해 손목을 한 바퀴 돌려 비틀었다. 위쪽 틈의 넓은 공간으로 젓가락을 올려 뒤로 빼내나 싶었는데, 곧장 적오원군의 젓가락이 횡으로 누웠다.


뒤로 물러나는 진호연의 젓가락 끝에 적오원군의 젓가락 끝이 정확하게 맞닿았다.


따악!


꽉 움켜쥐었던 젓가락이 손등 쪽으로 튀어나오며 손가락을 활짝 벌렸다.


“그것들이 철장비웅 일에 관해 뭐라 떠드는지 알아내야지.”

“흘흘흘! 하오문은 어찌하실 계획이시옵니까?”

“숨어들어야지.”


이어 적오원군이 진호연의 젓가락 끝을 꽉 집자, 손가락에 주리를 트는 형상이 되었다.


“어찌?”

“으윽, 생각 중이야.”

“자세히 말씀해 주시옵소서.”

“끅! 기루에 빌붙건 뭘 하건 곁에 붙어야지!”


두 사람은 젓가락 싸움을 이어가면서도 머리와 입으로는 다른 말을 뱉어냈다.


“할매는 뭐 하게?”

“이년은!”


적오원군이 기합과 함께 손아귀에 힘을 잔뜩 줬다.


“몸이나 다스리고 있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아악!”


화들짝 놀란 진호연이 엄지를 들어올렸다. 젓가락이 느슨해진 틈을 타, 검지로 엄지를 꽉 눌렀다가 거칠게 튕기며 적오원군의 젓가락을 후려갈겼다.


따악!


적오원군이 휘청이는 젓가락을 다잡는 사이, 진호연의 젓가락이 닭다리로 향했다.


진호연의 눈빛에 승리의 기쁨이 어렸다.


탁!


하지만 탁자를 짚고 몸을 앞으로 길게 빼낸 적오원군이 젓가락을 뻗어 진호연의 합곡혈(合谷穴)을 찔렀다.


엄지와 중지 사이에서 찌릿한 통증이 솟구침과 동시에, 진호연의 손가락이 맥없이 풀려버렸다.


달그락.


탁자 위에 젓가락을 떨어뜨린 진호연이 양손을 슬그머니 위로 올렸다.


“내가 졌어.”

“흘흘흘, 아직 초식을 잊지 못하셨사옵니다.”


이는 도구를 이용한 금나수법의 연장이었다.


적오원군은 타고난 감각도 중요하나 다채로운 상황을 많이 접해야 투법에 능해진다는 가르침대로 갖가지 상황에서 갑작스레 공세를 펼치는 일이 잦았다.


“더욱 정진하시옵소서.”

“···알았어.”


삼단전에 잠든 내력 하나는 일품인 진호연이라지만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했다. 철장비웅 정도야 수월히 상대 가능다하지만 강호무림의 노괴들을 맞닥뜨린다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강호무림의 내로라하는 노강호들이 늙어서까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뜻.


살아남았다는 자체가 그들이 강력하다는 증거였다.


백발이 되도록 자신의 목숨을 부지했으니 그 경험의 축적이 오죽할까, 이미 그들은 수련과 비무와 생사결, 때로는 전쟁을 통해 숱한 사선을 넘어들었기에 모든 경험이 진호연을 압도했다.


진호연은 막강한 내력을 견뎌야 하는 것도 숙제였으나 투법의 숙달도 급선무였다.


단단한 몸으로 수천수만 번의 초식을 연마하여 뼈와 근육에 초식을 새기고, 초식을 펼치고 펼쳐 흐르는 물처럼 투로를 잇고, 종국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세를 갖추며 무초식의 투법을 펼쳐야 쟁쟁한 고수들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법이었다.


“주인님께서는 젓가락을 마치 손가락처럼 놀리며 날아오는 탄환도 낚아채셨사옵니다.”

“흐, 무성왕께서는 어떻게 하셨던 거야 대체.”

“주인님께선···.”


적오원군이 무성왕을 떠올리며 눈을 감은 틈, 진호연은 잽싸게 닭다리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눈을 감고 있던 적오원군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전하, 반칙이옵니다.”

“반칙이라니, 할매가 그랬잖아.”


진호연이 닭다리를 우물우물 빨고는 뼈를 뽁 뽑아냈다.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며.”



***



고급품을 판매하는 상가가 늘어선 거리, 그곳의 작은 정원에는 화려한 비각(碑閣)과 거대한 송덕비가 서있었다.


용호와 거북이가 떠받드는 대석(臺石)과 주작처럼 커다란 신조가 앉은 개석(蓋石)이 참으로 웅장하였고, 흙먼지나 이끼 한 점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어 이 송덕비의 주인이 몹시도 커다란 공훈을 세웠음을 짐작게 했다.


하지만 어인 연유인지 비신(碑身)에는 단 하나의 글자도 새겨져있지 않았다.


이는 비석의 주인이 세운 공덕을 말로도 할 수 없고, 글로도 나타낼 수 없이 무량하다는 무자송덕비(無字頌德碑)의 형태였다.


“아아, 흠흠.”


진호연은 송덕비 근처에 돗자리와 바가지를 깔았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목을 풀고는 앞에 모인 구경꾼들을 슥 훑었다.


남녀노소가 잔뜩 몰려 대략 서른 명은 넘는 수였다.


상연을 시작하기 전부터 평소보다 사람이 북적이는 까닭은 이 번화가에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진호연이 멀끔하게 입은 탓이었다.


맵시 있고 화려한 비단옷을 차려입은 건 아니었으나, 그저 무명으로 만든 평범한 옷이었음에도 차림새가 단정하니 거지 행색이었을 때와 비교하자면 천지차이였다.


진호연은 위로 들어올렸던 삿갓을 내려 얼굴을 가렸다.


“아아.”

“에이이, 얼굴 좀 더 보여주지.”


몇몇 여인들이 아쉬워 칭얼거리자, 진호연이 삿갓을 더욱 깊게 눌러썼다.


“아아아, 흠! 혹시 듣고 싶은 곡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쇼.”


그의 맑고 묵직한 목소리에 후덕한 중년사내가 물었다.


“뭐든 가능하오?”

“아는 한에서는 가능합니다.”


사내는 상인처럼 평복을 입고 등짐을 이고 있었다. 먼 여정을 했는지 옷의 여기저기가 닳아 먼지에 쩌들어 있었고, 우악스러운 손아귀 안에는 천으로 둘둘 말아 정체를 감춘 검이 들려있었다.


그가 품에서 동전을 몇 푼 꺼내 바가지에 집어던졌다. 와중에 진호연은 앞머리의 틈으로 눈을 치켜뜨며 사내의 기도를 살폈다.


“그럼 소군출새(昭君出塞)로 부탁하오.”

“소군출새 좋죠, 알겠습니다.”


진호연이 여전히 가조각 없는 맨손으로 비파의 현을 어루만졌다.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왔어도 봄 같지가 않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진호연은 열 손가락을 본격적으로 놀리기 시작했다.


자라라라라라.


이어 현을 끌어당기고 튕기기도 하며 가락을 끊어질 듯 말 듯, 면면부절로 이어갔다.


“허어, 손톱이 긴 것도 아닌데 가조각 없이 잘도 타는구먼.”

“대단해, 신기가 따로 없어.”


저 머나먼 흉노의 땅으로 시집가는 왕소군.


달리는 마차에서 고개를 내밀었을 때, 고향의 푸른 산야가 점점 멀어지는 광경에 눈물을 글썽이며 울음을 삼키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창틀을 움켜쥔 고운 손이 어찌나 설웁던지.


다급히 울던 현이 한 번씩 거칠게 퉁길 적마다 마차가 덜컹이며 왕소군의 눈에서 아롱진 눈물이 흩날리니 관객들이 콧망울을 주물렀다.


잘게 떨리는 손가락이 현을 울리고, 우는 현을 통통 퉁기는 손가락에 왕소군의 마차 또한 들썩였다.


어느덧 자갈과 모래가 가득한 황야로 들어선 마차, 저 멀리에서 자신을 기다릴 흉노의 선우를 떠올린 왕소군은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고 잘게 흐느꼈다.


황제를 원망한들 마차를 돌이킬 수 없고, 남녘을 바라본들 고향이 보일쏘냐, 꽃도 풀도 없는 황량한 대지에서 죽을 때까지 고향의 봄을 그리노라.


진호연이 마지막으로 현을 어루만졌다.


그의 거친 손가락 아래에서 네 줄의 현이 들릴 듯 말 듯, 조용한 떨림을 전하며 소군출새를 마쳤다.


짤랑, 짤랑짤랑짤랑!


바가지 안으로 동전이 쏟아졌다.


화산파라는 굴지의 명문대파가 있는 고장다웠다. 유동인구가 많고 상업이 발달했으니만큼, 거리의 행인들은 적건 많건 품에 통용화폐를 지니고 있었다.


이미 재물은 넉넉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동전 폭우에 진호연의 입가가 활짝 올라갔다.


“조선재의 환생이야! 비파선재로다!”

“이야아! 다음 곡은 내가 청해도 되겠소? 다섯 문이나 냈는데.”

“비파선재, 나는 여섯 문 냈소이다! 십면매복(十面埋伏) 한 곡 청하오!”

“내가 먼저 냈거든요? 어딜 껴드세요!”


그런 중, 처음에 소군출새를 청했던 중년사내가 동전을 한 움큼 바가지에 넣었다.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 부탁하오.”


바가지가 그득해진 덕에 삿갓에 가려진 진호연의 입이 방긋 벌어졌다.


“춘강화월야, 좋습니다.”


진호연이 다시 비파의 현을 어루만지던 그때였다.


“이봐! 얌마!”

“어떤 새끼가 여기서 허락도 없이 동냥질을 하고 있어!”


난데없이 나타난 이들은 누더기 옷을 입은 거지떼였다.


감히 거지의 영역에서 허락도 없이 구걸하는 악공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진호연은 앞에 선 중년의 검객과 거지들을 번갈아 살피고 고개를 숙였다.


‘화산파와 개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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