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새로운 시작
손걸군은 성도에서 출발하면서 강주를 거쳐 강릉, 강릉에서 강하, 여강 등을 거쳐 강동으로 넘어오면서 인원과 규모가 점점 줄어들었다. 성도에서 건업까지의 거리가 멀었던데다가 중간중간에 요충지로 가서 점검을 하며 준비해야 할 것들을 보느라 더 오래 걸렸다.
인원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고 각 주마다 전선을 새로 구성하여 앞으로를 대비토록 했다.
익주와 형주에서 병력들을 일부 데려와 장강 이북으로 향하게 될 병력들을 뽑았으며, 주 전선의 구축 라인을 구강군과 수춘성을 경계로 짰으며, 후방 지원 병력은 합비에 두어 전선을 관리토록 하고 기존에 광릉태수를 맡던 장소의 장남 장승(張承) 대신에 장굉을 임명하여 후방을 같이 지원하게끔 하였다.
이번 원정에서 황충, 위연, 유반을 전방으로 끌고 올라왔는데 이는 앞으로 싸울 원소와 조조군의 인재라인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무장 중 최고로 평가 받는 여포를 이긴 손걸과 허저, 태사자 등 전장에서 뛰어난 무용을 보일 장수들이 많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그리고 여러 부대를 이끌려면 장수들의 확충이 필요했다. 그리고 황충의 경우에는 무용 뿐 아니라 그간의 부대 운용 능력 또한 봐줄만 했기에 데려오게 되었다.
오군의 사대 가문 들 중 하나였던 주씨 가문에서 주환(朱桓), 그리고 육씨 가문에서 육손(陸遜)이라는 각각의 문무에서 뛰어난 걸출한 인재들이 임관을 신청했다.
육강이 자신이 뒤를 이을 자는 육손 뿐이라고 하는 말 때문에 육손의 임관은 다른 누구보다 이름을 날리며 임관을 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 때문인지 곽가가 누구보다 육손을 탐내어 데려갔다.
9월, 조조군에게서 사자가 찾아왔다. 조조군의 모사 중에 수위를 다투는 순유가 찾아왔다. 내년 3월쯤에 출병을 할 예정인데, 그 전에 미리 확인 차 방문을 했다는 것이다.
손걸도 이제 이 곳에서 27년을 지내는 동안 저들이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왔는지 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생의 그 곳보다 정치적인 문제가 바로 삶에 맞닿아 있는 이 곳은, 상대편이나 동맹군에도 섯부르게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보내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저쪽에서도 우리 군의 상태를 보고 싶다. 혹은 우리 군의 상황을 알고 싶다는 것이었으므로 아군이 될 저들이 만약의 문제로 함부로 배신을 할 수 없도록 우리 군의 상황을 조금은 보여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곽가에게 그것을 물으니, 곽가가 손걸에게 답했다.
"주군께서 그리 하고 싶으시다면 하십시오. 우리 군에 대한 자신감, 저에 대한 믿음은 다 주군께 있으니 말입니다."
곽가는 처음 손걸과 대면했을 당시 음주를 즐겨 얼굴색이 허여멀건하고 병색이 완연했으나 지금은 운동을 많이하여 처음보다는 많이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이게 다 노숙의 안배였다.
이 시대에는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무인들을 위한 단련만 존재 할 뿐.. 거의 운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 모사들의 경우 장거리 행군을 하고 나면 골병에 들거나, 풍토병에 걸려 죽는 등으로 그 한사람에 의지하는 세력 자체에 막심한 손해를 입히곤 했다.
곽가의 경우도 조조가 원소 세력을 거의 정리했을 무렵, 오환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풍토병에 걸려 죽었을 정도로.. 안타까운 생을 맞이 했었다. 그런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노숙은 손걸에게 몇몇 사람을 지정해주어 건강상의 문제를 존재하지 않도록 부탁을 해둔 상태였다. 뭐 그래서 지금의 곽가는 매우 건강했다.
순유는 우선 오에 있는 황제 유협을 알현한 후에 건업으로 돌아와서 손걸과 곽가를 만났다. 그리고 건업에 있는 병사들의 상태, 군의 상황, 그리고 최근 근황들을 순유에게 그대로 말을 해주었다.
순유는 조조의 믿음직스러운 모사이자 하진, 동탁을 두루 거쳤던 관리 답게 얼굴에 놀란 모습을 보이지 않고 감탄해하며 손걸에게 물었다.
"허허.. 한달.. 한달만에 익주를 점령하셨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이동 하는 시간만 더 단축 됐다면 그것보다 덜 걸렸을 것이오."
'익주의 유장이 생각보다 약체였던 모양이구나. 한달이라.. 그래도 군의 상태가 이정도면 우리 군의 상태와 비슷하니, 원소를 무찌를 때 큰 도움은 될 듯 하겠군.'
"이 순유가 매우 감탄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 주군께 알리면 매우 기뻐하실 겁니다. 아군의 힘이 이정도로 강대하니, 원소를 상대함에 있어 우리가 전혀 밀리지 않을 것 같군요. 미리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겠습니다."
그러자 곽가가 웃으며 순유에게 말했다.
"저, 우리 군에서 추가적으로 요구해야 할 것들이 몇가지 있소. 첫 번째로 서주를 우리에게 주시오. 두번째로, 우리가 지원을 갈 시에 개별적인 작전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오. 세번째는 조조군의 정보도 우리에게 공유를 해달라는 것이오."
"으음, 두번째와 세번째는 가능하지만, 첫번째 요구 조건은 내가 함부로 정할 수가 없소. 서주라니.."
"올해가 지나기 전에 답을 주시오. 생각해보니 우리가 이정도 요구 조건을 들어주고, 원소를 제거해준다면, 조조군에서 보는 이득이 더 크지 않나 싶어서 말이오."
"그건 그렇소만.. 일단 원소를 없앤 후에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순유는 말을 계속 돌리며 요구조건의 수락에 대한 건을 피하려 들었다 하지만 곽가가 그 말을 피할 수 없게 대못을 박아버렸다.
"그렇다면 원소의 세력 중 주 하나를 공략한다면, 즉시 주시오. 우리도 장강 이남에서 넘어가는 터라 시간이 어느정도 걸릴 것인데, 전진기지 겸 주둔지로 삼을만한 땅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어느 틈에 수춘에서 올라가 기주, 청주, 유주에 있는 원소군을 공격한다는 말이오?"
"크흠.."
"만약 기일이 늦어져서 작전에 차질이 생기면 순유님이 책임지실 것입니까?"
"일단 주군과 상의를 해보겠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소."
"좋소. 우리도 기분 좋게 기다릴테니, 좋은 답변 부탁드리지요."
이렇게 순유와 그 외의 다른 담소를 나누다가 이야기를 마쳤다.
곽가는 순유의 일행 중 한명이 사마랑을 찾는다기에 그가 누군지 이름을 물었다.
"소인의 이름은 사마부(司馬孚)라 합니다. 하내의 사마 가문의 삼남입니다. 손걸군에 저희 큰형님께서 계신다고 들어 아는 분께 부탁하여 이번 사절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백달의 아우님이셨군. 그렇소. 백달이 이곳에 있지.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었는진 몰라도 정확하오. 한번 이야기 해보겠소."
곽가는 아랫 사람을 불러 사마랑을 이 곳으로 오게 하였다.
잠시 후, 사마랑이 문을 두들기더니 들어와 곽가를 보며 말했다.
"봉효 형님, 나를 찾았소?"
그러자 곽가의 옆에 있던 사마부가 사마랑을 알아보고는 크게 외쳤다.
"형님!!!"
그러자 사마랑은 사마부를 보고 깜짝 놀랬다.
"아니, 부야! 네가 이렇게 장성하다니.. 이게 몇년 만이더냐? 몰라보게 자랐구나!!"
사마 형제는 건업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그 둘은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사마랑이 물었다.
"아버지께선 잘 계시더냐? 다른 형제들은?"
"무탈하십니다. 오히려 형님 걱정을 많이 하셨었는데, 다행히 중달 형님께서 큰 형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올해까지 재야에 있다가 조조님이 임관을 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가두겠다 협박하여 임관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조앙님과 함께 다니며 교분을 쌓는 중입니다. 주군께서 인재를 보는 안목이 있어 둘째 형님을 좋게 보는 듯 합니다."
"네 녀석도 매사에 조심하거라. 둘째가 우리군에 들어오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 되었구나."
"형님도 우리가 보고 싶으시면 저희 군으로 오십시오. 아마 대우가 쏠쏠할 것 입니다."
"되었다. 난 우리 주군께 큰 빚을 지었다. 구명을 받았지. 지금은 진심을 다해 섬기고 싶은 분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너도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너의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거라."
"알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사마 형제의 상봉이 끝났고,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 순유는 곽가와 여러 대화를 나누며 지도를 붙잡고 연이은 토론을 나눴다. 아마도 자신들의 진영에서 아군의 모사들과 나누며 했던 이야기를 제 삼자가 보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곽가는 그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 해주었고, 그 것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순유가 떠나는 날 손걸에게 말했다.
"참으로 대단한 분을 군사로 두었습니다. 제가 곽가님을 예전에 진류에서 잠깐 보았을 때에도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이번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이 깨달았습니다. 아마 우리 군에서 출사를 했다면 큰 뜻을 펼쳤을 것인데 아쉽군요."
"훗.. 곽 봉효는 내가 처음으로 등용한 인재다. 내가 봉효를 데리러 영천까지 손수 방문하였었지. 난 그것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봉효는 앞으로 다른 세력들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야. 하나씩 멸하는 것으로 말이지.. 조조군도 당장 우리와 동맹을 맺는 것에 감사해야 될 것이고 말이지."
순유는 속으로 손걸을 욕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저희도 순순히 당하지 만은 않을 것인데, 동맹군에게 그리 말을 하셔도 되겠습니까?"
"하하하!! 농일세. 조심히 가고, 내년에 보지."
"무탈하게 잘 지내십시오."
순유는 진류로 돌아가 조조에게 손걸군의 요구조건을 이야기 했으며, 다른 모사들과 열심히 대화를 나눈 조조는 그들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나중에 원소를 무찌른 후에 다시 되찾아 오겠다 생각하며 손걸군 측에 요구조건을 수락하겠다는 서신을 전했다.
그렇게 손걸과 조조의 연합군의 시작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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