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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2.05.18 23:24
최근연재일 :
2022.06.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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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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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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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7. 변화 (2)

DUMMY

27.


하드쉬 할라 맥주 축제에 참여하는 맥주 브랜드가 수천 종류가 넘는 만큼, 수많은 회사들이 자기네 맥주 브랜드 홍보를 위해 여러 대회를 열곤 한다.


제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이 마시기, 빨리 마시기, 마시고 커플 미션 하기 등등.


그리고 현재.


"대체 왜 나를 올려보내는데..."


이원은 '무제한 많이 마시기 대회'가 열린 단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 지금부터 트라흐너 맥주 많이 마시기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1등에게는 배양육 아닌 진짜 최고급 소고기로 만든 생햄 1kg이 상품으로 지급됩니다!


- 와아아아!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청중들이 환호하고.


“선장님. 화이팅!”


“엉앙잉. 와이잉! 우물우물.”


저 아래에서 쏘세지를 한 입 크게 베어문 루비와 아라가 나란히 서서 응원하는 가운데, 이원이 입모양만으로 말했다.


‘아라 너가 하지. 너가 나보다 훨씬 더 잘 마시잖아.'


'제가 거기 올라가 있으면, 대회 끝나자마자 다른 남자들이 껄떡대기 시작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 아니. 그건 또 싫네.'


'그런 거예요. 아무튼 우승해서 햄 타 오세요. 저녁에 루비 씨랑 같이 한 잔 하면서 먹어요.'


'... 알았어.'


뭔가 당한 기분에 고개를 살짝 돌리는 이원. 사실 아라처럼 신체능력 특화 각성자가 아니라 무한대로 들어가는 어드밴티지가 없을 뿐, 이원도 한 술 했다. 왕의 자질이란 건 원래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이성길이 AC-04, 05, 06, 07와의 교역권을 쥐고도 6등인 거지. 자기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하니까.'


지배하되 지배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술, 약물 같은 물질이나 분노나 사랑 같은 감정에도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 그러면 이제 트라흐너 맥주 많이 마시기 대회, 시이이이이작! 하겠습니다!


팡-!


이원이 딴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총소리와 함께 시작된 대회.


꿀꺽꿀꺽-

거억-!


분주하게 맥주를 목구멍으로 넘긴 참가자들 대부분이 지저분하게 탄산을 도로 내뱉는 가운데, 이원은 천천히 마시며 주위를 살폈다.


‘저 놈이 남겠군.’


대충 훑어보니, 자신과 1등 경쟁할 사람은 딱 한 명 뿐인 것 같았다. 자기와 같이 천천히 마시고 있는 참가번호 37번. 온몸에 문신을 한 갈색 피부 남자였다.


‘특이한 문신. 행성 글린 출신.’


몸에 그림 그린 사람은 세상에 수도 없이 많지만, 행성 글린 출신의 사람들의 문신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평범한 인간은 가지지 못하는 특이한 힘을 몸에 새긴다... 즉 각성자라는 의미였다.


- 아! 벌써부터 탈락자가 속출하기 시작하는군요! 그... 쏠리는 것은 대회장 뒤에서 처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우웨에엑-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오바이트에, 지켜보던 관객들 대부분에게서 이 대회가 홍보는 커녕 오히려 브랜드 가치를 깎아먹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사회자가 소리쳤다.


- 이제 남은 것은 세 사람! 21번, 37번, 44번의 삼파전입니다!


21번은 이원 본인이었고, 37번은 이원이 남을 거라고 예상했던 문신의 남자. 허나 44번은 단상 위에 올라올 때부터 반쯤 취해 헤롱대서 가장 먼저 떨어질 것만 같았던, 삐쩍 마른 노인이었다.


'... 젠장. 이제 슬슬 배가 부른데.'


도수가 약한 술인 만큼 취기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위 속에 물이 계속 차다 보니 한계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현상. 온 몸에 문신을 한 37번 참가자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는지.


"... 기권하겠다."


무언가가 올라오려는 입을 막은 채 손을 들고, 자진해서 단상 위를 떠났다.


- 아! 37번 참가자분까지 탈락! 이제 21번과 44번, 두 참가자만이 남았습니다!


"허허허... 요즘은 술도 공짜로 나눠주고, 세상 참 좋아졌구먼."


대회가 시작될 때처럼 헤실대며, 페이스가 전혀 떨어지지 않은 채로 맥주를 꿀떡꿀떡 넘기는 44번 노인. 이제는 생햄 1kg 따위가 아니라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에, 이원은 꾀를 하나 냈다.


‘고작 이런 대회에서 편법을 쓰는 건 좀 그렇지만... 지는 건 좀 싫네.’


그의 생각은 목구멍에다 [공간 박리]를 펼쳐서,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그저 담아 놓기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 하면 일단 무한대로 마시는 것처럼 보일 테니, 대회가 끝나고 적당히 화장실 같은 곳에 흘려보내면 된다.


우우웅-


그리 생각한 이원이 마나를 끌어올린 바로 그 순간.


"..."


"..."


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다른 참가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술만을 탐하던 44번 노인과, 이원의 눈이 마주쳤다.


---


- 이번 트라흐너 맥주 많이 마시기 대회의 우승자는... 무려 74잔을 마신 44번 참가자분이십니다!


- 와아아아아!


- 1등을 하신 44번 참가자에게는 부상으로 최고급 생햄 1kg, 2등을 하신 21번 참가자분께는 트라흐너 맥주 5L 케그 한 개, 3등을 하신 37번 참가자분은... 어디론가 사라지셔서 4등을 하신 2번 참가자분께 캔맥주 6개 세트를 드리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회의 시상이 끝나자, 배가 빵빵한 이원이 대형 맥주통을 들고 아라와 루비에게로 돌아왔다. 그가 머쓱한 듯 웃었다.


“미안. 아라야. 햄 못 타왔다.”


“괜찮아요. 케그도 좋은 상품이니까요. 햄은 여기저기서 파는 거 아무거나 사면 되고요.”


“맞아요! 선장님 의외로 완전 잘 마시시던데요? 근데... 갑자기 왜 기권하셨어요?”


“아. 그건 있잖아...”


우우웅-


말꼬리를 흐리며 마나를 일으키는 이원.


“... 선장님. 이번엔 또 무슨 장난을 치시려고요.”


“...?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루비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고, 마나에 꽤나 민감하다 자부하는 아라마저도 5초 이상 지나야 감지하고 눈을 흘긴다.


‘... 근데 아까의 노인은...’


우연을 만들어내는 ‘운’과 우연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감’. 이 역시 왕의 자질이었다.


“잠깐만. 아라야. 나 아까 그 44번 노인 좀 만나고 올게. 루비 넌 이거 들고 있어.”


“네.”


“으악! 이걸 왜 저한테!”


케그를 루비에게 떠넘기고, 44번 노인의 뒤를 쫓는 이원. 아무리 하드쉬 할라 맥주 축제에서라도 생햄을 든 노인은 드물었기에, 이원은 다른 맥주 부스에서 시음하고 있는 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허허. 여기저기서 맥주를 공짜로 나눠주다니. 세상이 좋아지긴 좋아졌-”


“어르신.”


“... 응? 아까 2등한 젊은이로군. 무슨 일인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원의 질문에 생햄을 든 노인은 시음용으로 쓰이는 작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허허. 안주는 있는데 술이 없군. 때마침 이 맥주 꽤나 마음에 드는데, 한 상자 사줄 수 있나?”


“제대로 대답해 주신다면 열 박스도 사 드리죠.”


“열 박스? 허허. 열 박스면 속옷 색깔도 이야기해줄 수 있지. 얼마든지 묻게.”


“... 제가 기권하기 바로 직전에, 저를 쳐다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때 왜 저를 보셨습니까?”


“대회에서 경쟁상대의 상태를 보는 것도 문제가 되나?”


“그건 맥주 한 캔 짜리 대답도 못 됩니다.”


“하하하하! 당돌한 친구로군!”

갑자기 웃는 노인.


“그래. 열 상자 얻어먹으려면 열 상자짜리 대답을 해야지. 사실 그 때 내가 자네 쳐다본 건, 자네가 기권 안 하면 내가 하려 그랬던 것뿐일세.”


“기권을요? 어째서입니까?”


“클클. 나야 1등하나 2등하나, 안주 받나 술 받나 똑같지만 자네는 안 그런 것 같아서 양보해 주려 한 걸세. 그리고 맥주는 마시라고 있는 건데, 버려지면 아깝지 않겠나?”


“... 제가 더 이상 마실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계셨군요.”


“물론이네. 무투대회도 아니고 고작 술 마시는 대회에서, 따로 마나까지 운용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클클.”


이원의 예상대로 노인은 전부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마나에 꽤나 민감한 아라마저도 최소 5초는 지나야 눈치 챌 수 있는 것을 노인은 곧바로, 그것도 한참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알아챘다.


‘이 노인... 상당한 고수다. 못해도 도미니티카 상위 마법병단 단장급.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우주는 넓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이원. 그런 이원을 지켜보던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젊은이. 사실 자네가 진짜 맥주 열 상자 사주고 묻고 싶은 건, 어떻게 자네가 마나를 썼는지 눈치챘느냐. 그거겠지?”


“... 예. 선생님. 부디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가르침이라고 할 만큼 거창한 건 아니지만... 일단 얘기하자면 자네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네.”


“예?”


“마시기 대회 때 자네의 마나 운용은 그리 나쁘지 않았네. 오히려 완벽했지. 허나 남자가 여자 옷을 완벽하게 입으면, 오히려 더 눈에 띄지 않겠나? 그런 것이네.”


“...”


“내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 솔직히 전혀 모르겠습니다. 하하.”


“클클... 그래. 모르는 게 당연하지. 우주에서 가장 강하다고 자처하는 도미니티카 마법병단 내에서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이 태반일테니 말이야.”


키득대며 웃는 노인. 그가 이원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허나 자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네. 마나라는 것은 의지고, 의지는 곧 마나.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 보게. 그러다 보면 내가 한 말을 이해하는 순간이 올 테니. 어때. 이 정도면 맥주 열 상자짜리 대답이 됐나?”


“... 죄송하지만 하나만 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무엇이 궁금한가?”


“선생님은 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그저 술 좋아하는 주정뱅이 노인네일 뿐이네. 단지 저 멀리 유희성대라는 곳에서는, 나를 주선(酒仙)이라 부르더군.”


그리 말한 노인은 진열돼있는 맥주 박스 하나의 포장을 벗기고는, 점원에게는 “계산은 저 친구가 할 거네. 열 상자 어치 말이지.”라 말하며 이원을 가리켰다.


---


저녁이 되자, 하드쉬 할라 맥주 축제의 1일차를 마치고 블루스 호로 돌아온 이원 일행.


주방에서 축제에서 사 온 햄을 썰던 아라가, 이원의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 분이 유희성대의 주선이었다니. 신기하네요. 평범한 주정뱅이인 줄 알았는데.”


“난 사실 그 인간이 주선이라는 것보다, 주선이 그 정도 고수라는 거에 놀랐어. 전왕을 보고서 유희성대의 수준이 낮다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봐.”


“그럴 수 있죠. 그보다 일단 이거, 전채 안주로 만들었는데 한 번 드셔 보세요.”


“와! 햄! 잘 먹겠습니다!”


안줏거리로 나온 햄 샐러드에 젓가락을 든 그 순간마저도, 이원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나저나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라고 했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


“왜... 왜 갑자기 뚫어지게 쳐다보세요.”


생각하던 와중에, 이원은 자기도 모르게 멍하니 아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그냥. 잘 먹겠다고.”


“... 루비 씨가 다 먹어버리기 전에, 얼른 드세요. 맛있으면 다음에 또 해드리고요.”


머리를 쓸어넘기며 젓가락질을 하는 아라를 보며, 다시금 고개를 돌린 이원. 그가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도미니티카의 후계가 되어, 우주의 황제가 되는 것. 그거 하나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75 Leji
    작성일
    22.06.22 14:43
    No. 1

    잘 읽고갑니다.
    저야 이런 제목이 취햐이지만 요즘 트렌드의 제목으로 바꿔 잠깐 어그로를 끌고 다시 원 제목으로 변경하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 재미있는 글이어서 뷰가 낮은 것이 안타깝네요 ㅎㅎㅎ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가시멧돼지
    작성일
    22.06.23 18:31
    No. 2

    제목을 뭐로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8 jo******..
    작성일
    22.12.03 15:56
    No. 3

    아이고 아라야...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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