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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을 굴복시킨 영웅(반동북공정 시리즈 1- 중원무상)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Yourinn
작품등록일 :
2021.06.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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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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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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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남방에 부는 피바람

DUMMY

그러나 곧 대선우가 자신의 표정을 보고 재미있어 하는 것을 알게 된 려군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대선우께서도··· 어찌 신을 그리 놀리시는 것입니까.”

대선우 묵돌은 공연히 호승심으로 쓸데 없이 전쟁을 일으킬 리가 절대 없는 사람이었다.


“내 대흥안령 너머로는 가지 않을 것이야. 아무런 소득도 없지 않느냐.”

훈국의 입장에서는 힘들게 대흥안령 산맥 너머까지 가본들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거기다가 남방의 한나라를 굴복시켜 얻을 것을 얻고 있는 마당에,

공연히 적을 만들 필요가 없음을 물론,

오히려 한나라를 계속 제압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조선과 화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또한 너희 조선 사람들은 결코 무력으로 누른다고 될 사람들이 아닌 것 같구나.”

비록 려군의 일가만을 접해 보았을 뿐이었으나 묵돌의 예감은 실로 정확했다.


이후 한족이 이민족의 침공을 받고 무수히 많은 세월 동안 지배를 당했는데도 불구,

조선인들은 결코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없었다.

거의 오천 년에 달하는 역사에서 고구려가 잠시 잠깐 빼앗겼어도 30년 만에 발해가 뒤를 이었고,

근세조선이 40여 년간 저 무도하기 짝이 없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겼으나 곧 회복했다.

겉으로는 순박해 보였지만,

또한 그들 내면에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강인한 일면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앞으로 조선과 동맹을 맺을 것이니 네가 좀 나서 주어야 하겠구나.”

려군이 무엇을 마다하겠는가.

“선우 하명만 하시오소서.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묵돌은 먼 이국 땅에서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려군에게 어떤 처사를 내려야 합당한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 훗날의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만,

때가 되면 내 그 동안의 노고에 합당하게 상급을 내려 너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마.”

대선우 묵돌의 언급에 주위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니옵니다. 대선우, 신은 대선우를 끝까지 뫼실 것이옵니다.”

“내 어찌 너의 충심을 모르겠느냐.

그러나 여기서의 일을 마치고 네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 일가와 함께 편히 지내는 모습을 보아야 마음이 놓이겠구나.”

묵돌뿐만 아니라 그 때까지 함께 한 사람들 역시

이곳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려군에게 그리 해 주어야 합당한 도리인 것 같았다.


“대선우, 소신의 일은 개념치 마시오소서.

그저 지금처럼 대선우를 모시게만 해 주시면 신은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네 허구한날 내 옆에서 시위하느라 고생만 하는데 뭐가 그리 좋아서 그러는 것이냐.”

남들이 보기에는 대선우의 호위대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고 해서

무슨 부귀영화라도 누릴 줄 알지도 몰랐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대선우께서 선정을 베푸시는데,

대선우의 사람인 제가 어찌 감히 불평이 있을 수 있겠나이까.

신은 그저 제가 모시는 대선우께서 성군으로 길이 남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것이 전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님을 모두를 알고 있었다.


“거 참, 역시나 못 말리겠구만.”

대선우 묵돌이 보기에는 조선 사람들은 뭔가 결이 다른 것이,

도무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얼마 후 조선이 대선우의 즉위식에 축하 사절을 보낸 것에 대한 답례로

훈국에서는 대선우의 최측근이자 조선인 출신인 려군이 이끄는 사절단을 보내왔다.

많은 진귀한 예물까지 보내와 앞으로 동맹을 맺어 함께 번영하자는 훈국 대선우의 전갈에

물론 조선의 왕은 크게 환영의 뜻을 보이며 이를 수락하였고,

훈국 사신 일행을 극진히 예우했다.


사절단을 이끌고 온 려군이 고향을 찾자 려군의 고향 마을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무예 솜씨로 소문이 자자했던 려군이

강대국으로 떠오른 훈국에서 최고 수장인 대선우의 최측근이 되어 한나라의 공주까지 아내로 맞이했다는 사실에 고향 사람들은 모두 다 부러워했고,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과 동무들을 만난 려군은 마음껏 그 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잇따른 경사로 들떠 있던 훈국의 분위기와는 달리,

야만시하던 북방 훈국에게 졸지에 조공을 바치고 공주까지 시집을 보내야 하는 속국으로 전락해 버린

한나라 조정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 막강한 항우를 물리치고 통일 제국을 이룩했다고 하는 자부심은 온데 간데 없어짐은 물론,

황제 유방의 권위는 그야말로 땅에 떨어지고야 말았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훈국에 대패한 것도 모자라 술, 비단, 양식과 공주까지 갖다 바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제후왕들은 또 어떻게 보고 있겠는가.

황제의 권위는 등극한지 채 얼마 되지도 않아 나락까지 추락해 버렸다.


이후 한나라에서는 잔혹한 이성 제후들에 대한 숙청이 이어졌다.


원래부터 언젠가는 하나씩 조치를 취해야 할 예정이었던 그들이었건만,

자신의 추락한 권위를 만회하기 위해서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이다.


훈국에게 대패하자마자

사위인, 노원공주의 남편 조왕 장오가 숙청되었다.

황후 여치의 난동으로 이후 다른 여인으로 교체되긴 했으나 그 때까지만 해도 노원공주를 훈국에 시집 보내야 했던 것이 작용했음이 분명했기에,

훈국과의 전쟁 패배로 인한 직접적인 불똥이라 볼 수밖에 없었다.


공신의 자손이었던 사위에게 얼마나 무례를 굴었기에 참다 못한 그의 가신들이 황제에 대한 암살 모의까지 획책했으나 곧 들통이 났고,

그나마 직접 가담치 않은 것과 사위였던 관계로 왕의 직책을 거두고 공신의 등급을 낮추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기원전 197년,

한왕 신을 대신해 변경을 방비하라고 조나라로 보낸 진희가 대왕을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조나라 땅 20여 개 성을 점령한 진희의 반란은 거의 1년이나 지속되었는데,

이 반란이 일으킨 불똥이 또한 여러 이성제후들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훈국으로 귀순한 한왕 신과 은밀히 내통까지 하며,

갈수록 커져가는 진희의 반란을 직접 진압하기 위해 황제 유방이 출정하러 간 사이,

회음후 한신이 진희의 모반에 가담했음을 이유로 황후 여치에 의해 처형된다.


초왕에서 강등된 후, 자신의 거처에 칩거하며 두문불출하던 한신은

같은 개국공신이자 예전에 자신을 대장군으로 추천한 승상 소하가 자신을 부른다는 말에 속아 장락궁을 찾았다가

여황후가 대기시켜 놓은 무사들에게 참형을 당하고야 만다.


항우, 유방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라는 자신의 참모 괴철의 말을 듣지 않아 아녀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한탄하며

한신은 최후를 맞이하였고, 그의 삼족이 처형되었다.


진희의 반란은 이듬 해가 되어서야 겨우 진압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양왕 팽월이 병을 핑계로 진희의 반란에 종군하지 않았다는 죄를 들어 사로잡힌 뒤,

지위를 박탈당하고 서인으로 강등되어 촉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귀양길에서 여황후를 마주치게 된 팽월이 부디 고향으로 돌아가게만 해 달라고 애원하자,

여치는 이를 들어주는 척하며 오히려 황제에게는 팽월이 힘이 장사이니 살려두면 앞으로 또 무슨 무반을 꾸밀지 모른다고 주청하여,

팽월은 가족들과 함께 처형된다.


그것도 모자라 팽월의 시체는 젓갈로 담가져

각 지방의 제후들에게 경고의 의미로 보내진다.


기원전 195년,

한신, 팽월의 최후를 본 회남왕 영포가 기어이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 유방은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던 영포를 직접 토벌해야 한다는 주위의 만류에 못 이겨

당시 병세에 시달리고 있었음에도 친정을 감행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분투하여 영포의 반란군을 격파하긴 하나,

전쟁통에 날아온 화살에 맞아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반란이 진압된 바로 그 해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결국 남방 한나라 황제 유방은 훈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계속되는 공신들의 반란 진압과 숙청으로 남은 재위 기간을 보내다가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뜨게 된다.


황제가 숨지자 마자 마지막으로 남은 이성제후이자 황제 유방의 동향 친구인 연왕 노관이 훈국으로 망명하고야 한다.


노관은 기이하게도 황제 유방과 같은 마을에서 같은 생년월일에 태어난 인연으로

가장 막역한 사이가 되어 별 공로가 없음에도 연왕에 봉해지지만,

진희의 반란에 엮인 것으로 의심을 받다가 그나마 억울함을 호소할 고향 친구인 황제마저 사망하고 나자,

공신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여태후가 두려워 훈국으로 망명하고야 만 것이다.


그렇게 살아 생전 황실의 위협이 되던 이성제후를 모두 숙청함으로써 황실의 안정을 기하는 것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황제에 오른 후 남은 재위 기간을 반란 진압으로 보내다

그 후유증으로 결국 사망에까지 이른 유방의 말년도 그리 순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황제 유방이 사망하자 젊은 황제 혜제 유영이 등극했다.

반란 진압의 후유증으로 이전 황제가 사망하고, 새로운 황제가 등극했다는 소식에

훈국에서도 다들 촉각을 기울이며, 앞으로의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혹 패기 넘치는 젊은 황제가 어떻게 나올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유방이 사망하고 등극한 사람은 아들 혜제가 아니라 부인인 황후 여치였고,

그들에게 남방 한나라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실로 귀를 의심할만한 일들이었다.


이미 이전 황제가 살아 있을 때 이성 제후가 모두 숙청되었건만,

이후 남방 내부의 피바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여태후는 황하 일대 역사상 3대 악녀로 꼽히는 첫 주자이다.


사실 이성제후들을 숙청할 때도 한 고조는 그들의 공을 생각하여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으나,

초왕 한신과 양왕 팽월을 기만해 처참하게 그 일가까지 처형한 것은 바로 황후 여치였다.


이성 제후의 위협이 사라지고 황제까지 서거하고 나자,

태후가 된 여치는 그 피묻은 칼날을 곧 바로 이전 황제 유방이 다른 여인들에게서 낳은 황자들에게로 돌렸다.

한고조 유방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 역시 대부분 이성 제후 못지 않은 처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황제 유방이 살아 있을 때,

태자 자리까지 노린 바 있었던 척부인의 아들 조왕 유여의가 살해된다.


여태후의 칼날이 자신에게 가장 먼저 향할 것을 알았던 유여의는 입조하라는 여태후의 명을 몇 차례 핑계를 대고 넘기다

결국 수도 장안으로 오고야 마는데,

성정이 어진 형 혜제가 자신의 바로 손 아래 동생이 필시 죽임을 당할 것을 걱정해 성문까지 직접 마중을 나가 항상 곁에 두고 보호했지만,

혜제가 아침에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짐주로 독살당하고 만다.


다음으로 유방의 장남 유비였다.

유비는 황제 유방이 여치와 혼인하기 이전에 낳은 아들로 어머니를 어려서 여읜 탓에

가엾게 여긴 아버지 유방으로부터 제나라의 넓은 영지를 물려 받았다.


비록 서자였으나 서열로는 둘째인 혜제보다 위였기에

장안에 입조한 제왕 유비에게 사적인 자리에서 상석을 권한 혜제의 권고를 따랐다가

이를 본 여태후에게 독살당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연회에서 잠주가 든 술잔을 제왕 유비에게 먹이려다

이를 눈치 챈 혜제가 자신이 대신 그 술잔을 마시려 하자 여태후가 이를 엎어 버렸고,

자신 역시 위험에 처한 사실을 알게 된 유비는

권신의 권고로 자신의 봉지 중 많은 부분을 여태후의 딸이자 이복 여동생인 노원공주에게 양보함으로써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그나마 겨우 독살의 위기를 넘긴 유비는 운이 좋은 편에 불과했다.


조왕 유여의의 뒤를 이어 조왕이 된 여섯째 아들 유우는 여씨 일족의 여인과 강제 결혼했으나,

다른 처첩들을 총애하는 것을 시기한 여씨 왕후가 친정으로 돌아와 무고하는 바람에, 감옥에 갇혀 굶어 죽게 된다.


그 뒤를 이어 조왕이 된 다섯째 아들 양왕 유회 역시 여태후의 조카와 혼인을 하였으나,

그녀가 여태후의 권세만 믿고 온갖 감시와 간섭 끝에 자신의 애첩과 딸까지 죽여 버리자,

결국 견디지 못해 자살하고야 만다.


여덟째 아들 연왕 유건은 여씨 일족과는 무관하게 사냥터에서 얻은 병으로 젊어서 사망했으나,

유씨에게서 온 천하를 빼앗으려는 여씨 일족에 의해

생전에 낳은 어린 아들이 독살당함으로써 대가 끊기고 만다.


일곱째 아들 회남왕 유장은 친모가 그를 낳자마자 자결해 버림으로써

여태후의 손에 키워져 겨우 살아남았다.



그나마 여씨의 화를 피할 수 있었던 유일한 황자는 넷째 아들이자 훗날 한문제가 되는 대왕 유항뿐이었다.

대왕 유항은 어머니의 신분이 미천한데다 황제 유방의 총애를 받지도 못하였고,

변방 대나라에 있었던 관계로 중앙 정치와는 떨어져 있었기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태후가 보인 잔인성의 백미는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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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귀향 22.03.03 97 1 7쪽
60 북한화친, 그리고 영웅의 죽음 22.03.02 85 1 11쪽
59 남방에 당도한 기이한 서신 22.02.28 76 0 11쪽
58 대월지의 기사회생과 동아시아의 민족 대이동 22.02.25 70 1 13쪽
57 11부 다시 찾아온 평화 - 망국의 일격 22.02.23 67 1 12쪽
56 기원전 177년, 불타는 연지성과 월지국 최후의 날 22.02.21 76 1 12쪽
55 무너진 흑수 방어선 22.02.18 93 0 11쪽
54 뒤바뀐 전선, 그리고 역공 22.02.16 79 0 11쪽
53 남방으로 번지는 전쟁의 불길 22.02.14 78 0 12쪽
52 10부 마지막 전쟁, 대월지전 - 대전의 서막 22.02.11 92 0 11쪽
51 명군의 등장, 그러나 또다시 요동치는 천하 22.02.09 91 0 12쪽
50 개국 공신들의 반격 22.02.07 89 0 13쪽
49 끝내 좌절된 복수, 그리고 또 다른 복수의 시작 22.02.04 82 0 13쪽
48 9부 태평성대의 마지막 불씨 - 앙심을 품은 악녀 22.02.02 87 0 14쪽
47 고래싸움 앞의 새우 22.01.31 101 0 12쪽
46 3대 악녀 여태후의 굴욕, 농서(弄書)의 치 22.01.28 143 0 12쪽
» 남방에 부는 피바람 22.01.26 100 0 13쪽
44 조선인들 22.01.24 114 0 12쪽
43 한나라에서 온 공주 22.01.21 97 0 12쪽
42 8부 대선우 묵돌과 동아시아의 태평성대 - 천하의 진정한 패자는 누구인가. 22.01.19 99 1 13쪽
41 승자와 패자, 그리고 마지막 점괘 22.01.17 87 0 13쪽
40 선우와 황제의 대면 22.01.15 91 1 13쪽
39 한족 최초의 치욕, 평성의 치 22.01.12 102 1 11쪽
38 모사 진평의 신묘한(?) 계책 22.01.11 84 1 10쪽
37 완벽한 패배 21.08.28 95 1 12쪽
36 한군의 연승과 북진 21.08.21 94 1 12쪽
35 황제의 친정 21.08.19 98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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