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돌사육사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수수께끼 전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돌사육사
작품등록일 :
2021.10.24 15:11
최근연재일 :
2022.01.23 19:0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33,861
추천수 :
1,012
글자수 :
314,378

작성
21.12.14 19:00
조회
342
추천
15
글자
11쪽

42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11-

DUMMY

보니와 보리스, 주디는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휴대용 단말기를 들여다보았다.


단말기 패드 화면이 워낙 작다보니 셋은 머리를 바짝 붙여야만 했다. 주말 아침 만화동산을 보기위해 티비 앞에 모여든 꼬맹이들 같은 꼬락서니다.


“로렐라이의 마지막 로그?”


시간상으로는 약 10년 전이다. 로렐라이가 가라앉고 난 후 살아남은 생존자가 마지막 순간을 음성과 동영상으로 담아 남겨놓은 듯했다.

파일은 제법 많았다. 스크롤을 내리니 끝도 없었다. 되는대로 마구 기록했는지 파일의 분량도 일정하지 않았다.


보니가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개쩌는데?”


침몰한 유령 아크에 딱 어울리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록일지였다. 보니는 반색하며 보리스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이건 못 참지. 어서 재생해봐! 어서! 후딱!”


보니의 손찌검(?)에 보리스의 거대한 덩치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럼에도 보리스는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패널을 조작했다. 귀찮은 사촌 여동생과 덩치 큰 삼촌을 보는 듯했다.


“안 그래도 하고 있습니다.”


보리스는 묵묵하게 대답하고 기록의 가장 첫 파일을 재생했다.


-치직 지지지직 칫 치지직


화이트 노이즈가 낀 장면이 나타났다. 한참동안 화면이 지지직거리더니 이내 –only voice-라는 문구가 떴다. 음성만 녹음된 파일이었다.

이윽고 한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이름은 안톤 리빙스톤. 침몰한 아크 로렐라이의 주민이자 생존자다.


그의 직업은 의사였던 것 같다. 침몰 전 가족들을 대피시킨 이후 아크의 부상병들을 돌보다 발이 묶인 것 같았다.


-엄청난 격전 끝에 영웅 다미앙 말레는 재앙급 타이탄비스트를 무찔렀다. 허나 그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음성은 손상되지 않았는지 매우 깔끔했다.

안톤이라 불린 사내는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나저나 절망적인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꽤나 침착한 목소리다.


-타이탄비스트와 뱅가드 스쿼드의 충돌로 아크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도시를 떠받치는 기둥들이 차례차례 부러지고, 마침내 거대한 빛줄기가 지반을 관통하자 아크는 부유력을 잃고 말았다.


전투 중 재앙급 타이탄비스트, 혹은 뱅가드의 간섭기술로 아크의 부유장치가 파괴된 걸까.


-몇 안 되는 탈출포트는 한계까지 피난민을 실은 채 탈출했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그대로 남겨졌다.


안톤은 말을 하다가 멈추고 울먹였다.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에서 감정의 동요가 일어났다.


-타이탄비스트는 로렐라이를 길동무 삼았다. 대피소로 도망쳤던 사람들은 가라앉고 있는 아크 안에 갇혔다.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는 최대한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를 포함한 생존자들은··· 모두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는 데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몇몇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로렐라이는 침수됐으나 오랫동안 산소와 공기압을 유지했던 것 같았다. 심지어 역장 결계가 남아 있어서 수압을 막아내기까지 한 듯했다.

하지만 이는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전혀 행운이 아니었다. 오히려 끔찍한 불행이었다.


식량이 부족해졌다. 구조를 기다렸으나 누구도 찾아와 주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고통이 멈추기를 빌었다.

죽는 날만을 기다렸다.


-한 남자는 자식을 죽이고 아내와 함께 아크 바깥으로 뛰어들었다. 로렐라이의 역장 밖은 심해다. 아, 부디 평화를 찾았기를.


로그 하나가 끝났다. 다음 파일도 연달아서 열어봤지만, 대체적으로 꿈도 희망도 없는 내용이었다.

당연했지만 막상 직접 들어보니 덩달아 기분이 절로 우울해졌다. 들떠 있었던 보니조차 인상을 찌푸렸다.


“어휴 염병할, 더럽게 꿀꿀하네. 그래도 뭐 로렐라이의 마지막 기록은 꽤나 가치가 있어. IHC에 넘기면 보상 정도는 받을 수 있겠네.”


보니는 과감하게 스크롤을 쭉 내려서 여러 개를 건너뛰고 다음 파일을 열었다. 이번에는 동영상이었다.


-바닷속을 표류한지 약 200일 째.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일?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침몰한 아크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갇혀 있었다니.

영상 속 안톤은 의외로 건강상태가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숨길 수 없는 불안감과 피곤함이 표정에서 묻어나왔다.

그는 쉴 새 없이 두 눈을 깜빡이며 초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남자가 생존자 무리에 섞여있다. 원래부터 함께 있었던 걸까? 당연히 그렇겠지. 외부에서 로렐라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아니, 아니야. 분명 처음 본 사람이야. 내가 드디어 미쳐버린 걸까?


그는 두서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존자 무리 중에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수상한 사내가 시체를 끌고 어딘가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죽었던 생존자가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


“패러좀인가?”

“어우, 흥미진진한데.”

“선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알아, 알아. 패드립인거, 근데 뭐 어쩌라고? 어차피 지금은 다 죽은 양반들이잖아. 그냥 넘어가 쫌.”


보니가 귀찮은 듯이 손을 휘젓고 다음 로그를 재차 열었다.

다음 영상에는 바로 그들이 있는 지하설비 동영상이 비춰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챔버 내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생존자는 나밖에 남지 않았다. 죽기 전에 들어가지 못했던 아크의 지하설비를 탐방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도중 이상한 것들과 마주쳤다. 그럴수록 역설적이게도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영상으로부터 들리는 안톤의 목소리는 심하게 쉬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딘가 광기마저 느껴졌다.


-난 미치지 않았다. 미치지 않았어. 정체불명의 남자는 분명 실존한다. 가라앉은 이곳 로렐라이에서 뭔가 끔찍한 일을 꾸미고 있···.


돌연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며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저벅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기묘한 진동음도 뒤따랐다.


-우우웅 우웅 우우우웅


발소리의 주인은 바로 정체불명의 남자였다.

그는 칠흑같이 검은 두건을 깊게 눌러쓰고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한쪽 어깨만 비정상적으로 솟아올라있었는데,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진동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화면을 지켜보던 보니와 보리스, 주디는 곧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새끼 타이탄비스트···.”


진동음의 정체는 바로 식인아귀호가 터널에서 마주쳤던 새끼 타이탄비스트 였다. 마주쳤던 것보다 덩치는 더 작았지만 틀림없었다.

그 기괴한 생명체는 남성과 함께 챔버 안으로 서서히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멈춰 있던 안톤도 움직였다. 화면이 격렬하게 위아래로 흔들리며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저게 뭐지? 뭐야? 하나님 어머니 맙소사. 이럴 수가. 저건··· 로렐라이를 침몰시킨 타이탄비스트와 똑 닮았잖아.


안톤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내 카메라를 돌려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그의 두 눈은 충혈 되고 이마에는 땀이 흥건하게 맺혀 있었다.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나타난다. 등에 끔찍한 생명체를 달고서. 그리고 저 남자는 계속해서 시체를 모으고 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되는 걸까.


이번 영상이 끝났다.

이제 마지막 기록이 남았다. 보리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틉니까?”


마지막 영상은 아마 뻔할 것이다.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기록이라면 유서밖에 없을 것이다.

보니는 입을 한일자로 다물고 미간을 찌푸렸다.


“틀어. 우리는 이 남자의 최후를 지켜봐야 할 의무가 생겼어.”


보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영상이 나타났다.


영상 속 안톤은 눈에 띄게 수척했다. 볼이 홀쭉했고 피부에 발진이 일어나 군데군데 곪아 있었다. 정형적인 영양실조 상태다. 뿐만 아니라 몸 군데군데 자해한 흔적도 보였다.

그는 더러운 방안에 홀로 있었다.


-빌어먹을 헌터. 빌어먹을 괴수! 개엿같은 마더. 다 좆이나 처먹어라 개새끼들아! 하하 염병할, 똥이나 처먹어! 으아아아아아!


영상 속 안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다. 깡마른 몸에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의자를 걷어차고 책상을 뒤엎었다.

있는 힘껏 발광한 그는 카메라 앞에 섰다.


-마지막 기록이다. 새가 지저귄다. 내 귀 속에 미친 듯이. 흐른다. 물이 흘러. 히히힛. 아래에서 위로! 삶은 울었다. 박살나지 않는 청소기.


안톤은 미쳐있었다. 말의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을 보니 조현병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남자는 일부러 날 살려두고 있었다. 그의 취미다. 놈은 아크와 시체를 가지고 좆같은 실험을 하고 있었다. 타이탄비스트의 시체에서 유전자를 체취해서 배양한다. 내게 설명해줬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이런 미친··· 뭐라고?”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정체불명의 사내는 히에로펀트를 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이 나간 안톤의 말을 백퍼센트 믿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무력한 나라도 이건 할 수 있다. 나는 ‘선택’을 할 수 있지.


안톤의 한 손에 권총이 들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딸 엘리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다시 만나기를, 그러나 그 날은 아주아주 먼 훗날이기를.


그는 총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가져갔다. 그리고 서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이 들렸다. 안톤이 바닥에 쓰러졌다. 사실상 영상이 끝났다.


“후우, 제기랄.”


보니는 진저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악몽에서나 나올법한 끔찍한 기록이었다.

반면 주디는 보니와 보리스와 달리 다른 엄청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앱솔루트가 여기 있었어. 아니, 아직도 있나?’


정체불명의 사내는 앱솔루트의 멤버가 확실했다.

이 모든 사건의 흑막. 세상을 어지럽히는 원흉. 가라앉은 로렐라이는 앱솔루트의 완벽한 은신처였던 것이다.


“일단 기록 떠놔. 이건 반드시 알려야 하니까.”

“예, 그리고 여기서 얼른 뜨죠.”

“그래. 무전으로 도련님이랑 물주씨한테도 연락을 취해. 한시도 있기 싫네.”


보리스는 기록을 단말기에 다운로드하고 장비를 챙겼다.

마음이 급해졌다. 주디도 하루 빨리 이 소식을 쵸즌과 유나에게 알려야 했다.


-쿠구구구구구구


그들이 서둘러 정리하고 식인아귀호 돌아가려던 즈음, 불길한 진동이 바닥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카데미의 수수께끼 전학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공지 22.01.27 99 0 -
공지 연재일정 변경 공지 22.01.07 70 0 -
공지 46화 47화 수정 사항입니다(스토리 변화 없음) 21.12.25 95 0 -
65 64화. 어두운 밤에 보이는 헛것 -3- +1 22.01.23 92 4 10쪽
64 63화. 어두운 밤에 보이는 헛것 -2- 22.01.22 84 3 10쪽
63 62화. 어두운 밤에 보이는 헛것 -1- 22.01.21 84 3 10쪽
62 61화. 모양 빠지게 걸어 갈 수는 없잖아? 22.01.16 112 3 11쪽
61 60화. 위기에서 개같이 부활 -3- 22.01.15 107 3 9쪽
60 59화. 위기에서 개같이 부활 -2- +1 22.01.14 100 6 10쪽
59 58화. 위기에서 개같이 부활 -1- +1 22.01.09 124 4 10쪽
58 57화. 재주 많은 매는 발톱을 감춘다 -2- +1 22.01.08 121 9 10쪽
57 56화. 재주 많은 매는 발톱을 감춘다 -1- +1 22.01.07 150 8 10쪽
56 55화. 위험한 산책 +2 22.01.01 201 9 13쪽
55 54화. 패널티의 정체 21.12.31 190 11 12쪽
54 53화. 사회적 거리두기 회의 21.12.30 188 10 15쪽
53 52화. 식인아귀호 오버드라이브 -2- +2 21.12.28 242 12 10쪽
52 51화. 식인아귀호 오버드라이브 -1- +1 21.12.27 245 11 11쪽
51 50화. 로렐라이의 노래 -3- 21.12.25 280 12 12쪽
50 49화. 로렐라이의 노래 -2- 21.12.24 241 11 11쪽
49 48화. 로렐라이의 노래 -1- +1 21.12.23 283 10 12쪽
48 47화. 그래서 뭐 어쩌라고? +3 21.12.21 307 14 14쪽
47 46화. 누구인지 물으신다면 -2- +1 21.12.20 287 14 11쪽
46 45화. 누구인지 물으신다면 -1- +1 21.12.18 295 14 12쪽
45 44화. 타임어택은 언제나 즐거워 +1 21.12.17 302 13 10쪽
44 43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12- +1 21.12.16 302 14 12쪽
» 42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11- +6 21.12.14 343 15 11쪽
42 41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10- +4 21.12.13 352 14 10쪽
41 40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9- +1 21.12.11 333 8 9쪽
40 39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8- 21.12.10 335 10 12쪽
39 38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7- 21.12.09 309 1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