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뱃심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은 신대륙을 발견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뱃심
작품등록일 :
2017.07.12 08:51
최근연재일 :
2017.07.31 02:2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9,552
추천수 :
175
글자수 :
139,586

작성
17.07.16 01:07
조회
352
추천
8
글자
19쪽

해남에서 다시 만난 테르미도르 號

DUMMY

테르미도르호는 1660년 건조될 당시, 최초의 용도는 군선(軍船)을 목적으로 한 최신식 갈레온(Galleon) 형태의 범선(帆船)이였다.

당시 이러한 형태의 범선은 17세기 영국 해군의 주력 군선(軍船)이였는데 타고난 장사꾼들인 네덜란드 사람들은 군용선(軍用船)을 대양(大洋)간 무역을 위한 상선용(商船用)으로 개조해서 인도양과 대서양을 횡단하는 주력 노선에 투입했다.


그리고 곧이어 갈레온 범선들은 주력 노선에서 다른 범선보다 한달정도 빠른 월등한 항해능력을 입증하였다. 결국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자신들의 주력 노선인 아시아-인도차이나 노선에 갈레온 범선들을 투입되기 시작했다.


테르미도르호는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건조한 최신형의 범선이라는 그 명칭에 걸맞게 세개의 대형 돛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배의 맨 밑에 좌우 균형을 잡는 밸러스트 쇄석(碎石)을 제외하면 내부는 모두 3층 갑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정도 배의 크기에 선원이 백명 정도라면 파도가 거칠기로 소문난 아일랜드의 앞바다나 동중국해를 경유하는 신대륙 항로를 쉬지 않고 거뜬히 왕복할 수 있을 정도의 범선이였다.


그리고 그만큼 최고를 자랑하는 몸값이 비싼 범선이였다. 규모로 보나 성능으로 보나 당시 회사에서 자랑하는 최고의 범선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테르미도르호 앞에서 클레첸은 잠시동안 자신이 난파 되었던 몇 해 전 그날 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만약 그날 밤, 동중국해에서 맞닥뜨린 거친 폭풍우만 아니였더라면 테르미도르 호는 아직도 우람한 자태를 뽐내며 동서양의 진귀한 보물을 가득 실은 채 대서양이나 인도양 어딘가를 항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클레첸이 눈을 뜨고 현실로 돌아와 보면 표류한지 일년만에 돌아와서 만난 테르미도르호는 낯선 땅에서 자신의 하반신이 모래톱에 파묻힌 채 쇠약한 병자처럼 제 몸도 가누지 못하고 점점 좌현쪽으로 조금씩 서서히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해가 석양으로 기울어가자 노을에 핏빛으로 물들은 테르미도르 호는 이전에 그 화려한 외관은 간데 없고 그렇게 처량하게 보일 수 없었다.


옆에 있던 해남 고을의 아전이 한참만에 말문을 열었다.


“작년 가을 즈음 자네들이 한양으로 이송되고 난 지 몇 달 후 였네.

어느 늦가을날에 태풍이 해남 앞바다를 무섭게 휩쓸고 지나간 뒤였지.

어부들이 그 다음날 바다에 나가보니 밤사이에 저 배가 귀신처럼 여기까지 떠밀려 와서 서있지 뭔가....”


해남 고을 아전은 그동안의 궁금했던 이야기를 상세하게 더 해주었다.

“배가 모래톱에 걸리자 호기심 많은 마을 사람들이 배안에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네. 그렇지만 아무런 사람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거야.

대신에 그들은 배안에서 쓸만한 물건을 집어 들고 나왔네.

그렇게 배안의 물건들이야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와서 웬만한 건 다 집어가는 바람에 뭐가 남아 있을 지 잘 모르지만...일단은 뭐 들어가서 찾아보게나”

“근데 이런 걸 왜 한참이 지나서야 이제서 연락 하셨소?” 호비첸이 불만섞인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물어봤다.

“우리가 자네들이 누군지 알아야 연락할 것 아닌가.

우리도 자네들이 옆마을에 유배 생활 하고 있다는 소문을 얼마 전에야 들었네.

강진 고을 사람들이 자네들 안부를 사방팔방 자랑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옆마을 사정을 어찌 알겠나?”

생각해보면 해남 고을 아전이 말이 백번 옳았다.


“우리도 불과 얼마전에야 장돌뱅이들을 통해 옆마을에 표류해온 코쟁이 이양인(異壤人)들이 산다는 소식을 들은 거라네.

그전에야 자네들 행방을 모르니 연락할 방도가 없지 않은가.”

“혹시 우리말고 살아 있다는 선원들 소식은 들은 게 있으시오?”

클레첸이 안타까운 마음에 동료들을 소식을 물어봤지만 아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조선 팔도에 그들이 어디에 흩어져 사는지 알 턱이 없지 않나.

그나마 자네들은 운이 좋은 거여.

따뜻한 남쪽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됐으니 말일세.

아마도 북쪽으로 갔거나 섬으로 간 사람들은 사는게 지옥 같을 걸세.

만일 자네들도 북쪽이나 섬으로 갔다면 광산에서 일하거나 염전에서 갈퀴질이나 했을지 모를 일이야”

이게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인가 아니면 화를 내야 할 일인가 하고 클레첸은 헷갈렸다.

‘그래···이렇게 밥이라도 굶지 않고 사지가 멀쩡하게 붙어서 살아 있으니 바다에 가라앉은 동료들에 비하면 나에게는 이것이 신께서 내려주신 가호일지도 모르겠군....’


클레첸은 해남 아전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겪는 이 고생이 행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남의 아전은 계속해서 거들먹거리며 그들의 나라가 자신들에게 큰 선심을 쓰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이렇게 자네들이 여기 오게 된 것도 새로 부임하신 이곳 해남의 사또께서 맘이 너그러우셔서 그런거라네. 자네들이 거기 있는 걸 아시고는 원래 배의 주인이 물건을 챙겨 가도 좋다고 특별히 허락하셨기 때문이야.”

클레첸과 호비첸은 시끄럽게 떠드는 아전을 뒤로 하고 배 주위를 둘러 보며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배를 살펴 보면서 클레첸은 생각했다. 만일 지옥에도 물건을 실어나르는 화물선이 있다면 지금 테르미도르 호가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만큼 테르미도르호는 곳곳이 썩어 문드러지고 찢겨져 마치 유령선 같았다. 갑판에 발을 내딛는 부분마다 심하게 썩어서 밭밑이 삐꺽거리며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비첸은 마치 의사가 환자를 돌보듯 상처투성이의 배를 꼼꼼히 살피며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었다.

그는 특히 배의 뼈대가 되는 용골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면서 목재를 두들겨도 보고 냄새를 맡아 보기도 하였다.

호비첸은 그가 비록 항해사 치고는 젊은 나이 이기는 하였으나 어릴 적부터 항구에서 뱃놈짓을 해오며 항해술 뿐 아니라 조선소에서 배 만드는 과정도 오랫 동안 보아 왔기 때문에 웬만한 목수보다도 배의 구조나 상태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었다.

배를 살펴보는 호비첸에게 클레첸이 다가 갔다.

“이봐. 호비첸....정말 이 배가 테르미도르 호가 맞는가?

그 아름다웠던 배가 이렇게 될 줄이야...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 하구만...

이건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는 죽기 직전의 환자같지 아니한가?”

“아니야...” 호비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응? 대체 뭐가 아니라는건가?”

“ 여기 보게. 이 단단한 티크목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용골(龍骨)을.

배의 가장 중요한 뼈대인 용골이 아직 썩지 않고 버티고 있어.”


그러면서 클레첸의 손을 들어 배의 용골을 직접 만져보게 했다.

“이 배의 밑바닥은 구리판을 입혔고 거기다 여러차례 훈연(燻煙)을 쏘여서 쉽게 부식되지 않도록 만들었지.

여기 용골도 마찬가지야. 특별한 훈연과정을 거치고 약재를 덧발라 바닷물에도 잘 썩지 않도록 만든 거라네. 왜냐하면 이 배는 애초에 내구성이 극대화된 군선(軍船)을 목적으로 특수하게 제작되었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말인가? 난 당최 알아 들을 수가 없네···호비첸”

“만일 말이야 목재와 돛대의 천만 보강해서 다시 수리한다면 다시 뜰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클레첸은 호비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진 테르미도로호가 다시 돛을 펴고 바다로 나갈 수 있다니...

지금 유령선같은 테르미도르호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날이 더 어두워 지기 전에 배의 내부를 다시 살펴보기 위해서 호비첸과 클레첸은 아전으로부터 횃불을 넘겨 받았다. 그들은 아전과 포졸들을 밑에 남겨두고 다시 갑판 위로 올라갔다.

갑판위 돛대에 연결된 활대는 모두 다 부러져 있거나 소실되어 있었으며 돛과 활대를 연결하는 활대줄은 이미 오래전에 다 끊어져 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돛대에 매달린 쟂빛 펠트천은 갈갈이 찢겨져 마치 봄날 미친년 치마자락처럼 바닷바람에 흉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애당초 큰 기대도 없었지만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채 신음하는 테르미도르호를 본 클레첸은 마치 친한 친구가 다친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한편 호비첸은 지독한 냄새를 무릅쓰고 다시 선내로 들어가려 갑판위에서 진입할 틈을 찾아 보았다. 이번에는 선수 쪽이 아니라 배 뒤쪽의 고물로 들어가기 위해 나무토막을 치우고 후미 선실로 배 안으로 진입했다.

절뚝이는 호비첸을 뒤따라 클레첸도 같이 힘겹게 몸을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안에서 후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누군가가 짐승처럼 밖으로 뛰쳐 나왔다.

시커먼 한 놈이 튀어 나오자 그것을 신호로 동시에 서너명이 같이 배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그들은 저 멀리 바닷가 숲쪽으로 뛰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밑에 있던 포졸들이 도망치는 그들을 잡으려 쫒아 갔다.

시커먼 거적으로 몸을 감싼 그들은 바닷가의 어두움 속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걸음으로 뛰어서 저 멀리 어두운 숲속으로 도망쳐버렸다.

“잡지마! 그냥 냅둬...그놈들이여...”

해남 아전이 그들을 쫒아가던 강진 포졸들에게 뒤에서 말렸다.


“풍병에 걸린 놈들이여 .이 곳은 저놈들이 그동안 피막으로 썼던 곳이고...”

클레첸과 호비첸은 이 말이 무슨 뜻이지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번에 그 뜻을 알아채고는 배에서 저만치 뒤로 물러섰다.

“원래 저쪽 바닷가 움막에 있던 놈들인데 작년 겨울에 추위를 피해 쥐세키마냥 이 배 안으로 기어 들어온 모양이여”

포졸들도 식겁해서 해남 아전에게 물었다.

“왜 안 죽고 아직까지 저 지랄이래요?”

“그걸 젠장 내가 어찌 아나. 문둥이 목숨도 다 하늘이 정하는건데.

하여튼 그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이 배에 접근하지 않게 됐고 그래서 그나마 요모양 요꼬라지 만큼이라도 배가 남아 있는거 아니겠나.

아니면 지난 겨우내 땔감한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뜯어 갔을텐데 말이야.”

“꼭 귀신 나오게 생긴 것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쁩니다요.

그만 하고 어서 객사로 돌아가 탁주나 한잔 하고 싶습니다요.” 포졸들은 아전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졸랐다.

“알겠네. 자네들이야 그 맛에 포졸하는거 아니겠나”


아전이 클레첸에게 소리쳐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했다.

“이봐! 거기 코 큰 자네. 날도 어두운데 이제 그만 뒤지고 내려오게.

낼 아침에 다시 하든간에.”

하지만 클레첸과 호비첸은 잠시도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저희는 밤새서라도 좀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가실려믄 가시지요”

“아따. 저 코쟁이놈. 참 짜증 제대로 나게 하네 그려” 아전은 투덜 거리며 그들을 지켜볼 포졸 한명만을 남겨둔 채 객사로 가버렸다.



남겨진 포졸은 지겨운 듯 이내 하품을 하더니 뒤가 마려운지 수풀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남겨진 호비첸과 클레첸, 둘은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배의 내부를 횃불로 밝혀 보며 상태를 꼼꼼히 살펴 보았다.

도망간 자들이 남겨 놓은 코를 찢는 듯한 악취 속에서 호비첸은 배의 후미 고물에 있는 선장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물건을 들썩일때마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가끔씩 쥐세키들이 튀어나와 달려드는 바람에 클레첸은 기겁을 했다.

하지만 호비첸은 전혀 표정의 변화도 없이 계속해서 선장실 주변으로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 것처럼 꼼꼼히 이것저것 뒤지고 있었다.

이미 죽었지만 원래 테르미도르호의 선장은 이 배와 같이 항해를 한 것이 그 때가 첫경험 이었다.

도리어 이 배에 관해서라면 호비첸이 선장보다는 몇 배 더 잘 알고 있었다.

호비첸은 테르미도르호와 비슷한 갈레온 배를 타고 자카르타에 서너번 이상 왕복해 본 경험이 있었다. 특히 갑판원 시절에는 나가사키에도 한번 갔다 온 적이 있어 그 곳 사정도 잘 아는 편이었다.

그렇게 호비첸은 비록 젊은 편이기는 하나 선원 중에 가장 경험 많은 일등 항해사 였다. 그런 그가 무엇가를 찾고 있다면 그건 틀림없이 중요한 것이라고 클레첸은 생각했다.

“젠장”

호비첸이 나무판자를 마구 집어던지며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젠장! 도대체 쓸만한게 없어! 다 집어 처먹었는지 밑을 닦았는지 없다구.”

“이봐 진정해. 호비첸.

무려 이년에 가까운 시간이야. 게다가 우리가 이미 폭풍우 속에서 많은 화물을 바다로 던져 버렸잖나. 무언가 제대로 남아 있는게 이상한거야.”

그 말을 듣고도 호비첸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말리는 클레첸을 뒤로 하고 긴 나무막대를 구해왔다. 이번에는 그것을 지레대 삼아 이번에는 선장실 나무 바닥을 뜯기 시작했다.

클레첸은 호비첸이 무슨 쓸데 없는 이유로 그렇게 애써가면서 바닥을 뜯는 건지 의아했다. 저러다 가뜩이나 썩어서 쓰러져 가는 배를 더 상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호비첸이 힘을 주어 나무닥대를 누르자 우드득 하고 뜯겨져 나간 나무판자 바닥아래로 자물쇠가 채워진 나무상자가 하나 나타났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호비첸이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반색하며 흐흐흐 웃음을 흘렸다.

“여기는 선장하고 나밖에 모르는 곳이거든.”

호비첸은 주워온 돌로 자물쇠를 수차례 힘껏 내려친 뒤에야 간신히 나무상자를 열 수 있었다.

클레첸은 호비첸의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그 안을 살펴 보았다. 그 안에는 열자루의 플린트식 라이플 소총과 짧은 총렬의 뇌관총 한자루가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화약과 탄환, 마지막으로 선장이 애지중지하던 럼주도 몇병 같이 나왔다.

총을 들어내자 한겹 밑에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가죽 주머니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육두구,정향,백리향 등 비싼 향료들이 종류별로 조금씩 기름종이에 싸서 주머니별로 나눠져 담겨 있었다.

“그래 좋았어. 이건 설마 몰랐겠지”

호비첸은 일단 나무 상자를 그자리에 냅두고 이번엔 갑판으로 올라가 선수쪽에서 무언가 찾기 시작했다.


“호비첸. 뭘 그리 찾는 거야? 나한테도 좀 알려줘”

“내가 항상 지니고 다녔던 건데...자네도 알지?

내가 갖고 다니던 내 개인 항해 지도와 나침판.....”

항해를 출발한 다음에 얼핏 본적이 있었다. 호비첸은 선장이 갖고 있는 지도와 나침반 말고 자신만의 지도와 나침반이 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가 처음 항해사가 되었을 때 전임 사수가 자신이 아끼던 것을 선물로 준것이라고 들었다.


“그런게 남아 있을리가 없잖나. 숨겨 두지 않았다면 누군가 다 집어가고 없겠지.”


호비첸은 선수 밑에 자신이 방으로 썼던 곳으로 나무토막 따위를 치우면서 내려갔다.

원래는 일등항해사는 선미 고물쪽 선장 옆에 배에서 두번째로 좋은 방이 따로 배정 되어 있었는데 호비첸은 바닷바람이 좋다고 굳이 이 선수쪽 방을 고집했었다.

테르미도로 호의 선수쪽은 특히나 파손이 심해서 이전에 호비첸의 방은 거의 다 지붕이 무너져 내려 앉아 있었다.

클레첸은 물건을 찾아 헤매는 호비첸을 내버려 두고 갑판위로 올라와 찬찬히 배의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기 시작했다.

배의 갑판은 여기저기 바닥이 뜯겨져 나가고 무너진 돛대 중 한개는 누군가 땔감을 구하려 했는지 사방에 톱질이 되어 있었다. 저 정도라면 이전에 메인 돛대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가련한 모습이였다.

클레첸은 이미 반포기 상태였지만 이렇게 무너진 테르미도르호를 보니 더욱 마음 한구석이 짠하게 아련해져왔다. 그리고 갑판에 서서 밤바다를 바라보며 클레첸은 당시 자신이 처음 항해를 떠날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배멀미가 심해 그만 회계장부 위에다 토해 버린 일이며 밤새워 고향에 있는 친구들에게 써내려가던 편지들 그리고 인도양 앞바다에서 태어나 처음 만난 돌고래떼들...

테르미도르호와 함께 한 지난 날들이 새록새록 그의 기억 속에 떠올랐다.

“어이.찾았네”


이때 호비첸이 한참만에 먼지를 한가득 뒤집어 쓰고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의 손에는 고도를 측정하는 육분의와 작은 원형의 나침판이 들려져 있었다. 이 장비는 항해사의 필수품 아니 목숨과도 같은 기구들이였다.

왜 호비첸이 이 것들을 품에 지니고 다니지 않았을까 클레첸은 의아했다. 아마도 폭풍우 속에서 노련한 항해사도 미처 챙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요놈들은 잘 숨어 있을 지 알았지.

내가 침대 밑에 꽁꽁 감춰 잘 모셔 뒀걸랑.”

‘아니···여기를 벗어나지도 못할 걸 저런게 다 뭔 소용인가’

클레첸은 호비첸의 노력이 다 부질 없어 보였다.

“자네 혹시 선장의 항해일지는 보지 못했나? 선장이 밤마다 서기인 자네한테 장부하고 같이 정리하라고 시켰잖나?”

“아마 선장이 지니고 내렸겠지.

난 장부정리만 했을 뿐 보관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 흠...그게 있어야 나중에 회사로 돌아갈때도 우리의 표류를 설명할 근거가 될 텐데...

그래야 급료와 보상금도 탈 수 있고 말이야”

여전히 고향에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는 호비첸에게 클레첸은 자신이 일기장에 그동안의 일들을 기록해두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실현성도 없는 일에 자신만의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어두워진 저녁, 밖을 지키던 포졸은 밥을 먹으러 간 건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호비첸의 신호에 클레첸은 낑낑 대며 상자를 끌고 고물 쪽 갑판 위로 올라 왔다. 둘은 온힘을 다해 바닷가 모래밭을 건너 숲속으로 나무상자를 운반했다.

호비첸은 그 중 큰 소나무 밑을 삽대신 널빤지로 파대며 말했다.

“이봐. 잘 보라구. 이게 언젠가는 우릴 구해줄거야. 날 믿으라구!

아~그나저나 항해일지는 찾아야 되는데...”

호비첸은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지 클레첸은 알 수가 없었다.


마침내 둘은 한참을 걸려 나무상자를 아무도 모르게 바닷가 제일 큰 소나무 밑에 깊숙이 파묻었다.

호비첸은 허리춤에 나침판과 향료 주머니 몇 개만 간신히 감추고서는 일어섰다.

그리고는 어이 하면서 감시꾼 포졸을 불러 찾았다.

한참만에 어디선가 눈을 비비며 나타난 포졸이 그들을 데리고 마을 객사로 갔다.

객사로 가는 길에 클레첸은 슬쩍 호비첸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뭔가 알 수 없는 희망에 차 있었다.

하지만 클레첸은 호비첸과 반대로 모래톱에 걸려 신음하는 가엾은 테르미도르 호를 보고 나서 더욱 더 고향에 가게 되리라는 희망으로부터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조선은 신대륙을 발견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임시글은 새벽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17.07.19 144 0 -
공지 1화.프롤로그를 1,2화로 나누었습니다. 17.07.12 147 0 -
공지 <대체역사 - 드라마> 로 인사드립니다. 17.07.12 482 0 -
21 다시 범선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17.07.31 376 2 9쪽
20 서로의 뒤통수를 치다 +2 17.07.24 301 3 13쪽
19 거부할 수 없는 제안 (2) 17.07.22 239 2 20쪽
18 거부할 수 없는 제안 (1) 17.07.20 258 3 17쪽
17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다. 17.07.20 265 3 19쪽
16 밀무역을 모의하다 (3) 17.07.19 273 2 9쪽
15 밀무역을 모의하다 (2) 17.07.19 281 5 19쪽
14 밀무역을 모의하다 (1) +1 17.07.18 315 5 11쪽
13 동래(東來)에서 온 고자(鼓子), 차동팔 +1 17.07.17 372 6 20쪽
12 강진 상단의 행수 <황음> 과의 조우 17.07.17 339 6 14쪽
11 덧없이 흘러가는 강진의 시간들 +1 17.07.16 415 7 16쪽
» 해남에서 다시 만난 테르미도르 號 17.07.16 353 8 19쪽
9 멀어지는 고향, 작아지는 희망 17.07.15 383 7 18쪽
8 낯선 그 곳, 강진으로 가는 길 17.07.14 410 9 19쪽
7 표류자들 17.07.14 435 7 15쪽
6 실종된 배 - 테르미도로 호(號) +2 17.07.13 470 16 17쪽
5 1679년, 암스테르담, 동인도회사 (2) +1 17.07.13 468 17 12쪽
4 1679년, 암스테르담, 동인도회사 (1) +1 17.07.12 557 17 16쪽
3 회색모자의 남자, 디포씨 +1 17.07.12 647 16 12쪽
2 암스테르담 항구의 남매 +2 17.07.12 874 15 10쪽
1 프롤로그 +4 17.07.12 1,500 19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