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움을 논할 자격 (1)
“그렇다 하여도 나라 사이의 일이 감해진 것이지, 이리 난동하는 것은 여전히 죄다.”
“이미 죄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고, 노상을 떠돌며 하루 한시가 생사의 기로에 놓인 판국이라···.”
“이미 죄인이 되었다니?”
“소인,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죄가 되어 시댁에 매질을 당하고 친정에 박대당하여 갈 곳이 없사옵니다. 저하, 저하, 하여···.”
고향에 돌아온 것이 죄가 되었다.
즉, 환향한 여인들에 대한 차별이 벌써 시작된 것이었다.
“거둬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사옵니다. 쇤네는 시집가 집안 건사하는 일도 해보았고, 심양에서는 해보지 않은 허드렛일이 없으니···.”
“내가 거둬준다면 어찌 될지는 아느냐?”
포로 신세로 심양에서 지내는 일은 사내보다 여인에게 더욱 끔찍한 일이다.
그리고 건장한 남자도 쉽지 않은 청나라 탈출을 여인의 몸으로 도모했다는 것만 봐도, 이 여인은 분명 그 모든 것을 생생히 겪어 알 것이다.
그런데 날 따른다면 그 지옥 같았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설마 그런 걸 바라려고.
“···모든 것을 각오하고 돌아온 고향이 이미 고향이 아니니, 어딘들 몸 뉘어 마음 편할 곳이 있겠나이까?”
하지만 여인의 입에선 약간은 뜻밖인 말이 튀어나왔다.
청나라나 조선이나.
그저 나라의 비극에 휘말렸을 뿐인 안타까운 여인에겐 적국과 조국이 평등하게 지옥 같았다.
“하오나 저하께서는 청은 박대하고 조선은 모른 척하는 저희 같은 것들을 위해 천금을 마련하여 모두 속환해 주셨다 하니, 쇤네는 그저 성인이 납시었다 여길 뿐이옵니다.”
조선 조정이 포로 송환을 위해 노력한 바는,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부엌의 아궁이나 떼는 처지가 된다고 하여도, 저하와 같은 분의 울타리 안에 있다면 쇤네는 목숨이라도 부지하지 않겠나이까? 하오니 부디···.”
“마을이, 고을이 한뜻으로 너를 박대하여 내치고자 하더냐?”
“어찌 모두가 박절하겠나이까? 하오나 다른 이들에게 이는 남의 집안일이옵고, 더군다나 반가의 일이옵니다. 차마 참견할 수 없는 일인 데다 사사로이 정을 보이다 시댁 눈에 띄면 사달이 나니···.”
하긴, 어찌 모두가 더럽다 여기며 냉대할까?
그렇다면 지금도 국경에서 사사로이 쇄환을 도모하며 벌어지는 속가 흥정이 성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사람 도리에 애쓰는 자와 도리를 어기려 하는 자들 사이에 신분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선이 우위일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이렇듯 인면수심인 자가 우위라면 좋든 싫든 온 마을이 딱한 사람을 괴롭혀야 한다.
아직은 도망 포로가 전부일 때, 내가 열심히 포로들을 사서 돌려보내 조선 사회에 환향인들이 확 늘어나기 전이라 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사회에, 민간에 비극이 벌어지는 데는 그 수가 그리 중요치 않았음을 비로소 알 뿐이었다.
“집이 어디인가?”
상황을 헤아린 나는 덤덤하게 물었다.
“그것은 어찌···?”
“안내하라. 그것이 내가 널 거두는 조건이다.”
그렇게 말한 나는 곧장 날 따르던 행렬을 향해 여인이 모습을 가릴만한 걸 가져오게 했다.
사내들 일색이라 장옷이라 할만한 건 없었지만, 그래도 부족하나마 상처받은 민초를 위해 최선의 성의를 보여야 했다.
***
“먼 길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사옵니까? 신 평안···.”
“길을 터라.”
나는 평안감사로서 관민을 이끌고 나온 민성휘(閔聖徽)의 인사를 잘라먹으며 딱딱하게 말했다.
“저하···.”
“왜 그러는가? 척화하는 자로서 청 황제의 명을 받아 행차한, 게다가 이 환향녀를 행렬에 함께 세운 세자의 말은 한 번에 따르기 불편한가?”
“신은 그런 뜻이 아니오라···.”
“그럼 비키게. 내 심기가 좋지 못하니.”
이에 민성휘는 어색하게 비켜섰다.
환영인파 역시 환영 대상이 저리 냉랭하니 어물대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트인 길로 사절단을 이끌고 들어선 나는 민성휘 등의 안내도 뿌리친 채 관부가 아닌 여인의 집으로 길을 잡았다.
청 사절단의 요란한 깃발이 휘날리고, 사절단 인사들과 그 호위가 우르르 평양 사대부가 거리로 들어서니 절로 시선이 쏠렸다.
그런 상태로 목적지에 다다르니 여인의 집에선 벌써 소란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리 오너라!”
내가 버럭 소리치자, 금방 대문이 열리며 허둥지둥 의복 갖춘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집안 종복 따위는 당연히 아니었고, 아마도 연배로 보아 이 여인의 남편 되는 작자인 듯했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세자 저하가 아니시옵니까···?”
온갖 이목을 끌며 행차한 마당이니, 남자는 사람보다 빠른 말이 날아든 덕에 대번에 정답을 맞힐 수 있었다.
“그럼 내가 나랏일에 번다한 와중에도 이리로 찾아온 연유 또한 아느냐?”
“그는 소인이 잘···.”
“이 여인이 네 내자라 들었다.”
나는 곧장 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놈은 대경하며 시키지도 않은 말을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시부모 봉양하고 집안 내조해야 할 여인이 되어 멋대로 집을 나간 사람이옵니다! 법도를 어김이 이러하니, 그러지 않아도 관아에 고하여 이혼하고 허물을 묻게 하고자 하였나이다!”
“집을 나갔다?”
“예! 저하!”
사진을 찍을 수도, 녹음을 할 수도 없는 이 시대에 사대부가 담벼락 안에서 벌어진 일을 누가 어찌 알 수 있으랴?
놈은 그에 기대 거짓이 분명한 말을 뻔뻔하게도 떠들었다.
“네가 내친 것이 아니고?”
“무, 물론이옵니다! 무슨 말씀을 들으신 건지는 모르나, 이는 모두 모함이옵니다! 애초에 신의 따위는 알 리도 없는, 하물며 여인에 불과한 이의 말로 어찌!”
“서로 연을 맺어 정을 가꿨던 사이에 신의 따위는 없는 여인이라?”
“그런 여인이니 정절을 잃은 마당에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달아나 나라와 시댁에 큰 누를 끼친 게지요.”
내가 그저 말을 다시 읊으며 묻는 데 그치자, 놈은 비로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떠들기 시작했다.
“여인이 되어 고작 몸 하나 잘 간수하면 그뿐이거늘, 그조차 하지 못해 더럽힌 주제에 안주인이랍시고 돌아오다니요! 집안 대를 더럽힐 요량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러겠나이까?”
“그럼 자진하기라도 하였어야 한단 말이냐?”
“그것이 여인의 유일한 도리가 아니옵니까?”
“하지만 이는 성품이 음탕하여 부녀의 도를 어긴 것이 아니라 나라의 환란으로 어쩔 수 없는 변을 당한 것이 아니더냐?”
“강압과 상황으로 달리 보아줄 여지가 있다면 그것이 어찌 도리이겠나이까? 자고로 도리란 사시사철 푸른 청송과 같이 한결같아야···.”
“그럼 나는 어떠하냐?”
놈이 더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까지 말을 늘어놓은 순간, 나는 말을 끊으며 진정한 본론을 꺼냈다.
“나 또한 심양으로 끌려가 청 황제의 뜻에 인신이 억류되었으니, 그 누구보다 크게 더럽힌 것이 아니더냐?”
“저, 저하, 어찌 한낱 여인과 저하를 비하시옵니까?”
“같지 않으니 오히려 더 과오가 중하지 않으냐?”
그래. 나는 다르다.
남자이기에 더 많은 것을 도모할 수 있고, 세자이기에 왕 아래 그 누구보다 높은 지위를 누린다.
본디 의무와 책임은 함께하는 것이니, 고귀한 자에게는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조선의 세자로서 주군이란 오직 부왕뿐이어야 하거늘, 청 황제에게 신하를 자처하여 오늘 이렇듯 조선에 들르게 되었다. 그럼 이는 불충이냐?”
“그···.”
“전하의 장자로서 응당 부모를 문안하며 심기와 건강을 살피고 극진히 보필해야 함에도 1년이 넘도록 타방에 머물러 부모를 외면하고, 심지어는 어린 자식을 떠맡겼다. 그럼 이는 불효이더냐?”
여인에게 정절이 중하다면 사내에게는 충절과 효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오직 남성만이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시대엔 당연히 남성의 그 가치들이 더욱 무겁다.
아무리 타의에 의한 것이라도 정절을 잃은 건 곧 집안에서 내쳐지고 자진해야 할 죄라면, 충효를 다하지 못한 사내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권리는 더욱 큰데 책임은 더욱 작다고 말하고자 한다면, 단언컨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저, 저하, 신은···.”
“스스로 신하라 일컫지 말라! 세상천지에 어떤 신하가 주인의 허물을 꾸민단 말이냐!”
큰일 당한 부인을 더욱 딱하게 여기며 품기는커녕 그런 피해자와는 살기 싫다고 나라의 차기 군주를 모욕한 놈이다.
그딴 놈이 어찌 이 조선에서 신하 노릇 할 수 있으랴?
“네놈의 말이 이렇듯 기괴하고 방자하니,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구나. 너는 도대체 병자년과 정축년에 무엇을 하였기에 내자는 심양에 끌려간 마당에 이리 번듯하게 고향에 살고 있느냐?”
“소, 소인은···.”
“평양에 만민을 모아 의병이라도 꾸렸더냐? 아니면 한양으로 내려와 부왕과 나를 호종코자 하기라도 하였더냐?”
“저하, 신은 집안 대를 이어야 하는 이로···.”
“군신의 예로 그치지 않았다면 나라가 망할 판이었거늘, 한 몸 건사하여 대를 이을 땅이 있을 성싶었더냐? 하물며 조강지처는 내버려 두어 정 품을 이조차 없게 되었거늘! 왜? 처는 새로 구하면 그뿐이더냐?”
내 마지막 질문에 안 그래도 벌벌 떨며 말하기 어려워하던 놈은 완전히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런 쳐 죽일 새끼.
이 여인이 욕되게 놓아두는 것이, 이로써 솔솔 퍼지기 시작할 사회 풍조가 내게 부담될 일이 없다고 해도 처결함에 거리낄 게 없는 놈이다.
“그저 대 운운하며 제 한 목숨 건지느라 나라도 아내도 저버린 놈이 감히 누굴 핍박하고, 또 누굴 나무란단 말이냐? 실로 말만 교묘하니, 옛 성현들께서 무도함보다 더욱 간악한 것이라 여긴 바라!”
“저하! 신, 아니, 소인이 진정으로 실언하였나이다! 차마 죄를 갈음할 길이 없으니, 그저 죽여주시옵소서!”
놈은 후대에 사대부들의 전용 스킬 따위처럼 알려진 ‘죽여주시옵소서’를 시전했다.
사극을 많이 본 현대인이 알기로, 보통 양반이 죽여달라 하면 왕은 죽이면 안 되는 것으로 안다.
그럼 하여튼 폭군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뭔가 약간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역사재현물에 나오는 사안은 보통 당대의 큰 정치적 사안으로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죽여달라고 하면 진짜 죽는다.
무슨 역모 따위로 잡혀 온 경우가 아니고서야 혐의 얻은 자들이 죽여달라며 사죄한 일이 없을 것 같은가?
오히려 죽여야 하니 그 말이 나올 때까지 고신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지금 놈의 말은.
“오냐! 내 친히 죽여주마!”
나는 당장이라도 베어버릴 듯 곁에 있던 호위의 허리춤에서 칼을 빼앗아 뽑았다.
그러자 우리 행렬을 따라와 눈치만 보던 민성휘가 얼른 튀어나왔다.
“저하! 고정하시옵소서!”
“평안감사는 관여치 말라! 내 비록 불충불효한 천하의 패륜이나, 미약하나마 한 가지라도 충효를 다하고자 함을 모르는가?”
나에 대한 모욕을 이유로 칼을 빼 들었으면서 충효를 운운한 까닭은, 이 논리가 결국 인조에게까지 닿기 때문이다.
아비가 항복하여 사대하기로 한 나라에 신하 운운하고, 아비를 대신해 잡혀간 것이 불충과 불효가 된다면, 그 아비 된 자가 나라와 종묘에 한 일은 뭐가 되겠는가?
그러니까 끼지 마라.
그럼 너도 강상죄로 죽는다.
“저, 저하···.”
엄연히 나라의 중신인 민성휘가 이를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기에, 그는 주춤댈 뿐 방금처럼 날 막아서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이 살벌한 판에 끼어든 건 조선 내부의 사정 따위는 사실 큰 상관이 없는 인물이었다.
“이런 방자한 자를 보았나! 감히 대청을 모욕하다니!”
버럭 외치며 튀어나온 건 바로 역관을 통해 이 난장판을 가만히 살피고 있던 잉굴다이였다.
내가 칼을 뽑기 전까진 태연하던 작자가 이 마지막에 와서야 벌컥 성을 내니, 분노 조절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 할 것이었다.
“커억!”
문무를 겸하는 청의 능신답게, 그는 단박에 놈의 가슴팍에 발길질을 꽂아 넣었다.
평생 누구에게 차여본 적이 없는 놈은 숨을 켁켁댔고, 잉굴다이에게 멱살이 잡혀 끌어올려지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지방의 한미한 놈조차 언사가 이러하거늘, 한양 조정이야 더 보아 무엇할까? 구태여 더 나아가 괜한 치욕을 당할 이유가 없다!”
잉굴다이의 폭탄 발언에 민성휘는 곧바로 사색이 될 뿐이었다.
“감사는 조선 조정에 일러 이 치욕을 어찌 처결할지 답하라 전하라! 조속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 곧장 돌아가 폐하께 오늘의 일을 알리리라!”
그렇게 외친 잉굴다이는 놈을 대충 내동댕이치고는 본디 사절단이 머물러야 할 평양 관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누차 조선에 와본 그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길이었다.
“그리 처결하라.”
잉굴다이의 참견으로 순간 김이 빠지고 말았기에, 나는 빼 들었던 검을 대충 내던지고는 민성휘에게 짧게 말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잉굴다이를 따라나선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어찌 나서셨소?”
평양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폭풍을 일으키고 숙소로 들어온 나는 잉굴다이에게 물었다.
“저하께서 바라시던 바가 아닙니까? 저는 그쯤 끼어들길 바라신다 여겼는데 말입니다.”
그러자 잉굴다이는 오히려 본인이 더욱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분명 저하께서는 조선왕에게 약간의 의심은 오히려 품게 할까 한다고 말씀하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소.”
“그에 비춰 보아 분명 언제고 무엇으로든 사달을 내시겠거니 하였지요. 그런 마당에 적당한 사안이 짚이신 게지요.”
잉굴다이는 갑작스러운 여인의 등장으로 끊겼던 이야기도 잊지 않고 나름의 해석을 마친 상태였다.
“듣자 하니 앞으로 저하께 썩 좋지 않을 이야기. 대업을 앞두고 그런 소리야 윽박질러서라도 막아둠이 좋겠지만, 그렇다고 직접 피를 보는 건 좋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내리신 예복이 피로 젖는 것은 그대에게 불편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오.”
“다 아시면서 새삼 물으시는 걸 보니, 혹 저를 떠보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소? 그저 진정 기분이 상한 것이라면, 내 따로 살펴야 하나 싶었을 뿐이오.”
“기분이 태도가 될 것 같았으면, 폐하께선 이 사람을 쓰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하, 그도 그렇구려.”
적당히 끼어들어 진짜 처결하지 않고도 그만큼의 효과를 얻도록, 오히려 실제로 피를 보아 생길 약간의 부작용도 피하게 해준 잉굴다이에게 나는 순순히 동의해주는 것으로 말을 맺었다.
“그럼 기다려 보시지요. 조선왕이 얼마나 용렬한지.”
잉굴다이는 태연하게 내겐 아버지인 인조를 두고 자못 모욕적인 말을 했다.
“아마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실 겁니다.”
그리고 나는 천하의 불효자답게 미소로 그의 말을 받았다.
이제 공은 우리 위대하신 조선의 군주와 그 밑에 연명하는 자들에게 넘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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