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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을 굴복시킨 영웅(반동북공정 시리즈 1- 중원무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1.06.15 14:38
최근연재일 :
2022.03.0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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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26,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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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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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명군의 등장, 그러나 또다시 요동치는 천하

DUMMY

거사 당일 저녁 무렵,

수도 장안의 북군을 장악한 주발의 지시에 따라 일단 황제를 호위하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미앙궁으로 향하던 유장은 전혀 뜻밖의 인물과 마주치게 된다.


미앙궁에 들어선 유장이 그곳에서 어찌어찌해서 들어온 것 같은

다름아닌 양왕 여산과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수도 장안의 나머지 절반, 남군을 장악하고 있었던 여산만 제거할 수 있다면

이번 거사는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유장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 들자

갑작스런 사태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여산은 도망가기에 바빴고

여산을 따르던 자들 역시 혼란에 빠져 누구 하나 싸우려 들지 않았다.


결국 낭중령 관부까지 쫓아간 유장에 의해 여산은 그곳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죽음을 당하게 된다.



여씨들에 대한 공신들의 반격에 있어서 최대 적수로 예상되었던

양왕 여산은 그렇게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가버렸고,

이후 여세를 몰아 황제의 허락으로 부절을 대동한 유장이 궁성 문의 수비 병사들을 통솔하는 위위 여갱시마저 참살하자,

장안성에서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여씨들은 모두 사라지고야 말았다.


장안의 북군을 담당하던 여록은 홀연 조나라로 떠나버렸고,

남군을 담당하던 여산은 제대로 된 대항 한 번 못해 본 채 도망치다 죽임을 당하고,

궁문을 담당하던 여갱시마저 멀뚱이 있다가 참살당하며,

그렇게 집권 세력인 여씨는 가장 중요한 수도 장안의 군사권을

별다른 대항 한번 못해 본 채 허무하게 놓쳐버리고 말았다.


권력의 향배를 결정짓는 엄청난 정변치고는 너무나 싱겁게 결판이 나고야 만 것이다.

모사가 진평의 계략도 계략이었지만,

여태후의 뒤를 이어 한나라의 권력을 지탱할만한 역량이 여씨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제 대적할만한 무력 수단을 모두 잃어버린 여씨 일족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겠는가.

한나라 개국공신 측의 거리낌 없는 피의 보복일 뿐이었다.


그야말로 여씨 일족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잡혀와 무참하게 도륙을 당한다.

편안하게 왕 노릇이나 하려고 자신의 봉지로 돌아가던 조왕 여록은 다시 붙잡혀와 참수당하고,

여태후의 여동생이자 번쾌의 아내인 여수는 매질을 당하여 사망하고,

연왕 여통 역시 사람을 보내 주살한다.


여태후가 사망한지 채 한 달 남짓한 시간에 몰락 정도가 아니라 멸족을 맞이하며,

무소불위의 여태후가 생전에 쌓아 놓았던 여씨천하는 너무나도 허망하게 끝이 난다.


개국 공신들은 여씨 일족들의 몰살에만 그치지 않았다.

여태후가 손자 소제를 죽인 후

혜제의 다른 아들들이라 해서 허수아비로 세운 현 황제인 후소제를 비롯, 양왕, 회양왕, 산상왕 등은 비록 유씨 성을 가졌다고는 하나,

여씨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태후가 몰래 다른 사람의 아이를 데려와

그 어머니들을 죽이고 거짓으로 황자라 속여 세운 것이라 하여,

그들 또한 모두 살해해 버렸다.


그야말로 여씨 권력의 불씨가 조금이라도 살아나지 못하도록 남김없이 제거해 버린 것이었다.



여씨들이 몰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제왕 유양은 다시 군사를 돌이켰고,

장군 관영 또한 회군함으로써 여태후의 사후 혼란은 일단락 되었는데,

문제는 누가 유씨 한나라를 이어갈 다음 황제가 되느냐였다..


여씨에 맞서 군사를 일으킴으로 인해 이번 정변의 성공에 간접적으로나마 큰 역할을 하였고,

그 아우인 유장이 여산을 주살함으로써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에,

응당 유방의 손자이자 제나라 왕인 유양이 새로운 황제로 추대되는 것이 마땅했으나,

그에게는 개국 공신들이 진절머리를 낼만한 결격 사유가 있었다.


바로 외척이었다.

제왕의 외척이었던 사씨가 또한 평판이 좋지 못한데다

장인 사균이란 자가 포악하기 이를 데 없다는 소문이 자자해,

여씨에게 물릴 데로 물린 개국 공신들이 질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황 유방의 친자 중 살아 남은 넷째 대왕 유항과 일곱째 회남왕 유장이 남아 있었으나,

회남왕 유장은 어머니가 자결하고 여태후에 의해 키워져서인지 본인이 또한 성정이 포악했고,

그나마 대왕 유항이 어질고 효심이 자자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기에 개국 공신들의 인심이 기울어졌다.



공신들의 간곡한 요청에 몇 번의 사양을 거듭한 후

대왕 유항이 제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한 문제로,

그 경위야 어찌 되었던 결국 외척 여씨들을 몰아내고 황실을 유씨에게 다시 돌림으로써,

개국 공신들은 자신들의 주군 고조 유방의 유지를 끝까지 받든 셈이 되었고,

또한 대왕 유항을 제위에 올린 결정은 자신들이 세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서도 가장 큰 공로가 되는 일이었다.


이 문제 유항이야 말로 ‘문경지치’라 해서 그의 아들 경제와 함께

정통 한족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끌어간 명군 중의 명군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부터 항상 검소한 옷차림으로 지냈으며,

처첩들에게도 화려한 장식과 바닥을 질질 끄는 사치스러운 의복을 금했던,

남방의 젊은 신황제 유항은 백성들에게는 더 없이 너그러웠다.


제위 기간 동안 백성들을 고단하게 하는 부역을 일체 실시하지 않음을 물론,

오히려 세금을 선황 고조가 정한 1/15에서 그 절반인 1/30로 감면해 주었고,

연좌제를 완전 폐지해 죄를 지은 본인 이외에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도록 했으며,

신체를 고문하는 육형까지 금지시켰다.


더 나아가 나라와 백성들의 삶에 근간이 되는 농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황제가 손수 농사를 짓는 모범을 보였으며,

여력이 없는 가난한 백성들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필요한 오곡의 씨앗과 양식까지 대여하는 선정을 베풀었다.


한 문제 유항은 자신이 승하할 시에도

결코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황릉 규모를 간소하게 할 것과,

단 사흘만 곡을 하고 일체의 거추장스런 의식을 치루지 말 것을 유언으로 한다.


그 아들 경제 유계 역시 선황의 이런 모범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문제와 경제 두 명군이 나라를 다스린 40여 년간은

백성들이 집집마다 돈과 양식이 남아돌 정도로

정통 한족 역사상 최고의 풍요를 누린 태평성대였다.




백성을 생각하는 명군이 등장함으로 인해

더더군다나 여태후가 사망하고 여씨 일족이 몰살당한 일에 대해 달리 애석해 하는 사람은 없었건만,

유일하게 아쉬운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서방의 월지후왕이었다.


월지후왕은 여태후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또한 채 한 달도 못되어 그 일족들까지 몰살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고는

다소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훈국에 대한 복수심이 들끓었던 여태후가 은밀히 황금이나 비단을 보내와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했음은 물론,

다가올 패권 경쟁에서 한나라가 남방에서 훈국을 견제해 주는 정도의 역할만으로도

전황을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강성한 훈국이라 한들 전선을 두 군데나 벌일 수는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남방의 경계를 완전히 풀고 자신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니,

그만큼 월지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랬기에 당연히 여태후가 사망한 이후의 한나라 내부의 정세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월지후왕은

혹시나 여씨를 멸족시킨 후 집권한 한나라 조정이 이전 여태후와 은밀히 맺었던 공조를 깨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하며,

새로이 등극한 남방의 황제가 어떻게 나올지 그 귀추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방의 태도는 급전하고 있었다.

밀사를 보내 이전 여태후와의 공조를 상기시켰건만,

적극적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던 당시와는 완전히 반응이 달랐다.


앞으로 양국간에 변함없는 우호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형식적인 답례만 있을 뿐

대훈국 공조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없었던 것이다.



한나라의 황제 문제에게도 외교에 있어서 가장 큰 사안은 역시 저 북방의 훈국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훈국과 접하고 있는 변방 대나라 왕 출신이었던 문제는 저들의 강성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을 통치의 제일 순위로 삼은 이상

훈국과의 대결 양상이 결코 이롭지 못함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즉위 후 훈국과의 화친에 주력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 한문제 유항에게 이전 정권에서 은밀히 맺은 그 같은 밀약은

혹시나 훈국에 이 사실이 발각될 경우 작금의 평화 분위기를 헤칠 수 있었기에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고,

적당히 얼버무리며 넘어가는 것만이 상책이었던 것이다.


여씨 정권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졸지에 든든한 남방의 지원을 상실해 버린

월지국은 그간 많은 공을 들여 이룩한 군사력까지 무용지물이 될 판국이었다.


새로이 등극한 한나라의 젊은 황제가 여간해서는 자신들의 대훈국 전선에 말려 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월지국 조정에서는 결국 한나라를 궁지에 몰아넣을 음흉한 계략까지 꾸미게 된다.



기원전 180년, 여태후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 해.

20여 년 전, 몽골초원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훈국의 선우 묵돌이 초한대전에서 승리한 한나라 황제 유방을 백등산에서 항복시킨 이후부터

계속 이어져오던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여태후가 사망한 이후 한나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정세에 역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훈국 선우정으로 남방이 아니라 서방 쪽에서 자꾸만 이상한 징후가 보인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선우정에 몰려드는 상인들을 통해 주변의 정세를 알아보곤 하던 훈국의 정탐꾼들에게서

지난 해 말경부터 준가리아 평원 곳곳 어딘가에서 난민들이 자꾸만 밀려오고 있었는데,

모두들 오손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오손 부족은 알타이 산맥 너머의 다소 멀리 떨어진 부족이라

무엇보다 남방을 주시하고 있던 훈국은 미처 그곳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여씨들이 멸족된 후 등극한 한나라 황제가 이전처럼 사절과 함께 약조한 공물들을 보내 오자

훈국측에서도 그에 대한 답으로 많은 진귀한 선물과 함께 신황제의 즉위를 축하하는 사절을 보내며,

상호간에 변함없는 화친을 확인한 이후에야

비로소 훈국 조정에서는 서방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기미에 대해 시선을 돌리게 되는데,

풍비가 직접 서방에 파견한 간자들로부터는 더욱 심상치 않은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남방과의 일이 일단락되고,

오랜만에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다녀온 대선우 묵돌에게

서방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전쟁의 와중에 오손의 왕이 살해당하고 그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는데,

그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바로 월지국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월지국이 하서주랑의 북단인 지금의 돈황 부근에 자리잡고 있던 유목 부족인 오손을 침공한 것이었다.

오손의 수령이라 할 수 있는 곤막 난두미는 갑작스런 월지국의 공세에 맞서 싸우다 그만 전사하고

그 백성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 졸지에 난민으로 전락하고야 만다.


당시로서는 살기 좋은 하서주랑에서 상업으로 번성하고 있던

월지가 자신들의 북단에 위치한 약소 유목부족인 오손을 침공할 뚜렷한 이유가 없었기에,

모두들 그 내막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뭔가 집히는 것이 있는 듯 대선우 묵돌이 급하게 풍비를 찾았다.

“장장군은 들어라!”

“예, 대선우.”

“그대는 지금 즉시 우현왕에게 파발을 띄워라!”

갑작스런 대선우의 명에 풍비 역시 무슨 영문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파발을 띄워서 우현왕에게 지금 당장 경계를 강화하라고 알려야 한다!”

“예! 대선우 명을 받들겠습니다!”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대선우의 모습에 풍비 역시 신속히 움직이고 있었다.


“호위대장!”

“예! 대선우.”

“그대는 지금 이곳 선우정의 경계를 강화하고 장수들에게 모두 출정할 준비를 하라 이르라!”

항상 가까이서 대선우를 수행해 왔던 려군은 지금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 동안 평화롭기만 하던 동아시아의 정세가 다시 한 번 소용돌이 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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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북한화친, 그리고 영웅의 죽음 22.03.02 73 1 11쪽
59 남방에 당도한 기이한 서신 22.02.28 69 0 11쪽
58 대월지의 기사회생과 동아시아의 민족 대이동 22.02.25 64 1 13쪽
57 11부 다시 찾아온 평화 - 망국의 일격 22.02.23 61 1 12쪽
56 기원전 177년, 불타는 연지성과 월지국 최후의 날 22.02.21 72 1 12쪽
55 무너진 흑수 방어선 22.02.18 88 0 11쪽
54 뒤바뀐 전선, 그리고 역공 22.02.16 71 0 11쪽
53 남방으로 번지는 전쟁의 불길 22.02.14 72 0 12쪽
52 10부 마지막 전쟁, 대월지전 - 대전의 서막 22.02.11 81 0 11쪽
» 명군의 등장, 그러나 또다시 요동치는 천하 22.02.09 84 0 12쪽
50 개국 공신들의 반격 22.02.07 85 0 13쪽
49 끝내 좌절된 복수, 그리고 또 다른 복수의 시작 22.02.04 78 0 13쪽
48 9부 태평성대의 마지막 불씨 - 앙심을 품은 악녀 22.02.02 84 0 14쪽
47 고래싸움 앞의 새우 22.01.31 95 0 12쪽
46 3대 악녀 여태후의 굴욕, 농서(弄書)의 치 22.01.28 135 0 12쪽
45 남방에 부는 피바람 22.01.26 94 0 13쪽
44 조선인들 22.01.24 109 0 12쪽
43 한나라에서 온 공주 22.01.21 93 0 12쪽
42 8부 대선우 묵돌과 동아시아의 태평성대 - 천하의 진정한 패자는 누구인가. 22.01.19 87 1 13쪽
41 승자와 패자, 그리고 마지막 점괘 22.01.17 82 0 13쪽
40 선우와 황제의 대면 22.01.15 85 1 13쪽
39 한족 최초의 치욕, 평성의 치 22.01.12 97 1 11쪽
38 모사 진평의 신묘한(?) 계책 22.01.11 77 1 10쪽
37 완벽한 패배 21.08.28 90 1 12쪽
36 한군의 연승과 북진 21.08.21 87 1 12쪽
35 황제의 친정 21.08.19 9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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