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하지만 정작 보이는 거라곤, 키보다 높게 튀어나온 콘크리트 파편과, 그곳에 쳐박혀 천장이 통조림 뚜껑인 양 뜯겨져나간 녹슨 자동차, 그리고 해안선에 밀려온 쓰레기들처럼 무너진 벽과 콘크리트 사이의 공간을 기준 삼아 쌓인 산을 이룬 잡동사니들이 전부였는데, 그 어디에도 바깥을 살펴볼 수 있는 틈은 눈곱만큼도 뚫려있지 않았고, 우회를 기대해볼만한 샛길 또한 온갖 쓰레기들로 꽉꽉 막혀 도저히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벌떡 일어나 반대편을 엿볼 수 있는 개구멍을 찾아본다한들 키보다 높게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에 막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게 분명하단 소리였음이다. 그렇다고 이런 잡동사니들을 치울 수 있는 어떠한 형편성도 현재의 이곳엔 마련돼 있지 않은 터라, 한서준은 결국 '무언가' 를 추적한다란 생각을 깨끗이 머릿 속에서 지워버릴 수 밖에 없었다. 환경이 만들어준 천연의 방어막에 일부러 치명적인 상처를 그어낼 만큼, 그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던 탓이었다. 거기다 최성민의 말대로, 제대로 파악조차 되질 않은 몬스터는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편이 훨씬 간단하고 효율성 짙은 회피 방법이었기에, 괜한 시비를 건답시고 공연히 제 목숨까지 걸어야할 이유는 없었다. 확실한 대비책을 콱 틀어쥐고 있지 않은 바에야, 그냥 못본 척 지나가는게 조금이라도 생명줄을 늘릴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혹 유지현과 연관되었을지도 모르는 몬스터에 대한 추적은, 이렇게 다소 어이없게 막을 내렸다.
한서준은 저도 모르게 옅게 품어낸 긴 한숨과 더불어, '무언가' 를 쫒아가던 갈 곳 잃은 총구를 재차 최성민보다 조금 앞, 어디까지나 엄호를 목적으로 한 조준점을 정확히 그의 뒷통수 정 가운데보다 살짝 위에 맞춰놓은 뒤, 다시한번 숨을 들이쉬며 가만히 가늠쇠 너머의 시각적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신속한 상황 판단력과, 그에 따른 최소한의, 혹은 최대한의 인내심, 그리고 그것을 잇따르는 과감한 결단력은, 1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퀴퀴한 망각의 먼지를 털고 각성한 기초적인 '저격수의 자세' 였고, 기초적인 '전투의 기본 요령' 이었으며, 또 갓 입대한 햇병아리들을 교육시킬 때 자주 쓰던 기초적인 '지휘관의 방침' 이었다.
오직 군인의 신분으로써만 살아왔던 십수년 전, 그 기간 동안 단 한번도 잊어본 적 없던 개인적인 '규율' 이 전혀 예상치 못한 지금에 이르러서야 실로 오랜 기간 동안의 잠에서 깨어나, 비로소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차가운 물을 찌들어질 대로 찌들어진 몸 구석구석에 거침없이 들이부어버린 것이었다.
- 작가의말
3차 수정 완료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