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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사육사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수수께끼 전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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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사육사
작품등록일 :
2021.10.24 15:11
최근연재일 :
2022.01.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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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378

작성
21.12.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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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4화. 패널티의 정체

DUMMY

성운은 점심식사가 담긴 식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식욕을 자극한다. 메인은 맵게 볶은 돼지고기와 흰쌀밥. 곁들임 반찬은 절임야채와 샐러드, 그리고 해산물을 넣은 스프다.

먼저 따끈한 맑은 스프를 한수저 떴다. 이국적인 향이 났다.


“후우···.”


입안에 감칠맛이 도는 것이 아주 딱이다.

스프를 먹으니 뱃속에 시동이 걸린다. 성운은 밥을 크게 떠서 입안에 우겨넣고 고기 한 점을 짚어먹었다.

이야 맛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여기에 절임야채를 섞어서 먹으니 완벽한 밸런스를 이뤘다.

이게 사는 거지.

성운은 단상 위의 지휘자처럼 식판에 담긴 음식을 리듬감 있게 먹어치웠다.


아크 로렐라이의 사건 이후 벌써 보름이 지났다.


성운과 새결이 이틀이나 수업을 빼먹고 사라진 탓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아카데미 학생의 무단이탈은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덕분에 복귀했을 때는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새결은 중상까지 입은 상태여서 바로 아카데미 내부 병원으로 실려 갔다.

오딜리에의 입김이 아니었으면 최소 정학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연지연의 힘은 무시 못했다. 오딜리에는 새결에게 일주일 근신을 명령하고 사건을 유야무야 넘겨버렸다.

성운도 경고라는 가벼운 처분으로 끝났다. 아카데미에서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물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 후 새결은 빠르게 회복했다. 샤쇠르를 얻어서 무지막지한 성장을 이뤘으나, 여전히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에 홀린 듯 수련에 매진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아르투르 무리와 잘 어울리기 시작했다.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르투르 무리가 새결을 중심으로 뭉쳤다. 뭔가 갱생한 불량배 그룹 같다고나할까?

완전히 마음을 바꾼 아르투르 무리는 새결과 함께 학업과 수련에 힘쓰고 있었다. 그야말로 청춘물의 한 장면이다.


주디는 그날 이후로 보고서 작성 외에 다른 일로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다.

성운은 자신이 정체불명의 검은 공간으로 끌려가서 정산(?)을 하고 있는 도중 주디가 큰 부상을 입은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쵸즌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주디는 그런 부상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영 켕기네.”


검은 공간의 동기율 정산.

성운은 샤쇠르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성운은 아속아구 주인공 새결을 어디까지나 ‘서포트’했어야 했다. 그 점을 어기고 앱솔루트를 직접 제거해버렸으니 무지막지한 패널티가 부과됐다.

동기율이 자그마치 5%나 깎인 것이다.

그런데 보름이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당최 동기율이 5%나 깎였는데 뭐가 ‘패널티’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멀쩡했다.

성운은 큼직한 돼지고기를 포크로 들어 올린 채 멍하니 있었다. 윤기 흐르는 고기에서 붉은 양념이 뚝뚝 흘러내렸다.


“뭐, 됐나.”


별일 없는 거면 다행인거지.

성운은 마저 식사를 이어갔다.


“이야 성운쿤. 오늘도 그 메뉴야? 원래 살던 곳에서는 없었던 맛이지?”


유리스가 나타나 성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으엑, 이딴 소스범벅 양념고기를 왜 좋아하나 모르겠네.”

“맨날 패스트푸드나 먹는 주제에 그런 소리를 해?”


에스벤은 주걱턱을 삐죽 거리며 비비안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오타쿠 삼인방이다. 유리스 옆에는 언제나 그렇듯 비비안과 에스벤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성운도 그 무리에 끼게 됐다.


새결이 아르투르 무리와 어울려 돌아다닌다면 성운은 유리스 무리와 더욱 돈독해졌다. 이제는 지구에서 같이 지냈던 친구들 보다 더 친해진 것 같았다.


“근데 너 진짜 그거 좋아한다. 신기하네.”

“무슨 소리야. 돼지고기는 원래부터 내 최애였어. 그런데 이졸데의 고기요리는 뭔가 더 각별하네. 식당 아줌마가 비법소스라도 버무리나?”


매운 돼지고기는 그 중독적인 감칠맛 외에도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사나이의 가슴을 채워준달까. 그야말로 대한민국 남성의 소울푸드···


“어?”


잠깐, 진짜 그랬나?

순간 성운의 수저가 멈췄다.


“자, 잠깐. 이 메뉴 이름이 뭐였지?”

“에, 제육볶음? 저번에도 너 그거 먹었잖아.”


이게 제육? 정감 가는 이름인데 왜 기억에 없을까.


성운은 퍼뜩 지구에서 먹었던 음식을 떠올렸다. 아니, 떠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평소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해주셨던 정겨운 집밥도, 회사를 다니며 자주 갔던 식당의 메뉴도 생각나지 않았다.


“응? 왜 그래. 혀 씹었어?”

“어··· 아니, 아니야.”


아속아구에 끌려 들어와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서 그런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가 해주셨던 집밥 마저 떠오르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됐다.

성운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야 왜 그래?”

“나 좀. 할 일이··· 어, 미안해. 가볼게.”


성운은 그렇게 말하고 식당을 서둘러서 빠져나갔다.

유리스 무리는 허둥지둥 사라지는 성운의 뒷모습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 # #


성운은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현기증이 심했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속이 뒤집히고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이게 공황장애···같은 건가?”


성운은 신소리를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지구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최지학 어머니는 윤성미. 내 이름은 최윤혁···.”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떠오른다. 다만 기억이 흐릿하다. 이건 너무 옛날 기억이라서 그런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전히 당시에 즐겨 먹었던 간식이나 음식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먹었던 행위는 떠오른다. 하지만···.


“이게 페널티라고? 기억이 지워지는 것이?”


동기율이 떨어지면 최윤혁이었던 존재가 사라진다.

이번에는 먹었던 음식이겠지만, 다음에는 무엇이 될지 모른다. 그것이 더 공포스러웠다.


“하, 하하하··· 그래. 페널티면 이 정도는 해야지. 무섭네. 이야 무서워라~”


성운은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홀로 웃어봤으나 소용없었다.

더 무서웠다.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앉아 있는 것인지 서 있는 것인지 공감각을 잃어버렸다.

성운은 가파르게 호흡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제육볶음, 제육볶음, 제육볶음. 지구에서 먹었던 맛있는 제육볶음··· 그리고 또 뭐였더라.

성운은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하지만 지구에서 먹었던 음식은 더 이상 기억에 없었다.


“이, 잊어버린 것은 이게 다야?”


또 잊어버린 것이 없을지 겁이 났다. 어쩌면 먹었던 음식 외에도 다른 기억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것조차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입을 벌리고 있지만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쵸즌.”


그때 누군가가 성운을 불렀다.

성운은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트윈즈 소녀가 벽장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하얀 피부의 무표정한 소녀. 그녀는 파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성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트윈즈 소녀는 이졸데로 돌아와서 비밀리에 성운이 기숙사 방에서 살고 있었다.

주디의 세이프 하우스에 보내려고 했으나 소녀는 성운으로부터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녀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었는데 그녀가 있는 공간은 차원이 일그러져서 넓히거나 좁힐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좁은 벽장 안에서도 제법 사람 사는 곳처럼 지낼 수 있었다.


“괜찮아?”


소녀는 밖으로 걸어 나와서 성운의 소매를 붙잡았다.

작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 어째서인지 안심이 됐다.


“어, 괜찮아. 괜찮고말고. 렐은 왜 안 잤어?”

“이제 안 졸려.”


이름이 없었던 트윈즈 소녀의 이름은 로렐라이의 이름을 따서 ‘렐’이라고 지어줬다. 소녀는 이름을 받았을 때도 무표정했지만 성운의 소매를 꼭 움켜쥐며 기쁨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래도 좀 더 자야지. 응?”


렐은 바이오로이드이지만 아크 로렐라이를 떠나서부터는 굉장히 약해졌다. 꼬박 몇 시간을 내리 잠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렐은 작은 머리를 살레살레 휘저었다.


“안 졸려.”

“그래? 그러면 밖에 산책이나 좀 할까?”


어차피 지금은 오후다. 모든 수업은 끝난 상황. 학생들도 외출하거나 자습을 하는 등 자유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성운도 충격으로부터 조금 벗어나서 맑은 공기가 절실해졌다.

렐은 긍정의 의미로 성운의 소매를 다시 한번 더 쥐었다.

그래. 정신을 좀 차리자.


성운은 렐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 # #


성운과 렐은 정처 없이 아카데미 교정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기숙사 뒤편의 공원까지 오게 됐다.


성운과 렐은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유지한 채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

공원의 조경(造景)은 상당히 잘 꾸며져 있었다.

바닥에는 맨들맨들한 자갈길이 깔려 있었고, 양 옆에는 이름 모를 꽃과 나무가 잔뜩 자라고 있었다. 조금 더 걷다보니 바깥 해자와 연결된 인공 연못과 시냇가도 보였다.


“흐음···.”


성운은 어렴풋이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휴양지로 놀러가서 숙박했던 호텔을 떠올렸다.

그 때 그 호텔에도 훌륭한 정원이 있었지.


패닉이 조금 진정이 되니 무엇을 까먹고 무엇을 잊어먹었는지 경계가 뚜렷해진 기분이었다.


“후우, 좀 살 것 같네.”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 된 것은 없었다.

도리어 문제를 찾아내버렸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이라도 발견했으니 다행이다. 굳이 몸소 패널티를 경험하고는 싶지 않았지만, 이미 벌어져 버린 것을 어찌 할 도리는 없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새결···. 대충 ‘나대지 말라’ 정도로 생각하면 되나.”


그럼에도 여전히 페널티가 적용되는 기준이 모호했다.

거기다 그놈의 ‘동기율’.

도대체 뭐의 동기율이란 말인가. 성운은 절로 한숨이 푹 쉬어졌다.


“···.”


렐이 한숨을 내쉬는 성운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응? 왜?”

“걸으니까 괜찮아?”


성운은 피식 웃었다.

렐은 어딘가 기묘했다. 감정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누구보다도 눈치가 빨랐다. 특히 성운의 심리를 꿰고 있는 듯 했다.

성운은 렐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었다.


“응. 이대로 쭉 계속 걸었으면 좋겠네.”


렐은 대답 없이 앞을 보고 걸었다. 성운도 공원의 느긋한 분위기에 취해 머릿속을 비웠다.

마침 주변에 학생들도 없어서 적막하니 딱 좋았다.


석양으로 노르스름하게 물든 공원의 분위기는 유유자적하다 못해 여유로움이 넘쳤다.

이졸데의 공기는 제법 쌀쌀해지고 있었다.

도착했을 때는 늦여름이었는데 어느새 긴팔을 입어야 하는 시기다. 아크는 시민들을 위해 계절을 알맞게 조정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바깥 환경에 맞춰서 강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북반구를 지나면 겨울, 남반구를 지나면 여름.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사계절을 다 겪게 된다.

성운은 호흡을 최대한 길게 하며 긴장을 풀었다.


좋아. 이제 다시 머리가 정리됐다. 돌아가 봐야겠다.

성운은 공원 밖으로 나가기 위해 자갈길 끝으로 향했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길이 끝나지 않는다. 걸어도 걸어도 끝에 도달하지 않았다.


“어, 혹시 이거 렐이 한 거야?”

“쵸즌이 쭉 계속 걷고 싶다고 했잖아.”


렐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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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1화. 모양 빠지게 걸어 갈 수는 없잖아? 22.01.16 112 3 11쪽
61 60화. 위기에서 개같이 부활 -3- 22.01.15 107 3 9쪽
60 59화. 위기에서 개같이 부활 -2- +1 22.01.14 100 6 10쪽
59 58화. 위기에서 개같이 부활 -1- +1 22.01.09 123 4 10쪽
58 57화. 재주 많은 매는 발톱을 감춘다 -2- +1 22.01.08 121 9 10쪽
57 56화. 재주 많은 매는 발톱을 감춘다 -1- +1 22.01.07 150 8 10쪽
56 55화. 위험한 산책 +2 22.01.01 201 9 13쪽
» 54화. 패널티의 정체 21.12.31 190 11 12쪽
54 53화. 사회적 거리두기 회의 21.12.30 188 10 15쪽
53 52화. 식인아귀호 오버드라이브 -2- +2 21.12.28 242 12 10쪽
52 51화. 식인아귀호 오버드라이브 -1- +1 21.12.27 245 11 11쪽
51 50화. 로렐라이의 노래 -3- 21.12.25 280 12 12쪽
50 49화. 로렐라이의 노래 -2- 21.12.24 241 11 11쪽
49 48화. 로렐라이의 노래 -1- +1 21.12.23 283 10 12쪽
48 47화. 그래서 뭐 어쩌라고? +3 21.12.21 307 14 14쪽
47 46화. 누구인지 물으신다면 -2- +1 21.12.20 287 14 11쪽
46 45화. 누구인지 물으신다면 -1- +1 21.12.18 294 14 12쪽
45 44화. 타임어택은 언제나 즐거워 +1 21.12.17 302 13 10쪽
44 43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12- +1 21.12.16 302 14 12쪽
43 42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11- +6 21.12.14 342 15 11쪽
42 41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10- +4 21.12.13 351 14 10쪽
41 40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9- +1 21.12.11 333 8 9쪽
40 39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8- 21.12.10 334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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