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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성마소천(聖魔燒天)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6.26 14: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3: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5,218
추천수 :
48
글자수 :
305,180

작성
24.08.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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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복수행 - 14

DUMMY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지그시 서로를 보던 중, 진호연이 난데없이 눈웃음을 쳤다.


“농담입니다. 살려드리겠습니다.”


살려준다는 진호연의 말에 몽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분명 살려줄 리가 없는데, 말투나 표정이나 거짓말 같지가 않구려.”


몽려는 깍지를 끼고 진호연의 눈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살려주는 줄 알았잖소. 방금 살기도 완전히 사라져서 놀랐소이다.”

“믿는다고 나쁠 건 없잖습니까.”

“거짓말을 태도 안 나게 잘 하는 걸 보니, 사람을 보통 기만하며 살아온 게 아닌 거 같구려.”


마른침을 삼킨 몽려가 물었다.


“혹시 물 좀 마실 수 있겠소?”

“물론이죠.”


진호연이 부엌의 물동이로 손을 뻗어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허공섭물에 한 말들이 물동이가 두 사람이 앉은 곳으로 날아왔다. 안으로 굽혔던 팔을 뻗어 물동이를 가볍게 받아, 두 사람이 앉은 걸상 사이에 내려뒀다.


그가 표주박으로 물을 퍼서 몽려에게 내밀었다.


“드시죠.”

“고맙소.”

“별말씀을.”


여기는 분명 몽려의 집이었다.


한데 바람 좀 피하겠다던 과객이 갑자기 허공섭물을 펼치며 주인에게 물을 허락하는 상황에 몽려의 머리가 얼떨떨해졌다.


이게 맞나 싶었지만 지나가던 손님이 워낙 고수인지라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상황이었다. 몽려가 물을 꼴깍꼴깍 들이켜는 동안, 진호연은 비파의 현을 살살 튕겼다.


오기 전에 축을 조이고 왔기에 조율할 필요는 없었다. 소리를 몇 번 확인한 진호연은 본격적으로 비파의 현을 퉁기기 시작했다.


투우우웅, 챵.


몽려는 진호연이 연주하는 이름 모를 곡을 들으며 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바가지를 물동이 안에 던져 넣었다.


물방울이 무릎에 튀어 툭툭 털어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말했다.


“무공도 비파도 참으로 절륜하시구만. 거기에 거짓말도 기가 막히니 못하는 게 없어 보이오.”


몽려가 하는 짓을 빤히 쳐다보며 비파를 타던 진호연이 답했다.


“저도 못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뭐요?”

“살려주는 걸 못합니다.”

“그럴 줄 알았소.”


진호연의 대답을 들은 몽려가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왠지 모르게 뒷맛에 감도는 텁텁한 흙내가 더욱 짙어진 듯했다.


“하나 더 물어봅시다.”

“예.”

“누가 보냈소? 이유는?”

“짐작 가는 바가 있을 거 아닙니까.”

“짐작이라···.”


이미 몽려는 진호연의 정체를 살수라 단정짓고 있었다. 그가 특별한 무공을 익히고 고강한 내력을 바탕으로 하여 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동안의 고수라 판단했다.


“모르겠소. 짐작 가는 바가 없소만.”

“없다뇨? 정말 없습니까?”

“굳이 오래 생각할 필요 없이 복수 당할 일이야 몇몇 떠오르오만, 암만 생각해도 당신 같은 고수가 찾아올 사건은 없소이다.”

“소림의 속가제자가 복수 당할 일을 이리도 빨리 떠올려서야 되겠습니까? 무슨 악행을 그리 저지르고 다닌 겁니까?”

“칼밥을 먹고 사는 무림인이거늘, 어찌 은원이 없겠소이까.”


몽려가 고개를 갸웃 꺾었다.


“염치없지만 정말 모르겠소이다. 오늘이 마지막일 텐데 알고나 갑시다. 당신 같은 고수가 왜 나를 찾아왔소이까?”


진호연이 미묘하게 웃었다.


“흑수 위의 외딴 집.”

“흑수 위라 하면···.”

“중원인 내외가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데리고 살던 집.”


몽려의 눈썹이 이마를 찢을 것처럼 번쩍 올라갔다. 커진 눈을 몇 번 꿈뻑이더니 천장으로 고개를 꺾었다.


“그 독침을 맞은 꼬마, 설마 그 집 아들이셨소?”

“네.”

“어찌 살아남으셨소? 그 독침은 당가의 독이라 했는데.”

“체질 덕이죠.”

“하늘이 보살피셨군.”


진호연은 연신 비파를 타면서도 짧은 수염이 듬성듬성 난 몽려의 턱을 흘겼다.


“내가 잠들면, 아직도 당신들의 젊은 시절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그랬구려.”

“부모와 동기가 처참하게 당하는 그날이 생생해서 아침마다 울부짖습니다.”


몽려가 합죽이처럼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가, 속에 담은 뜨거운 숨을 일시에 토해냈다.


“복수해 마땅하다!!”


그가 천장으로 꺾었던 고개를 다시 아래로 내렸다.


“무성왕의 장보도라는 말에 혹해 방가 놈과 함께 다녔으니, 내 죄가 아주 깊소이다.”

“죄가 깊은 건 알고 계셨습니까?”

“그때의 일들은 죽어서까지 묻어두고 싶은 일이었소. 한데 목격자가 살아남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구려.”


몽려가 다른 자들처럼 아녀자를 무자비하게 겁간했다거나, 앞뒤 보지도 않고 사람을 죽여 재물을 약탈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함께 다니며 악행을 저지르는 꼴을 보고도 말리지 않았으니 그 또한 죄악이었다.


결국 진호연 일가가 처참하게 뭉개질 때에도 만행을 수수방관했으니 복수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대율로 다스리자면 극형이고, 소림의 규율 대로 하자면 사지근맥을 찢고 평생 참회동에 넣어뒀을 중죄올시다.”

“알면 그러지 말았어야지요.”

“그러게나 말이오. 그럼 뭣 좀 더 물어봅시다.”

“네.”


몽려는 진호연의 목을 향해 턱짓을 했다.


“그 독을 맞고 살아난 것도 놀라운데, 이제야 약관이 되어가는 나이에 어찌 이리 고강한 무공을 익히셨소?”

“집안 내력이 그렇습니다. 어지간한 독은 듣지도 않거든요.”

“무공은? 내공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태청신단 하나 먹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말에 몽려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허, 태청신단이라면 무성왕이 남긴 태청신단 말이오?”

“예, 그거 맞습니다.”

“내가 그걸 찾자고 방가 놈을 따라다녔었소이다.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시오? 결국 우리도 장보도는 구경도 못 했었소.”


진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방환을 암만 따라다녔다 한들 선계허(仙界墟)로 이어지는 장보도는 찾지 못했을 겁니다. 애초에 목표가 그게 아니었거든요.”

“그럼? 방환은 그럼 뭘 찾아다녔던 거요?”

“무성왕의 유물을 노린 게 아니라 저를 암살하러 왔던 겁니다.”

“왜? 무슨 연유로?”

“제가 진참안 당시에 사라진 세자거든요.”

“······거짓말.”


진호연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던 몽려는 표주박을 들어 흙내 나는 물을 또 들이켰다.


“···그게 진짜요?”

“믿건 말건 마음대로 하십쇼.”

“그럼 그 비파는···?”


진호연이 입을 샐쭉하게 내밀었다.


“무성왕께서 만들어 삼락삼절의 좌호법에게 내려주셨던 비파입니다.”

“그게 진짜란 말이오?”

“본다고 압니까? 좌호법이 죽으며 백 년 넘게 잊혔던 귀보이니 알아볼 이도 없는 물건입니다.”

“흠, 만져봐도 되겠소?”

“곧 죽을 사람 소원도 못 들어주겠습니까? 이게 허락했으니 만져도 됩니다.”


현을 이리저리 당기고 퉁기는 손가락 아래로, 몽려의 손이 닿았다.


매끄러운 표면에서 냉기와 열기가 동시에 느껴지나 싶더니, 일순에 거대한 양극이 회전하며 평온하고 안정적인 와류를 만들었다.


철비파의 영능에 의해 몽려의 기도 완만하고 그윽하게 흘렀다. 몇 바퀴 작은 원을 그리던 기가 한차례 커다란 원을 그리고는 진호연의 맥에 닿았다.


그 순간이었다.


범람한 황하처럼 거칠고 무겁게 쏟아지는 기의 흐름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내려가다가, 시커먼 바다 같은 단전에 감각이 닿았다.


한낱 인간이 버티지 못할 거대한 해일을 마주한 몽려가 기겁하며 손을 뗐다.


“흐허헉!?”


어찌나 놀랐는지 그가 걸상을 뒤로 밀쳐내며 엉거주춤하게 일어섰을 정도였다.


“이, 이게 사람의 내력이 맞소이까?”

“태청신단을 복용하여 내력은 흘러넘치지만, 몸이 그를 견딜 만큼 성숙하지 않아 일 각이 넘으면 위험해지고, 이 각을 넘기면 아마 죽을 겁니다. 단전을 닫고서 다시 힘을 개방하기까지도 꽤나 시간이 걸리지요.”

“그걸 왜 말씀하시오···?”


진호연이 입술을 핥았다.


“진짜로 살아날 길을 알려주는 겁니다. 앞으로 일각이 지나고서도 내가 당신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게 될 겁니다.”


갑작스런 약점 고백에 당황했지만, 진호연의 말도 안 되는 내공을 직접 엿본 몽려는 그의 말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완전히 믿기는 어려우나 거짓임을 반박할 증거도 없고, 그리 애써야 할 필요도 딱히 없었으니까.


비파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깍지를 끼고 곰곰이 옛일을 곱씹던 몽려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가 놈, 이 씹새끼. 이런 개새끼를 보았는가···.”

“좀 기분 나쁩니다만?”

“미안하외다. 방가 놈의 안일함 덕에 살아난 그대에게는 언짢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걸 잡아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소.”


몽려가 이를 잘근잘근 씹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시간이 다 됐을 텐데, 마지막으로 내 죄를 뉘우치는 겸 그대에게···.”


말꼬리를 흐린 몽려가 말투를 고쳤다.


“마지막으로 제 죄를 뉘우치며 아는 바를 고하겠습니다.”

“뭡니까?”

“그날, 흑수 위쪽의 일 이후로 우리는 몇몇으로 나뉘어 흩어졌습니다.”

“그건 들어서 압니다만.”

“그때 전하를 모시던 의부의 주검은 구도부(狗陶夫)라는 놈이 훼손했습니다.”

“그것도 압니다.”

“그리고 살아있던 의모와 의붓 누이들은 음구(淫狗)라는 놈과 그 일당이 데리고 갔었습니다.”


악적들이 어미와 누이를 끌고 다니며 무슨 짓을 했을지 생각하기도 싫었기에 진호연의 목소리가 몹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것도 잘 아는지라 더더욱 죽여버리고 싶군요.”

“엇···.”


눈에 띄게 당황한 몽려가 무얼 더 말해야 좋을지 궁리했다.


“혹시 이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얼마 전에 비연자(飛燕子)라는 미친 도사놈이 지나갔었습니다.”

“비연자라면, 주화입마에 빠져 완전히 미쳐버렸다는 공동파 도사 말입니까?”

“예, 작년 여름 무렵에 지나갔었으니 일 년 정도 됐습니다.”

“어디로 갔답니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방환의 배신을 대비해야 하노라 떠들고는 가버린지라···.”


진호연의 안색이 삽시간에 변했다. 비파를 퉁기는 손가락도 일순 멈칫했을 정도였다.


“···방환의 배신이라뇨. 무슨 말입니까?”

“옛날부터 방환의 뒤에는 두려운 이들이 도사리고 있다며 떠들었던 놈입니다. 이번에 와서는 방환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으니 흑도와 백도가 힘을 합쳐야 환란을 막을 수 있다며 설득을 하던데, 워낙 횡설수설하는지라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 선견지명이 있는 미친놈이었군요.”

“이제 보니 그렇습니다. 법력 높은 사람들이 하는 말 좀 들을 걸 그랬습니다.”


진호연은 연주하던 곡이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깨닫고, 몽려에게 턱을 까딱였다.


“그럼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아까 진호연이 아궁이에 질렀던 불이 더욱 번지며 천장의 들보도 점점 불이 붙을 것처럼 검게 그을리고 있었다.


이제 머지않아 들보를 타고 이엉까지 불이 옮겨붙을 터였다.


“죽이기 전에 당부 하나 해도 됩니까?”

“예, 전하.”

“남은 시간 동안 목숨을 부지하거나, 바깥으로 달아난다면 살려주겠습니다. 진심이니 믿으세요.”

“정말입니까?”

“예, 다 죽은 사람처럼 체념하지 말고 좀 필사적으로 해보라 이 말입니다.”


몽려가 반색하는 모습을 보고 진호연도 입꼬리를 올렸다.


“해보십쇼. 무성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진호연의 눈빛에 일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집착과 열망이 언뜻 비쳤다.


몽려가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목숨 달랑 하나였다. 지킬 게 없으니 빼앗을 게 없는 그가 자신의 하찮은 명줄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늘어지는 모습만이 진호연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일부러 약점을 알려주고 과한 여유를 부리는 둥, 저 표정을 보고서야 진호연의 모든 행태를 이해한 몽려는 결연하게 이를 물었다.


“알겠습니다.”


참변을 겪은 네 살 꼬마아이가 복수심에 미쳐 살인마로 자라났다.


순수해 보이는 청년이 악귀나찰과 광마살귀나 보일 눈빛을 드러내며, 복수와 살인의 쾌감을 한껏 기대하는 모습이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전하의 모습은 소인의 업보나 매한가지입니다.”

“저도 잘 압니다.”

“죄송합니다.”


무성왕의 비보에 눈이 돌아가 인륜을 저버렸던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무참히 희생된 이들을 구하리라 다짐했지만, 어찌 지나간 시간을 불러 세워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 있을까.


그저 후회하고 후회하며 사죄하는 수밖에.


“흠!”


몽려가 한 발짝 앞으로 진각을 밟았다.


발코로 지면을 꽉 움켜쥐듯이 디디자, 삽시간에 종아리를 비롯한 다리 전체가 부풀어오르며 무쇠처럼 단단해졌다.


지면과 일체가 된 발끝으로부터 올라오는 힘이 다리를 타고 골반과 척추로 번졌다.


이어 지면에 닿은 발이 온몸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몽려의 몸이 앞으로 쏠리다 맹렬하게 비틀리며 남은 한쪽 다리를 위로 차올렸다.


후우웅!


그의 시퍼런 발꿈치가 허공을 가르며 잔상을 흩뿌렸다. 속도도 빠르거니와 다리에 맺힌 기가 푸르스름한 잔영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매서운 발차기도 그저 허공을 가른 게 전부였다.


챠라랑, 따당.


진호연은 양발의 발코를 지면에 박은 채로 무릎을 앞으로 내밀고 상체를 완전히 뒤로 눕힌 철판교(鐵板橋)의 세로 한가로이 비파를 타고 있었다.


진호연이 발가락에 힘을 주어 상체를 들어올렸다.


다시 태연하게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는 어디 더 해보라는 것처럼 몽려를 노려봤다.


몽려가 양다리의 무릎을 연달아 펼치며 발등으로 진호연의 온몸을 마구 올려찼다.


그야말로 탄퇴(彈腿)의 달인이라 할 법한 실력이었다만, 진호연의 몸에 닿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비파의 현을 퉁기다가 가볍게 탄지를 튕기는 것만으로 기파(氣波)가 퍼졌다. 몽려의 발은 지남철끼리 밀어내는 것처럼 묵직하고 농밀한 기장을 뚫지 못하고 고스란히 튕겨 나왔다.


허공을 넘어서지 못하는 발이 야속할 정도였다.

몽려는 이를 악물고 관자놀이까지 핏대를 세웠다.


아까까지는 과오에 대한 후회가 가득했던 마음에 무인으로서의 투쟁심이 거칠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이 이기지 못하리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최후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후회할 것만 같았다.


몽려의 눈동자가 진호연이 걸터앉은 걸상으로 향했다. 다리 또한 눈을 따라 걸상으로 뻗었다.


와작!


걸상의 중간을 후려차 좌판과 가름목이 박살 나자, 진호연도 계속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곧장 무릎을 세워 꼿꼿하게 선 채로 비파를 연주했다.


몽려는 바닥의 물동이를 들어 진호연에게 냅다 집어던졌다.


진호연이 씨익 웃으며 비파에서 오른손을 뗐다.


면전에서 날아든 물동이에 부드럽게 손바닥을 올렸다. 물동이에 실린 경력이 돌덩이처럼 묵직했다.


손목을 돌려 손바닥으로 받은 물동이를 손등으로 굴렸다. 물동이의 위아래가 뒤집히며 한 바퀴 회전하는 동안, 몽려가 진호연의 복숭아뼈를 걷어찼다.


탕!


진호연이 발을 들었다가 몽려의 발이 아래로 들어오는 순간에 바닥을 짓밟았다.


몽려는 발이 으깨지기 전, 잽싸게 다리를 뒤로 빼며 몸을 비스듬히 돌렸다. 몸을 회전하는 그대로 돌려차서 발꿈치로 관자놀이를 찍었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뒤차기를 연달아 날리는 모습은 마치 분노한 당나귀가 연신 뒷발질을 하는 꼴과 다름없었다.


모습은 추했으나 그 위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터어엉!

터터텅!


타격점으로부터 기파가 터지며 먼지가 쏟아졌다.


한차례 맹공을 퍼붓고 뒤로 훌쩍 물러난 몽려가 인상을 찌푸렸다. 쇳덩이를 냅다 후려찬 것처럼 발의 뼈마디가 찌릿하게 아파 땅바닥에 발을 비볐다.


게다가 발에 맺혀있던 공력이 맥으로 역류하여 무릎 언저리까지 저려왔다.


“다 했습니까?”


가라앉은 먼지 사이에서 태연한 진호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신공을 펼쳐 철판 같은 옷으로 몽려의 공격을 막아냈기에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몽려는 내기가 역류하여 저릿한 발을 연신 털어냈다.


“무슨 철포삼이 이리 단단합니까. 바윗덩이도 부수는 발차기였는데.”


진호연은 검지에 올린 물동이를 가볍게 돌렸다. 점점 속도를 더해가며 매질 당한 팽이처럼 맹렬하게 회전했다.


“나름 소림의 제자라는 분이 이걸 못 알아보면 어떡합니까?”

“···그게 소림의 무공이었습니까?”

“엥? 진짜 모릅니까?”

“···모릅니다. 그게 뭡니까?”


몽려의 되물음에 진호연은 고개를 까딱이고 말았다.


“됐고, 이제 끝내겠습니다.”


진호연은 회전하는 물동이를 가볍게 튕기고,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떨어질 때에 아랫면에 일장을 내질렀다.


그의 우악스러운 손은 흉흉할 정도로 붉게 달아오른 채였다.


퉁!


장심으로부터 막대한 공력이 주입됨과 동시에 맹렬하게 회전하던 물동이가 폭발했다.


사금파리와 물방울 하나하나가 진호연의 엄청난 공력을 머금고 전방으로 무수한 파편을 흩뿌렸다. 그야말로 화포 안에 화약과 자잘한 탄환을 가득 채워 터뜨린 것처럼 산탄의 폭풍이 몰아쳤다.


콰아아아앙!


대경한 몽려가 뒤로 도약했다.


공중에서 몸을 웅크리고 옷에 기갑(氣甲)을 입혀 소림의 철포삼을 펼쳤지만, 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끄하아아악!!”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산탄에 휘말린 몽려가 젖은 걸레짝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갈가리 찢기지는 않았으나 온몸에 구멍이 뚫려 피를 왈칵 쏟아내고 있었다.


벽과 지붕이 무너지며 들이닥친 찬바람이 몽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듯 거세게 흔들었다. 상투가 풀려 산발한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끄륵···.”


몽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건 대체···.”

“당가의 만엽선류입니다. 원래와는 좀 다르지만 제 방식으로 소화한 거죠.”


몽려가 진득한 피를 흘리며 힘겹게 물었다.


“만엽선류···라면, 어떻게···적수비기(赤手秘器)를···.”

“소림의 영취보탑(靈鷲寶塔)도 못 알아보는 분이 적수비기는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본인 사문 것부터 알고 남의 걸 알아야지.”

“끄으,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진호연은 몽려의 간절한 눈을 지그시 보더니 미소 지었다.


“그렇게 궁금합니까? 사실 대호법 적오원군으로부터 무성왕의 무학을 이어받았습니다.”

“아, 아아, 그랬군. 진짜였구나···.”


몽려는 간신히 들어올리고 있던 고개에서 힘을 뺐다. 엉망진창이 된 흙바닥에 머리를 뉘고, 불이 붙은 지붕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끄럭, 내 인생은, 나는 뭘 위해······.”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했습니다만, 황실과 진왕가에서 받은 재물은 어쨌습니까?”

“절반은 보시하고, 나머지는 노름판에서 털렸······습니다.”

“저런, 재물도 뺏을 게 없었네요.”


진호연은 무너진 현관 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저기 어둠에 들짐승이라도 나타났다는 양, 눈초리를 가늘게 좁히고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니 매우 불쾌하군요. 가기 전에 뭐라도 좀 해드려야 할 텐데.”

“···죄송, 합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몽려가 마지막 발버둥도, 최후의 발악도 포기하고 체념했을 때였다.


“도, 도반!”


무너진 벽에서 노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나운 꿈자리 탓에 걱정되어 십 리 길을 걸어왔더니, 아니나 다를까 집은 부서지고 몽려는 정체불명의 거한에게 당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도반! 이 무슨 일입니까!”


죽어가던 몽려가 고개를 펄떡 들어올렸다.


“노, 노사, 여기는 왜···.”


배에서 창자가 튀어나오는 중에도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 몽려의 꼬락서니에 진호연의 눈에서 불이 번뜩였다.


쿠우우우.


진호연의 안구에서 줄기줄기 시퍼런 빛이 흘렀다. 그의 발치에 있는 나뭇조각이 기류를 타고 솟구쳤다.


“몽려, 당신에게서 빼앗을 게 없는 줄 알았는데 하나는 있었군요.”


귀기 어린 진호연의 모습에 몽려가 기겁했다.


죽어가는 마당에 이제 더 무서울 게 있을까 했는데, 미치광이 살인마가 늙은 중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광경에 소름이 끼쳤다.


노승이 진호연의 손아귀에 떨어져 처참하게 죽을 걸 생각하니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공포를 느꼈다.


몽려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피곤, 남은 힘을 짜내 외쳤다.


“노사! 도망치십쇼!!”


그러자, 진호연이 입꼬리를 찢어지게 올렸다.


“아까 말했잖습니까, 살려주는 걸 못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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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복수행 - 34 24.09.03 54 0 13쪽
33 복수행 - 33 24.09.02 57 0 13쪽
32 복수행 - 32 24.09.01 64 0 12쪽
31 복수행 - 31 24.08.31 66 0 14쪽
30 복수행 - 30 24.08.30 71 0 16쪽
29 복수행 - 29 24.08.29 66 0 17쪽
28 복수행 - 28 24.08.28 72 0 13쪽
27 복수행 - 27 24.08.27 70 0 16쪽
26 복수행 - 26 24.08.26 72 1 17쪽
25 복수행 - 25 24.08.25 79 1 14쪽
24 복수행 - 24 24.08.24 81 1 19쪽
23 복수행 - 23 24.08.23 87 1 14쪽
22 복수행 - 22 24.08.21 89 1 13쪽
21 복수행 - 21 24.08.20 101 1 16쪽
20 복수행 - 20 24.08.19 95 1 14쪽
19 복수행 - 19 24.08.19 96 1 16쪽
18 복수행 - 18 24.08.18 98 1 15쪽
17 복수행 - 17 24.08.17 104 1 16쪽
16 복수행 - 16 24.08.16 110 1 15쪽
15 복수행 - 15 24.08.15 112 1 14쪽
» 복수행 - 14 24.08.14 106 1 20쪽
13 복수행 - 13 24.08.13 112 2 14쪽
12 복수행 - 12 24.08.12 118 3 17쪽
11 복수행 - 11 24.08.11 137 1 16쪽
10 복수행 - 10 24.08.10 170 2 16쪽
9 복수행 - 9 24.08.09 157 2 18쪽
8 복수행 - 8 24.08.08 183 2 15쪽
7 복수행 - 7 24.08.07 187 2 13쪽
6 복수행 - 6 24.08.06 224 2 17쪽
5 복수행 - 5 24.08.05 225 3 16쪽
4 복수행 - 4 24.08.04 250 4 16쪽
3 복수행 - 3 24.08.03 277 3 16쪽
2 복수행 - 2 24.08.02 334 3 16쪽
1 복수행 - 1 24.08.01 602 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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