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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심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은 신대륙을 발견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뱃심
작품등록일 :
2017.07.12 08:51
최근연재일 :
2017.07.31 02:25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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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3
추천수 :
175
글자수 :
139,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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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1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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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동래(東來)에서 온 고자(鼓子), 차동팔

DUMMY

행수 황음은 호비첸과 헤어진 뒤 적적한 마음을 달래려 강진에서 유일하게 하나 있는 기생집으로 향했다. 그는 때마침 먼저 와 있던 민사또와 조우하였다.


“어이. 황행수. 하두 자주 오다 보니 여기만 오면 서로 얼굴을 보게 되네 그려. 하하학”


민사또는 술상이 거의 빈 것이 해지기 전부터 와서 늦은 밤까지 한참동안 퍼마신 것이 분명했다.


“사또. 저도 여기서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니 오늘 운이 좋은가 봅니다.”

황음은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민사또의 비위를 맞췄다. 천한 역노(驛奴) 출신 장사치인 황음이 살아 남는 방법은 이런 것 뿐이었다.


“우하하학. 그래 어서 한잔 받게나. 여봐라. 여기 새로 술상을 봐오고 황행수 옆에 붙여줄 기집을 대령하렷다!”


민사또는 마치 자신이 술값을 계산할 것처럼 또 다시 판을 벌렸다. 황음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 내 오늘은 조용히 한잔만 하고 가려 했더니 된통 걸렸군···’


황음은 민사또의 술상대를 해주며 밤늦게까지 기생들을 낀 술판을 벌였다.


이 때가 1670년 경술년(庚戌年), 바로 조선 최악의 자연재해인 경신대기근(庚申大飢饉)이 시작되는 해였다.


역사상 최악의 가뭄과 흉년으로 온 나라가 절단이 날 지경으로 황폐하였으나 그것은 오로지 백성들만의 일이고 한양에 공물을 대는 장사치 황음과 민사또는 그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민사또야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힘들어 하면 그만큼 쌀 한두말 정도 세금에서 깍아주는 척 하면 그만이였다. 흉년이라도 해서 민사또가 밥을 굶거나 헐벗는 일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상인 황가는 원래 한양 양반네와 조정에서 흉년이 들었다고 특산품을 줄이는 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도리어 굶주린 어민들한테 싼값에 특산물을 뺏다 시피 해서 제값에 한양에 진상하는 바람에 전혀 손해 볼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백성이 굶주리고 고통 받는 것과 민사또와 상인 황음이 기생집에서 주색잡기를 하는 것은 전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였다.


*****


이윽고 간밤의 술판을 마친 황음은 타는 듯한 갈증으로 잠에서 깨어 났다.

옆에는 전날 질펀한 술자리를 대변하듯 널려져 있는 술병과 접시들,그리고 옆에는 기생 하나가 발가 벗고 누워 있었다.

벌거 벗은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 보면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황음이 생각했다.


‘괜히 만났어. 공연히 머리속만 복잡해지게 말이야.’


황음이 머리 속이 복잡한 건 어제밤 만난 이양인, 호비첸과 클레첸 때문이다.


‘세상에 열곱절, 스무곱절 쉽게 먹을 수 있는 장사꺼리가 있다니···

그런 장사가 어디 있으며 만일 있다면 여태까지 세상 어느 장사꾼이 이를 마다 했겠는가.’

황음은 밀무역에 대한 나라의 국법은 둘째 치고라도 일단 호비첸의 설명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지난 날 북쪽의 평안도 의주(儀註)에서 차인(差人)의 심부름꾼으부터 시작한 자신의 어린 시절 과거가 떠올랐다.


당시라고 청나라와 밀무역(密貿易)을 안한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소규모로 약재나 포목따위를 거래했기 때문에 큰 이문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국경의 관리들도 그 정도 소규모 거래는 눈감아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였다.


그러다가 그는 새로운 더 큰 판을 찾아 의주의 상단을 떠났다. 그 이후로는 개성의 송상(松商)과 한양 난전(亂廛)의 차인을 거쳐 나주에서 와서는 상단의 이인자인 행수 자리까지 올랐다. 그 이후로는 알다시피 강진으로 쫓겨와서 작은 상단을 꾸리기까지 그도 참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인생이였다.


그 와중에 그를 지켜주고 이끌어 준 비결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관리들에게 바친 따끈한 뇌물과 황음 자신의 철저한 몸조심 이였다.

그는 적게 먹고 덜 싸는 방식으로 야금야금 자신의 장사 영역을 넓혀 왔던 것이다.


그러던 그에게 밀무역이라니...참으로 입맛 다시게 하는 제안이기는 하였으나 이양인의 말만 믿고 판을 벌이기에는 그의 목숨이 너무 소중했다.


조선의 국법이란 것이 약한 자에게는 더욱 가혹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상단의 우두머리이지만 지방의 조그만 장사치에 불과한 황음에게는 그저 못 먹을 그림 속의 떡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만 아파 오고 황음은 자고 있던 기녀를 깨워 어젯밤 마저 못한 일을 끝내려 이불 속에서 꿈틀거렸다.


기녀의 젖뭉치를 물고 빨고 정신없이 이불 속에서 뒹굴고 있을 때 밖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행수 나으리”

황음은 보잘 것 없는 하층민 역노 출신이였으나 상단의 부하들은 그를 나으리라고 깍듯이 불렀다.


이불속에서 업무를 보던 그는 한참 절정으로 치닫는 바쁜 시간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짜증이 밀려왔다.


“에이! 하필 지금”


이불을 확 걷어 제끼고 벌컥 문을 열어 밖을 내다 보자 자신의 심복 부하중 하나가 마루 밑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밖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 이른 아침 부터”


사실은 해가 중천에 뜬지 오래 전이다.


“행수님을 뵈러 차행수라는 사람이 멀리 경상도 동래(東來)에서부터 찾아 왔습니다요.”


“차행수?”


황음은 갈증이 더욱 심해져 물을 찾았다.


차행수...차행수라....차..차...혹시 그 차동팔?...일명 동래(東來)의 똥파리...그는 경상도 동래 저잣거리에서 왜놈들의 왜관(倭館)을 상대로 포주질에 고리대금에 왜놈들의 온갖 지저분한 일들의 뒷치닥거리를 맡아서 하고 다니는 소문난 불한당 놈이였다.


“그...그놈이 대관절 왜...여기까지?”


황음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저 흉악한 놈이 자신을 찾아 이 먼 전라도 강진까지 온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불알이 확 쪼그라든채로 대충 옷을 주워 입고는 그를 만나러 객사로 갔다.


‘차동팔.... 저 똥파리 같은 세키...’

황음이 그를 그토록 잘 기억하는 것은 다름 아닌 차동팔, 그가 자신이 이전에 오랫 동안 데리고 있던 막내 심부름꾼, 막둥이 차인 이였기 때문이었다.


딩시 황음이 한양에서 있을 때였다. 그는 서대문의 난전(亂廛)에서 차인(差人)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 그 중 우두머리를 하고 있었다.


보통 큰 상단(商團)이라 함은 맨 위에 상단의 주인격인 대방이 있고 그 밑에 고용되어 일을 하는 대행수,행수,서기,차인,그리고 힘 좀 쓰는 무사들로 구성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방의 작은 상단은 대방이 없이 그냥 상단의 최고 우두머리를 행수라 부르기도 하였다.


차동팔은 그러한 상단에 막내로 들어온 신출내기 꼬마 였다. 당시 그들의 주활동 무대인 서문시장 난전에는 사기가 횡행했는데 그곳은 말 그대로 가짜 물건을 파는 자들의 소굴이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악질은 바로 황음이 속해있던 상단이었다.


그들은 백동(白銅)을 가져다 은(銀)이라고 하고 염소뿔을 녹용(鹿茸)이라고 하며 개가죽을 초피(貂皮,담비가죽)로 꾸며 속여 팔았다. 그리고 항의하는 자들 중에 힘쎈 이들에게는 물건값을 돌려주고 약한 자들에게는 몽둥이 찜질을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 했다.


그 중에서 신출내기 차동팔의 수완은 대단했다. 주로 쓰는 방법은 이러했다. 처음에는 차인들 몇명이 서로 짜고서 물건값을 흥정하듯이 왁자지껄 떠들어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바람을 잡고 판을 벌였다. 이윽고 호기심에 구경꾼들이 모여들면 그 중에 제일 어수룩한 시골사람을 골라내서 골목뒤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협박질로 백동을 은이라고 속이고 억지로 떠넘겨 덤태기를 씌워 버렸다. 이 중에서 차동팔은 주로 바람잽이 역할을 했는데 어린 꼬마가 바람을 잡으면 어른들이 더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였다.

상단에서는 이러한 차동팔이가 나중에 크게 될 놈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를 바로 밑에 데리고 있던 황음은 내심 이 놈이 신경에 거슬렸는데 그건 차동팔이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그가 보여준 소름 돋는 몇가지 기괴한 행동들 때문이였다.


차동팔은 소시적 가난한 그의 아비가 그를 환관(宦官)으로 들여 보낸다고 붙잡아다가 부엌에서 불알을 까버리는 도중에 도망쳐서 그 뒤로부터는 자신이 고자(鼓子)라는 것을 잘 알고 성장해왔다.


그런 것이 그의 성격에 영향을 끼쳤는지 몰라도 그는 자신보다 작은 동물을 괴롭히는 것을 낙(樂)으로 삼았다.

들판에서 개구리나 쥐를 잡아다가 사지를 나무판에다가 묶어 놓고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면서 반응을 관찰 한다든가 물에다 강아지를 빠뜨려 놓고 얼마만에 죽어서 떠오르나 지켜보는 등 도저히 어린 꼬마가 했다고 하면 믿기지 않을 만큼 괴이한 짓거리를 많이 하고 다녔다.


게다가 고자인 놈이 왜 그리 여인네에 관심이 많은지 동네 여인네 속곳이 없어 졌다하면 틀림없이 이놈이 훔쳐간 것이었다.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더 기괴한 것은 동네 처녀들이 ‘개짐’이라 하여 달거리때 사용하는 광목천이 있는데 냄새나는 그걸 어린 놈이 몰래 훔쳐가서 쌓아 놓고 간직하고 있는 걸 보고는 황음은 아주 질색을 해버렸다.


황음은 그런 차동팔이 비록 아무리 일을 잘하고 자기한테나 윗사람한테 아부를 잘 해도 꺼림칙하고 같이 밥상머리에 앉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였다.


비위가 좋다고 하는 황음이 이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차동팔을 아에 대놓고 피하는 이도 많았다. 그런데 차동팔은 도리어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듯 했다.


나이가 좀 더 들어 차동팔은 황음이 속해 있던 한양 서문 상단을 떠났는데 그는 자신의 먼친적을 따라 외가가 있는 동래로 내려 가서 왜놈들이 거주하는 왜관앞에서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할거라고 말했다.

수년 뒤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동래 왜관에서 소문난 상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다고 전해졌다.


그리고 지금 수십년만에 황음 앞에 그 차동팔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서둘러 객사로 가보니 차동팔이 객주 사랑방에서 차를 마시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늘한 뱀과 같은 눈,항상 엷은 미소를 띈 가는 입술, 처음 보는 누구에게나 상냥한 말투...수염없는 매끈한 하얀 얼굴...덩치만 커졌지 이전 소시적에 보아 오던 차동팔과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황음은 속내를 감추고 반갑게 두팔을 벌려 옛동료를 껴안았다.


“반갑네. 허허...이제는 자네를 차행수라 불러야 하나....”


황음이 옆에서 보기에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차동팔을 맞이 했다.


차행수의 옆에는 그의 심복처럼 보이는 날렵하지만 키작은 사내들이 서너명 병풍처럼 서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삿갓을 쓰고 옆구리에 왜놈식 장검을 차고 있었는데 남의 집을 방문하면서 칼을 차고 들어오다니 황음은 불쾌하면서도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형님. 오랜만 입니다. 그간 무고하셨는지요”


차동팔이 먼저 반갑게 대화를 시작했다.


“험....그렇지 뭐....자네도 무탈해보이는구만.

그래 동래에서 장사는 잘 되는가.?”


“죽을 맛이지요. 이런 대기근은 팔십 노인들도 평생 처음 본다고 합니다.

여기 오는 길에도 길가에 굶어 죽은 시체들이 수없이 널려 있습디다.

물건 사줄 놈들이 다 저렇게 죽어버리고 있으니 우리같이 저잣거리 백성들 상대하는 장사치가 잘 될리가 없지요.”


“그래...조선이 생긴 이래로 이런 흉년은 처음 이라지...여기도 사정이 안좋긴 마찬가지네만.....”


사람이 굶어 죽어 나가는 데도 꼭 자기 돈벌이와 연결시키는 차동팔의 생각에 황음은 이 놈이 조금도 안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황음 자신도 그런 면에서는 차동팔같은 장사치일 뿐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황음은 안부라도 좀 더 물어 볼 참으로 자리에 앉으려 했다.

순간 차동팔의 차인들이 나무 상자 다섯개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객사의 방바닥에 쿵하고 내려 놓았다.


“엉? 이게 뭔가?”


“형님. 보시면 알 터이니 일단 한번 열어 보시죠”

차동팔은 여전히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나무 상자를 열어보니 이 곳의 특산품인 말린 전복들이었다.

상했는지 밑에서부터 고약한 냄새가 확 밀려와 황음은 코를 막았다.


“이건 포장한 방식이며 생긴 꼴이 우리가 진상하는 말린 전복인데 왜 이게 자네한테...”


“형님네 상단의 경리보는 아모개가 지난달에 우리에게 납품한 물건이요.

보시면 알겠지만 위에만 멀쩡하고 밑에는 다 썩어 문드러진 하품 중의 하품이요.

다른 상자도 다 마찬가지고.”


“이 무슨 소린가. 누가 나도 몰래 자네와 거래했단 말인가?”

황음이 당황해서 물건을 납품한 아모개를 데려 오라 명했다.


아모개를 부르러 간 차인이 돌아오더니 어젯밤부터 아모개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젠장할!”

처음부터 느꼈던 불길한 예감이 이제서야 확신이 되어서 황음의 머리 속을 뚫고 지나갔다.


“이보게...이건 우리 상단에서 일부러 이리 납품한 것이 아니라...나도 몰래 다른 놈이...”

여기까지 얘기하고 황음은 가슴을 치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아 내가 술 좀 그만 먹고 매일 장부만 꼼꼼히 살폈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내가 아모개란 놈을 너무 믿었구나...왜 하필 똥파리같은 저 놈을 상대로 이런 무식한 일을 벌였을꼬...”


차동팔이 나무상자를 한쪽발로 밀어 놓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님. 왜놈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아시요?

바로 조선의 해산물과 인삼입니다.

근데 조선의 해산물이면 무엇이 최고겠소?

말린 전복이야말로 그 맛이 일품이 아니겠소. 그래서 왜놈들도 전복이라면 사정을 못쓰는거고.


그런데 가뭄탓에 전에 납품받던 곳이 문을 닫았고 내가 몇달전 사람을 시켜 사방팔방으로 좋은 전복을 알아보던 참에 강진의 아모개란 자가 특별히 싸게 자신이 가진 물건을 내주겠다고 연락을 해왔소.

그래서 납품을 받았더니 처음에는 멀쩡해 보였는데 나중에 열어 보니 이렇게 사기를 친 것이었소.

여기 직접 보시오. 다섯 상자의 위에만 최상품을 살짝 깔아놓고

밑에는 전부 이 따위 썩어 문드러진 하품 중의 하품으로 채워놨소이다.”


당황한 황음이 장부를 가져 오라 명했다.

눈을 씻고 장부를 다시 보고 또 봐도 분명히 동래에 전복 다섯 상자를 보낸 것이 자신의 장부에 떡하니 기록되어 있다. 도장도 분명 상단의 도장이 맞았다.


지난 번에 술먹고 인사불성일때 아모개가 내민 장부에 대충 도장을 찍어 준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다.


‘아모개...이런 쳐 죽일놈...

하필 사기를 쳐도 왜 저놈 차동팔이냔 말이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간밤에 마신 술이 확 깨면서 황음은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하려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뽀족한 방도가 있을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전복은 무척이나 고가의 상품이여서 재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모개란 놈이 눈앞에 있다면 찢어 죽이겠만 그 놈은 이미 돈을 챙겨 어디론가 멀리 도망가버린 후였다.


황음은 차분히 생각하려 애썼다. 지금은 아모개가 사고친 것이 이 건 한 건뿐인지 아니면 더 있는지 확인하는게 급선무 였다.


황음은 차인을 불러 장부와 물건을 확인 시키고 자신은 방안에 남아 차동팔을 계속 상대하였다.


“이보게. 이번일은 나도 모르게 내 밑의 놈이 사고를 벌이고 도망간 거라네.

세상에 이런 낭패가 어디 있겠나...나도 피해자일세···

그럼 내 어찌하여 수습하면 되겠는가?”


차동팔의 싸한 미소가 비수처럼 날라와 그의 가슴에 꽂혔다.


“그게 뭐 형님 탓이겠소. 내 어린 시절부터 형님을 모셔와서 알지만 우리 형님만치 동생 위하는 형님이 어디 있겠소.”


‘이 무슨 개씨나락 까먹고 후식으로 밑밥 까는 소린가.’

황음도 이 바닥에서 굴러먹을 만큼 먹은 장사치다. 이런 말장난은 서로 통하지 않았다.


“우리가 한양 서문 상단에 있을 때 내가 개구리 팔다리 자르는 것 보고 형님이 잔인한 놈이라고 내 귀싸대기 후려 갈겼던 것도 그 때 다 형님이 동생 위해서 그런 것 아니겠소.”


‘이 지긋지긋한 똥파리 자식.

삼십년전도 더 지난 일을 지금 꺼내 나를 협박하고 있다.’

황음은 도대체 차동팔이 어떻게 나올지 조바심이 났다. 어쨌든 지금 불리한 건 황음이였으니까.

그는 차동팔의 입술만 주시하며 그의 대답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궁리중이다.


“ 왜관에 전복을 납품하기로 약조한 날짜가 이미 훨씬 지나버려 내 손해가 막심합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고

형님이 그것 좀 쪼매 물어주셔야 되것소"


그러더니 상세히 그 금액을 읊어 댄다.


“왜관에 제때 납품을 못해 배상 해낸 돈이 은자 백냥이요,

왔다 갔다 하면서 장사 못한 값이 또 은자 백냥이요,

우리에게 사기를 친 그 댓가가 삼백냥이외다.

해서 에누리 없이 모두 은자 오백냥이요.”


“머라고?

말린 전복 백근이 잘해야 요새 시세로 은자 오십냥 밖에 안되는데 그 열배를 토해내라고?”


황음이 눈앞의 탁자을 엎어 버리고 벌떡 일어섰다.


순간 흥분한 황음을 따라 방안의 황음 상단 부하들이 손에 닥치는 대로 잡히는 것을 들고 차동팔을 에워 쌌다.


황음의 부하중 한명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야이 썩을 놈아.

은자 오백냥이면 쌀이 사백석이다.

이 곳 강진에서 일년 장사해도 못 버는 돈이다.

지금 어디 와서 날강도질이냐”


그의 외침이 다 끝나기도 전에 차동팔의 검객 중 하나가 빠른 손놀림으로 장검을 꺼내 한번 써걱하고 공중에 휘둘렀다.

그러자 소리를 치던 황음의 부하가 목 주위를 베인 채 자신의 목을 움켜주고 컥컥 거리며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넘어진 그의 목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피가 온 방안에 뿌려져 그만 순식간에 방안은 순식간에 빨간 피와 피비린내로 가득차 버렸다.


“그만! 그만하게!”


황음은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다.

그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하고 싸움을 말렸다.


‘여기서 더 싸우면 우리는 몰살이다.

저들은 아에 작정을 하고 칼을 차고 들어온 놈들이다.

준비가 안된 우리가 무조건 진다.

황음의 판단은 옳았다.


“그...그만 하세...

내가 졌네. 무조건 내가 잘못 했네”

황음은 무조건 승복하겠다고 차동팔 앞에 무릎을 끊었다.


차동팔은 자신의 얼굴에 묻은 핏방울을 비단 수건을 꺼내 쓱 닦아 냈다.


“작은 돈이 아니니까 내 기한은 좀 드리리다....”


차동팔이 무어라 몇 마디 더 했지만 황음의 귀에는 이미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바로 앞에 쓰러진 시체 하나와 엎어진 탁자...그리고 은자 오백냥의 빚만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형님. 내 성격과 내가 누구 뒷배를 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터니 더 이상 긴말 하지 않겠소.”


차동팔은 협박과 함께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자신의 부하들과 같이 뱀처럼 스스륵 객사를 빠져 나갔다.


뒤에 남은 황음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 해보지만 이미 사고는 터질대로 터진 뒤였다.


“이보게...시체를 수습하고 사람을 보내 도망간 아모개를 찾아 보게...

찾는 즉시 산채로 내 앞에 끌고 오도록 하고...

그리고 장부와 창고의 물건을 비교해서 빈 것이 있으면 알려주게...”

황음은 체념한 듯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소시적에 내 곰방대에 불이나 붙이던 놈이 왜놈 상대로 기집질 장사를 하더니 간이 배밖으로 뛰쳐 나왔구나...’


황음은 이를 부드득 갈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가 혼자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없어진 것이 더없나 하며 장부를 확인하고 도망간 아모개놈을 잡아들이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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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밀무역을 모의하다 (2) 17.07.19 280 5 19쪽
14 밀무역을 모의하다 (1) +1 17.07.18 315 5 11쪽
» 동래(東來)에서 온 고자(鼓子), 차동팔 +1 17.07.17 372 6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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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해남에서 다시 만난 테르미도르 號 17.07.16 352 8 19쪽
9 멀어지는 고향, 작아지는 희망 17.07.15 381 7 18쪽
8 낯선 그 곳, 강진으로 가는 길 17.07.14 410 9 19쪽
7 표류자들 17.07.14 434 7 15쪽
6 실종된 배 - 테르미도로 호(號) +2 17.07.13 470 16 17쪽
5 1679년, 암스테르담, 동인도회사 (2) +1 17.07.13 466 17 12쪽
4 1679년, 암스테르담, 동인도회사 (1) +1 17.07.12 556 17 16쪽
3 회색모자의 남자, 디포씨 +1 17.07.12 646 16 12쪽
2 암스테르담 항구의 남매 +2 17.07.12 872 15 10쪽
1 프롤로그 +4 17.07.12 1,497 19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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