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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심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은 신대륙을 발견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뱃심
작품등록일 :
2017.07.12 08:51
최근연재일 :
2017.07.31 02:2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9,559
추천수 :
175
글자수 :
139,586

작성
17.07.2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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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추천
3
글자
19쪽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다.

DUMMY

“그래. 좋네”

황음으로부터 승낙의 답변을 듣자 호비첸은 얼굴에 화색이 돌며 뛸듯이 기뻐했다.


“단, 몇가지 조건이 있네.”


“무···무슨 조건 말입니까?”

호비첸은 뛸듯이 좋아하다가 갑자기 황음으로부터 예상치 못하게 조건을 달겠다는 말을 듣자 아차 싶었다.

일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너무 기뻐하는 속내를 내보인게 큰 실수가 되는게 아닌가 싶었다.


‘대체 무슨 조건이란 있단 말인가?

보통 이런 경우는 지키기 어려운 이상한 조건들 걸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기 마련이거늘···’


호비첸은 저 노련한 장사치의 앞에서 너무 빨리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 아쉬웠다. 이런 일에는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건만 뱃사람 출신인 호비첸은 아무래도 장사꾼 체질은 아니였다.


옆에 클레첸이 오히려 이런 면에서는 더 영악했다.

‘그럼 그렇치....저 능구렁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순히 배와 물건을 내어줄리가 만무하지.’


호비첸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가시고 바짝 긴장해 황음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드디어 황음이 그 조건이라는 것을 꺼냈다.


“내 자네들을 완전히 믿기 힘드니 담보로 맡길 수 있는 것을 내 눈앞에 내어놓게”


담보라니···? 조선땅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덜렁 두쪽이 전부인 호비첸은 막막해 했다.


“나으리. 이제 저는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황음이 진지한 얘기를 하는 도중에 클레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자신의 웃옷 저고리를 집어 들었다.


“무슨 일들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소인은 이번 일에 관여할 뜻이 없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클레첸은 그대로 서둘러 밖으로 나가 버렸다.

뒤에 남은 호비첸은 방안에 둘만 남기고 클레첸이 나가 버리자 갑자기 어안이 벙벙했다.


황음이 의아해하며 물어 보았다.

“저 친구....자네 부하 아닌가?

아무래도 자네와 같이 배를 탈 생각이 없는가 보구먼···저 친구···”


“아닙니다. 지금 저 친구가 뒷간이 급해서 나간 겁니다.”

호비첸이 화급히 일어나 클레첸을 쫒아 나가려 하자 황음이 그를 붙잡았다.


“지금 내 얘기를 안 듣고 그냥 다들 가버릴 참인가?”


“아니...아닙니다.

들어압죠....마저 얘기 하시죠...”

호비첸은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삼개월에 스무곱절 이상이라...

나는 자네가 약조 한 말을 믿네.

하지만 돈이란 것은 말이야 변덕쟁이 처녀처럼 사람 말을 잘 듣지 않은 습성이 있어서 말이야.

자네가 돌아올 때까지 담보는 내가 잘 보관하고 있겠네.”


그리고는 절대 잊을 수 없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일 자네가 오늘 한 이 약조를 우습게 여기고 지키지 못할 경우 자네가 담보로 맡겨 놓은 것들은 영영 다시는 못 보게 될걸세.

그리고 덧붙여 자네의 그 흉칙한 퍼런 눈알을 다 뽑아 버릴 것이야...”


‘젠장...이게 무슨 살벌한 소린가. 돌아올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호비첸은 황음의 협박 겸 제안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건 황음과의 협상이 성공한 것도 아니고 실패한 것도 아니였다.


호비첸이 누구인가.

어린 꼬마시절부터 마흔 중반의 나이까지 세상의 모든 바다를 누비며 거칠고 험한 뱃사람들의 세계에게도 끄덕없이 살아남은 궁극의 생존자이다.

동물로 치면 수많은 덪을 피해서 온 몸에 상처 투성이가 된 채로 잡히지 않은 늑대 같은 사내인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계속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 도발해오는 황음을 그는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한주먹이면 대갈통이 깨져버릴 쬐그만 놈이 어디서 누구한테 협박질인가.

오냐 그래...니가 머라 맘대로 떠들어대도 좋다.

난 배만 타면 이제 다시는 이땅으로 돌아 오지 않을 테니까.’


호비첸은 지금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 보이는 황음이 자신을 갖고 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장 그자리에서 황음을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하여 일단은 무슨 일이라도 꾹 참아야만 했다.


‘그나저나 난데 없이 담보를 걸라니....조선땅에 붙잡혀 있는 내가 담보로 걸수 있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호비첸은 담보를 걸라는 말에 멍해져 있었다.


“자네 지금 내 말 듣고 있나?”

황음이 호비첸이 한참동안 말이 없자 그를 독촉했다.


“네...잘 알아듣었습죠.

근데 어쩌죠.

저는 담보로 걸 것이 요것 두 쪽 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떼드릴깝쇼?”


호비첸은 비굴하게 웃는 척하며 자신의 아랫도리를 가리키고는 일부러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흐흐하...코쟁이 놈이 여기서 몇 해 살았다고 조선사람한테 조선말로 농을 치는 구만...

내가 자네 그걸 갖다 어따 쓰겠나. 그딴 흉칙한 거 말구 제대로 된 담보 말일세

자네가 꼭 다시 찾아 가야만 하는 그런 것.”


황음은 흐미한 등잔불빛 밑에서 구렁이같이 음흉한 미소를 씩 지어 보였다.


*****


호비첸은 황음이 떠난 뒤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한밤중에 클레첸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고 있는 클레첸을 밖으로 불러냈다.


호비첸은 클레첸을 닥달하기 시작했다.


“자네 대체 왜 이러는가?

이런 중요한 대화 중에 갑자기 혼자 뛰쳐 나가 버리고 더 이상 이 일에 관여치 않겠다니?

여기 우리 둘밖에 없는데 나 혼자 이 모든 걸 하라는건가?

지금 나만 좋자구 이러는 거 같나?”


호비첸이 다급하게 클레첸을 몰아 붙였다.


“이보게...난 그렇게 위험한 일에 동참할 수가 없네.

잘못하면 내 목이 날라갈 일 아닌가.

그리고 내 가족들을 여기에 두고 갈 수가 없네...

자네라도 내입장이 되면 마찬가지 일걸세.

난 내 아이가 태어날때 성모 마리아님께 맹세했네.

무슨 일이 있어나도 반드시 내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자넨 일등항해사 출신이니까 나 없이도 나가사키까지는 배를 몰고 가는 건 문제 없지 않겠나...”


“뭐라고? 나가사키까지?

혹시 자네 눈치 채고 있었나?”


“물론이지.

자네 목적은 나가사키까지만 가서 그곳에 있는 네덜란드 상관으로 도망가는 것 아닌가?

만일 자네 계획처럼 된다면 나가사키에 도착한 밀무역 상단은 항로를 아는 유일한 항해사가 도망가 버린 후 나가사키에 정박한 채로 길을 잃어 버리고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겠지···

그중에 한명이 내가 될 터이고.

또한 자네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면 황음이란 자는 틀림없이 자네의 친구인 나와 내 가족에게 분풀이를 할 것은 뻔한 것이고.


난 애초에 자네가 밀무역에는 관심이 없다는 걸 오래전에 눈치챘네.

고향에 반드시 돌아 가겠다는 자네가 조선땅에서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밀무역을 할리가 없지 않은가”


호비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역시 똑똑한 친구답게 잘 알고 있구먼.

황음한테 밀무역을 얘기한 것은 내가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배를 얻어타기 위한 것이 맞네.

그럼 그렇다 치고 내가 자기 고향 찾아가는게 뭐가 잘못 된 건가?”


호비첸은 항상 그랬듯이 남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은 조금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끝까지 클레첸을 설득하려 했다.


“이봐 이러지 말게나.

자네도 여기서 엉뚱한 짓거리 그만하고 이번 기회에 나하고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세.

클레첸, 자네도 고향에 늙으신 어머니께서 혼자 계신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 기회를 놓치면 자네나 나나 영원히 이곳에 갇혀 살게 될지도 몰라.”


호비첸은 아직도 자신의 동료가 자신과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믿는 눈치였다.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난 내 가족들이 있는 한 혼자서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걸세”


호비첸은 황소처럼 버티고 있는 클레첸을 설득하기 위하여 협박을 했다가 간절하게 애원을 해보기도 하였다.


“이봐! 클레첸!

제발 정신 좀 차리게!

마누라고 자식세키고 그깟 이땅에서의 가족이야 고향에 가서 다시 만나고 낳으면 되는 건 아닌가?

지금 우리 처지를 좀 보게....

거지같은 꼴에 항상 배는 굶주리고

지나가는 여자들은 매력없이 전부 찌그러진 요강처럼 생겨 먹었네.

이곳 조선땅에서 우리는 자유를 박탈당하고 영원히 갇혀 사는 죄수일 뿐이야.

우린 저들에게는 그저 먼 곳에서 온 지나가는 이양인일 뿐이라고.

저들은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니란 말이세!”


그말에 클레첸이 울컥했다.


“뭐?

가족은 다시 만들면 그만이라고?

여기 있는 내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클레첸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한밤중에 소란을 일으켜 아이와 아내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호비첸 앞에서 하늘이 무너질 듯이 큰 한숨을 내쉬었다.


“허~~이제 그만 하지.

호비첸....자네랑 도저히 말이 통하질 않는군”


클레첸은 더 이상 호비첸과 대화해봐야 끝없는 말싸움만 될 것 같아서 여기서 이만 그만 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렸다.


“난 자네가 나가사키로 가든 말든 더이상 상관하지 않겠네.

자넨 처음부터 밀무역을 할 생각도 없었어. 그저 배를 얻어타기 위해 황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지.

나중에 뻔히 들통날 사기를 하고 있는 것은 만일 탄로가 나도 이미 도망가버린 자네한테는 전혀 해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하지만 이건 명심하게. 자네의 이런 짓거리에 누군가는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클레첸은 항상 이런 식으로 자신은 빠져나가고 뒤에 남겨진 사람에게 어떤 피해가 갈지 생각하지 않는 호비첸의 이기심이 너무도 얄미웠다.


“뭐라고? 사기질?

십년간 이곳에 죄인처럼 붙잡혀 있다가 내 고향으로 가겠다는데 이게 뭐가 잘못인가?

좀 전에 방안에 잠자코 있던 자네도 내 거짓말에 동조 한 것 아닌가?”


“동조?

난 단 한마디도 그들한테 거짓말을 한 적이 없네.

난 향신료에 대해서만 있는 사실 그대로 비싸게 팔린다고 말했을 뿐이야.”


클레체도 점점 언성을 높였다.


“그래....과연 저들도 그리 생각해 줄 지 모르겠군...

내가 사라진 다음에 말이야”


호비첸의 당당함에 질려 버린 클레첸은 괴로운 듯 머리를 저었다.


“제발...이제 그만 돌아가주게...

난 자네가 나가사키로 가든 여기에 남든 난 더 이상 관여 하지 않을테니까.

그들한테 자네의 속셈을 발고하지도 않을거고 말일세.

다만 이번 일에 나와 가족을 끌어 들이지 말아주게.

배에서 내린 난 이제 더 이상 자네의 부하도 아니고 테르미도로호의 서기도 아니니깐”


“난 우리가 친구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자네와는 말이 통하질 않는구만.”


그날 밤, 그렇게 둘이서는 서로 큰 간격만 확인한 채 격렬한 말다툼 끝에 헤어졌다.


*****


다음날 아침, 호비첸은 날이 밝자 마자 번개처럼 황음의 객사로 그를 찾아 갔다.

황음은 연신 곰방대를 빨아 대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호비첸이 체념한 듯 말했다.


“무어?

자네와 같이 밀무역에 동참 안한다고 하든가?”


“네...그것이 그는 가족에게 해가 되는 그런 위험한 잠상(潛商)일 은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허....그래.

그럼 내가 뭘 믿고 자네한테 내 배와 내 물건을 내어줄꼬.

어제밤 자네가 분명히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담보를 맡기라고 하니까 맡길 담보라고는 그 빨간 머리 친구 밖에 없다고 말이야.

그 친구와 같이 배를 타고 담보로 그 친구의 가족들을 맡기겠다는 하는 것도 자네가 먼저 꺼낸 말이고 말이야.”


호비첸은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거의 다 성사 됐는데 저 능구렁이 같은 놈이 믿을 만한 담보 없이는 쉽게 배를 내어 줄 거 같지가 않았다.


어제밤에 궁지에 몰린 호비첸은 결국 클레첸을 같이 데려가고 대신 그의 가족들을 담보삼아 인질로 잡고 있으라고 황음에게 제안했던 것이다.


“클레첸....그자가 가족을 그리도 끔직히 여긴다고?”

황음이 가느다란 염소 수염을 쓰다듬으며 음흉하게 말했다.


“네? 그렇긴 한데....”


만일 이 사실을 클레첸이 알게 된다면 호비첸은 비열한 인간으로 친구에게 남게 될 것이다. 까닥 잘못이라도 하면 친구의 가족의 목숨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호비첸의 불타는 욕망은 그런 생각을 억누르고 있었다.


‘괜찮아. 괜한 죄책감 갖을 필요 없어

고향에 가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거짓말은 해도 괜찮어...나중에 잘되면 그 친구도 이해할거야.’

호비첸은 스스로를 이렇게 위안했다. 하지만 클레첸이 자신이 한 짓을 알게 되지는 않을까 한편으로 마음을 졸였다.


황음이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런 놈에게 잘 듣는 특효약이 있지”


호비첸은 그 말에 섬뜩해졌지만 이미 엎어진 그릇이었다.


*****


클레첸은 몇 년 전, 이곳 강진에 끌려 와서 조선여인 염씨와 결혼하여 아들 만석과 옥년이를 낳았다.


클레첸이 처음 황음을 만났을 때 만석이는 다섯살이였고 갓 태어난 옥년이는 엄마 젖을 빠는 갓난아기 였다.


아이들 둘 다 생김새가 아비의 그것과 어미의 것을 반씩 물려 받아 이곳 사람들과 사뭇 다르게 생겼다. 외모가 다르긴 하여도 아이들은 조선땅에서 태어나 조선말만 쓸 줄 아는 조선사람으로 커나가고 있었다.


클레첸은 아무리 갯벌일과 밭일이 고되고 또 어머니가 계신 고향 생각에 외로워도 씩씩한 만석이와 옹알거리는 딸 옥년이를 볼 때 마다 이 세상 모든 고민이 전부 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씻겨져 내려가는 듯 했다.


특히 만석이는 이곳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고 다녔는데 또래에 비해 덩치가 커서 골목대장 노릇을 곧잘 하곤 했다.


처음엔 자신들과 다른 붉은 머리카락색과 생김새에 주저하던 아이들도 이내 만석이가 살갑게 잘 대하자 대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그렇듯이 쉽게 친해져서 온 마을을 뛰어나니며 배고픈 줄도 모르고 하루 종일 뛰어 놀기 바빴다.


클레첸에게 당장 걱정이 있다면 저 아이들을 충분히 먹여주지 못하는 점이였다. 하루 종일 갯벌에 나가 겨울철 추운 바람에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아내와 같이 호미질을 해보지만 벌이는 신통찮았다.


이미 대흉년이 시작 되면서 쌀독이 텅 빈지는 오래전이고 클레첸과 같은 어촌 사람들은 죽으나 사나 추운 거울에도 얼어붙은 갯벌에 나가 조개를 캐는 등의 호미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도 클레첸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갯벌에 나갔다가 수지 맞게도 갯벌 낙지를 몇마리를 잡았다.그는 낙지를 끊여 가족과 나눠 먹을 생각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집에 들어오는 순간, 클레첸은 낯선 사내 서너명이 만석이와 같이 마당에 있는 것을 보고 주춤했다.


“자네가 이 아이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그 중 하나가 우왁스러운 목소리로 클레첸에게 소리쳤다. 그들은 울먹거리는 아들 만석이의 뒷덜미를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었다.


“그렇소만...무슨 일이시오...”

클레첸은 다가가 울고 있는 어린 아들 만석이를 감싸 안았다.


“이놈이 우리 나으리가 아끼시는 귀한 도자기를 깨고 도망을 가다 붙잡혔소.”


“아니에요. 저 아저씨가 일부러 지나가는 나한테 와서 부딪히고 자기 혼자 넘어져서 깨진 거에요”

만석이가 울부짖듯 아니라고 소리를 쳤다.


“잠...잠깐만...무슨 도자기 말이요...자네같은 장정이 이런 어린 꼬마한테 부딪혀 넘어지다니요?

무슨 그런 무슨 말도 안되는....”

클레첸은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며 갑자기 닥친 이 어지러운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그깟 꼬마 말은 들을 필요도 없고 도자기 값으로 쌀 세가마니 값을 내놓으시오.

억울하면 원님한테 같이 가서 따지시든가.”


“뭐? 쌀 세가마니라니···”

한끼도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살아가는데 갑자기 난데 없이 낯선 남자들이 나타나 쌀 세가마니 값을 물어내라니...


사내들은 거칠게 만석이를 내려 놓더니 이렇게만 말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밤새 끙끙 앓으며 고민하던 클레첸은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아이의 손을 잡고 관아로 향하였다. 그러나 관아의 아전들은 클레첸이 원님을 만나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추운 밖에서 원님을 기다리다 어린 만석이가 너무 춥고 배고파 하자 어쩔 수 없이 그냥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클레첸은 이땅에서 사는 자신과 가족의 처지가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고향 네덜란드에서도 그리 풍족하게 사는 편은 아니였으나 이곳 강진에 온 뒤로 조선에서의 귀양살이 하루하루가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만일 아이들과 아내가 없었다면 그는 그가 믿는 성모 마리아님에게 죄를 짓는 한이 있더라도 뒷산 소나무에 목을 매달았을지도 모른다.


기가 막혀 한참을 멍하니 있던 클레첸에게 갑자기 호비첸이 다시 찾아 왔다.

그는 손에 생선 한꾸러미과 좁쌀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너무나 배가 고픈 클레첸의 식구들은 그것의 출처를 물을 겨를도 없이 솥을 준비해 밥을 먹을 준비를 시작 했다


클레첸의 아내는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못한 터라 서둘러 솥안에 좁쌀을 넣고 생선살을 발라 어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을 가득 붓고 죽을 만드는 동안 호비첸은 클레첸을 밖으로 불러 냈다.


“어찌 된 일인가?

내 오늘 관아에 일이 있어 들렸다 자네 아이 얘기를 들었네...

어쩌다 그만 장터의 불한당 놈들한테 시비가 걸렸는가?”


“나도 모르겠네....사또는 만나주지도 않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으이.

갑자기 나보고 아이가 깨뜨린 도자기 값으로 쌀 세가마니 값을 내놓으라고 하지 뭔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이게 대관절 무슨 일인가 싶네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살림에 쌀 세가니가 말이 되는 소린가.”


“흠...내가 관아에서 아전한테 들었는데만 그놈들은 이곳 장터에서 소문난 왈패들이라고 하더군....하두 험해서 사또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좌우간 어떻게든 그놈들한테 성의 표시라도 해야 되지 않겠나.”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만큼 성의 표시할 돈을 어디에서 구하겠나....”

클레첸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이 마을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하나 알고 있네만....”


“대체 누구...말인가?”


“자네도 아는 사람이라네....”


호비첸은 차마 클레첸을 똑바로 쳐다 보지 못하고 그의 시선을 피해 저 멀리 떠있는 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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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다. 17.07.20 266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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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밀무역을 모의하다 (2) 17.07.19 281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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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679년, 암스테르담, 동인도회사 (1) +1 17.07.12 557 17 16쪽
3 회색모자의 남자, 디포씨 +1 17.07.12 647 16 12쪽
2 암스테르담 항구의 남매 +2 17.07.12 875 15 10쪽
1 프롤로그 +4 17.07.12 1,500 19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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