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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아들이 인조를 찢음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탈닌
작품등록일 :
2024.07.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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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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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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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이 무너졌다 (1)

DUMMY

홍타이지는 조선 세자를 통해 명의 첩보를 파악하며 준비해온 이번 전쟁에 대해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 첫 번째 근거는 병자년, 무인년에 이어 경진년에 벌인 초토화 작전에서 파악하기로, 화북 일대의 궁핍이 극에 달했다는 점이었다.

기근은 정도만 달리할 뿐 장강 이북에 공평하게 벌어지고 있었으니, 청이 자리한 만주보다 덜할 뿐 상당한 식량 부족에 직면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언급한 대로 세 차례나 되는 청의 대대적인 약탈에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한 농민 봉기까지 있으니, 화북의 여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그런 가운데 장성 너머를 지키는 마지막 병력은 조대수와 함께 금주성에 갇힌 지 대략 10년이 다 되었으니, 이게 두 번째 근거였다.

고립된 채로 그 엄청난 기간을 버텼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거기다 인근의 황폐화에 후방 보급 여력 상실까지 발생했다.

이제 금주성은 터럭만큼의 절망만으로도 무너질 게 자명했다.


이에 더해 마지막 세 번째, 어떻게든 이 끝없는 환란을 끝내보고자 한곳에 모은 명의 병력은 지나치게 많았다.

화북이 한껏 궁핍해진 와중에 14만이나 되는 병력을 오래 유지하기란 불가능할 게 뻔하건만, 이를 한곳에 모았으니 어찌 오래 버티랴?

더군다나 그 넓은 나라에서 각각 흩어져 작전에 임하던 자들을 단기간에 모았으니, 지휘관의 통제력도 약할 게 뻔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10만의 대군은 물리칠 수 있다고 쉬이 자부할 만한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홍타이지는 그간의 약탈에서 수만의 규모를 자랑하는 명나라 군대와 여러 차례 다퉈봤고, 그들은 그 수가 무색하게 망신만을 당해왔다.


명나라 군대는 이름만 군대이지 그 실질은 한참 모자라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매번 원정마다 그 엄청난 수의 포로와 물자를 확보했겠는가?

따라서 홍타이지는 적의 수를 적어도 절반 정도로 감해 평가했다.


따라서 적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지르갈랑과 호거의 군대와 그리 큰 차이가 난다 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는 무인년에 대공을 세운 도르곤에게 사전작업만을 맡긴 채 불러들이고 핵심은 그 두 사람에게 맡긴 이유이기도 했다.


몸이 슬슬 예전 같지 않고, 요즘은 갑자기 코피가 나더니 한참을 멈추지 않는 날들도 생기는 와중이었으니까.

이런 가운데 도르곤의 공이 더욱 늘게 되면 그에 미달하는 지르갈랑이나 최근 실책을 저지른 호거는 균형을 맞출 수가 없다.

여기에 더해 만약 다이샨이 완전히 도르곤에게 기울기라도 한다면, 이 나라의 후사는 오직 도르곤의 뜻대로 결정되고 말 것이다.


홍타이지가 설마 도르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자 나라를 가꾸었겠는가?

그는 본인의 자식, 그것도 세자가 말했듯 초원과 중원을 모두 아우를 조건을 갖춘 풀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나이가 아직 너무 어리기에, 이를 공공연히 드러냈다간 경쟁 관계인 호거와 도르곤이 임시로 연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은 그 존재감을 숨기며 유력한 황족들이 서로 경쟁하게 놓아두어야 했다.


조금만 더 버텨서 풀린이 장성하길 기다리고, 또 스스로 황위를 노릴 가능성이 없기에 풀린을 옹위하여 세를 얻고자 할 이들을 모아야 했다.

그렇기에 균형을 위해 도르곤의 곁에 서는 걸 허락했던 세자가 이 시점에 이르러 풀린을 언급했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물론 이는 아직 먼 이야기.

지금은 지르갈랑과 호거가 공을 세우길 기대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라가 곤궁한 와중임에도 조선의 명의를 활용한 삼각무역으로 얻은 군량과 재물을 두 사람에게 크게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르갈랑이··· 뭘 어째···?”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명의 계료총독 홍승주가 이끄는 대군이 우리가 예측한 길로 진격하였음에도 양람기가 크게 패하여 그 수가 4천뿐이 남지 않았나이다. 사세가 이러하니 정람기 군사들은 목책과 함정으로 진격을 방해할 뿐, 감히 겨루지 못하고···.”


“이런 대경할 일이 있나!”


홍타이지는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버럭 소리치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항시 모든 걸 내다보며 가늠하던, 보통은 서늘한 압박감을 선사할 뿐 호통은 자제하던 그에겐 다소 생소한 일이었다.

스스로 예단한 일이 이렇듯 잘못된 경우는 흔치 않기에, 더욱이 서서히 덮쳐오는 병마에 다소 예민해진 탓이었다.


하지만 그는 황제.

그것도 이 청나라라는 제국을 만든 사람이었다.


“더 지체하여 지르갈랑과 호거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길을 내어주게 해선 안 된다. 금주의 적들이 다시금 사기를 끌어 올리고 대병력과 연계하게 한다면 사세가 어찌 될지 모른다.”


이내 침착을 되찾고 상황을 정리한 홍타이지는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잉굴다이.”


“예, 폐하.”


“지금 당장 소집된 홍기와 황기의 모든 병력을 이끌고 진격한다. 짐이 친정할 것이니, 후속하는 병력은 곧장 금주로 이동하도록 하라.”


“폐하! 직접 나서시는 것은···!”


“대패다. 그것도 전에 없던 대패이니, 그에 따라 피어오른 두려운 마음을 억제하자면 그만한 존재가 필요한 법이다. 그저 적당한 장수를 내세워봐야 앞서 당한 자들의 공포가 금세 모두를 뒤덮지 않겠는가?”


홍타이지의 치세 이후로 실로 드문 결과이기에,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적확한 판단이었다.

본디 강한 자일수록 공포와 고통을 직면하는 일이 드물기에, 강자는 약자보다도 그에 취약하니까.


“···예, 폐하. 조속히 따르겠나이다.”


홍타이지의 측근으로서 내심 그의 상태를 짐작하고 있는 잉굴다이였으나, 그 또한 사리 분별 확실한 명장이었기에, 그는 주군에 대한 우려를 억누르며 명을 받들었다.


예상치 못한 심각한 패배와 위대한 군주의 심상치 않은 건강 상태.

마치 선대 누르하치 시절의 영원성 전투를 떠올리게 하는 양상에 잉굴다이는 언뜻 제국에 암운이 드리운 듯하였다.


***


홍타이지와 그의 총신 잉굴다이의 흉중엔 근심이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세 좋게 출진한 홍승주와 그 휘하 장수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 건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일단 명군의 피해 역시 상당했다는 점이 있었다.

홍승주의 군대가 각지의 반란을 제압하며 단련된 군대라고는 하나, 그간 홍타이지가 상대했던 이들과 완전히 다른 존재는 아니었다.


만주족이 선사하는 공포를 알음알음 알고 있는 자들을 이끌고 야전에 나서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었고, 사실상 적 하나를 죽이면 아군 하나도 죽는 양상의 전투가 치러졌다.

그런데도 승전이라 할 수 있는 건 순전히 명군의 숫자가 월등히 많았기 때문.

이 과정에서 휘하 병력 대부분을 잃은 부대도 존재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야전에서 이만한 성과를 거둔 건 과거 원숭환이나 그 휘하에서 활약했던 금주성의 조대수 정도.

따라서 작금의 명나라 군대를 이끌고 이만한 성과를 낸 총사령관 홍승주의 재주를 오히려 높게 평가할 일이었다.


그런데 마냥 웃지 못하는 건 바로 다른 이유 때문이었으니, 이는 바로 이들의 진격로에 놓인 겹겹의 목책에 있었다.


“이 오랑캐 놈들이 언제부터 방비를 갖추고 대열을 지키는 싸움을 했다고···!”


홍승주는 4만 중 3만이 넘는 병력 손실을 대부분 탈영병이 아닌 사상자로 채운 지르갈랑의 부대가 그렇게 아귀처럼 달려들었던 이유를 목도하며 한껏 분노를 드러냈다.


이제 1만도 안 되는 적병들이 각종 장애물에 기대 이들을 막아낼 가능성은 크지 않았지만, 아직도 수만이 넘는 병력을 자랑하는 명군이 나아가자면 이 모두를 일일이 철거해야 했다.

현대의 속된 말로 이르자면, 지르갈랑은 전쟁을 아주 더럽게 하고 있었다.


하여 전투에서 이기고도 금주를 구원하러 나아가는 길이 상당히 지체되는 가운데, 홍승주는 결국 끔찍한 보고를 전달받게 되었다.


“총독! 금주로 나아가는 산세 길목으로 청의 본군이 당도했습니다! 게다가 금한을 상징하는 깃발까지 걸렸으니, 아무래도 금한이 전력을 이끌고 친정에 나선 듯합니다!”


잔혹한 오랑캐들의 주인.

그런 자가 이끄는 부대라면 청나라 병사 중에서도 최고의 정예병일 게 자명했다.


청을 완전히 밀어낼 작정으로 진군한 만큼 언젠간 그와 대적하게 되리라 여기긴 했지만, 홍승주가 바란 시기는 적어도 금주에 당도한 이후였다.

장성 이북의 마지막 정예병들, 조대수 휘하의 2만 5천을 확보하고 단단한 금주성과 연계해 대적할 생각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명군은 아직 금주에 도착하지 못했다.

주변에 산세를 끼고 있다곤 하나, 지금의 명군은 지키는 게 아니라 나아가야 할 상황이니 오히려 방해였다.

거기다 곳곳에 충분히 기병을 운용할만한 너른 곳들이 존재했으니, 여기서 다툰다면 재차 야전을 벌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홍타이지의 휘하 부대와도 1 대 1의 교전비를 이루는 전투를 벌였는데 그보다 더 강한 자들과 야전을 벌여야 한다니.

휘하 장수들은 물론이고 홍승주 본인마저도 섬뜩한 일이었다.


“일단은, 일단은 인근의 유봉산(乳峰山)으로 옮겨 진을 갖추고 오랑캐들을 받아치도록 하라! 발해왕이 전한 바에 따르면 저들의 사정이 좋지 않아 전투를 길게 이어갈 수 없다 하였으니, 필시 먼저 공격해올 것이다!”


홍승주는 조선 세자에게서 전달받았던 정보를 토대로 지연전을 계획했다.

이미 명의 대청 교리는 지형을 활용해 지연전을 벌이는 것으로 거의 정착되기도 한 상황이니, 사실 그런 정보가 없었더라도 취했을 방략이었다.


그리고 이는 안타깝게도 최악의 판단이 되고 말았다.


***


다행히 홍승주의 군대가 금주로 몰려가기 전에 전장에 당도한 홍타이지는 곧장 적들을 쓸어버릴 요량으로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폐하, 감히 아뢰옵건대, 주요 길목을 차지하고 버텨 적을 지치게 하소서.”


그런데 제안된 전략은 놀랍게도 지연전.

심지어 이를 말한 건 군의 사정은 물론 홍타이지의 상태마저도 잘 알고 있는 잉굴다이였다.


“그대는 우리의 군량 상황을 모르는가? 우리의 여력은 부족하고, 그나마 넉넉하게 챙겨주었던 양람기는 참패하고 물러나 이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였다.”


홍타이지는 서늘한 음성으로 일갈했고, 이에 지은 죄가 있어 한껏 몸을 움츠리고 있던 지르갈랑만 흠칫하고 말았다.


“하오면 저들의 기세를 꺾고 그 취약한 통제력으로 인해 산산이 흩어질 적들을 각개격파하고자 하셨던 본 계획은 허무실 요량이시옵니까?”


하지만 잉굴다이는 물러서지 않았고, 본인의 구상을 더욱 강하게 주장했다.


“폐하, 강하게 몰면 적들은 한껏 뭉치지만, 숨통을 틔워주며 기세를 보이면 두려워 흩어지기 마련이옵니다. 양람기의 상황과 주변 전황으로 보아 명군의 피해도 절대 적지 않으니, 우리의 위세를 아는 저들은 감히 먼저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저들이 그 두려움에 흩어지는 일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그때는 우리 역시 싸울 기력이 부족해질 것을 모르는가?”


“이는 기세를 보이는 동시에 저들의 여력 역시 줄여두는 것으로 재촉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여력을 줄인다?”


“예, 폐하. 저만한 대군의 행군은 필시 따로 보급고를 두기 마련이니, 일부 군을 우회시켜 적들의 군량을 찾아 불태우게 하시옵소서. 그리하면 나아갈 용기는 없는 와중에 버틸 수도 없다고 여길 것이니, 회군하는 길목에 적당한 복병을 두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흐음···.”


홍타이지는 잠시 말을 아끼며 그 가부를 헤아렸다.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간 수차례 겪어온 적들의 수준으로 보아 가능성은 상당하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청군의 기세가 크게 꺾였음을, 이에 주력이 이 금주와 송산 사이에 묶였음을 사방에 알리는 꼴이 아닌가?

그런다고 해서 이미 오래전에 사방을 평정해둔 홍타이지의 후방을 위협할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딱 한 사람만 빼고는.


‘세자···.’


홍타이지는 그 유일한 위험 가능성을 지닌 존재를 떠올렸다.


다른 이들은 명과의 밀통 사실을 모르기에 그가 반역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홍타이지는 알고 있다.

아무리 자신이 친히 허락한 일이라 해도 이런 시국에선 그 가짜 밀통을 진짜로 만들 수 있음 역시.

그와 밀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은근히 떠보듯 묻기도 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에 대한 세자의 답은 청과의 의리, 홍타이지가 염두에 둔 후사에 대한 기대였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고서야 그의 면전에서 진심으로 반역하겠다 할 리는 없거니와, 홍타이지는 아랫사람의 말을 모두 곧이곧대로 믿는 자는 군주의 자격이 없다 여기는 자였다.


그렇기에 만약 이 상황을 파악하고 세자가 뜻을 바꾼다면, 그때는 잉굴다이가 권한 지연전은 불가하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 본거지를 지키기 위해 회군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주춤한 홍승주의 군대가 조대수와 합류하는 건 물론 그들의 원래 계획대로 요하를 향해 나아가리라.


어찌해야 하는가?

세자는 어찌할 것인가?


그렇게 고민하던 홍타이지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부자간에도 권력은 나눌 수 없다. 하여 자식이 위명을 얻었다면 반드시 스스로 지킬 힘을 보존하고 배후를 마련해야 한다···.’


세자가 만약 판도를 바꾸겠다고 심양으로 향한다면, 그 뜻대로 되긴 할지 몰라도 휘하의 그 여력은 반드시 소멸한다.

전방엔 심양의 성곽을, 후방엔 회군하는 홍타이지의 병력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게다가 새 배후가 되어주어야 할 나라는 명.

청을 제압하는 것만으로 안정을 느끼며 외부로 시선을 돌릴 수 없는, 그리고 세자를 왕으로 봉했다 하나 그 아비 역시 조선왕으로 책봉한 나라다.


조선이 배신한 게 아니라 여기는 명이 새삼스럽게 지금의 조선왕을 압박하겠는가?

그 뜻이 배역하여, 그리고 세자의 쓸모를 깊이 느낀다면 또 모르겠지만, 유학을 국시로 삼는 나라가 패륜을 함부로 지지할 리 없다.


따라서 세자에게는 아무리 큰 반전의 기회가 있더라도 명은 좋은 패가 아니다.

오히려 계속 홍타이지의 손을 잡는 것이, 그에게 천명을 가져다주는 것이 진정 이로운 일이다.


문제는 과연 세자가 현 상황에서 여기까지 고려할 수 있는 자인가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홍타이지는 이를 가늠하는 일만큼은 그리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있는 자다. 아니, 이미 헤아렸을 것이다.’


판단이 여기에 이른 홍타이지는 비로소 입술을 뗐다.


“잉굴다이.”


“예, 폐하.”


“목을 걸 수 있겠는가?”


“물론이옵니다. 폐하.”


“좋다. 그럼 그리하라.”


이미 그 전략이 적합하다고 여겼음에도, 상대가 그의 둘도 없는 충신임에도 홍타이지는 그의 목숨을 담보로 잡으며 작전을 허락했다.


그리고 그렇게, 청은 역사의 궤적을 따라 승리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6월에 기어코 명과 청의 초전이 치러지고, 지르갈랑의 대패 소식이 전달되었을 때만 해도 다들 명의 천명이 회복될 때가 왔다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홍타이지의 본군이 출정하고, 청나라의 천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바로 그 전과가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기세 좋게 나아갔던 홍승주의 군대는 뜻밖에 대치전을 이어가게 되고, 그런 와중에 인근 필가산(筆架山)에 두었던 보급고가 발각되어 전소되었다.


이에 군 전체가 동요하기 시작했고, 휘하 부대가 멋대로 퇴각해버리는 일이 하나둘 발생하며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뛰쳐나간 자들은 미리 안배해둔 복병에 걸려 뼈도 못 추리는 상황이 되었으니, 그나마 몸 성히 퇴각해 산해관으로 들어온 건 홍승주 휘하 장수 중 하나였던 오삼계(吳三桂)의 병력뿐이었다.


여기까지의 소식은 우리의 개죽음을 방지하고자 유일하게 제대로 된 탈출에 성공한 오삼계가 직접 급히 알린 만큼 달리 해석할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만약 이후로도 원 역사의 그것과 같이 진행된다면, 결국 1만 남짓만이 남은 홍승주는 어쩔 수 없이 송산으로 퇴각하고, 패색이 짙어진 끝에 청에 항복할 것이다.

10년을 버텼다는 금주의 조대수 역시 마찬가지.

명의 마지막 명장이라는 자들은 그렇게 청 제국의 중원 정벌의 선봉장으로 탈바꿈한다.


중화의 발원지라는 중원 사람들이 이렇게나 오랑캐에게 고개를 잘 숙인다.

그런데 왜 우리 조선인들은 그렇게 어려워하는지 원.


나는 그런 잡생각마저 하며 내가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을 덤덤히 파악할 뿐이었다.


“저, 저하···. 이를 어찌하면 되겠나이까···?”


하지만 다른 이들은 나처럼 덤덤할 수가 없었기에, 우리의 주장 격인 유림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런 그를 눈에 담으며 곁에 앉은 임경업을 슬쩍 돌아보니, 그답지 않게 동공이 떨리는 게 훤히 보였다.


“어찌하긴 뭘 어쩌겠소? 이미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이때 우린 뭘 할지도 논한 듯한데?”


명을 지킬 마지막 힘이 산산이 부서졌다.

따라서 내게 어벙하게 묻는 유림도, 동공만 떨리고 있는 임경업도 이제는 분명히 알았으리라.

그들이 미약한 가능성 정도로만 두었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바로 보시오. 천명이 무너졌소.”


대명의 천명이 끝났다.

이 명징한 사실을, 나는 친히 또박또박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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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김상헌(金尙憲) +14 24.08.31 2,345 119 14쪽
41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길 +13 24.08.30 2,431 132 15쪽
40 심기원의 난 +23 24.08.29 2,592 150 15쪽
39 천명이 무너졌다 (4) +17 24.08.28 2,637 130 14쪽
38 천명이 무너졌다 (3) +12 24.08.27 2,551 127 13쪽
37 천명이 무너졌다 (2) +22 24.08.26 2,641 141 17쪽
» 천명이 무너졌다 (1) +14 24.08.25 2,775 140 17쪽
35 신사년의 밀담 (2) +11 24.08.24 2,648 118 13쪽
34 신사년의 밀담 (1) +15 24.08.23 2,751 141 17쪽
33 세자의 사람들 (2) +9 24.08.22 2,872 125 13쪽
32 세자의 사람들 (1) +15 24.08.21 2,937 129 13쪽
31 명-청 책봉 경쟁 (2) +19 24.08.20 3,007 132 16쪽
30 명-청 책봉 경쟁 (1) +13 24.08.19 3,035 136 16쪽
29 무인사변(戊寅事變) (5) +15 24.08.18 3,127 145 14쪽
28 무인사변(戊寅事變) (4) +9 24.08.17 3,019 131 13쪽
27 무인사변(戊寅事變) (3) +9 24.08.16 3,012 137 14쪽
26 무인사변(戊寅事變) (2) +8 24.08.15 3,206 135 13쪽
25 무인사변(戊寅事變) (1) +8 24.08.14 3,497 14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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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전쟁을 기다리며 (1) +11 24.08.12 3,676 151 16쪽
22 복귀 (2) +16 24.08.11 3,766 155 16쪽
21 복귀 (1) +12 24.08.10 3,893 16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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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굴마훈 +10 24.07.24 5,577 231 13쪽
2 누굴 잠 못 들게 할 것인가 +8 24.07.24 6,155 228 12쪽
1 회귀 +25 24.07.24 7,058 25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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