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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아들이 인조를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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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닌
작품등록일 :
2024.07.22 15:58
최근연재일 :
2024.09.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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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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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여인들의 절의

DUMMY

“곧 수라간 자재 나갈 시간이야. 그러니까 얼른 군주 자가와 원손 자가를 모셔다 생각시들 옷으로 갈아입혀 드리고, 그편에 얼른 모시고 나가자.”


환향녀로 궁에 들어온 자들이 처음 배속된 곳은 동궁, 하지만 당장 모실 세자도 없는 곳에 그 많은 인원을 모두 두는 건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들은 점차 궐내 다른 영역에도 배치되기 시작했고, 그 처지로 인해 주로 하찮은 일들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고된 일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수라간의 온갖 식자재를 받아 옮기고 빈 상자들을 내어가는 것.

귀한 분들의 식사 마련하는 일엔 손끝 하나 댈 수 없었지만, 이런 번다하고 힘든 일만큼은 허락되어 있었다.


“나간 뒤에는? 기껏해야 궐담이나 넘을 뿐이지, 그다음엔 여린 두 분 자가께서 도성을 빠져나가실 방도가 없는걸?”


“빠져나간 뒤에는 얼른 최씨 집안 댁으로 가서 사정을 말씀드려. 분명 도와주실 거야.”


운영이 말한 최씨 집안은 세자가 일으킨 사건이 있기 전에도 환향한 아내를 구해 여전히 종부로 대한 것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최계창의 집안.

당연하게도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현재는 실제 가정환경 감시대상이었고, 그 덕에 궁인의 출입이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더불어 당시 여론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지킬 정도였으니, 세자에게 우호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우린 최대한 시간을 끄는 거야.”


믿을만한 집안에 두 소중한 아이들의 운명을 맡기고, 운영을 비롯한 동궁 나인들은 죽음을 각오했다.


세간에서 그 절개를 의심받았던 자들, 가족들마저 천대하며 내쫓았던 자들은 작금의 한양에서 그 누구보다 비장한 기운을 풍겼다.


***


이종이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인지한 때는 손주들을 대령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 약 반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아무리 왕의 부름을 받아 의복 갖추어야 한다고 해도 그리 오래 걸릴 리는 없었으니까.


쓸데없이 시간이 늘어지는 통에 다시 사람을 보내 짜증을 부리자, 돌아온 답은 그의 등골을 서늘하게 할 만한 것이었다.


“전하, 동궁 궁인들이 이르길 별안간 군주와 원손이 사라져 인근 전각을 모두 살피고 있음에도 찾질 못하고 있다 하옵니다.”


“뭐, 뭐라?”


이종은 이 황당한 보고에 절로 몸을 일으켰고, 이내 한껏 언성을 높였다.


“도대체 동궁 나인들은 무얼 했기에 그 어린것들이 멋대로 돌아다니다 사라지게 한단 말이냐! 당장 궁인 모두를 동원해 궐 전체를 뒤져라!”


딱 때맞춰 아이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종은 일단 궐 내부의 수색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안 그래도 사방이 고립되어 도성 분위기가 썩 좋지 않은 와중에 요란을 떨다 더욱 흉흉해질 것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렇게 내시 궁녀 할 것 없이 모두 동원하여 궐 전체를 수색했건만, 시간이 그로부터 한 시진은 더 지났음에도 그 머리카락 한 올조차 찾지 못했다.


일부 궁녀들의 실책이라기엔, 궐 분위기를 보고 겁먹은 아이들이 우발적으로 숨은 것이라기엔 너무 깔끔하게 사라졌지 않은가?

이에 이종의 머릿속에선 한 가지 생각이 또렷해졌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빼돌린 것이다.’


이쯤 되니 이종은 더는 조용한 수색 따위에 연연할 수 없었다.


“당장 도성 전체를 샅샅이 뒤져 감히 역적의 자식을 빼돌린 자를 찾아라! 내 그 집안의 삼족을 멸할 것이다!”


결국 이종은 자신이 손주들을 성벽에 매달아 아들을 협박하고, 이로써 혈혈단신으로 도성에 들어와 변을 당하게 하려 했음을 스스로 도성 전체에 소문내게 되었다.

신분, 세대, 성별을 막론하고 경악할 만행이 사전에 알려지는 건 물론 그 참혹한 계획을 실행치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마저도 모두가 알게 될 터였다.


“그리고 당장 동궁의 그 천한 계집들을 전부 잡아들여라! 아이들이 사라진 것을 미처 몰랐단 것은 거짓! 이년들 가운데 분명 역적과 소통하여 아이들을 빼돌린 죄인이 있을 것이다!”


뒤이어 이종은 동궁에 배속된 환향녀 전원을 잡아들이게 했다.

그러고는 심지어 친국에 나섰으니, 몇 남지 않은 곁을 지키는 이들의 눈엔 이것이 마지막 수단을 지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마저 잃은 분풀이를 하려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


끔찍한 비명이 연이어 울려 퍼지고, 초주검이 된 환향녀들에게선 비릿한 혈향만이 가득 뿜어지게 되었다.


왕이 발작하며 명하니 어쩔 수 없이 따르며 이 참담한 꼴을 만든 자들은 이러다 후에 죄를 얻어 환향녀들과 같은 꼴이 될까 두려운 마음에 자꾸만 손에 힘이 빠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으면 그 훗날을 기다릴 것 없이 바로 형틀에 함께 묶일 판이니, 그들은 이를 앙다물며 애써 손에 힘을 줄 뿐이었다.


왕의 아래서 그 명령을 수행하는 형졸들마저 이러한데, 과연 왕의 곁에 불편하게 자리 잡은 신료들은, 또 궐 밖의 사람들은 어떠할 것인가?


어쩌면 원손과 군주가 탈출한 그 순간, 아이들을 잡겠다고 군사들을 푼 순간, 이종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한껏 좁아진 이종의 시야에는 그저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여인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들을 이미 대역죄인으로 여기며, 이들만 아니었으면 마지막 반전을 이룰 수 있었다며 한껏 분한 와중이었다.


“당장 고하지 못할까! 누굴 통하여 귀한 왕손들을 빼돌렸는지, 지금 아이들은 어디 있는지 고하란 말이다!”


이종 본인이었다면 벌써 수백 번은 자백하고 남았을 꼴이 되어서도, 심지어 몇몇은 숨을 거둬 고할 수조차 없게 된 와중임에도, 여인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이는 이종을 더욱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그는 직접 형장으로 내려가 평소 이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했던 궁녀 운영의 얼굴을 거칠게 부여잡았다.


“당장 고하거라! 그러지 않으면 네년을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니!”


왕이 입에 담기엔 참으로 흉측한 말이었으나, 이종은 이미 이를 고려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상대로, 드디어 운영의 입이 슬며시 열렸다.


“고하면 살 수 있나이까?”


고하면 살 수 있냐니.


한껏 가증스러운 눈빛으로만 일관하던 것들이 드디어 입을 여는가.

결국 이들도 이종 본인과 별다를 것 없는 인간인가.


‘그럼 그렇지!’


죽음 앞에서도 체면과 뜻을 지킬 수 있는 인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종은 그런 본인의 생각에 꼭 맞는 결과가 곧 도래하리라 여기며 절로 입꼬리를 휘어 올렸다.


“그래. 역적들을 모두 토설하기만 하면, 내 너의 죄는 묻지 않으마.”


“하오면 고하겠나이다.”


그렇게 답한 운영은 순간 이종에게는 더없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전하의 총애를 받는 조 소용이 작금의 환란을 깊이 애석하게 여기며, 소인에게 두 분을 밖으로 모셔 보전하라 하였습니다.”


“뭐, 뭐라?”


“하옵고 낙흥부원군이 청을 등에 업고 저하를 옹위하고자 조 소용과 뜻을 합쳐 궐 밖에서의 일을 맡기로 하셨기에, 저는 두 분을 낙흥부원군의 사람들에게 맡겼나이다.”


운영의 입에서 나온 배후는 뜻밖에도 이종이 가장 총애하는 후궁과 이 사달이 나기까지 모든 꾀를 내었던 김자점이었다.

그러자 이종은 크게 동요하며 버럭 소리쳤다.


“그, 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 감히 윗전을 능멸해!”


한껏 버럭 한 이종은 그대로 운영의 뺨을 후려쳐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런 무엄한, 무엄한···!”


“전하! 어찌 조 소용과 낙흥부원군은 그리 믿으시면서 전하께서 직접 낳으신 저하는 한없이 의심하시옵니까!”


이종이 더욱 열을 내는 가운데, 다시 고개를 돌린 운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대관절 저하의 죄가 무엇이건대 이리 핍박하시어 억울하게 죄입은 자들을 만드시냔 말이옵니다!”


“감히 군왕에게 망측한 소릴 늘어놓으며 가르치려 드느냐! 거둬준 은혜도 모르는 것 같으니!”


“어찌 소인이 은혜를 모르겠나이까? 소인들을 거두어주신 분은 바로 세자 저하이시니, 그 은혜를 갚고자 그분의 자식들을 목숨을 다해 지킬 뿐이옵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였기에, 운영은 유언이라도 남기듯 가감 없이 그 속내를 부르짖었다.


“소인이 규중에서 자란 세상 물정 모르는 여인일 뿐이긴 하나, 그래도 이날까지 진실로 나라를 위한 일을 하신 분은 전하가 아닌 세자 저하임은 잘 알고 있나이다! 의리를 아는 사람으로서도,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도 누굴 지켜야 할지는 자명···!”


“닥쳐라!”


이종은 분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운영의 뺨을 올려붙였다.

그렇게 겨우 악다구니를 틀어막은 듯했지만, 이는 잠시뿐이었다.


“전하께서 아무리 악행을 더하시더라도 뜻을 이루실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이미 원손과 군주는 도성을 떠나 저하께로 향하였으니! 이는 낙흥부원군이···!”


“닥치라 하였거늘!”


이종은 더는 참을 수 없었기에, 목이 다 갈라지도록 고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저 끔찍한 눈빛, 모욕적인 말을 더는 듣지 않고자 곁을 따르던 호위의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한 번 내리침에 비로소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솟아오른 더운 피가 이종에게 쏟아지며 실로 흉한 꼴로 만들고 말았다.


“젠장! 젠장!”


이종은 문지를수록 번지기만 하는 피에 소름 끼쳐 하며 한껏 발광했다.


현재 세자가 내세우고 있는 왕의 정신이 혼미하다는 말이 사실인 듯한 모습.

이를 그의 곁에 남은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게도 오롯이 보인 그는 휙 하고 몸을 돌렸다.


“반드시 이년들에게서 원손과 군주의 위치를 알아내라! 분명! 분명 도성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니!”


합리적인 추론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그저 바람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이종은 달아나듯 형장을 빠져나갔다.


“저, 전하!”


그리고 김자점은 그런 이종을 다급하게 부르며 얼른 뒤로 따라붙었다.

상대가 이종이었기에 얼른 따라잡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하, 부디 심신을 가다듬으시옵고···.”


“자점.”


다급한 김자점의 목소리를 듣던 이종은 순간 걸음을 멈추며 그를 이름으로 불렀다.


“예, 예, 전하.”


“저 미친것이 마지막 발악을 한 게지? 그렇지?”


이종은 김자점을 돌아보며 운영이 했던 말을, 본인이 개소리로 치부했던 소릴 두고 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피에 젖은 가운데 안광은 묘하게 돌아 있었으니, 그 누구라 해도 뒷걸음질을 칠만한 모습이었다.


“무, 물론이옵니다. 어찌 신이···!”


“그래. 믿지. 내 어찌 그대를 믿지 않으랴?”


당황한 김자점에게 그렇게 말한 이종은 김자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는 김자점을 다독이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손의 떨림은, 그와 동시에 김자점의 어깨에 진득하게 묻어나는 핏물은 이종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효과를 일으켰다.


“더는 날 실망시키지 말게. 반드시 그 어린것들을 찾아 역적이 죽을 자리로 알아서 걸어 들어오게 해야 할 것이야.”


아들을 역적이라고 부르는 일이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진 듯한 이종은 그렇게 말을 맺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자점에게는 이 모습이 마치 원손과 군주를 찾지 못하면 성벽에 매달리는 건 그가 될 거라는 암시처럼 보였다.


***


삼남 사대부들을 대표하는 김상헌이 동료들과 함께 숭례문 앞에 자리 잡고 부디 간신들의 참언을 물리칠 것을 청한 지도 어느새 닷새.


그들은 우리가 전하는 음식을 마다하며, 오직 약간의 물만 섭취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성벽에서 아무런 반격이 이어지지 않으니, 영양실조로 쓰러져 명분을 만들고자 하는 듯했다.


그런 가운데 북쪽에 비로소 임경업과 도르곤의 군대가 도착했으니, 이제 한양은 완벽하게 포위된 형국이 되었다.


그렇게 도성에 그 무엇보다 절망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가운데, 김상헌 등의 혼절이라는 최종 명분 겸 공격 신호를 기다리던 와중, 내 군영으로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누가 와?”


“과거 음관(蔭官)을 지냈던 최계창의 아들로 최관(崔寬)이라 하온데, 도성의 방비가 남쪽으로 기운 틈을 타 북악산을 넘어···.”


“아니, 그가 누굴 데리고···.”


“원손 자가와 군주 자가이옵니다.”


원손. 군주.


귀국길에 오른 뒤로 그 무엇보다 무거운 마음의 짐이 되었던 아이들의 호칭을 들은 순간, 나는 그간 굳건히 버텨왔던 다리에 살짝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하!”


“괜찮네. 괜찮아. 그보다 어서, 어서 아이들을 들이게.”


얼른 자세를 잡은 나는 주변의 걱정을 잠재우며 얼른 아이들을 불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영 안으로 이제는 여인 태가 제법 나는 군주와 이제는 누군가에게 안겨 다니기엔 너무 자란 원손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도성을 빠져나오며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머리가 반쯤 헝클어진 군주가 날 부르며 내게 달려와 안겼다.

고맙게도 지금껏 살아남아 준, 또 이제는 이렇게 직접 탈출해 근심을 덜어준 녀석이 전하는 감각에 절로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그렇게 군주를 품에 꼭 안은 나는 군영의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낯선 듯 쭈뼛거리고 있는 원손을 향해 한 팔을 펼쳤다.


“이리, 이리 오거라. 아비다.”


“아, 아버지.”


그러자 무인년에 날 어색해했던 녀석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누이와 같이 폭 안겼다.

어쩔 수 없이 인조의 손에 두어야 했던 내 소중한 자식들이 온전히 내게 돌아왔다.


그렇게 마음 벅찬 재회의 순간을 보내고, 나는 우리 아이들을 여기까지 데려와 준 귀인, 최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찌 아이들을 구해 여기까지 왔는가?”


“이는 오직 동궁 궁녀들의 덕이옵니다.”


내 질문에 최관은 한껏 몸을 숙이며 답했다.


“궁녀들이라?”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니, 두 분을 인질로 삼아 저하께서 홀로 도성에 들게 하려는 흉계가 있었다 하옵니다. 하여 동궁 궁녀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은밀히 두 분을 궐 밖으로 내보내 소인의 집안에 맡겨···.”


“그럼 그들은? 운영은 어찌 되었는가?”


“두 분을 뵙고 상황을 파악하기가 무섭게 제 아버지의 명을 따라 변복하고 산을 넘은 터라 확실히는 알지 못하오나, 그들을 상대로 전하께서 친국에 나서신 듯하였나이다.”


인조가 친국에 나섰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도다.”


세간에서 그 절개를 의심하던 여인들의 신의가 이 순간 그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해주었다.


이에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탄식했다.

기껏해야 궁에 들여줬을 뿐인, 이로 인해 찾아올 고난은 오롯이 그들이 감내하게 하였을 뿐인 내가 받기엔 너무나도 커다란 마음이었으니까.


“유 장군.”


한참을 침묵하며 애도한 나는 나직이 유림을 불렀다.


“예, 저하.”


“지금 당장 조정의 간신들이 세자를 모함한 것도 모자라 왕명을 꾸며 왕손들마저 해치려 하였다 사방에 알리게. 부왕께서는 손주들이 해를 당하는 것조차 살피실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는 뜻임도 함께.”


최관이 알린 바는 결코 혈육에게 할 수 없는 미친 짓이다.

따라서 이는 인조가 단순히 간신들에게 눈과 귀가 가려진 것을 넘어 아예 판단과 행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는 증거로 삼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찌 부왕의 답을 기다릴 수 있으랴? 한양에서 나올 모든 왕명은 결국 간신들이 농단한 결과일 뿐일 터인데.”


그러니 이제 나는 아버지를 억류한 역적들에게서 아버지를 구하는 아들이 된다.

저 성벽 위의 병사들은 왕의 병사가 아니라 역적들의 병사들이고.

더는 김상헌이 만들어줄 명분을, 그가 스스로 건강을 해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서둘러 일을 진행하고, 예판에게도 그만 물러나라 전하게. 이제부터 뿌려질 피는 모두 역적들의 것일 뿐이니.”


그렇게 새롭게 날 돕던 자들의 안전까지 확보한 나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한양을 공격한다.”


내게 대항할 힘도, 날 협박할 모든 수단도 모두 잃게 된 인조에게, 나는 비로소 화포를 겨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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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새로운 시대로 (完) +11 24.09.02 1,881 86 14쪽
» 여인들의 절의 +5 24.09.02 1,584 86 16쪽
43 꼿꼿한 사대부의 쓸모 +14 24.09.01 2,215 130 16쪽
42 김상헌(金尙憲) +14 24.08.31 2,344 119 14쪽
41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길 +13 24.08.30 2,431 132 15쪽
40 심기원의 난 +23 24.08.29 2,592 150 15쪽
39 천명이 무너졌다 (4) +17 24.08.28 2,637 130 14쪽
38 천명이 무너졌다 (3) +12 24.08.27 2,551 12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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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천명이 무너졌다 (1) +14 24.08.25 2,774 140 17쪽
35 신사년의 밀담 (2) +11 24.08.24 2,648 118 13쪽
34 신사년의 밀담 (1) +15 24.08.23 2,751 141 17쪽
33 세자의 사람들 (2) +9 24.08.22 2,872 125 13쪽
32 세자의 사람들 (1) +15 24.08.21 2,937 129 13쪽
31 명-청 책봉 경쟁 (2) +19 24.08.20 3,007 132 16쪽
30 명-청 책봉 경쟁 (1) +13 24.08.19 3,034 136 16쪽
29 무인사변(戊寅事變) (5) +15 24.08.18 3,127 145 14쪽
28 무인사변(戊寅事變) (4) +9 24.08.17 3,019 13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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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무인사변(戊寅事變) (1) +8 24.08.14 3,496 143 13쪽
24 전쟁을 기다리며 (2) +11 24.08.13 3,480 154 20쪽
23 전쟁을 기다리며 (1) +11 24.08.12 3,675 151 16쪽
22 복귀 (2) +16 24.08.11 3,766 155 16쪽
21 복귀 (1) +12 24.08.10 3,893 167 14쪽
20 아버지와 아들 (4) +11 24.08.09 3,894 17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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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충성스러운 애국노 (2) +12 24.08.05 3,952 17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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