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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성마소천(聖魔燒天)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6.26 14: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3:20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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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8
추천수 :
48
글자수 :
30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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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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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복수행 - 26

DUMMY

민가가 옹기종기 모인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너른 전답이 펼쳐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장원이라 불리는 커다란 저택이 자리했다.


기와를 올린 가옥과 너른 정원을 품은 견고한 담벼락은 집주인인 인자검의 위세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해도 떨어진 밤중, 이 저택에 예정도 없던 손님이 찾아왔다.


퉁퉁퉁!


“계십니까?”


퉁퉁퉁퉁!


오밤중에 난데없이 문고리를 두들기는 이가 대체 누구인지, 도좌방에 들어있던 노복이 잽싸게 튀어나왔다.


“뉘슈?”


굳게 닫힌 대문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눴다.


“지나가던 길손입니다만, 날이 저물어 그런데 하루 묵어갈 수 있겠습니까?”

“기다려 보시우. 주인어른께 여쭤야 할 일이우.”

“예, 알겠습니다.”


어찌할지 묻기 위해 안채로 들었던 노복이 인자검과 함께 대문간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집 주인이올시다. 길손이라 하시었소?”


대문 안쪽에서 집주인 인자검의 목소리가 울리자, 대문 바깥에 서있던 진호연의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불쑥 치솟았다.


그가 떨리는 목을 애써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예에, 근방에 딱히 머물 사당도 없고 부탁할 집도 없어 염치 불고하고 이리 청하게 됐습니다.”

“허어, 젊은 총각이었구만. 날이 추워서 그런지 목소리도 많이 떨리는구려. 우선 문을 열겠소이다.”


허리춤에 칼을 찬 인자검이 고개를 까딱여 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어 대문이 열리며 진호연의 모습이 드러나자,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자검과 노복이 흠칫 놀랐다.


“헉, 뉘, 뉘시온지···?”

“···어엇, 어느 가문에서 오시었소?”


이곳으로 오는 여정 중에 흑의복면을 벗어던지고 단정한 평복으로 갈아입은 진호연이었기에 떠돌이 악공이 아닌 어느 유서 깊은 가문의 영식으로 보였다.


인자검이 재빠르게 눈을 위아래로 굴렸다.


신발의 마른 진흙과 옷자락에 적당히 들러붙은 먼지, 틀어올린 상투의 기름기를 확인함과 동시에 진호연의 장대한 기골을 세세히 훑었다.


“혹, 대장군부(大將軍府)에서 나오기라도 하셨소?”

“설마요, 그런 귀한 출신이 아닙니다.”


그가 수염을 매만지며 점잖게 물었다.


“그럼 공자는 어디서 오셨소이까?”


인자검이 진호연을 살폈듯, 진호연 또한 인자검을 한순간에 살폈다.


어릴 적, 그날의 지옥 속에 있던 얼굴.


더러운 몸뚱이로 누이와 어미를 탐닉하고 유린하던 원수의 얼굴이었다.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저지르고 좋다며 웃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나이를 먹은 지금의 모습과 겹쳤다.


진호연은 치미는 분노를 삼키며 답했다.


“그저 천한 떠돌이 악공입니다.”


멜빵을 벗어 뒤로 돌려놨던 철비파를 앞으로 내보였다.


“엇, 악공이셨소?”

“예, 악공 맞습니다.”


인자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철비파와 진호연을 다시 훑었다. 고개를 몇 차례 갸웃 흔들고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집에 사람을 들이는 일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법이오. 잠시 맥을 짚어볼 터이니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시구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는 진호연의 손목을 붙들고 배꼽 어림을 한참이나 주시했다.


내공을 확인한 인자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외가 완전히 상반됐군. 어릴 적에 크게 앓기라도 하셨소?”

“예에, 대충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라 허우대는 커다래도 속알맹이가 곯았습니다.”

“저런, 추울 텐데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구려.”


바깥에 서있던 진호연이 발을 뻗어 대문간 안을 디뎠다. 이어 두 발이 전부 안으로 들어오자 노복이 대문을 닫아걸었다.


쿵, 드르륵.


닫힌 대문을 보던 진호연은 인자검을 향해 차수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날씨에 바깥에서 자다가 무슨 일을 겪을지 몰라 무서웠는데···.”

“감사는 무슨, 내 집에 들어왔으니 도적을 만날 걱정일랑 접어두시오.”


옆에 있던 하인이 작게 속삭였다.


“우리 주인어른은 고수이올시다. 강호무림에서 인자검이라는 별호를 날리는 분이시우.”

“헛, 협객 인자검 말씀이십니까?”


진호연이 덩치에 맞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인자검 대협은 예전 난리통에 오랑캐와 흉적들을 처단하고 진왕가의 보물들을 찾아오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 뇌진도 방 대협과 함께!”

“어이구, 잘도 아시는구먼.”


그러자 앞에 있던 인자검이 턱을 슬그머니 치켜들며 거만하게 웃었다.


“내가 행한 일에 비해서 조금 과장된 게 없잖아 있소. 민망하니 그만하시구려. 허허허헛!”

“뵙고 싶었습니다. 인자검 대협!”

“거참, 젊은 총각이 내 별호는 어떻게 알고. 보아하니 난리 당시에는 꼬맹이였을 텐데. 허허!”


과거에 악명을 떨쳤던 정체불명의 색마가 지금은 협객으로 이름을 날린다니.


여염의 여인들을 겁간하던 색마, 특히 임부와 봉오리를 틔우지도 못한 여아를 자주 노렸기에 흑도에서도 개새끼라 손가락질을 받던 악적이 점잖은 학사처럼 행동하는 꼴에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진호연은 웃음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독에 당해 죽어가던 당시에는 어렸기에 몰랐지만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누이에게 자신의 아이를 배라고 지껄이고, 새아버지이자 매형이라고 부르라 혓바닥을 놀린 걸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인자검의 아가리를 찢고 오장육부를 끄집어내고 싶었다.


금수만도 못한 놈이 과거를 어찌나 깨끗하게 지웠는지, 이런 좋은 저택에서 비복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꼴에 진호연의 울분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는 불구덩이처럼 타오르는 마음을 억누르며 힘겹게 웃었다.


“어찌 대협객들의 활약을 모르겠습니까!”

“이 사람 거, 단소리는 적당히 해야지. 물어볼 것도 있으니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



“앉으시오.”

“예.”


대청의 다탁에 앉은 진호연이 코를 벌름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리 말씀드리려니 참 궁색하고 걸인 같습니다만···.”


밤공기에 기름 냄새와 향신료의 알싸한 향기가 떠돌았다.


“혹시 집에 무슨 경사가 있습니까?”

“아아, 이번에 딸녀석이 좋은 혼처를 구해 약혼을 하게 되었소.”

“좋은 혼처라! 참으로 잘 되었습니다!”

“허허, 고맙소.”

“무슨 일인지 말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기쁜 일은 나누어야 배가 되는 법 아닙니까.”


인자검이 몹시도 흐뭇하게 웃었다.


“그럼 팔불출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자랑 좀 하겠소이다. 이거 혼기를 맞이한 총각 앞에서 떠들려니까 민망하구만.”

“대협, 떠돌이에게 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내 딸이 말이올시다. 어미 없이 자랐는데도 이쁘고 착하게 자랐어. 게다가 나를 닮아서 그런지 솜씨가 좀 좋은 게 아니라 바느질이면 바느질, 요리면 요리, 못하는 게 없는 녀석이오.”


그 말을 들은 진호연도 굉장히 흐뭇하게 웃었다. 거짓이 아닌 진심에서 비롯된 웃음이었다.


이제는 꿈속의 얼굴마저 피범벅으로 뭉개진 엄마와 누나의 기괴한 몰골을 떠올리니, 진호연은 아들이며 동생 된 입장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 행복하시겠습니다.”

“행복하지, 그 작던 것이 벌써 이리 자라서는 약혼을 할 줄이야. 갓난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엔 눈앞이 막막했었는데···.”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던 인자검의 얼굴에 서운함과 허전함이 슬며시 깃들었다.


“그런데 이제 곧 시집을 가겠구나. 멀기도 먼 곳이라 살아서 몇 번이나 볼까······.”


인자검은 말끝을 흐렸다.


혹여 딸이 재액에 휘말릴까 서둘러 먼 곳으로 보내기로 했지만, 막상 딸과 함께 지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니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는 촉촉해진 눈가를 문지르고는 허허롭게 웃었다.


“내 참, 별 팔불출을 다 보여주고 있구만. 여튼 그런 경사가 있어 몇날며칠 기름진 음식 냄새 풍기는 중이었소이다.”

“그렇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기쁜 경사를 맞이한 인자검에게 아주 큰 선물을 내리겠다는 생각만으로도 진호연의 가슴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금껏 딸을 애지중지 키웠을 인자검이 선물을 받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떠올리니 끓어오르는 단전을 다스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숨을 천천히, 또 아주 깊게 들이마시며 속을 가라앉히고 비파를 끌어안았다.


“정말입니다. 꼭 뵙고 싶었던 인자검 대협께 이런 경사가 있으니 저도 몹시 기쁩니다.”

“허허, 고맙소이다.”


갑작스럽게 인자검이 손뼉을 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아차, 내 정신 좀 보게나. 많이 시장하시겠소이다. 방을 내어줄 터이니 목욕부터 하고 오시구려.”

“아닙니다. 그전에 할 일이 있어서.”

“할 일이라니?”


진호연은 의문을 표하는 인자검 앞에서 비파의 현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리 신세를 지게 됐으니 한 곡 올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그렇다면야···.”

“듣고 싶은 곡이 있다면 뭐든 말씀하시지요.”


잠깐 고민하던 인자검이 머쓱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십면매복이 듣고 싶구려.”

“십면매복(十面埋伏)! 십면매복이라, 저도 참 좋아합니다.”


도처에서 적이 목숨을 노리니 오갈 데 없는 신세, 겹겹이 포위당하여 그 어느 곳으로도 달아날 길이 없으니 패왕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뿐.


달아날 길은 오로지 죽음만이 남았노라.


진호연의 손가락이 현을 쓸었다.


챵! 창창창창창창···.


현을 후려칠 때마다 곳곳에 숨어있던 군사들이 창을 들이밀며 숨통을 옥죄는 듯했다.


손가락이 정신없이 흔들리며 현을 퉁길 적에는 쏟아지는 화살을 피해 말을 몰아 달아나는 듯하니, 듣고 있던 인자검이 저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었다.


“허어!”


인자검이 감탄하자 진호연은 눈을 질끈 감으며 뜨거운 마음을 쏟아냈다. 이는 인자검을 도망칠 길 없는 수렁으로 몰아넣겠다는 절절함이 담긴 가락이었다.


반쯤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중, 진호연은 담장 내의 사람들을 어떻게 죽일지 궁리했다.


오는 길에 봤던 저택 내부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비복들도 많지 않음이 분명했기에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둔다면 처리는 간단할 터.


하지만 인자검의 실력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점이 조금 꺼림칙했다.


복수의 첫 대상이 됐었던 철장비웅이 말하기로는 인자검 따위는 자신보다 못한 실력이라 했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세상에는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던가.


필부가 휘두른 눈먼 칼이라 하더라도 운이 없다면 그 칼날이 고수의 목을 가르는 법, 만약 인자검이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진원진기까지 불태워 달려든다면 진호연도 위급에 처할 가능성이 있었다.


황하와 같은 내력을 가지고 적오원군에게 명우공을 사사했다지만 실전 경험이 꽤나 부족한 상황이었다.


계획을 짜고 혹여 모를 사태를 대비해야 함이었다.


진호연은 반개한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를 연신 움직이며 인자검의 버릇을 살폈다.


검을 두는 위치, 다리를 벌리는 습관, 손을 올리는 자리.


우선 인자검의 다리를 박살 낸 뒤, 연회장에 모인 가솔들의 미간에 구멍을 뚫으리라. 그리고 딸을 인질로 잡아···.


진호연의 마음을 가득 채운 살심이 요동치며 복수의 꽃을 생생하게 그리던 그때였다.


자박.


“아빠, 이게 웬 비파······.”


인자검을 닮아 아리따운 소녀가 대청으로 들어서다가, 진호연의 얼굴을 보고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소리.”


멈춰 선 그녀의 노골적인 시선에 진호연과 인자검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음?”

“······.”


어색한 분위기 속에 비파 연주가 멈추자 인자검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아까 말했던 내 딸녀석이올시다.”


그리 말한 인자검은 자리에서 일어나 딸에게 다가갔다.


“인석아, 애비가 말했잖냐. 손님이 오셨을 때엔 함부로 나다니지 말라고.”

“······아빠.”

“응?”


인자검의 딸이 뺨 가득히 홍조를 머금었다. 헌헌한 청년을 마주한 그 수줍은 얼굴은 꽃망울처럼 보드랍고 아리따웠다.


“저 공자, 혹시 제 서방님 되실 분이세요?”

“에엥?”

“꺄야, 어떡해. 어떡해! 제 서방님 맞죠?”


인자검이 딸의 손을 꼭 붙들었다.


“그건 아니다. 경거망동 말아라.”

“예? 저 약혼한다고 하셨잖아요. 제 서방님 아니에요?”

“어허어, 아니라 했잖냐.”

“거짓말, 제 서방님 맞잖아요. 놀리는 거죠?”

“약혼을 하는데 네 서방 될 사내가 왜 오겠냐. 그저 하루 묵어가길 청한 악공이다.”


소녀의 붉어졌던 얼굴이 급격하게 식으며 김빠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째 비파 소리가 들리더라니. 근데 진짜 제 서방님 아녜요?”


인자검은 몹시도 실망한 딸의 등짝을 다독였다.


“녀석아, 어디 혼처가 정해진 여인이 외간남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야. 앞으로는 저런 사내를 보더라도 돌을 보듯 봐야 한다.”

“···잘못했어요.”

“네 서방 될 사내가 있으니 몸도 마음도 정숙하고 조신해야 하는 법이라 누누이 말했거늘.”


부녀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던 진호연은 하마터면 배를 잡고 폭소할 뻔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색마로 악명을 떨쳤던 과거를 감춘 자가 자신의 딸에게는 정숙한 태도와 조신한 몸가짐을 지껄이고 있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노릇이었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진호연에게 인자검 부녀가 다가왔다.


“실례했구려. 부끄럽지만 어미 없이 키우느라 내 너무 오냐오냐 응석을 받아줬다오. 혼기가 꽉 찼는데도 이리 버릇이 없소이다. 결례를 사과하겠소.”

“아닙니다. 한창 모든 게 궁금하고 재미있을 나이 아닙니까.”

“그리 이해해 주니 고맙구려. 다른 친척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요 녀석과 나 단둘인지라···.”


하지만 사과를 하는 중, 옆에 있던 딸이 진호연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저기요, 혹시 무공 배우셨어요?”


그녀의 손가락이 진호연의 두툼한 팔뚝을 가리켰다. 처음 보는 이에게 함부로 삿대질을 하며 내력을 캐묻는 버릇없는 태도에 인자검이 다시 허허 웃어버렸다.


“정말 미안하오. 이놈의 자식이 정말···.”

“대협, 어찌 사과를 하십니까. 딱히 감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진호연이 일어나 딸을 향해 손을 모아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떠돌이인지라 횡액을 만날까 싶어 삼재육합을 배웠고, 광대놀음을 하는지라 강신건체의 비법으로 근골을 단련한 바입니다.”

“아, 광대놀음이요?”

“예, 싸울 때 쓰는 것이 아니라 기기묘묘한 묘기를 부리는 데에 필요한 몸뚱이를 만든 겁니다. 그래도 힘은 꽤 셉니다.”


그가 주먹을 쥐고 팔뚝에 힘을 주자 인자검의 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아, 그렇구나아. 그럼 내공심법도 육합이나 삼재 같은 것들인가요?”

“맞습니다. 연이 닿지 않아 저자에 떠도는 삼류를 익혔기는 한데, 체질마저 받쳐주지 않는지라. 하하하하.”


진호연이 머쓱하게 웃자, 딸도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아빠한테 배웠는데!”

“하하, 그러십니까?”

“예! 보여드릴까요? 궁금하시죠?”


인자검이 자신의 이마를 탁 때렸다.


제대로 된 무공도 배우지 못한 데다가 몸도 내공을 쌓지 못할 병신이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인데,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를 듣고 같이 웃고 자빠졌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딸을 지켜보다가 민망하고 민망하여 더 이상 참지 못한 인자검이 딸의 등짝을 후려쳤다.


“인석아! 어서 들어가지 못하겠냐!”

“앗, 아빠아. 아파요.”

“씁, 어서 방으로 돌아가거라!”

“아 왜요오!”


인자검이 딸을 대청 바깥으로 밀어내고는 진호연에게 차수를 하며 얼굴을 붉혔다.


“보셨다시피 저거 사람 되지도 않은 걸 시집보내려니 걱정이 많소이다.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소.”

“아닙니다. 대협의 따님께서 저리 밝고 건강하시니 복이 절로 굴러 들어오겠습니다.”

“허허, 말이라도 고맙소. 성격 참 서글서글하니 좋구려.”


진호연의 공손한 태도에 인자검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리고 주제넘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소림무승처럼 근골을 단련한 것을 보니 큰 소질이 있는 듯하오. 삼재육합이 삼류라 얕보지 말고, 꾸준히 심법을 행한다면 혈맥에도 차도가 있을 터이니 거르지 마시구려.”

“그렇습니까? 삼류라 얕보고 있던 중에 대협께서 가르침을 주시니 믿음이 갑니다. 꼭 해보겠습니다.”


인자검은 몹시도 흐뭇하게 웃었다.


“원 사람도, 자꾸 대협대협 소리를 하니 내가 정말 대협객이 된 것 같잖소. 우선 집사를 따라가 목욕부터 하고 오시구려. 같이 밥이나 듭시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집사가 진호연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예.”


진호연은 비파의 멜빵을 걸치고 대청 바깥으로 나섰다.


헌데 어인 일인지 인자검의 딸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청 바깥을 서성이며 진호연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활기차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공자, 푹 쉬셔요!”


진호연은 활짝 웃는 그녀에게 허리를 숙이면서도, 눈만큼은 위로 치켜떠서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예, 소저께서도 편안히 주무시지요.”

“···예에, 내일 봬요.”


아직 꽃잎을 피우지도 못한 꽃봉오리 같은 소녀가 청년의 타오르는 눈동자를 보고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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