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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심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은 신대륙을 발견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뱃심
작품등록일 :
2017.07.12 08:51
최근연재일 :
2017.07.31 02:25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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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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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9,586

작성
17.07.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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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멀어지는 고향, 작아지는 희망

DUMMY

강진에서의 감금 생활의 일상은 단조롭고 무의미했다. 그냥 눈뜨면 먹고 자고 그리고 마을을 돌며 식량을 구걸하는 것이 전부였다.

마을의 사또는 도착한 날 이후에는 클레첸과 일행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고을 아전이라는 자들도 달포에 한번씩 나타나 울타리 너머로 한번 쓱 살펴 보고 가는 정도 였다.

마치 아무 사고도 치지 말고 적당히 지내다 역병이라도 걸려 알아서 죽어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처음에는 아전들이 쌀을 조금씩 가져다 주었으나 얼마 뒤부터 마을 사람들이 보름에 한번 정도 보자기에 담아서 갖다 주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호비첸은 바닷가로 나가 갯벌에서 꼬막이나 입에 들어 갈만한 것은 모두 닥치는대로 주워왔다.

호비첸이 바닷가에서 수렵채취활동을 했다면 클레첸과 또 다른 한명의 젊은 선원은 산에 올라가 먹을 만한 나무열매와 나물 따위를 캐왔다.

운이 좋은 날에는 산에 쳐놓은 어설픈 덫에 눈 먼 꿩 같은 것도 잡혔는데 그럴때마다 셋은 산속에서 몰래 불을 피워 놓고 잡힌 꿩을 구워 먹으며 서로의 앞날을 의논했다.

“이봐. 클레첸. 이제 자네는 여기가 어딘지 감이 오나?”

호비첸이 먼저 묻기 시작했다.

“그들 말로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전라도, 강진이란 곳 아닌가?”

기록에 밝은 클레첸이 정확히 대답했다. 호비첸은 그의 말에 상세히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별자리를 보면서 계산해보니 이 곳은 아마도 나가사키에서 북서쪽 정도 떨어진 곳 같더군. 우리가 처음에 표류한 곳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고 말이야.

그러면 표류하기 전 최초 항로를 기준으로 계산해봤을 때 여기서 나가사키까지는 대충” 삼백여 킬로미터 정도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네”


“우리가 처음 출발한 암스테르담까지는 얼마나 멀리 있는 거죠?” 젊은 선원도 끼어 들면서 급하게 물었다.

“암스테르담까지는 흠....대략 배로는 자카르타까지 삼천육백 킬로미터 정도 잡고 거기서 아프리카의 희망봉까지 만킬로미터를 더 잡고 거기서 또 다시 암스테르담까지 다시 만킬로미터 이상을 더 가야 하니 대충 이만사천에서 이만오천 킬로미터 정도라고 해야 겠군.”

“이만 사오천 킬로미터요? 그정도나 멀어요?

그정도면 거의 지구를 반바퀴 도는 거 아닌가요?

배로는요? 얼마나 걸리나요?” 젊은 선원은 울듯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간절하게 물었다.

“이봐 젊은 친구....

그건 어떤 배를 타느냐, 어느 계절에 타느냐에 따라 크게 다르기 때문에 쉽게 말하긴 힘들어.

문제는 여기에 우리가 집까지 타고 갈만한 배가 없다는 거지.

이곳의 어부들이 고기 잡는 저 따위 나룻배를 타고는 백킬로도 가기 전에 뒤집혀서 상어밥이 되고 말걸세.”


호비첸의 비극적인 전망에 클레첸과 젊은 선원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말일세 여기서 삼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나가사키까지만 갈 수 있다면 그곳에 있는 네덜란드 상관(商館)에 가서 고향에 가는 배를 탈 수 있네.”

“나가사키요? 그럼 여기서 나가사키까지 가는 배를 구하기만 하면 되는 거네요? 그건 할 수 있잖아요. 우리 당장 하죠”

“뭐가 당장 할 수 있어? 할 수 있으면 내가 벌써 했지...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떠는 거야!”


호비첸의 호통에 눈만 껌뻑이는 젊은 선원에게 클레첸은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불행히도 우린 지금 그만한 배를 구할 수가 없네.

살 돈도 없고 배를 만들 장비도 없어. 그렇다고 저들이 우리를 태워서 나가사키까지 데려다 주겠는가.

도리어 이곳 마을사람들은 우리가 도망갈까봐 항상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감시 하고 있어.”

“그래. 클레첸의 말이 아주 정확하네. 여기서 섣불리 움직이다간 또 다시 바다에서 표류하거나 아니면 출발하기도 전에 붙잡혀서 매를 맞을 수도 있어. 지난번에 사또가 도망치다가 붙잡히면 우리들 발가락을 잘라 버린다고 하지 않았나.”

클레첸 일행은 이곳 마을의 사또라면 분명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호비첸.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죠? 여기서 평생 이렇게 살다 늙어 죽을 건가요?”

“이봐. 그러니까 내 말은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거야.

한번만 실패해도 우린 전부 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단 말을 한걸세.”

“좋아요. 잘 알겠어요.

그럼 문제는 어떻게 이 마을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고 나가사키로 가는 배를 구하느냐···그거죠?” 젊은 선원의 말에 호비첸과 클레첸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클레첸에게 이 상황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배를 구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만일 산속에서 나무를 잘라 목재를 구해다가 직접 배를 만들다가는 금방 포졸들이나 마을 사람들한테 들킬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 곳 마을 사람들은 쌀을 갖다 주면서도 항상 클레첸을 감시하는 사람들 아닌가.

몇몇 마을 사람들은 사또의 명으로 쌀을 가져다 주러 클레첸의 집에 들릴 때마다 집안 곳곳을 은밀히 살펴보았는데 클레첸은 그 사람들이 사또로부터 자신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배를 만들게 아니라면 돈을 주고 사거나 아니면 이곳 어부들에게 태워 달라고 매수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애당초 빈털털이인 이들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더구나 이곳 마을에는 나가사키는 고사하고 근처 연안 바닷가 십리 이상을 나가 본 적이 없는 어부들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한가지가 남았는데 훔치는 것 뿐이였다.

호비첸은 틈틈이 바닷가로 나가 어부들이 타고 들어오는 낡은 목선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 중에 훔칠만한 배가 있는지 어수룩한 어부가 있는지 지켜 보았다.


클레첸이 보기에 호비첸의 속셈은 너무나 명확해 보였다 .하지만 호비첸은 좀처럼 더 이상 그의 속내를 말하지 않았다. 클레첸은 그가 돌발 행동이나 할까봐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다.

*****

클레첸에게는 관아에서 명을 받고 매번 쌀이나 채소를 가져다 주는 아낙이 있었다. 클레첸은 매번 그녀가 올 때마다 그녀를 붙잡고 한참 동안 이 나라 조선의 언어를 배우곤 했다.

그녀는 키는 작았지만 이 마을에서는 꽤 젊고 이쁜 편이었다.

그녀는 시집 온지 불과 보름만에 어부인 남편이 바다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혼자 삯바느질과 관아의 일을 돕는 것으로 먹고 산다고 했다.

바닷가에서 오래 지내온 까닭에 검게 그을린 얼굴에다 거친 손이였지만 항상 상냥한 목소리로 클레첸의 두서없고 귀찮은 수많은 질문에도 상냥하게 잘 대답해주었다.

클레첸은 말동무를 해주는 그녀 덕에 조금씩 웃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클레첸에게 암흑과도 같은 감금생활에서 유일한 위안이 되어 주었다.

반면 호비첸이나 젊은 선원에게는 그럴 일이 없었다. 그 둘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무뚝뚝한 편이였다. 특히나 호비첸은 이 곳 여자들을 싫어 했는데 냄새가 나고 몸에 벼룩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호비첸과 젊은 선원, 그 둘은 전혀 이곳에 정을 못 붙이고 언제든 이 지긋지긋한 마을을 탈출하고만 싶어했다.

세월은 하릴 없이 흘러 가서 셋이 이 곳에 온지도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가던 때였다.

하루는 클레첸과 젊은 선원이 얕은비가 오는 날에 꿩을 잡으러 쳐놓은 덫을 보려고 산에 올라갔다.

“이봐요. 클레첸. 저기 좀 봐요.”


“뭐 말인가?” 클레첸이 쳐놓은 덪을 살펴보느라 정신 없으면서 대답했다.

“저기 바위 틈에 핀 꽃이요. 정말 예쁘지 않나요?

저렇게 예쁜 꽃은 난생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젊은 선원은 언덕 아래에 있는 바위 틈에 핀 꽃이 아름답다며 꽃을 따러 맨발로 미끄러운 바위 언덕을 엉큼대며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클레첸은 그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가 지난번에 쳐놓은 덫을 찾느라 덤불 속을 뒤지고 있는 동안 그의 등뒤로 무언가 둔탁하게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클레첸이 선원을 찾아 바위 밑으로 내려갔을 때는 그는 이미 바위 밑에 떨어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클레첸은 그를 서둘러 업고 마을에 도착했건만 이미 선원의 온 몸이 피로 흥건히 적셔져 있었다.

좀 있다가 아전 한명과 포졸들이 와서 젊은 선원의 숨을 확인하고 거적에 둘둘 감아서 소가 끄는 마차에 실고 가버렸다. 거적 사이로 삐져 나온 젊은 선원의 손에 이름모를 꽃이 꼭 쥐여져 있었다.

이때가 1665년,조선의 임금, 현종 즉위한지 칠년 째 되던 해였다.

*****


젊은 선원의 죽음 이후 클레첸은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런 그에게 호비첸은 자신이 산에서 딴 나무열매로 몰래 담근 과일주를 따라 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보게..클레첸 힘을 좀 내게···내가 보기에 그 친구는 너무 겁이 많아서 결국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야···”


호비첸의 말은 클레첸에게 그다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 날 밤 클레첸은 꿈을 꾸었다. 꿈에서 클레첸은 자신이 영원히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혼자서 쓸쓸히 늙어 죽는 모습을 보았다.


눈을 뜨자 그 꿈은 현실로 느껴졌고 한동안 미쳐버릴 것 같은 불안감과 고독감에 시달렸다.

몇날 며칠을 끙끙 앓던 클레첸에게 어느날 관아의 아전이 와서 그와 호비첸을 사또가 있는 동헌(東軒)으로 데리고 갔다.

사또는 늘 그랬듯이 높은 마루위 의자에 앉아 그밑에 쪼그리고 서있는 호비첸과 클레첸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큰 선심을 베풀 듯이 갑자기 한쪽 구석에 서 있던 두 아낙네를 부르더니 각자 여기 한 여인씩 데리고 가 짝을 지어 혼인하라고 하였다. 마을의 아낙네 중 한명은 클레첸의 집에 매번 쌀을 가져다 주던 키 작은 과부였다.

그 때 클레첸은 극도의 고독과 절망감에 빠져 있었기에 때마침 누군가 내밀어 주는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는 주저 없이 자신에게 쌀을 가져다 주던 과부 아낙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 아낙네는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창피한 듯 머뭇거리다 마지 못해 끌려가는 것 처럼 클레첸의 손에 이끌려 갔다.

과부가 코쟁이한테 끌려 간다는 주위의 수군거림도 그녀한테는 들리지 않았다.

문제는 호비첸 이였다. 그한테는 남은 것은 이 마을에서 꽤 나이 있어 보이는 과부였다.


마을이 어촌인지라 남편 없는 과부가 얼마든지 흔한 곳이여서 필시 사또는 마을의 과부중에 아무나 골라서 데려왔을 것이였다.

그러나 호비첸은 평소 그의 생각처럼 남아 있는 과부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사또에게 말했다. 그의 조선말은 그동안 많이 늘어 있었다.


“여보시오. 사또. 나는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바다에서 지내온 뱃놈이외다. 근데 젊은 시절 잡아 올린 상어세키가 내 불알을 물어 뜯어 그날부터 내 몸이 여자한테 제대로 말을 듣지 않소.

그리하여 난 저 여인한테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사또의 말씀처럼 저 여인을 데리고 살 수 없소이다.”

물론 호비첸에게 그런 신체상의 장애는 없었다. 그는 생각나는대로 자기 딴에는 가장 좋은 핑계거리를 생각해낸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또의 호의에 찬 분부를 단번에 거절하였다.

사또는 자신의 호의를 거절한 호비첸을 괘씸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전과 포졸에게 명하여 호비첸에게 곤장 열대를 때리라고 하고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철퍼덕 철퍼덕”


호비첸이 궁둥이 까자 마자 철퍽거리며 곤장이 그의 볼기에 떨어졌다.

그의 곤장 맞는 소리를 뒤로 하고 클레첸은 여인을 데리고 관아에서 빠져 나왔다.

이제 클레첸은 호비첸과 떨어져서 마을 어귀에 작은 초가집에 살림을 차리고 그 앞에 밭을 일구며 사또가 점찍어준 아내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을 <염씨>라고 알려줬는데 클레첸은 그게 이름인 줄 알고 염씨라고만 불렀다.

한편, 볼기를 맞고 풀려난 호비첸은 그대로 살던 낡은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이 마을 유생(儒生)이라는 늙은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높은 갓을 썼고 백세포라는 하얀 긴 잠옷 같은 것을 입었다.

늙은 남자는 자신이 이 마을의 장로(長老)이며 학식이 높은 자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클레첸과 호비첸에게 이제 조선사람이 되었으니 조선식 이름을 지어 주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그들은 부르기 힘든 네덜란드식 이름 때문에 각자 특징을 딴 별명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붉은 머리칼의 클레첸은 붉은 머리라고 해서 홍발이,

금발인 호비첸은 머리가 금발이라고 해서 금발이


둘은 이미 친숙한 별명이 있어 그의 제안이 별로 필요 없어 보였지만 그냥 그 자가 하는대로 냅뒀다.

늙은 남자는 클레첸에게 그의 이름이 발성되는 방식을 따 구(具)라는 성씨(姓氏)와 그가 말한 고향의 위치를 따서 남만(南蠻)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구남만···클레첸의 귀에는 괜찮게 들렸다. 그의 아내 염씨도 좋은 이름이라고 박수를 쳐주었다.

호비첸에게도 호(湖)라는 성과 그의 빛나는 금발 머리를 따서 요발(曜髮)이라는 이름을 지워줬는데 호비첸은 그 이름이 똥오줌 같이 들린다며 아에 기억할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


또 그렇게 몇 달 뒤, 다시 날이 쌀쌀해질 무렵, 클레첸과 호비첸은 다시 관아로 불려 가게 되었다.

사또는 여전히 높은 마루위 의자에 앉아 마당에 고개를 조아리고 서 있는 그 둘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사또의 옆에는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아전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옆 동네 ‘해남’이란 고을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호비첸에게 맨 처음 해변가에 쓰러진 자네들을 발견해서 관아로 끌고 간 바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했다.

순간, 그 사실을 알게된 호비첸의 입이 위아래로 씰룩거렸다.

‘그래 저 망할 자식이 그 때 바닷가에 있던 우리를 붙잡아 한양으로 보낸 놈이로구나. 저 놈 덕분에 돼지죽으로 연명하면서 여자들 앞에서 발가 벗겨진채 원숭이 춤을 춰야만 했지···저 때려 죽여도 속이 시원찮을 놈 같으니라구···’

호비첸 옆에서 클레첸은 ‘저놈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호비첸의 증오감이 그대로 자신에게까지 전달되어 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둘은 여기서 이방인 이였다. 아무리 오래 이곳 사람들과 섞여 산다고 해도 그들의 머리색과 눈동자색이 변하는 것은 아니였다.

해남에서 온 아전이 호비첸과 클레첸에게 물었다.

“해남 앞 백사장에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배 한척이 모래톱 위에 걸려 있는데 그 배가 혹시 자네들이 타고 온 배가 맞는가?”

‘배라니? 혹시 테르미도르 호 말인가? 그 배가 아직까지 침몰하지 않고 표류하다가 모래톱에 걸려 있다고?’ 클레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해남에서 온 아전은 계속 말했다. “만일 자네들이 그 배의 주인이라면 그 배안의 물건은 너희가 가져도 좋는 사또의 명이네."

흐흠 거리며 그는 이번에는 이 나라 조선의 법도라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 조선에는 법도란 게 있네. 그 법도에 따라 비록 자네들이 오랑캐라고는 하나 배안의 것은 애초에 자네들의 소유이니 자네들이 가져 가도 좋다는 해남 고을 사또의 아량 넓으신 분부가 있으셨네.”

이어서 강진의 사또가 말을 덧붙였다.

“단 그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은 절대 안되네. 만일 그랬다가는 자네들 발가락을 다 잘라 버릴 것이야”

호비첸은 욱하고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바다로 나가면 안된다니? 누가 우리한테 그런 법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난 뱃사람이고 이 나라 사람도 아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마땅히 돌려 보내줘야 할 것을 이들은 나를 억지로 감금하고 있는 것이다!’


호비첸은 그렇게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함부로 행동할 시에 또 다시 볼기를 까고 곤장을 맞을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당장 저들을 때려눕히고 배가 있다는 그 곳으로 달려가 배를 타고 이곳에 탈출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 할 일은 해남의 바닷가에 가서 모래톱에 좌초된 배가 진짜 테르미도르 호 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였다.

호비첸과 클레첸, 둘은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하고 멀리 해남까지 갈 채비를 했다. 날이 밝자 마자 그 둘은 해남 에서 온 아전 한명 그리고 자신들을 감시할 포졸 두명과 함께 서둘러 해남땅으로 출발했다.

강진에서 해남에서 까지는 사오십리가 훨씬 넘는 거리였다. 한참을 걸어서 그들은 늦은 오후가 되서야 간신히 해남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해남고을의 포졸 두 명이 마을 입구에 나와 그들을 맞이 했다. 클레첸과 호비첸은 그들의 안내로 배가 있다는 바닷가로 바삐 뛰어 가보았다.

저 먼 바닷가 언덕에 비쭉이 솟아 있는 돚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돛대만 보고도 호비첸은 그 배의 정체를 알아 챌 수 있었다.

‘테르미도로 호 다!’

지난 몇해동안 보고 싶어 얼마나 수천번 외쳤던 이름이였던가. 테르미도르호를 다시 본 호비첸과 클레첸은 감격의 눈물이 솟아 났다.


테르미도르호는 바닷가 모래톱에 비스듬히 걸쳐 넘어지지 않으려고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 범선은 늙은 노인처럼 누군가 조금만 밀기만 해도 금새 넘어질 것처럼 쇠약해져 있었다.

배의 우현에는 여기저기 목재가 흉하게 뜯겨져 나가 사람이 드나 들 정도로 큰 구멍이 나 있었고 돚대는 찢겨져 펠트천이 바람에 흉하게 날리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이 배를 타고 다시 바다로 나가기는 글러 먹었다. 하긴 이 배는 지난 일년 넘게 이 바닷가 모래톱에 걸쳐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상태로 모진 비바람을 맞고 혼자 서있었다. 넘어지지 않고 버텨준 것이 기적이었다.

클레첸은 그동안 바다에 가라 앉지 않고 흘러 다니다 이렇게 낯선 땅에 도착해 홀로 버텨준 테르미도르호가 고마웠다.

그리고 이 배가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남몰래 코를 훌쩍였다.

잠시 뒤, 둘은 배의 갑판으로 올라가 배의 선미의 격자 천정을 들어 올리고 컴컴한 배안으로 들어 섰다.

“우웩”

그리고는 지독한 냄새에 토하며 곧바로 밖으로 뛰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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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실종된 배 - 테르미도로 호(號) +2 17.07.13 470 16 17쪽
5 1679년, 암스테르담, 동인도회사 (2) +1 17.07.13 467 17 12쪽
4 1679년, 암스테르담, 동인도회사 (1) +1 17.07.12 556 17 16쪽
3 회색모자의 남자, 디포씨 +1 17.07.12 647 16 12쪽
2 암스테르담 항구의 남매 +2 17.07.12 873 15 10쪽
1 프롤로그 +4 17.07.12 1,498 19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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