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해독제의 약효가 돌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어느정도 인지는 비록 알 수 없지만, 투약 후 1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그러니까 거진 2시간이 다 되도록 눈에 띄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는 건, 그게 올바른 해독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증거였다. 그리고 그건 아무리 의학적 지식이 없는 한서준이나 최성민이라 하더라도 직감적으로 금세 알아챌만한 것이었다.
헌데 그 직감이 '의료준비실' 이라 이름 붙여진 방에 있는 모든 해독제에 해당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결과적으로 따져보면 데자뷰의 계획이 초장부터 완전히 틀어져버린 꼴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이랄 수 있는 건 아직 최성민의 오른손이 멀쩡히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1시간 하고도 42분.
본래 한 번에 하나씩 실험을 해본다는게, 시간 상의 문제를 들먹이는 최성민 덕에 해독제 모두를 한꺼번에 주입시키고 난 뒤에 흘러간 실질적인 시간이었다. 그 시간동안, 해독제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고,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으며, 아무런 이점을 가져오지도 못했다.
하나 이상의 해독제를 복용함으로써 발생한 서로 간의 충돌로 인한 파장이 각각의 성질을 변질시켜 그 약효를 아예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버린게 아니라면야, 원래부터 '의료준비실' 엔 산성독 몬스터의 공격을 치료할 수 있는 해독제가 없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소리였다. 만약 유지현이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해도, 옳은 해독제를 골라준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지 모른단 뜻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해독제는 쓸모가 없었나 보네요."
어느덧 빛의 장막을 펼쳐내던 태양이 하늘의 정 가운데, 푸르다 못해 하얗게만 보이는 순백의 중천에 올라, 그 아래 모든 사물들의 본연한 색을 오롯이 비추어대는 광경을 가만히 창문에 기대 말 없이 지켜보던 최성민이 문득 중얼거리듯 말을 던져내었다.
그러자, 본질을 가늠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형태를 띈 그림자들이 짤막하게 고개만 들이밀고 있는 회색의 칙칙한 폐허의 이곳저곳을 마찬가지로 눈으로 훑어보던 한서준이, 그제서야 최성민의 오른손, 팔짱을 끼었지만 그로 인해 유난히 더 도드라져 보이는 그의 시커먼 손등을 흘깃 바라보았다.
이제 독은 손등을 넘어 주변의 모든 장소를 침투하는 중이었다. 손등의 경계선을 슬금슬금, 알게모르게 넓혀가며, 계속해서 투실한 엉덩이를 들이미는 탐욕스런 독의 움직임에 손가락은 어느새 한 마디씩 먹혀들어간지 오래였고, 거진 국경선이라 봐도 좋을 쭉 뻗은 고속도로 같은 팔뚝의 꽁무니는 이미 우후죽순으로 치고들어온 시커먼 괴물의 아가리에 콱 물려 잡혀있는 상태였다. 언제 잘근잘근 씹혀 꿀꺽 삼켜져버릴지는 이젠 시간 문제란 것이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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