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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2.05.18 23:24
최근연재일 :
2022.06.29 16:29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4,775
추천수 :
301
글자수 :
137,131

작성
22.05.20 10:05
조회
675
추천
40
글자
13쪽

1. 도박 (1)

DUMMY

1.


드넓은 우주공간을 유랑하는 중형 우주선 콜로세움 호.


와아아아아아-!


캉-! 캉-!


수많은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 불법 투기장 속 검투사들이 원시적인 냉병기를 맞부딪히며 싸우고 있었다.


“안성현! 타나카 저 새끼 죽여버려! 너한테 100 크레딧 걸었다!”


“역배 타나카 가즈아아아아!”


관객들이 두 패로 나뉘어 이리저리 악을 쓰는 가운데, 두 검투사는 격렬하게 서로의 검을 부딪혔고.


서걱-! 툭...


시종일관 밀리던 한 검투사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띠링-!


[ ‘Match 13. 안성현 vs 타나카 료헤이’ 전의 결과는... 바로 배당률 1.13의 안성현 검투사의 승리입니다! ]


와아아아-!


“역시 국밥 안성현! 믿고 있었다구!”


“씨팔! 타나카 이 개 좆같은 새끼야! 병신같이 대놓고 오는 공격에 쳐맞아서 뒤지냐! 내 300 크레딧 어떡할 거야!”


살아남은 승자에겐 영혼 없는 칭찬을, 죽어버린 패자에겐 온 세상 분노를 다 몰아 받는 시간도 잠시.


[ 자. 관객 여러분!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오늘의 14번째 매치이자, 잃은 돈을 단번에 메꿀 수 있는 찬스. 바로 오늘의 최고 배당률 경기가 바로 시작되니까요! ]


다시 한 번 진행자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자, 환호성 소리가 그 모든 것을 덮었다.

[ 일단 청코너! 바람처럼 나타나 사흘 만에 7전 7승을 거둔 다크호스! 허나 그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면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덴탈~ 마스크! ]


쾅-!


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경기장 양끝에 설치된 거대한 문 중 하나가 열렸다. 그곳에서 걸어나온 것은 흰 머리에 하늘색 마스크를 쓴 한 중년의 남자. 남자가 등장한 순간 환호성이 야유로 바뀌었다.


- 우우우우우!


- 사기꾼은 죽어라!


경기장이 온통 그에 대한 욕설로 가득 찼지만,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행동했다. 오히려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경기장 중앙으로 걸어나갈 뿐이었다.


한편 남자가 경기장 중앙에 도착하자,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자. 그런 덴탈 마스크의 상대는! 여러분... 정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


[ 지난 1년간 그 어떠한 검투사도 상대하려 하지 않아서, 싸우고 싶어도 싸우지 못했던 콜로세움 호의 간판 스타가 다시 한 번 여러분 앞에 나섭- ]


쿵-!


진행자의 소갯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덴탈 마스크가 나온 곳과 반대쪽 문에서 크고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대형 생물이 문에다가 몸통박치기라도 한 듯한 소리였다.


[ 토... 통산전적 744전 743승 0무 1패! 그 1패마저도 경기 시작 전에 상대를 먹어버리는 바람에 생긴 반칙패! ]


[ 큰 박수와 환호성으로 맞이해 주십시오! H2S2L1 기종의 카메... 아니. 키메라! 헨젤과 그레텔! ]


- 와아아아아아!


콰아앙-!


닫혀 있던 문이 터지듯이 열렸고.


잘그락... 잘그락...


그곳에서 뛰쳐나온 생물체는 거대한 도마뱀처럼 생긴 몸체에, 킹코브라처럼 긴 목이 두 개 달렸고.


“오빠... 저거 먹어도 돼...? 너무 배고파...”


“아직 안 돼... 기다려...”


또 두 얼굴은 인간 어린아이의 형태를 한, 괴생명체였다.


[ 더 이상 키메라를 기다리게 했다간 또 반칙패가 생길지 모르니, 관객 여러분들께서는 1분의 시간 동안 빠르게 베팅해 주십시오! ]


띠링-!


[ 베팅 종료까지 남은 시간 - 00 : 01: 00 ]

[ 덴탈 마스크 ( 13.1 ) : 헨젤과 그레텔 ( 1.01 ) ]


경기장 위에 커다란 시계와 배당률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덴탈 마스크에 걸면 1만 크레딧으로 13만 1000 크레딧을 벌지만, 헨젤과 그레텔에 걸면 고작 1만 100 크레딧밖에 벌지 못한다는 의미.


“헨젤과 그레텔에 500 크레딧.”


“키메라 쪽에 1만 크레딧!”


허나 관객들 중 절대다수는 헨젤과 그레텔 쪽의 손을 들었다. 그 이유는, 검투사 경기를 중계하는 개인방송인들이 속사포처럼 내뱉는 멘트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13배... 13배 좋죠! 근데 형님들. 이거 아셔야 합니다. 덴탈 마스크가 이겨야 13배입니다. 근데 이길 수가 없어요!”


“헨젤과 그레텔... 아니, 씨발.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 키메라의 피부는 어지간한 합금만큼 단단합니다! 애초부터 칼로는 상처조차 낼 수가 없어요!”


“그냥 여태 돈 쓴 거, 일정 부분 환급받는 이벤트라 생각하고 키메라 쪽에 거세요! 그래야 안 잃습니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이번 이벤트는 일종의 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부정행위와 사기행위를 밥 먹듯이 하는 악질 검투사, 덴탈 마스크에 대한 처형 쇼.


“저 사기꾼 새끼 드디어 죽네.”


“솔직히 덴탈 마스크는 7전 7패지. 다 운이 좋아서 이겼잖아. 세 번은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 칼이 부러졌고, 네 번은-”


땡땡땡-!


[ 베팅 종료! ]


순식간에 지나가는 1분. 배당률과 시계가 사라지고, 다시 한 번 진행자의 홀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냈다.


[ 자! 베팅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더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오늘의 14번째 매치를 시작하겠습니다! ]


와아아아-!


찰캉-! 찰캉-!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성 속에서, 키메라의 움직임을 억제하던 구속구들이 하나둘 풀렸다. 자유로워진 상태를 과시라도 하듯 몸을 털어낸 키메라가 중얼거렸다.


“오빠... 이젠 먹어도 돼...?”


“... 먹자!”


쿵-! 쿵-! 쿵-!


코끼리만한 덩치의 괴생명체가, 지축을 울리며 덴탈 마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 사! 기! 꾼!

- 죽! 어! 라!


그런 키메라의 발소리에 맞추어, 관객들도 한 마음 한 뜻으로 소리쳤다.


쿵-! 쿵-!


“오빠... 머리는 내가 먹을래...”


“그럼 나는 팔.”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키메라의 두 머리가, 침을 질질 흘리며 덴탈 마스크의 머리와 팔로 쇄도하던 그 순간.


“... [휴머니티] 녀석들, 어린애들 가지고 장난치는 건 여전하네.”


작게 중얼거린 덴탈 마스크가 정면을 응시했다.


카아아악-!


이미 키메라가 코앞까지 다가왔건만, 그는 검을 뽑지도 휘두르지도 않았다. 어린애의 얼굴 두 개가 자기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잠시 눈을 감은 게 전부였다.


툭... 투욱-


허나 그가 눈을 감은 바로 그 순간, 측면에서 팔을 노리던 머리도, 높은 곳에서 물어뜯으러 날아오던 머리도 모두 바닥을 굴렀다.


쿠웅-!


기세 좋게 달려오던 키메라의 몸통 또한 그대로 중심을 잃고 쓰러지자,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 ... 스... 승자는... 덴탈 마스크...? ]


프로의식 넘치는 진행자마저도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기관총을 쏴대도 끄덕없던 키메라의 목이 잘려 있다. 절단면은 소름끼치도록 매끄럽다.


그렇게 정적이 경기장 전부를 덮고, 1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 사기다!”


좌중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그가 말한 건 단 세 글자가 전부였지만, 수만 명의 군중을 설득하기엔 충분한 논리였다.


“맞아! 사기야!”


“어떻게 저 사기꾼 자식이 키메라를 이길 수 있어!”


[ 자... 자. 관객 여러분들 다들 진정하시고... 다음 15번째 매치가 준비... ]


“15번째 매치 같은 소리 하네! 주최측에서 사기를 치고도 무사할 것 같아!”


“내 돈 돌려줘!”


아우성치고 기물들을 파손하기 시작하는 성난 관객들. 순식간에 수만 명의 관객들이 폭동을 일으킨 가운데.


“저 덴탈 마스크라는 녀석... 내 앞에 데려와.”


투기장 위 가장 높은 건물에서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던 한 여자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


콜로세움 호 유일한 7성급 호텔, 스타 갤럭시의 엘리베이터. 스위트룸으로 향하고 있는 그 좁은 공간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함께하고 있었다.


“니가 지금 만나는 분은 이 콜로세움 호의 실질적인 주인이시다. 절대, 절대! 그분께 무례하게 굴어선 안 돼!”


한 명은 관중들의 환불 소동으로 곤혹을 겪은 진행자였고, 또 다른 한 명은 환불 소동의 실질적인 원인. 14번째 매치의 승리자 덴탈 마스크였다.


“... 알겠다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일개 검투사들은 원래 이분 앞에 서지도 못해! 이분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상하게 했다간 너뿐만 아니라 나까지- 읍.”


말없이 듣고만 있던 덴탈 마스크가, 검지를 마스크 위에 대며 진행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대충.


‘알겠으니까 좀 닥쳐.’


란 의미를 담아 째려보자, 진행자는 자기도 모르게 “오... 오케이.”하고 입을 다물었다.


띠링-!


두 사람은 호텔의 최상층에서 헤어졌다. 진행자는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려갔고, 덴탈 마스크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에게 몸수색을 받았다.


“흉기 없고, 폭발물 없고... 좋아. 들어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말하지. 안에 계신 분의 신상에 조그마한 문제라도 생겼다간... 넌 그대로 죽는다. 알겠나?”


끄덕-


“좋아. 들어가.”


끼이이- 쿵-!


조용히 열렸던 문은 큰 소리를 내며 닫혔고.


“왔어?”


방 안에선 속살이 다 비치는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덴탈 마스크를 맞이했다.


“나는 이 콜로세움 호의 주인. 마가렛이라 하는데... 그쪽은?”


“...”


“생각보다 말이 좀 없네? 원래 남녀 사이에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 아니면... 예상외의 미녀를 마주해서 긴장이라도 한 건가? 오호호!”


저 혼자 입을 가리며 웃는 마가렛. 허나 덴탈 마스크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녀는 이내 웃음을 뚝 멈췄다.


“뭐야. 그냥 재미없는 남자였네.”


“...”


“그래. 차라리 잘 됐어. 사실 나도 못생기고 늙엇는데 재미없기까지 한 남자랑은 오래 이야기하고 싶지 않거든.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마가렛은 테이블에 놓인 곰방대를 자기 입에 가져다 물었다. 그리고는 새하얀 가슴 언저리에서 빛나는, 검은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만지작대며 중얼거렸다.


“너 싸우는 걸 봤어. 각성자지?”


“...”


처음으로 움찔하는 덴탈 마스크의 모습에, 마가렛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일부러 속옷이 보일락말락하게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각성자. 물리적 법칙에 묶이지 않은 존재, 마나. 그 마나를 다루는 사람들.”


“...”


“우주에 몇 없다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보여준 싸움은 그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된단 말이지. 인간이 단신으로 키메라를 죽이는 것도 그렇고.”


그리 말한 마가렛이, 어딘가에서 리모컨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 방음 장치 가동. ]


“너가 정말 각성자라면...”


한 손으로는 가슴팍의 보석 목걸이를 만지작대고.


“재미없는 남자와도 재미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밤새도록 알려 주고 싶은데 말이지.”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입고 있던 드레스의 어깨끈을 슬쩍슬쩍 올렸다 내렸다하며 유혹하듯 말하는 마가렛.


그런 마가렛의 모습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방음 장치만 확인하던 덴탈 마스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 어우. 더럽게 덥네.”


“... 그래. 뜨겁... 뭐?”


고혹적으로 웃던 마가렛의 표정이 순간 싹 굳었다. 허나 남자는 그저 쓰고 있던 덴탈 마스크를 벗고.


“2주 동안 마스크 쓰고 있는 것도 힘든데, 그 위에 마스크 쓰니까 진짜... 숨을 못 쉬겠네.”


또 50대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던 인면(人面) 마스크마저 벗었다. 그러자 마가렛이 순간 숨을 멈출 정도의 미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물네 살, 이원의 본모습이었다.


“너... 너 뭐야? 뭐 하는 놈이야?”


살짝 입술을 핥았다가, 정신 차리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마가렛. 허나 그녀는 물러나면서도 가슴팍의 보석 목걸이에는 손을 떼지 않았다. 그런 마가렛을 지켜보던 이원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치며 말했다.


“뭐긴 뭐야. 해적이지. 지금 니가 만지는 목걸이. 그거 가지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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