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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330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3:04
조회
1,440
추천
48
글자
20쪽

37화. 생사현관(生死玄關)을 뚫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동굴은 그 이후로도 이백 장(丈) 정도가 안으로 더 이어져 있었고, 그 통로는 돌들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 때문에 마치 달빛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였다.


어디에서 공기가 들어오는지 영험(靈驗)한 기운의 탓인지 숨을 쉴수록 가슴이 편안하고 정신이 맑아졌다.


통로의 끝에는 방원 사백 장 정도로 완전히 둥그런 구(球)의 형태를 가진 공간인데, 그 중앙에는 사십 장 크기의 둥그스름한 바위가 마치 행성처럼 공중에 두둥실 떠 있었다.


전체적으로 검은빛을 띠면서도 금속의 광택을 가졌으며 달빛과 같은 빛이 내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마치 조그만 우주(宇宙)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신기하구나!”


쥬맥은 그곳의 희한한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눈을 떼지 못했다.


암석의 색이나 구조로 봐서는 강한 자석의 성질을 가진 자철석으로 이루어진 것이리라. 그러니 떠 있는 것이고. 아마 둘레의 암벽과 가운데 둥실 떠 있는 항성(恒星) 같은 구체는 서로 극이 같다 보니 자석처럼 밀어 내는 힘이 강하여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동굴은 이 구체(球體) 공간에서 끝이 났다.


달빛처럼 빛나는 공기는 처음이어서 쥬맥은 마치 새로운 우주를 보는 듯하여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와! 정말 장대한 우주를 보는 것 같구나! 정말 장관이네.”


그 광경이 너무 신비스러워서 계속 앞으로 걸어가다 보니 그 둥근 구체 형상의 공동(空洞) 속으로 쑥 미끄러져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으악! 이게 뭐 야? 깜짝 놀랐네.”


암석 표면이 매끄러워 다치지는 않았으나, 다시 들어온 굴로 올라가려고 하니까 마치 표면에 기름을 바른 듯이 미끄러워서 중심을 잡기가 무척 힘들었다.


쉬지 않고 무예(武藝)를 수련해 온 몸으로도 올라가다가 다시 미끄러지니 끝까지 올라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서 수없이 도전하다가 결국은 지치고 말았다. 전신 여기저기에 군데군데 피멍도 들었고.


게다가 벽호공(壁虎功)마저 먹히지 않다니!


“에잇, 힘들어! 이럴 땐 우선 좀 쉬면서 생각해 보자.”


포기는 아니지만 일단 휴식이 필요하니 구형 공간의 가장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하단전에 진기가 불어난 듯하고 그 힘이 전신으로 힘차게 파도가 치듯이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사실 달빛처럼 빛나는 것들은 모두 천지의 영기가 농염(濃艶)하게 뭉쳐서 이루어진 영무(靈霧)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해 보는 쥬맥이 알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전신에 활력(活力)이 차오른 쥬맥은 참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를 어떻게 빠져나가지? 그래야 살 것이 아닌가?’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느라 여념(餘念)이 없었다. 한참을 궁리한 끝에 양쪽을 달리며 반동(反動)을 이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한쪽을 힘껏 달려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위치에 다다르면 신법(身法)으로 번개처럼 아래쪽으로 몸을 틀어서 중력 가속도를 이용하여 반대쪽 면을 더 높이 차고 오르고······.


다시 반대로 조금 더, 조금 더······.


그러다 보니 몇 번의 연습 끝에 겨우 탈출에 성공(成功)할 수 있었다.


“이 안에서 무예를 수련해도 좋겠는데? 그런데 검이 들러붙지 않을까?”


무술 수련을 위해서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아서, 내일부터는 검(劍)을 가지고 수련해 보기로 했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서 향후 다니기 쉽도록 왼쪽 굴속의 월광석(月光石)을 가져와 통로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나오는 길에 달빛과 같은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샘에 이르러서 흘러 넘치는 물로 몸을 깨끗이 씻으니, 서늘한 기운을 품은 물이 그렇게 상쾌(爽快)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물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물에도 많은 영기(靈氣)가 녹아 든 듯했고, 그 영기가 물과 함께 몸에 스며드니 너무 기분이 상쾌했다.


마침 시장기가 들어서 뱀장어같이 꾸물거리며 기어다니는 것을 먹고 싶었으나, 전에 좌측에 있는 동굴에서 빨간 버섯 같던 자오음양지(子午陰陽芝)를 멋모르고 먹었다가 혼이 난 기억(記憶)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일단은 먹지 않고 독성이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 한 마리를 잡아 밖으로 가져가기로 했는데······.


몸통이 너무 미끄러워서 한 손으로 목 바로 아래를 힘주어 움켜쥐었다.


그런데 힘이 얼마나 좋은지 꿈틀거리며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몇 번을 놓친 뒤에야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앞부분 거주하는 공간으로 나오니 벌써 해가 중천(中天)을 넘어가고 있었다.


잡아가지고 나온 뱀장어 같은 것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동굴 앞 너럭바위 위에 놓으니, 그늘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햇볕을 받고 금방 죽어 버렸다.


햇볕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햇볕에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물밖으로 나와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고.


그때 동굴 옆 큰 노송(老松)에 앉아서 놀고 있던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그것을 번개처럼 가로챘다.


그 독수리는 십 년 전에 어미가 노송에서 기른 새끼들 중에 한 마리였다. 쥬맥과 친구처럼 친해져서 다 자란 뒤에도 떠나지 않고 쥬맥을 친구 삼아 살고 있는 것. 그리고 나머지 녀석들도 가끔씩 날아와 쥬맥과 놀았다.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새끼 때부터 어미처럼 물고기를 많이 잡아다 먹이면서 서로 정이 든 까닭이다.


그러니 이제는 집을 비워도 낯선 침입자(侵入者)가 들어가지 못하게 독수리가 파수꾼 역할까지 해 주고 있었다.


가파른 절벽에서 커다란 독수리의 공격을 받으면 아무리 큰 짐승이나 사람도 굴러떨어지기 쉬웠다.


그런데 이 녀석이 평소처럼 먹을 것을 주려고 가져온 줄 알고 잽싸게 채 간 것이다. 그러자 쥬맥이 당황하여 독수리 이름을 부르며 말렸다.


“야, 별이야! 그거 아직 먹으면 안 돼! 독이 있을지도 몰라.”


“캬욱! 꾸르르르(와! 무엇인지 몰라도 엄청 맛있네.)”


먹을 것은 후각(嗅覺)이 발달한 짐승이 사람보다 더 잘 아는 법이다.


별이는 이것이 매우 몸에 좋은 먹음직스러운 먹이라는 것을 본능적(本能的)으로 알아차리고, 쥬맥이 말려도 게걸스럽게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꾸루룩. 꾸룩! 꾸꾹(정말 맛있네. 얘! 더 없어?).”


“너 그거 먹고 탈나도 나 모른다. 대신 안 죽으면 또 잡아다 주마.”


안으로 들어가 따다 놓은 과일과 열매, 삶아서 말려 놓은 산나물 한 줌을 물에 헹구어 암염에 찍어 먹었다.


대충 점심을 해결하고 가죽 보자기를 챙겨서 좌측 굴에 있는 월광석을 주워다가 오른쪽 굴에 듬성듬성 놓았다.


달빛처럼 빛나는 통로는 필요가 없었기에 가죽 주머니 한 자루 분량으로 암굴(暗窟)속을 모두 밝힐 수 있었다.


이제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드나들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혹시 침입자가 있으면 그만큼 무술 연마(武術練磨)에 필요한 내부를 발각당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혹시라도 이종족(異種族)에게 들키면 큰일인데?’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번에 책에서 배운 기관지학(機關之學)을 응용하여 기관을 설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거주(居住)하는 동굴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하나, 그 뒤에 두 갈래로 나뉘는 좌우의 입구에 각각 하나, 이렇게 총 세 개는 설치(設置)해야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속이니 당연히 안에 굴러 다니는 바윗덩이들을 이용해야 할 텐데······. 돌은 또 무엇으로 다듬지?”


이 동굴 속의 모든 것에 인공적(人工的)인 흔적을 남겨서는 안된다. 그러면 기관이 금방 들통이 날 것이다.


최대한 자연(自然)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혹시 나중에 자신이 동굴을 떠나더라도, 다른 종족이나 짐승들이 안쪽에 다른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 아니겠는가?


바위를 옮기는 거야 이미 내공(內功)이 삼 갑자가 넘으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힘에는 자신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바위를 다듬는 것은 검에 검기를 두르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검에 진기(眞氣)를 주입하여 검기(劍氣)를 강하게 두르고 바위를 다듬어 보니, 검날이 상하지 않고 비교적 쉽게 다듬을 수가 있었다.


쥬맥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검기상인(劍氣傷人)을 지나 검사(劍絲)의 수준까지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아직 깨달음이 부족하여 임독양맥을 완전히 타통시키지 못해서 검강(劍罡)을 발현하지 못할 뿐, 내공은 이미 자오음양지를 수없이 먹고 열천과 한천에서 영기를 연화시켜 삼 갑자가 넘었다.


다음 날부터 쥬맥은 틈이 날 때마다 기관(機關)을 설계하고 가다듬었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될 거야. 이건 이렇게 해서 눈속임을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첫 관문 안에 서재 겸 수련할 큰 비밀 석실(秘密石室)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안에 무공 서적과 두루마리를 포함하여 중요한 것은 모두 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필요할 때는 공부나 무공 수련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구조를 잡아서 하나씩 만들어 갔다.


석실을 만들며 파낸 돌들은 기관을 만드는데 사용하였고, 남는 돌은 통로를 따라서 걸리적거리지 않게 쌓았다.


이렇게 비밀 석실을 만드는 데 두 달. 시간이 자신도 모르게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또 세 개의 기관장치(機關裝置)를 만드는 데에 세 달. 유수처럼 시간이 흐르니 봄에 시작한 일이 가을이 되어서야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틈나는 대로 큰 구형(球形)의 공간에 들어가서 수시로 수련을 하면서, 나올 때는 뱀장어 같은 물고기를 잡아서 먹고 한 마리씩 가져다가 독수리인 별이에게 먹였다.


“별이가 맛있게 먹었으니 내가 먹어도 아마 괜찮을 거야.”


처음에는 이것을 별이가 채 가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멀쩡한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쥬맥도 독성이 없는 것 같아서 같이 먹었다.


그런데 그 물고기를 먹기 시작한 뒤로 별이의 몸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더니, 양쪽 날개가 사 장에 몸체 길이는 일 장이 넘게 자라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이 물고기를 먹은 영향인 듯했다. 몸만 커진 것이 아니고 검었던 깃털이 점점 눈부신 하얀색으로 변해 갔으며, 영리해졌고 머리 위에는 꽁지깃처럼 빨간 깃털이 돋아났다.


얼마나 힘이 세고 빨리 나는지 이제는 함께 자랐던 형제들은 너무 차이가 나서 감히 옆에 오지도 못했다.


그런데 쥬맥과는 더 친해져서 한껏 친밀감(親密感)을 과시하는 게, 아마 제 딴에는 자기가 이렇게 멋지고 강해진 것이 쥬맥이 준 물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 녀석, 왜 이리 덩치가 커졌을까?”


“꾸룩 꾹꾸구(물고기 더 없어?)”


말이 안 통하니 아직도 맨날 동문서답이다. 특히 물고기에 집착을 보이는 별이다.


그래도 쥬맥이 보일 때마다 다가와서 반갑게 머리를 비비곤 하였다. 이제는 그 등에 타고 날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덩치가 커졌지만, 쥬맥도 이제 철이 들어서 친구를 타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는 큰일들이 모두 마무리되었고, 와 본 적이 있는 태을 선인을 제외하면 누구도 이 동굴 안에 또 다른 두 개의 굴이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석실은 오직 쥬맥만이 알고 있었고, 기관장치로 문을 닫아 놓으면 동굴의 벽처럼 감쪽같이 감춰지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뱀장어 같은 물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별이만큼은 아니지만 쥬맥도 내공이 증진되었다. 운기조식(運氣調息)을 할 때마다 체내에 뱀처럼 진기가 휘돌아서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뚫으려고 부딪치곤 하였다.


오늘 아침에도 좌정을 하고 운기조식을 하는데 뜨겁고 차가운 두 기운이 독맥의 장강혈(長强穴)을 지나 명문(命門)에 이르더니, 대추혈(大椎穴)을 뚫지 못하고 고통만 안겨 주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또 그런 일을 당할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수련을 그만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빨리 임독양맥을 뚫어야 해. 그래야 뭐가 되도 될 거야. 벽을 넘어야지.”


힘들어도 혼원은하무량심공(混元銀河無量心功)을 꾸준히 수련했다. 무슨 방법이 있겠지 하면서······.



오늘도 쥬맥은 하루 종일 무공 수련에 빠져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늦게야 저녁을 먹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


버려질 때 준 검이 성인용이 아니다 보니, 어릴 때는 무겁게 느껴졌으나 이제는 너무 가볍고 키에 비해서 길이가 너무 짧았다.


그래서 내일은 나무를 깎아서라도 몸에 맞는 큰 검을 만들 생각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동굴 앞 너럭바위 위에 자신도 모르게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아서, 마음을 비우고 장대한 대협곡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이 밝은데 그럼에도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대지의 입처럼 기다랗게 찢어진 대협곡의 틈새에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벽에 멋지게 자란 노송과 괴목들······.


그리고 여기저기 향기를 풍기며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과 새끼가 기다리는 집을 향해 서둘러 날아가는 새들.


그렇게 천지가 조화를 이룬 속에서 별똥이 긴 꼬리를 끌며 지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며 쥬맥은 점점 무의식(無意識)의 세계로 빠져들었는데······.


몸은 습관처럼 운기조식을 하며 축기(蓄氣)를 이어 가건만, 의식은 점점 더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서 모든 사념(思念)을 지워 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대자연은 어찌 이루어졌을까? 천지의 법칙이란 무엇일까? 모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이런 화두(話頭)들이 떠올라 그 생각에 깊이 빠져들었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어느 순간 쥬맥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둥실 떠올랐다. 그런지도 모르고 그는 부공삼매경(浮空三昧境)에 빠져서 선정(禪定)에 들었다.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의 의식이 몸을 벗어나 희미한 반딧불처럼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눈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세상 천지에 희미하게 푸르스름한 기(氣)가 깔려 있고 모든 것과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한 줄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기가 엷은 곳과 좀더 농염한 곳도 있었다. 새나 짐승, 모든 만물(萬物)과 심지어 내려다보이는 자신의 머릿속에도 뽀얀 달빛처럼 빛을 뿜고 있는 한 조각 영혼이 깃든 게 보였다.


‘하! 참으로 신비롭구나!’


무의식 중에 감탄을 하며 의식(意識)은 점점 위로 떠올랐고, 점점 산과 들이 한눈에 들어오더니 점점 작아져 갔다. 드디어 파란 바다에 둘러싸인 대륙이 보이고 점점 수박만큼 작아졌다.


이어서 뜨거운 태양이 보이고 쥬맥이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하여 태양을 돌고 있는 여덟 개의 행성(行星)이 보이는데, 유독 푸른빛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역시 세 번째인 지구뿐이었다.


점점 시야가 널어져서 이제는 수억 개의 별들이 빛나는 미리내가 한눈에 보인다. 그것은 푸르스름한 기(氣) 속에 마치 장대한 한 편의 서사시(敍事詩)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 시작과 끝이 어디일까?’


우주의 한 부분이 이렇게 광대(廣大)한데 전체는 도대체 얼마나 드넓은 세상이란 말인가? 그에 비하면 지구(地球)는 하나의 티끌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쥬맥의 눈에서는 감동(感動)의 눈물이 방울져 흘렀다.


그때···, 쥬맥의 몸을 휘돌며 아직까지 임독(任督) 양맥을 뚫지 못하던 기운이, 등 뒤의 척추를 따라 독맥(督脈)을 세찬 물줄기처럼 치고 올랐다.


단숨에 대추혈(大椎穴)을 뚫고 백회혈(百會穴)에 이르더니 윗입술 속의 은교혈(龂交穴)까지 이십팔 개 혈(穴)을 순식간에 뚫어 버렸다.


머릿속에 천둥이 치는 듯하고 지독한 고통이 뒤따르건만 몸만 들썩거릴 뿐 쥬맥의 의식은 이미 머나먼 곳에 있었다.


은교혈까지 독맥 이십팔 개 혈을 뚫어 낸 세찬 기운은 아랫입술 밑에 있는 승장혈(承漿穴)을 지나서 몸 앞에 있는 정중앙의 옥당혈(玉堂穴)에 이르렀다.


이어서 중정(中庭)을 거쳐 곡골혈(曲骨穴)과 회음혈(會陰穴)에 이르기까지 임맥(任脈) 이십사 개 혈을 순식간에 뚫고는 단전(丹田)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독맥의 스물여덟 개 혈과 임맥의 스물네 개 혈이 단숨에 꿰뚫리니 그동안 미세하게 흐르던 기가 마치 터진 봇물처럼 양맥(兩脈)을 타고 흐르면서 완전한 대주천(大周天)을 이루었다.


또한 흐린 안개와도 같고 불타오르는 불꽃을 에워싼 엷은 연기와도 같던 생사현관(生死玄關)의 얇은 막이 뚫리니 마침내 드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쥬맥의 몸 주위로 푸르스름한 기가 모여들어 회오리바람처럼 휘돌더니 점점 몸속으로 스며들면서 깊은 선정에서 깨어났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몸은 어느새 바닥에 닿았고, 가만히 올려 뜬 눈에서는 번갯불과 같은 안광(眼光)이 번쩍였다. 그러다가 점점 정광이 어려 있는 눈빛으로 바뀌었고······.


쥬맥은 새로운 세상을 본 감격에 겨워 그대로 가만히 앉아서, 의식으로 보던 것들을 하나씩 마음속에 새기고 정리를 하였다.


유난히 별이 많이 지는 가을 달밤에 그동안 가로막혀 있던 벽이 하나 이렇게 허물어져 내렸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을 뚫었으면 아무리 명문세가(名門世家)라 할지라도 경사가 났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쥬맥이 기거하는 대협곡은 고요하기만 하다.


* * * * *


한편, 여기는 천인족의 주거지.


대충 보아도 처음보다 인구가 많이 늘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과 종족이 멸족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감(强迫感)에 힘입어, 십 년 사이에 인구가 칠만까지 불어났다.


“자네는 늦둥이가 없으니 앞으로 우리 모임에는 끼지도 말게. 하하하하!”


늦둥이는 이제 흉이 아니라 자랑이 되었고, 한 가족이 열댓 명을 넘어서는 것은 보통이었다.


또한 전에는 삼십 세 전후에 결혼을 하였으나 요즘은 이십 대 초반이나 중반에 하는 것이 일시적인 유행이 되었다.


거주는 안전 때문에 모두 목책 안에서 살고 있지만, 농경지는 벌써 밖에 있는 들판까지 개간(開墾)하고 있었다.


골목 어귀마다 아이들이 넘쳐났고, 여러 가지 놀이에 시끌벅적한 것이 마치 나날이 명절 같아서 생동감(生動感)이 묻어났다.


그러나 늘어난 자식들의 입에 먹을 것을 챙겨야 하는 부모들은 어깨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아침부터 늦게까지 논밭을 일구고, 심고 가꾸고 거두느라 바쁘고, 가축을 돌보랴 밤에는 밤대로 밤일(?)에 허리가 휘었다.


어린아이들은 그런 것을 모른 채 친구와 뛰어노는 것이 마냥 즐거울 뿐이다. 아직은 철없는 철부지들이니....


쥬맥의 친구인 야수르와 하유리도 어느덧 열여덟의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앳된 티를 풍기지만 벌써 덩치는 어른에 가까웠다.


둘 다 열두 살에 아룡관(兒龍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수르는 약간 가늘고 작은 눈을 가졌지만 겁이 별로 없었고, 체격은 늘씬하면서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다.


그래도 다부지게 이를 악물고 오뚝한 코에 짙은 눈썹, 상투처럼 틀어 올린 머리에 검은색의 경장(輕裝) 차림이 잘 어울려 보였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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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화. 쥬맥이 맥쮸~ 되다 21.06.29 1,349 47 19쪽
50 50화. 구원(舊怨)과 비무 21.06.29 1,337 47 19쪽
49 49화. 재회 그리고 새로운 출발 21.06.29 1,351 48 19쪽
48 48화. 친구를 찾아서 천인족으로 21.06.29 1,349 48 18쪽
47 47화. 회상(回想) 21.06.29 1,352 4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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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생사현관(生死玄關)을 뚫다 +1 21.06.29 1,441 48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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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태을 선인과의 조우 21.06.29 1,419 48 18쪽
31 31화. 선인(仙人)의 연신기 21.06.29 1,436 50 19쪽
30 30화.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 21.06.29 1,427 46 38쪽
29 29화. 복수는 또 다른 피를 부른다 21.06.29 1,410 49 18쪽
28 28화. 적소인의 복수전(復讐戰) +1 21.06.29 1,450 50 18쪽
27 27화. 새 친구 미라챠 +1 21.06.29 1,446 49 18쪽
26 26화. 야차족과의 조우 +1 21.06.29 1,433 49 18쪽
25 25화. 소인족 포로들 +1 21.06.29 1,450 49 18쪽
24 24화. 정보전(情報戰) +1 21.06.29 1,494 4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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