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 때 제가 본 건 그냥 검은색의 칼날이었으니까요. ···아쉽지만 자세한 형태 같은 건 알지 못합니다. 단 한번만 공격을 하고 사라진 몬스터라··· 아예 그림자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말마따나, 그 때의 한서준이 본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괴이한 비명소릴 내지르며 깨져나간 유리창과, 그곳을 통해 날아온 검은색 칼날이 흡사 물에 빠지 듯, 혹은 몽글몽글한 두부에 푹 꽂혀들 듯, 한 눈에 보기에도 부드럽다란 느낌이 절로 들 정도로 물렁하게만 보이는 벽에 박혀버린 광경 이외엔, 그는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
그나마 산성독을 지닌 작은 몬스터만이 유일하게 오늘 하루 그가 눈에 담은 몬스터의 전부였다.
허나 최성민에겐 이런 자그마한 정보조차도 꽤나 크나큰 의미로 다가왔던 모양인지, 그는 이제껏 전혀 보여준 적 없던 엄중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뇨. 그거면 충분해요. 검은색 칼날을 날릴 수 있는 놈이라면······ 어차피 이 구역에선 그 놈 밖에 없으니까요. ···아, 짝퉁 비스무리한 놈이 하나 있긴 한데, 비교하면 그냥 어린애 같은 수준이니까 무시해도 돼요. 아무튼, 형님을 습격했던 몬스터의 이름은 Silence 예요. 이름 그대로 암살자 같은 놈이죠. 자세한 전투 방식이나 특징 같은 건 아직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서 잘 알진 않지만, 그나마 특징 하나 있다면, 그 놈에게 걸린 사냥감들은 죄다 한 방에 썰려버렸다는 것 정도겠네요. 그 놈이 두 번 이상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놓고선 분류해 놓은 카테고리가 'Monster' 이긴 한데··· 솔직히 그건 좀 아니라고 보는 녀석들 중 하나예요.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것들이 정해놓은 등급표를 신뢰한랍시고 무턱대고 달려들다간, 모두 일격에 썰려버릴 테니까요. 그 놈··· Silence 가 지금까지 벌여놓은 일들만 따져봐도 'Juggernaut' 급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지만요. ···여하튼, 그 놈에게 당한 몬스터의 시체를 살펴본 적이 있어요. 한 마리씩 두 번. 근데, 그 두 번 모두 죽을 뻔 했다고 하면, 혹시 믿을 수 있어요? 오래 전에 그 놈한테 죽어, 이미 썩어버린 몬스터에게 공격당해 죽을 뻔한 사람은 아마 전세계에서 저나 지현이 밖에 없을 거예요. ···아, 그러고보니··· 한 가지 특징이 더 있었네요. ······그 놈에겐 아쉽게도, 죽은 것을 되살리는 능력은 없어요."
"그러니까, 그 말은······."
마지막에 이르러선 꼭 실성한 사람처럼, 온 몸에 잔경련이 두드러질 것만 같은 떨리는 웃음소릴 자아내며,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는 목소리로 어렵사리 말을 전부 뱉어낸 최성민에게, 한서준은 미처 말을 붙여내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최성민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이미 모두 직감적으로 알아챈 후였던 까닭이었다.
죽음을 반전시키는 능력이 없는 몬스터에게 죽어버린 몬스터가 다시 되살아나 공격을 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앞서 칼날이 박혀버린 벽이 그러하듯, 이미 Silence 의 칼날이 훑고 지나간 뒤의 뇌가, 그러니까 몸이, 저 스스로가 '생명선' 이 베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기에 발생한 괴현상이라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좀 더 정확히는 흡사 환각에라도 걸린 양, '살아있다' 는 감각을 전혀 의심치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최성민이 조사를 했다고 한 두 마리의 몬스터는, 아직 살아있다라 확신하는 뇌의 순수하기 그지 없는 믿음으로 인해 이미 죽어버린 몸을 자율적으로 움직였었을 것이고, 종국엔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로 활개를 치고 다녔을 터였다. 다시말해, 도저히 상식적으로, 나아가 생물학적으로, 그 실현 가능성을 따져볼 필요조차 없는 '불가능' 에 가까운 기적을, Silence 란 몬스터는 보란듯이 일구어냈단 소리였다.
- 작가의말
2차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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