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최성민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눈에 띄게 버벅이며 말을 더듬어대었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괜스레 코만 훌쩍이다 떠듬떠듬 그에게 어렵사리 말을 붙여내었다.
"···그, 그나저나, ···그 놈이 설마 죽으면서까지 산성을 뿌려댈 줄은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네요. 그것 때문에 예상에도 없던 상처가 생기고 옷까지 다 버리게 생겼으니··· 안그래도 모아둔 것도 별로 없는데, 괜한 고생만 더 하게 생겼네요. 특히 옷은 좀 먼 곳까지 나가야 구할 수 있으니까 고생 한번 제대로 하게 생겼네요. 몬스터들이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을 테니까요. ···걔가 잔소리나 안하면 다행이겠어요."
어느새 벗어던진, 더욱이 찢어졌다기보단 무언가에 홀랑 타버린 것 같은 시커먼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구석 자리의 점퍼와, 걸치고 있는 흰색의 면티 이곳저곳을 가르켜보이며 동시에 새까맣게 타들어간 오른쪽 손등 부분을 꼭 하나의 징표처럼 한서준에게 내보인 최성민은, 그제서야 자신의 손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괴상한 검은 액체를 발견하곤 반사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죠? 산성에 닿으면 원래 피가 검어지나요?"
튄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해야 쌀알만한 핏방울이 잠깐 닿았다 떨어진 모양인지 얼핏 스쳐가며 보았던 아까 전의 상처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얕디 얕은 상처의 깊이를 대강으로나마 가늠해보던 한서준은, 그의 질문 아닌 질문에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라는 의미라기보단 '모른다.' 의 의미가 더 짙게 담겨있는 간결한 대답이었다.
이에 최성민은 웃는건지, 아니면 찌푸려진건지 헷갈리는 어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마찬가지로 다소 흥분된 것 같은, 하지만 더할나위 없이 떨리고 긴장된 목소리로 다시금 입을 열어 말했다.
"이거··· 괜찮겠죠? 독이라도 들어있으면 괜히 골치만 아프거든요. 여기있는 해독제 중에 뭐가 듣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하나씩 다 실험해봐도 좋을 정도로 모아놓은 양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요. 이왕이면 한번에 찾는게 좋을텐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닐거예요, 그렇죠? ···그래도 아직 괜찮은걸 보면, 효과가 느리게 나타나거나,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 중 하나일 거예요. 물론 당연히 후자이길 바래야죠. ···독 같은건 진짜 생각도 안해봤는데··· 아, 진짜··· 또 고생길이 훤하게 보이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스트레스가 쌓이는 듯, 괜스레 지끈거리는 머리가 불러일으키는 짜증스러움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으며, 한숨 섞인 말을 길게 토해낼 때마다 점차 거칠어지다시피 자신의 이마를 꾹꾹 눌러대던 최성민은, 땅이 꺼질세라 불어쉰 마지막 한숨이 채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번쩍 고개를 치켜들고 사라져가는 말의 꼬투리를 단번에 콱 움켜쥐었다. 아니, 그렇게 그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정작 그러한 꼬투리를 낚아채 말을 이어붙인 이는 다름아닌 한서준이었다.
"···그것보단 얼른 구하러 가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끄럽던 총성은 언제부턴가 흔적도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필시 죽었거나, 아니면 승리를 거머쥐었을 것이 분명했지만, 단순히 총성이 잦아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판단을 하기엔 현재 그에게 주어진 정보는 너무나도 턱 없이 적은 양이었다. 거기다 사람 하나하나의 전력이 소중한 지금, 더불어 여벌의 목숨이라 생각해도 좋을 인간의 생사는 한서준에게 있어 약간은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문제였고, 무엇보다 '독' 이라는 단어 덕에 만들어진 최성민의 걱정을 일일이 신경써줄 여유가 그에겐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힌 그 쪽과 관련된 지식이 없기에 무작정 도와줄 수 없는 것이었으나, 만약 이곳에 의사를 목표로 하고 있던 유지현이 있었다면 이건 180도로 달라질 문제였다.
까닭에 지금의 한서준에겐 '이딴 것' 을 신경쓰며 허비할 '시간' 이 없었고, 차라리 그 시간동안 유지현을 구출해 최성민의 치료를 맡기는 것이 몇배는 더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방법이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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