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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2.05.18 23:24
최근연재일 :
2022.06.29 16:29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4,814
추천수 :
301
글자수 :
13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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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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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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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23. 벌레 (6)

DUMMY

23.


“누... 누가 붙었다고요? 어... 어디에요? 아... 아무것도 안 보이는- 읍!”


누가 붙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괴물 나왔을 때처럼 또 호들갑을 떠는 루비. 그 모습을 본 이원이 팔을 쭉 뻗어 루비의 어깨를 감싸는 척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야. 누구 하나 붙었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 겨우 끌어내온 곰도 다시 들어가겠다.”


“으법 어헙버븝?”


“어떡하긴 뭘 어떡해. 누가 붙건 말건 그냥 하던 것만 계속 하면 되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겠지?”


“읍.”


루비가 조금은 차분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원이 인이어를 꾹 누르며 말했다.


“그래. 붙은 녀석은 어떤 놈이야? 어디서 우릴 지켜보고 있지?”


- 계속 선장님과 루비 씨로부터 400, 500m정도 거리를 두고 따라가고 있어요. 지금은 건너편 술집 골목에서 숨어서 지켜보고 있죠. 손을 자꾸 떠는 게 아무래도 마약중독자 같네요.


‘쳇. 마약중독자라면 [수도자] 본인은 아닌가 보군. 하긴 이런 일에 윗대가리가 직접 행차할 리가 없지.’


“... 오케이. 일단 나랑 루비는 작전 계속 진행하고 있을 테니, 아라 넌 누가 더 붙지 않나 계속 살펴.”


- 네. 선장님.


진지한 표정으로 아라에게 지시를 내린 이원. 허나 그것도 잠시,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사이비의 표정을 짓고는


“너... 넌 뭐야? 왜 길을 막고 그래?”


“그냥 인상이 참 좋으셔서 말 한 번 걸어 봤어요. 근데 선생님, 기운이 약간 한 곳으로 쏠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드시는데 혹시 장남이거나 외동이세요?”


“...”


뻔뻔하게 루비와 함께 유희성대 곳곳을 누비며 다시금 포교 활동을 시작했다.


---


이원의 예상은 적중했다. 500장이나 인쇄했던 가짜 명함이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인공조명 밝기가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갈 무렵.


“우... 우우... 우주신은 존재한다...! 우...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는 자. 이설화. 재... 재재... 재미있는 부... 분이시네요! 이... 이히힛!”


흰색 내복처럼 보이는 옷의, 산발머리에 눈이 퀭한 채로 미친 듯 웃는 20대 청년 하나가 손을 떨며 루비와 이원에게 다가왔다.


‘뭐... 뭔가 느낌이 쎄한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루비가 슬그머니 이원의 뒤로 숨는 반면.


“... 얘가 걔야?”


- 네. 아까 붙었다던 그 녀석이에요. 선장님.


“오케이.”


이원은 아라에게 짧게 필요한 것만 물은 후, 그저 영업용 미소를 지은 채로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재미있다는 이야기는 정말 거의 못 들어 봤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혹시 선생님께선 우주신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네... 네... 네! 우... 우주신이라는 게... 너... 너무 궁금해서... 모... 못 참겠어요...! 이... 이히힛!”


“아유. 우주신이란 말이에요. 저 하늘 높은 곳에 있는 별자리, 성좌(星座)들과 같은 것들이에요. 저 먼 우주 한복판에서 항상 우리를 지켜봐 주시며, 때때로 응원과 코멘트, 좋아요, 미션도 주시고 하는 그런 존재들, 그것이 바로 우주신입니다.”


“호... 혹시 우주신이... 저... 저 같은 것들도 구... 구원해 주시나요...? 이힛? 이히힛!”


“구원이요? 물론이죠~ 벌서 수십만 명의 회원분들께서 우주신을 만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후기를 작성해 주셨습니다. 저희는 이제 우주신 구독제로 돼 있는데, 기본적으로 입회비가 필요하고, 후원금에 따라 격 높은 성좌들과 1대1 매칭을 시켜드리기도 합...”


“아하핫! 아핫! 아하하핫!”


이원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마냥, 길바닥에 드러누워 폭소하는 청년. 루비는 이제 완전히 이원의 뒤에 꽁꽁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민 상태.


- 이젠 슬슬 저도 합류할게요.


인이어로 아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청년이 바닥에 드러누워 웃으며 소리쳤다.


“아하하핫! 돈! 돈 얘기 나왔어! 죽여도 돼! [수도자]님께서 분명! 돈 얘기 나오면 죽여도 된다 하셨어! 아하핫!”


탓-!


그리 말하고서는 단번에 몸을 튕겨 벌떡 일어나더니, 바지주머니에서 작은칼과 약봉투 하나를 꺼내는 남자. 물론 그 약봉투 안에 담긴 건 흰 쌀알처럼 생긴 마약, ‘버그’였다.


“우... 우주신님한테... 살려 달라... 비... 빌어봐? 이... 이히힛!”


‘자세도 허술하고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 걸로 봐서 각성자도 아닌데... 그냥 분수 모르는 미친놈인가?’


이원이 남자의 수준을 대충 스캔하고 싸울 준비를 하려던 찰나.


“드디어 찾았군. [수도자]의 끄나풀.”


“어이! 사이비 형씨! 비켜! 여기부터는 우리 일이니까!”


순간 거리 곳곳에서, 덩치 좋은 사내들 스무 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나오며 소리쳤다. 루비는 물론이고 발작하던 청년마저도 말없이 주위를 살피는 가운데, 이원은 사내들 중 대장처럼 보이는 안대 낀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지?”


“우리가 누구인지는 알 거 없고, 사이비 형씨. 다치기 싫으면 비켜 있는 게 좋을...”


“내가 먼저 물었잖아. 당신들 누구냐고.”


말 하는 도중에 무의식적으로 이원의 어깨의 손을 올리려던 안대 낀 남자는, 이원과의 눈빛 교환을 한 번 한 이후 본능적으로 손을 거두었다.


‘무슨 어린 놈이 살기가...’


평범한 깡패가 아니라 마나도 다룰 줄 아는 준수한 실력의 용병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이원도 그런 남자의 모습에 표정을 풀었다.


“잘 생각했어. 난 남자가 내 몸 만지는 거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 흠흠. 초면부터 험악하게 가지 말고, 신사답게 이야기를 합시다. 어차피 우린 형씨보다는 저 녀석한테 볼 일이 있는 사람들이요.”


“세 번 말했다. 당신들 누구-”


“우... 우리는 성녀(性女)에게 고용된 사람들이오."


“... 성녀?”


“그렇소. 이제 우리도 의뢰 받은 게 있으니까 저 녀석을 데려가야 하는 거고. 그쪽 종교활동 하는 데엔 피해 안 끼치게 할 테니까 서로 적당히 물러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하오만.”


“...”


성녀.


유희성대 전왕(錢王), 약제(藥帝), 주선(酒仙)과 더불어 유희성대의 4개의 축을 이루는 여자로, 성매매 관련 대형 우주선을 6개나 관리하는 큰손. 다른 세 큰손들보다 특히 성질이 더러워서, 그녀가 한 번 찍은 존재면 어떻게든 파멸시킨다는 소문이 있는 여자였다.


물론 이원이 볼 땐 그래 봐야 창녀촌 대모에 불과한 존재였지만.


‘... 뭐. 이 녀석들로 먼저 저 미친놈 수준을 테스트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잠시 고민하다가 한 발짝 물러나는 이원.


“비켜줄 테니, 하려던 일 해.”


“어... 어라? 아. 음. 그러죠.”


안대의 남자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꽁꽁 숨어 있던 루비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서... 선장님. 서... 설마 쪼신 건 아니죠?”


“... 야. 루비 넌 그냥 오늘 밥 먹지 마라.”


“아... 안돼요! 잘못했어요! 사모님이 오늘 갈비찜 해 준다고 하셨다구요!”


“...”


한편 자기를 둘러싼 덩치 큰 남자들을 보고도, 목각인형처럼 고개를 움직이던 청년은.


“이... 이젠 진짜 못 참아... 이힛... 빠... 빨리 죽여야지... 이힛!”


드르륵-


봉지 가득한 ‘버그’를 자기 입에 털어넣었다.


“이히히힛! 이힛! 아하하핫!”


그리고는 이내 마치 절정에 달한 것처럼 몸을 연달아 튕기다가.


“...”


강한 현자타임이라도 온 것마냥, 순식간에 차분해지더니, 멍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순간 남자와 이원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반인이었는데...’


‘각성자가 됐네. 아. 귀찮네. 진짜.’


한편 마나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는 다른 덩치 큰 사내들은, 그런 청년의 모습을 보고 황당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뭐야. 이 새끼?”


“또라이 아냐. 이거?”


“약쟁이들 하루이틀 보냐. 다 저러잖아.”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청년 쪽으로 다가가던 바로 그 순간.


“일단 잡아서 고문실에 데려가 놓고, [수도자]에 대해서는 천천히 알아내면-”


투두둑-


순식간에 세 사람의 목이 동시에 떨어졌고, 청년이 들고 있던 칼과 그의 흰 내복이 붉게 물들었다.


“... 덮쳐!”


성녀가 고용한 용병들은 동료가 죽었음에도 빠르게 대처했고, 용감하게 열심히 싸웠다.


투두두둑-


물론 그 결과가 좋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선생님들이라면 칭찬 스티커를 나눠줄 만한 행동이었다.


투두두둑-


한 방에 한 명씩, 단말마 없이 거리가 피로 물들었고.


“...”


칼을 쥔 청년을 마주하는 것은 어느덧 이원, 루비, 그리고 용병대 대장 노릇 하던 안대 낀 남자 뿐. 루비가 은근슬쩍 이원의 뒤로 도로 숨어들었고.


‘무슨 속도가... 내 [이글 아이]로도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빠르다고...?’


용병대 대장이자 하늘 높은 곳에 떠 있는 드론과 연동해서 조감도(鳥瞰圖) 시야를 제공하는 안대(眼帶)형 아티팩트, [이글 아이]를 낀 남자도 바짝 긴장한 가운데.


“형씨. 이젠 내가 저 녀석이랑 일 봐도 되지?”


이원은 안대 낀 남자에게 물었다.


“으... 응?”


“당신 친구들 다 죽었으니까, 내가 저 녀석이랑 일 봐도 되냐고.”


“되... 되긴 하는데-”


“그럼 됐어.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다.”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나가는 이원. 무표정한 청년이 칼을 역수로 쥔 채 이원을 노려보다가.


“아. 맞다. 그거 [이글 아이]지? 혹시 나한테 팔지 않-”


탓-


이원이 잠깐 용병대 대장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까보다 더 빨라졌다! 이젠 아예 보이지조차 않아!’


허나 보이지 않아도,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듣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퍼억-!


뭔가가 얻어맞는 소리가 먼저 났고.


쿠덩텅-! 털썩-!


칼 든 청년이 이빨 몇 개 나간 채로 자리에 쓰러지는 소리가 뒤를 이었으며.


파라라락-!


이원이 종교인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들고 다니던 요리책의 페이지가 나풀나풀대는 소리가 마지막이었다.


얻어맞은 것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청년이었음에도, 이원이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뭐야. 이거 책이 왜 이리 약해. 하. 씨... 아라한테 혼나겠다...”


“바... 방금 뭐예요? 선장님?”


“... 뭐긴 뭐야. 그냥 미친개처럼 달려들길래 이걸로 한 대 때렸지. 세워서.”


충격에 페이지가 다 날아가버린 요리책을 보여주는 이원. 남자와 루비가 동시에 경악하는 가운데, 남자가 묻고 싶은 질문은 루비가 대신했다.


“아니. 선장님. 방금 그거... 그게 보였어요?”


“저게 보이냐고? 야. 말도 마라. 아라가 술 취하면 말이야- 읍.”


“마... 말 안 해도 되는 거 여기저기 얘기하지 말라니까요. 정말...”


언제 나타난 건지, 용병대 대장이나 루비로서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 등장한 아라.


‘... 안 까불길 잘했군...’


용병대 대장이 자신의 일생일대의 판단에 내심 뿌듯해하는 가운데.


“이... 일단 저 녀석부터 취조할만한 곳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 [수도자]에 대해 알아내야지.”


스그그극-


이원은 끄트머리만 남았던 요리책을 [공간 절단]으로 증거인멸해버리며, 아라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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