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 책봉 경쟁 (2)
“그대는 발해가 어떤 나라인지 아는가?”
이 시절에 발해라 하면 요동과 산동으로 둘러싸인 명나라 동북방의 바다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나라냐니.
홍타이지는 사람들의 통념과는 달리, 후대에 이르러야 그 이름이 자못 선명해지는 고대 국가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이는 과거 금(金)이 일어서기 전, 거란에 정벌 당한 만주의 옛 나라다. 그런데 감히 그런 나라의 이름으로 그대를 왕에 책봉하다니, 주유검의 행태가 실로 방자하도다.”
만주의 옛 나라, 여진이 살던 나라란 말이지.
현대 한국인들은 고구려의 후예,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발해사를 사고하고 있지만, 이 시대 명, 조선, 청의 인식은 그와 사뭇 다르다.
일단 명은 동북방의 이민족 고대 국가에 관해 큰 관심을 두지 않기에 대단한 인식이랄 것도 없다.
그리고 조선도 이와 유사한 수준.
발해라는 나라를 발견하고 우리 역사의 하나로 사고하려는 노력이 발생한 건 조선 후기부터다.
그마저도 철저한 비주류 중 하나였던 북학파에 의해 이뤄진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우리 역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접경한 나라로 드문드문 흔적을 담았을 뿐이다.
따라서 발해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 놀랍게도 청나라다.
이는 후대로 갈수록 더욱 도드라지니, 건륭제 시절 만주족의 근본을 찾고자 편찬한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에서는 만주족의 계보에 올리기에 이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발해가 만주족의 역사라 단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건륭제 시절에 이르면 만주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생활양식, 언어 등도 희미해진 시기이기에 그의 시도는 소위 ‘만들어진 전통’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 해당 사서에는 발해뿐만 아니라 백제, 신라도 본인들 계통으로 서술된다.
과거 금나라의 시조를 고려에서 넘어온 신라 출신 인물로, 거기다 황족 성씨인 아이신기오로도 그 발음의 의미를 따지면 ‘김씨’라는 뜻이기에 신라와 닿아있다고 말한다.
현대 대한민국에 기괴한 민족주의로 청나라 황실이 신라 출신이라고 믿는 일설이 나돌기도 했는데, 그런 황당한 주장은 사실 이미 건륭 시절 청나라 사람들이 먼저 한 것이다.
그럼 왜 이런 식으로 후대에 보기엔 다소 황당한 주장까지 하였는가?
여기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그중 하나로는 새 중화의 주인이 된 만주족에게 명확한 근본이 없다는 점이 있다.
중화를 자처한 마당에 자신들이 오랑캐였다고 하는 건 체면이 상하니, 전통적인 화이(華夷) 질서에서 화는 아니나 오랑캐는 더더욱 아니었던 동방의 고대 국가들을 끌어온 것이다.
일단 조선은 고려의 뒤를 이었고,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였으니, 조선의 계보를 이로 한정하며 그 나머지를 자신들의 배경으로 삼았다.
또 다른 견해로는 청나라 황실의 명확한 조상인 먼터무가 과거 조선 태조의 수하였다는 점에서 격이 떨어질 수 있기에 일종의 세탁에 나섰다는 주장도 있다.
청 황실이 중원 동쪽의 역사에서 뿌리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중원의 유명한 인물들을 본인들 계보에 포괄하려 시도하기도 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견 타당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후손들의 조상인, 그것도 본인의 민족을 만주족이라 이름 붙이고 체계가 모호하던 만주어를 한족 출신 신하들을 동원해 정비한 홍타이지는 나름대로 이런 면들을 고려하고 있었다.
따라서 내가 만주어를 익혔다는 점에 상당한 호감을 느끼고, 또 지금 내가 명에서 받은 왕작에 발해란 이름이 붙는 게 불편한 것이다.
“조선을 제 편으로 한껏 끌어들일 작정으로 대청의 왕업이 발흥한 땅을 그대에게 봉하겠다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원정에서 명은 감히 우리 대청을 이길 수 없음을 똑똑히 보여주었음에도 이러하니, 단기에 그 고집을 꺾기 어려울 것이란 그대의 충언이 사실임을 알겠노라.”
숭정제의 의도는 기껏해야 발해에 자리한 섬들을 내게 점령당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내어준 것이라며 체면을 챙기는 정도일 텐데.
그는 의도치 않게 홍타이지를 한껏 도발한 꼴이 되었다.
“하물며 그대가 조선의 세자인 것을 뻔히 알면서 조선왕과 동격인 왕작에 봉하다니? 이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폐하께서 신을 높여 신의 아비를 두렵게 하고, 이로써 휘두르고자 하시는 바와 같은 의도이지 않겠나이까?”
“바로 그것이다. 충간을 구별할 눈도, 제 강토 지킬 힘도 없는 자가 짐이 도모하는 바를 따라 행하니,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다니, 실로 불쾌한 일이 아닌가?”
홍타이지는 숭정제가 본인들의 발원지를 내게 책봉했다는 점을 넘어 자신이 먼저 쥐었다고 생각하는 자의 얼굴에 그보다 먼저 금칠했다는 점이 언짢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숭정제는 나와 홍타이지가 짜고 치는 판 안에서 속아 실실거리고 있을 뿐이건만, 그런 걸 가지고 속이 긁힌다는 게 의아할 따름이었다.
“이는 조선이 신의 뜻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것이 곧 그간의 의리를 지키는 길이라 확신하게 하는 좋은 수단일 뿐이옵니다. 이로써 조선에 분별없는 선비들마저도 평소 본인들이 떠들던 바에 저어될 것 없이 지원에 찬동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니, 부디 이로움만을 살펴주시옵소서.”
“이것이 어찌 이롭기만 하겠는가? 명의 우대가 짐의 그것보다 성하다 여기고, 그대에게 부응함이 오직 대명의리뿐이라 사고하게 된다면, 이는 명분을 이용하는 걸 넘어 실질이 오래가게 함이라. 짐의 성의가 마땅히 균형을, 아니, 오히려 이를 넘어서는 데가 있어야 한다.”
홍타이지는 나에게 협조하는 것이 친청 또는 균형외교를 넘어 명나라에 대한 사대만을 의미하는 풍조가 생길 것을 경계했다.
그런 뜻을 본인 입으로 분명히 한 홍타이지는 더 지체할 것도 없이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명의 수도는 연경(燕京)이라 일컫기도 하니, 이는 과거 연나라의 수도이며 아비의 뜻을 거스르고 조카를 죽여 황위를 얻은 주체(朱棣, 영락제)의 거점이었기 때문이라.”
“그러하옵니다. 폐하.”
“짐은 그대의 충언을 받아들여 팔기를 각 출신의 차등과 왕작의 분별을 따라 상하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바, 그를 고려할 때 이미 여러 공을 세운 그대에게도 적절한 지위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오면···?”
“주유검이 그대를 감히 만주의 본원에 봉하려 하니, 짐이 어찌 그에 대응치 않으랴? 더불어 짐은 과거 원대에 왕작의 차등을 국호의 글자 수로 헤아린 것을 본받고자 하니.”
홍타이지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흔치 않게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조선 세자 이왕을 연왕(燕王)으로 봉할 것이다. 사세로 보나 그대의 속에 담긴 뜻으로 보나 참으로 적절하지 않은가?”
숭정제가 만주족의 영역을 내게 봉했듯 홍타이지 역시 명의 수도가 위치한 땅을 내게 봉한다.
그리고 숭정제는 이자왕(二字王)에 봉했지만 그는 날 일자왕(一字王)에 봉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외면하고 나라의 위를 차지한 명 성조 영락제의 왕작을 내린다.
불쾌감에서 경쟁심리에 다다른 홍타이지는 이내 본인만의 해학에까지 다다르며 묘한 즐거움을 느낀 듯했다.
그리고 그 실리와 흥미를 고루 챙기는 처결로 나는 명의 발해왕이자 청의 연왕, 어느 호칭을 들어도 인조에게 뒤처지지 않는 위치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대를 수행한 유림, 임경업에게도 장군직을 내릴 것이다. 특히 임경업은 명에게 과거 총병직도 받았다지? 조선 출신으로 말이 통하기로는 몇 안 되는 장수 중 하나를 오직 명만이 우대함은 온당치 않다.”
이미 논했듯 임경업은 청이 가장 좋게 생각하는 조선 무장이다.
따라서 홍타이지의 그에 대한 호의는, 특히 이 시점에서는 단순한 경쟁심리 때문만이 아닌 진짜 호의였다.
물론 그게 임경업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한 인조의 의심과 경계를 사게 만들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홍타이지가 이미 선언한 호의를 내가 만류할 수는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이 삶을 살게 된 내가 있는 한 이것이 마냥 임경업을 옥죄는 일이, 그에게 대명의리 외엔 어떤 길도 없는 상태로 내모는 일이 되지도 않을 테니.
“폐하께서 신의 장수들까지 이렇듯 살펴주시니, 실로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따라서 나는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현 조선의 몇 안 되는 쓸만한 자들이 나라의 오판에 휩쓸려 후대의 모욕을 당할 일이 없도록 징표를 달아준 것에.
그리고 이로써 인조의 의심을 듬뿍 사서 내 수족이 되지 않고는 활로를 찾을 수 없게 만들어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하오면 폐하, 신은 이만 물러가 명 황제의 교서를 토대로 다음 수로 나아갈 채비에 임하여도 되겠나이까?”
“이를 말이겠는가? 세자는, 아니, 연왕은 더는 근심할 것 없이 주유검이 크게 흡족해할 바를 보여 그의 물화를 한껏 더 앗을 준비에 임하라.”
“예, 폐하.”
나는 내게 주어졌던 의혹을 떨치고, 오히려 격 높은 칭호와 조선 인사들을 내 손에 얽어맬 올가미를 얻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
“저하, 청주의 처결은 어찌 이뤄졌나이까?”
내가 홍타이지와의 독대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 누구 하나 자리에 앉아 있는 자 없이 서성이던 우리 인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물었다.
“허허, 내 이렇듯 몸 성히 돌아온 것을 보면 모르겠는가? 트집 잡지 않기로 하였네.”
내가 홍타이지에게서 돌려받은 숭정제의 교서를 든 채로 양팔을 휘적거리자, 그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그뿐인가? 내 왕작이 하나 더 늘게 생겼네. 내 조국의 위를 이어받을 날은 아직도 멀었건만, 강역도 없거나 왜소한 왕작은 왜 이리 많은지.”
그렇게 너스레를 떤 나는 숭정제의 발해왕 책봉에 이어 홍타이지의 연왕 책봉까지 예정되었음을 밝혔다.
“저하! 이는···.”
그리고 그런 내 발언에 흠칫하며 나선 건 오직 유림뿐이었다.
심양관 인사들이야 이미 내 흉중의 뜻을 거의 알기에 이로 인한 조선 조정의, 정확히는 인조의 반응을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유림은 이들과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임경업 역시 당황해야 하건만,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도 토를 달 생각은 없는 듯했다.
다른 이들보다 나을 뿐이지 반청 정서가 강할 그도 분명 유림처럼 굴어야 할 텐데 말이다.
“명의 책봉은 사대의 연이 끊기지 않았다는 기쁨에 따른 호의로, 또 어쨌든 전하의 권위를 넘어서진 않는 봉작인 만큼 수월하게 넘어갈 수도 있나이다. 하오나 연왕이라니요? 이는 청주가 왕실의 위계를 거꾸로 한 것이니, 장차 무엄한 뜻이 있다고 헤아릴 법한 처사이옵니다. 이를 어찌 우스갯소리로 넘기겠나이까?”
놀란 마음을 적당히 다스린 유림은 간곡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에는 원 역사에서 임경업이 시도했지만 실패한 대명외교를 성공해낸 내가 홍타이지의 괜한 의도로 칭찬이 아닌 비난을 들을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럼 어찌하잔 말인가? 내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서 다시 청주를 찾아가 이는 불효이니 거두어달라 청해야 하겠는가? 그대는 겨우 이룬 나라의 대업에 엄한 시선이 붙길 바라는가?”
기껏 호의로 준 것을 마다해서 마음 상하게 하면, 그 뒤로 우리 일에 홍타이지의 감시가 따라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 영역으로 오가는 모든 물자에는 홍타이지의 뜻이 함께하겠지만, 모든 것을 공유하진 않은 유림에게는 꽤 중대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그대가 이리 염려하니 청주가 덧붙인 바를 전하기가 곤란하구려.”
“무엇을···?”
“청주가 그대들에게도 장군직을 내리겠다 하더군. 조선이 가도 정벌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따른 것이 흡족한 모양이네. 더군다나 가도 정벌을 이끈 그대와 일찍이 의주에 머무르며 소통에 예를 잃지 않은 임 장군에 대한 호감이 상당하였으니, 내게 호의를 베풀며 그대들은 냉대할 수 없었던 듯하네.”
“청주가··· 직첩을···.”
유림은 본인이 우려한 호의가 나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향했다는 것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홍타이지가 인정하는 장군이란 점이 조선 군부에서 어떻게 다뤄질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곤란한가? 나야 무엇이든 감당하기로 하였기에 그대가 말한 우려를 모두 감당할 심산이나, 그대에게까지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정 그렇다면 내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청주를 방문해보겠네.”
정 싫으면 이 세자가, 더 큰 의혹과 부담을 짊어진 내가 그 작은 고통 분담마저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겠다는 말이다.
이는 자애로, 혹은 일종의 협박으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저하께서도 감당하시거늘, 어찌 신들이 오랑캐의 신하가 되었다는 모욕을 견디지 못하겠나이까?”
그러자 화답에 나선 건 의외로 나서지 않고 있던 임경업이었다.
“신하의 인신과 명성이 상할 것을 우려하여, 또 대업에 더욱 이롭다 하여 호랑이 굴에 스스로 들어가실 정도의 배포를 지니신 저하께 그 명을 따를 장수가 되어 부담을 끼치는 일은 온당치 않나이다.”
그렇게 말한 임경업은 묵묵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하께서는 화를 흥하게 하시고 오랑캐를 격멸하실 터. 그 일에 필요하다면, 신은 매국노가 되어도 여한이 없나이다.”
적국 군주의 칭찬을 받은 자를 넘어 타국에 충성한 배신자가 되어도 상관없다.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발언까지 나왔으니, 쉬이 답하지 못하던 유림도 태도를 달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 믿음의 배경은 화를 일으키고 오랑캐를 멸해줄 거란 것이니, 내 모든 것을 알고 보내는 신뢰는 아니다.
좀 나쁘게 말하면, 내게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화가 단순히 명나라 그 자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그가 후세의 일부가 제기하는 의혹 그대로인 사람이 아니라면.
최소한 내 곁에서 바뀔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종국에 이것이 마냥 부당한 사기로만 여겨지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이는 차차 확인해 갈 수밖에.
그가 진짜 조선인임을 스스로 증명한다면 나의 충신이 될 것이고, 끝내 그 의혹에 부합하는 인물이 된다면 오늘의 고마움을 뒤로하고 숙청할 뿐이다.
“그리 받아들여 주니 기쁘기 그지없네.”
따라서 지금은 이 절절한 충언에 기쁘게 화답할 뿐.
확언할 수 없는 미래를 끌어와 아직은 확신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가치관을 깨려 드는 건 너무 성급한 일이니까.
“이를 말씀이시옵니까?”
임경업은 내 감사 표시에도 덤덤하게 겸양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며, 속으로 그의 미래에 대한 바람을 조용히 삼켰다.
“자, 그럼 조정의 속 좁은 의심에 대한 우려는 그만두고, 앞으로 할 일을 논해보세.”
사안의 경중만 따지면 이 두 인물의 마음보다는 내 대업의 가치가 훨씬 무겁기에, 나는 우려를 뒤로하며 미래로 나아갔다.
숭정제가 기뻐하고 홍타이지가 흡족해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양손에 떡을 쥐고 자본 없이 이익을 불려 나가는 완벽한 삼각무역의 시작으로.
***
시간이 흘러 기묘년(己卯年, 1639년) 정월.
본국에 소식을 전하고 향후 사세를 밝히고자 잠시 귀국한 유림과 임경업이 조선 조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세자가, 뭐, 뭐가 돼?”
조선왕 이종은 본인의 양손에 숭정제와 홍타이지의 교서를 들고도, 이미 그 내용을 천천히 눈으로 훑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떨었다.
죽겠다는 말을 믿고, 목줄도 단단히 쥐었다는 믿음을 품고 고작 5천 병사를 내어줬을 뿐이건만.
아들은 그의 예상보다 너무 빠른 시기에, 또 너무 거대하게 성장해버리고 말았다.
그 목줄을 쥔 손이 빠듯하게 느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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