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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ㄴㅇㄹㅇㄴㄹ

성마소천(聖魔燒天)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매지컬백정
작품등록일 :
2024.06.26 14: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3: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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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8
글자수 :
30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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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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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복수행 - 19

DUMMY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진호연은 낙양 제일의 기원이라는 벽산관(碧山館)으로 향했다.


이 벽산관은 으리으리한 담장을 둘러 붉게 칠한 대문과 문설주를 세웠고, 기와담장의 너머로는 탑처럼 우뚝 솟은 누각이 보이니 기원이 아니라 공후(公侯)의 원림인가 싶은 모습이었다.


진호연은 담장에서 멀찌기 떨어져 걸으며 높이 솟은 누각을 구경했다.


“낙양제일루라···.”


진호연이 읊은 그 별칭 대로 높다랗기가 다른 누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낙양을 깔아보는 것처럼 우뚝 솟았으니 묵객들이 몰려 천년고도 낙양의 경관에 흠뻑 빠져 붓을 놀리고, 선비들이 금을 뜯고 피리를 불며 야경을 칭송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벽산관의 대문간에 도착한 진호연은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문 안쪽에서 부스럭대는 잡음과 함께 몇몇 사내들이 중얼거렸다.


“이 시간에···.”

“돌아가시오! 문을 열려면 아직 한참 남았소이다!”

“총관을 봬야 할 중요한 일이 있으니 잠시 문 좀 열어주십시오!”


진호연이 총관을 거론하자 벽산관의 문지기들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거참, 어서 열자고···.”


워낙 고관대작들이 오가는 기원인지라 찾아오는 객을 죄다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얼굴도 보지 않고 내쳤다가는 자칫 귀빈을 문전박대했다며 몽둥이로 모질게 다스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지기는 대문을 슬쩍 열고 틈으로 눈알을 굴렸다. 앞에 선 이가 대단한 거한이라 굉장히 놀랐지만 행색이 부유해 보이지 않기에 조금은 안도했다.


“뉘시우?”


진호연은 품에서 가죽 봉투를 꺼내어 문지기에게 건네고, 뒤로 돌려놨던 비파를 앞으로 내보였다.


“비파쟁이입니다.”

“아, 악공이셨소?”

“그렇습니다.”


문지기가 진호연이 건넨 가죽 봉투를 받으며 떨떠름하게 웃었다.


“나는 또, 덩치만 보고 대단한 무인인가 싶어서 깜짝 놀랐지 뭐요.”

“하하, 덩치만 크지 무공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그랬구만. 어디 보자아···.”


장 진사의 추천장이 담긴 가죽 봉투는 그 자체로도 상당한 고급품이었기에 문지기는 내용물이 범상치 않음을 재빠르게 눈치챘다.


“혹시 누구 추천받고 오셨소?”

“장 대인께 받은 추천장입니다.”

“엇? 장 대인이라면 설마?”


진호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문지기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문간 안쪽으로 뻗었다.


“어서 듭시지요. 제가 귀한 분을 몰라뵀습니다.”

“별말씀을.”


외부와 건물이 이어지는 통로인 첫 대문간을 넘자 바깥에서 안쪽을 보지 못하도록 병풍처럼 세우는 영벽(影壁)이 앞을 막아섰다.


벽사를 뜻하는 용호와 귀면이 아닌 모란과 작약을 부조한 영벽이었다.


그를 본 진호연은 빙긋 웃고서 문지기의 뒤를 따랐다.


이어 하인들이 숙식하는 도좌방이 길쭉하게 이어지고, 두 번째 대문이 나왔다.


희한하게도 기원의 구조가 아닌 명문가의 저택과 같은 구조였다.


“문이 몇 개나 있습니까?”

“셋이라 합니다.”

“삼진(三進)이라. 규모가 보통이 아니로군요.”


한데 두 번째 대문을 지났을 때부터 곳곳의 편문과 창을 통해 갖가지 악기가 이루는 음률과 시끌시끌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에 더불어 향신료를 듬뿍 사용한 기름진 음식의 향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술동이와 음식을 나르는 하인들이 종종 돌아다니는 모습을 둘러보던 진호연이 문지기에게 물었다.


“원래 어느 가문의 터였습니까?”

“으응? 모르셨습니까? 알 사람은 다 아는 일인데.”

“물정에는 어두운지라, 하하.”


문지기는 입을 가리고 진호연을 향해 턱을 쭉 뺐다. 하지만 방금 했던 말처럼 공공연한 일인지라 굳이 목소리를 낮추지는 않았다.


“제갈가의 소유로 안가처럼 쓰이던 곳이었다던데, 기원으로 바꿔버리셨지요. 조정의 고관대작들께서 편히 이야기를 할 곳을 찾다 보니 그리됐다는 소문도 있고···.”

“아아, 그렇군요.”


진호연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유난히 복잡한 구조와 담벼락 안의 기이한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이제야 알겠다는 것처럼 눈을 큼직하게 뜨고 조금 겁먹은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런 진호연의 어수룩한 모습에 문지기가 어깨에 힘을 주며 말을 보탰다.


“저야 이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만, 손님들은 반드시 안내를 받아 돌아다니셔야 합니다.”

“오오오, 이게 말로만 듣던 제갈가의 진법인가요? 무슨 진법이랍니까?”


자신이 이런 곳에서 일을 하노라며 하찮고 소박한 위세를 부리려던 문지기는 태도가 급변하여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어쩌고 하던데, 그건 비밀이라서···.”


말을 얼버무리고는 입을 다물었던 문지기가 세 번째 대문 앞에 다다라 문짝을 두들겼다.


“어흠흠, 제가 안내해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안쪽에서 나오는 분께 추천장 보여드리시면 됩니다요.”


그 말을 남긴 문지기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세 번째 대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젊은 사내가 나왔다.


“뉘십니까?”

“아, 저는···.”


하인들의 복장이 대부분 그러하듯 무명으로 지은 평복을 입고, 신발도 그저 그런 재질이었다.


별다른 사치를 부린 건 아니었으나 몸이 유난히 깨끗했다. 문을 지키는 하인이 발코와 뒷꿈치에 흙이 없고, 소매도 때가 타거나 헤진 부분 없이 멀끔했다.


안쪽의 손님들이 상당히 까다롭다는 뜻이었다.


진호연은 고개를 내림과 동시에 눈을 움직여 사내를 잽싸게 훑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교차하며 인사를 올렸다.


“그저 떠돌이 비파쟁이인데, 어찌저찌 하다 보니 장 대인의 추천을 받고 총관을 뵈러 왔습니다.”

“어어? 설마 장 대인이 그 장 대인?”

“예.”


진호연은 당황한 사내에게 추천장이 든 가죽 봉투를 건넸다.


“정말 추천을 받았단 말입니까?”

“옙, 그렇습니다. 읽어보시지요.”


앞의 문지기와 달리, 사내는 봉투를 열어 고이 접힌 비단을 꺼냈다. 그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내용을 단숨에 읽고 마지막에 찍힌 도장까지 확인했다.


서신을 활짝 펼친 채로 무언가를 궁리하던 사내가 눈알만 굴려서 진호연을 올려다봤다.


“읽어보셨습니까?”

“예.”


사내는 비단을 원래대로 접어 가죽 봉투에 넣으며 말했다.


“글월도 깊이 깨치셨군요. 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그의 안내를 따라 세 번째 대문간을 넘는 순간, 이전까지 들리던 소리와 음식의 냄새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진호연이 총관의 방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정원의 한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튀어나오더니 그중 한 사람이 매우 반갑게 진호연을 불렀다.


“엇, 흰둥이 니가 여기 웬일이냐?”


화음현 거지들의 우두머리인 흑단개(黑蛋丐)가 시커먼 달걀처럼 반들반들한 얼굴에 웃음을 띠고 다가왔다.


“엇? 달걀 아저씨?”


진호연도 반색하며 흑단개에게 다가갔다.


흑단개는 안내하는 하인과 그의 손에 들린 가죽 봉투를 보고는 개방의 정보통답게 금세 상황을 눈치챘다.


“이야, 썌끼 이거 출세했네. 니 실력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만.”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여기 어쩐 일이세요?”


진호연은 흑단개의 차림새를 가리켰다.


평소와 달리 멀끔한 옷을 입고, 봉두난발했던 머리도 깔끔하게 정리하여 상투를 틀었는지라 어디를 봐도 거지라고는 생각 들지 않았다.


흑단개가 머쓱하게 웃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이다.”

“아아, 그러셨군요. 정말 훤칠하셔서 몰라뵐 뻔했네요. 무슨 저기 관아의 나으리인 줄 알았지 뭡니까.”

“야잇, 이놈의 새끼가 그지새끼한테 입발린 말은? 뭘 얻어먹을 게 있다고 말이야.”

“하하하하, 바가지에 남은 밥풀이라도 얻어먹는 거죠.”

“역시 길바닥 출신이라 독하구만. 그지 바가지를 노리다니.”


두 사람이 하하호호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안부를 묻고 있자, 흑단개의 뒤에 있던 이들이 슬그머니 앞으로 나섰다.


“흑단아, 이 총각은 누구냐?”

“젊은 시주께서 기골이 보통이 아니구만.”

“보기 드문 무재로군요.”


그의 일행은 강호무림에서 명성을 떨치는 이들이었다.


늙은 거지 황류개와 무당파의 장로 백종자, 소림사의 고승인 만허선사를 비롯하여 진충맹의 요직에 앉은 이들 다수가 있었다.


그들 모두 진호연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흑단개에게 어서 눈앞의 청년을 소개해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흑단개가 진호연의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두들겼다.


“어르신들께 인사 올려라. 무림의 명숙들이시자 조정의 높으신 분들이시다.”


진호연이 손을 포개어 허리를 숙였다.


“보잘것없는 길바닥의 악공인지라 성씨가 없습니다. 그저 흰둥이라는 천한 이름만이 남았을 뿐이니 내키시는 대로 불러주시길 청합니다.”


흑단개가 다시 허리를 두들기자, 진호연이 허리를 세우고 손을 거뒀다.


“허헛, 이 녀석은 떠돌이 악공인데 어쩌다 보니 연이 닿아서 알게 됐습니다.”

“호오? 그저 악공이라는 말이오이까? 옥면부터가 범상치 않은 인물인데.”

“저 기골에 그냥 악공이라고?”

“그저 악공이 맞습니다. 광대들의 비법으로 근골을 단련하기는 했다는데, 가엾게도 맥이 엉망진창이라 단전을 만들 수 없는 몸이더군요.”


만허선사와 백종자 등의 노인들이 탄식을 터뜨렸다.


“허허어, 저런! 선골을 타고난 사내건만, 안타깝도다!”

“세상에 이런 아까운 일이! 저 기골이 무용해졌구나!”


그런 중,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선배들께서 한 번 맥을 살펴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던 만허선사는 옆에 선 흑단개와 황오개의 얼굴을 보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니올시다. 이미 흑단 시주께서 맥을 살폈지 않습니까. 빈승이 다시 살핀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겠지요.”

“빈도도 같은 생각입니다.”


만허선사와 백종자가 거절하자, 이번에는 화려한 장포를 걸친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흰둥이라 했느냐, 손 이리 내거라.”


갑작스런 무례를 범하는 청년은 이제 이립(而立)이나 됐을, 보통의 무인들 이상으로 굉장히 건장하고 훤칠한 사내였다.


그가 걸친 장포는 고급스러운 쪽빛 비단으로 지었고, 소매에는 수리처럼 보이는 새의 문양을 수놓았기에 강호무림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출신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나 그의 등에는 전장의 병기인 쌍수검이 매여 있었다.


양손으로 휘둘러야 하는 오척의 쌍수검, 그 칼자루에는 쪽빛의 푸른 술과 남궁(南宮)이라 새겨진 작은 패가 달려있었기에 모르기가 더욱 어려웠다.


남궁가의 청년이 다가오며 손을 내미니, 진호연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기주(岐周)의 난신십인, 무왕과 함께 천명을 받들어 포악하고 음탕한 필부 제신을 징치하고 구주를 평정한 주공(周公)과 태공(太公)의 반열에는 여덟 사람이 더 있으니 그중의 한 사람이 남궁괄이라.”

“응?”


진호연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남궁가의 청년이 흠칫 놀라며 뻗던 손을 멈췄다.


“난신십인(亂臣十人)의 남궁괄으로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가문이 바로 지금의 남궁가 아니던가, 옛 주를 세웠던 명가가 태조를 도와 인의를 해친 폭군을 물리치고 새로이 주(周)를 세웠으니 남궁에는 천명이 함께하는구나!”

“어?”


천한 악공이라 무시하며 함부로 이름을 부르고 몸에 손을 댄다는 굉장히 무례한 행동을 했음에도, 진호연이 먼저 나서서 남궁가를 추켜세웠기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생, 오늘 천년명문의 영식(令息)을 뵙고 수려한 옥안과 헌헌한 풍채에 새로이 개안하였습니다.”

“엇, 그게···.”


남궁가의 청년은 앞으로 내민 손을 거두지도, 더 내밀어서 진호연의 손목을 움켜쥐지도 못한 채로 진땀을 흘렸다.


“그런데 명문의 소야께서 비루한 소생에게 무슨 할 말이 있으시기에 출수하셨는지요?”

“아, 음······.”


형은 대부에게 미치지 않으며, 예는 서인에게 이르지 않는 법이라(刑不上大夫 禮不下庶人).


기주 이래 통용된 원칙으로, 일가를 거느리는 대부의 신분부터는 서인들을 다스리는 형을 벗어나지만 지엄하고 복잡한 예법과 의무를 따라 살아가야 했다.


가문의 위세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구성원이 지켜야 할 예법은 더욱 까다로워졌다.


한데 귀족이 예법을 모른다는 것은 행실이 일개 백성과 다를 바 없다는 뜻으로, 예법을 행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가문에 먹칠을 하고 자신의 근간을 허물어뜨리는 막돼먹은 자나 마찬가지이니 지금 남궁가의 청년이 하는 행실이 딱 그러했다.


그런 중에 무리 속의 누군가가 청년의 행태를 보고 혀를 차고야 말았다.


“쯔쯧, 경망스럽기는.”

“에휴···.”


급기야 청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는 주변의 눈치를 보는 데에 급급해졌다.


“자신을 낮춘 악공도 예를 갖출 줄 알고 있거늘···.”

“크흠! 흠!”


이미 흑단개가 진호연을 찰맥관혈(察脈觀穴)하여 내공을 파악했다고 했기에 소림의 고승인 만허선사마저도 개방의 체면을 생각하여 나서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할 진대, 아무리 위세 높은 남궁가의 영식이라 하더라도 나설 자리를 가려가며 설쳐야 하는 법이었다.


“남궁 소야, 이 황오는 개방을 대표하는 입장으로 조금 곤란합니다. 게다가 한참이나 배분이 높은 선배들께서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셨는데 소야께서 이리 나서시면 선배들의 체면이 어찌 된단 말입니까?”


황오개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지적을 하니, 만허선사와 백종자도 머쓱하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개방의 단두들께서 확인한 마당에 다시 맥을 짚는 것도 큰 무례가 아닐까 싶소.”

“남궁 시주, 본인이 허락한 게 아님에도 억지로 찰맥관혈을 하는 것은 무림의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올시다.”


무리의 그 누구도 청년의 편을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 무리 외에도 내원을 지나가던 손님들이 이를 구경하는지라 자칫하다간 일이 더 커져 남궁가주의 귀에 들어갈 우려가 있었다.


얼굴이 터지기 직전까지 붉어진 청년이 뒤로 물러나며 진호연을 향해 손을 모았다.


“흰둥 공자, 내 이름은 방이라 하오.”


심호흡을 한 남궁방(南宮芳)이 고개를 숙였다. 진호연의 눈을 뚫어지게 보며 결의에 찬 시선을 한껏 선보였다.


“이놈이 수치도 모르고 무례를 저질렀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올시다. 나 남궁방은 사죄의 의미로 흰둥 공자의 곤경을 마주한다면 오늘의 일을 떠올리고 반드시 협의를 행하겠노라 맹세하겠소.”


남궁방이 생각하는 진호연의 곤경이란 기루에서 만취한 손님에게 두들겨 맞거나, 길바닥에서 상연하는 중에 누가 달려와서 바가지를 밟아 부순다던가 하는 수준이었다.


아니면, 어쩌면.


정말 최악의 상황과 우연이 겹쳐 악운으로 엮였다 하더라도 길을 가다가 산적에게 붙잡힌 걸 구해주는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남궁 소야, 천한 악공에게는 과분한 일입니다. 정말 괜찮···.”

“아니아니, 내가 편치 않아 그렇소. 흰둥 공자는 내 마음을 알아주시구려.”

“예, 그럼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개방과 소림, 무당의 이들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이 말학이 무림의 선배들께 무례를 범했으니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가장 연장자이자 선배인 만허선사와 백종자가 눈빛을 교환했다.


이 모임은 딱히 싸우기 위해 모인 사이가 아니었다. 진충맹에서 뇌진도 방환의 행적에 관하여 논의하다가 목을 축이러 온 상황에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당사자끼리 화해하여 남궁방이 진호연의 어려움을 돕겠노라 맹세한 마당에 벌을 내리는 것도 남들 보기에 좋지 않은 일이었다.


남궁가의 체면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는 우리가 정할 일이 아니니···.”

“흑단 시주께서 정하시는 게 어떻겠소?”


또 다른 당사자인 흑단개 또한 남궁가의 영식을 공개적으로 벌하니 마니 논하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는지라 매우 곤란해졌다.


자신보다 윗줄인 황오개의 눈치를 살피고, 체면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넘기라는 신호를 받고서야 입을 열었다.


“그럼 남궁 소야께서 저 흰둥이 녀석에게 전두나 넉넉하게 베풀어 주시지요.”


* 纏頭 – 기생과 악공 등이 재주를 부린 대가로 받는 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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