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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마왕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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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작품등록일 :
2014.08.01 21:21
최근연재일 :
2014.09.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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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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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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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44. 셋째 날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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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가능해?”

“가능해.”

듀반이 대답했다.

“아스라자!”

“네!”

아스라자가 다시 폭탄 쪽으로 달려갔다.

“론마드!”

“네!”

론마드 대장이 앞으로 나왔다.

“부탁한다.”

듀반이 단얼을 들어 론마드를 향해 던졌다.

“네!”

론마드 대장이 단얼을 받아 바로 어깨에 들쳐 멨다. 론마드 대장은 단얼을 든 채로 부서진 창문을 단숨에 넘어갔다. 부하들이 그를 따라 건물을 빠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 뒤에서 청염의 마왕이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 원형 방어진을 쳐라! …은 모두 대피시켜!”

론마드 대장은 계속 앞으로 뛰어갔다.

“멈춰라!”

앞쪽에서 누군가 말했다.

“모두 대피해! 천운포다!”

론마드가 소리쳤다.

“뭐? 당신은…?”

“나는 아바니 아나사 님을 모시는 프라시티 론마드다. 설명할 시간이 없다. 여기서 가능한 멀리 대피…”

그때 갑자기 주위가 밝아졌다. 단얼은 론마드의 어깨에 매달린 채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론마드 일행이 지나온 정원과 그것을 둘러싼 건물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빛은 정면에 보이는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론마드의 부하들도 돌아선 채 빛나는 건물을 바라봤다.

“내려줘요! 내려줘요!”

단얼이 론마드의 등을 치며 말했다. 거구의 장군은 꼼짝도 안 했다.

“내려줘! 내려달란 말야!”

몸부림치며 소리치자 그제야 단얼을 바닥에 내려놨다.

“마르마자 님의 푸른 불꽃…”

“아… 청염의 마왕이시어…!”

옆에 있던 병사 둘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복장으로 봐서는 아바니가의 사병이 아니었다.

론마드 일행이 멈춰선 곳은 커다란 철문 앞이었다. 어른 키의 두 배가 넘을 것 같은 높이였고 양쪽으로 같은 높이의 벽이 둘러쳐 있었다.

“대장님 저 빛은…?”

론마드의 부하 한 명이 물었다.

“청염의 마왕, 칸드라자 마르마자 폐하의 진정한 모습이다.”

론마드가 대답했다. 이어서 부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정신 차려! 사이 방어진이다! 각자 위치로!”

말을 마치기 무섭게 병사들이 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론마드를 중심으로 하는 원이 만들어졌다. 병사들은 각자 자리에서 출발선에 선 100미터 선수 같이 자세를 잡았다.

꽝!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건물의 지붕이 날아갔다. 단얼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터진 거야? 그런 거야? 끝난 거야?

“마르마자 님께서 천장을 날려 버린 것뿐이다.”

론마드 대장이 말했다.

“걱정마라. 이 정도 충격은 우리의 방어진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천운포만 터지지 않는다면.”

이어서 그는 주위의 부하들을 쭉 둘러봤다.

“겁먹지 마라! 두 분 폐하와 아스라자 님께서 반드시 막아주실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듀반 님께서 맡기신 이 아이를 지키는 것이다!”

론마드의 말대로 일행은 보이지 않는 방어벽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폭발과 함께 일부 파편이 날아왔지만 원 밖으로 튕겨나갈 뿐이었다.

주변이 좀 전보다 더 밝아졌다. 거의 해가 떠 있는 것 같았다. 그 해가 건물위로 떠올랐다. 강한 빛과 열기로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대강의 윤곽만 확인할 수 있었다. 빛나는 몸에 푸른 불꽃이 이글거리는 한 쌍의 날개. 청염의 마왕의 진정한 모습.

뒤이어 그가 나타났다. 청염의 마왕이 뿜어내는 강렬한 빛 앞에서 검은 색과 흰 색의 날개가 더욱 대비되어 보였다.

갑자기 지진이 난 것처럼 발밑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시작 됐다! 모두 집중해!”

론마드 대장이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단얼은 눈이 부셔서 제대로 앞을 볼 수도 없었다.

단얼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빛의 기둥과 그 뒤에 남겨진 연기구름이었다.

그것을 끝으로 주변을 대낮처럼 밝혀주던 빛은 순식간에 사그라져 갔다. 동마왕국의 타리아 별궁 그라이마는 다시 어둠과 고요 속에 잠겼다.


누군가가 만든 반디공이 머리위에서 빛났다.

“일어날 수 있겠나?”

론마드 대장이 말했다.

단얼은 바닥을 짚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론마드는 한 발짝 떨어져서 단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얼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번 반디공은 꽤 넓은 영역을 비췄지만 가시광선 파장에서는 별로 친절하지 않았다. 어스름 속에서 단얼은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론마드의 부대는 아직 철문 앞에 모여 있었다. 아스라자의 보호를 받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이 만들었던 원의 안쪽은 깨끗했다. 그에 비해 선 밖의 세계는 전쟁터였다.

커다란 나무부터 키 작은 관목까지 부러지고 쓰러져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도 알 수 없는 파편들이 한 방향으로 쏠려 있었다. 풀밭과 돌바닥 위에는 그것들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선명했다.

쓰러진 나무 뒤에서 제복 차림의 병사 한 명이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벽에 기댄 병사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옆 건물에서 불빛이 보였다. 작은 빛줄기가 바닥을 비추며 다가왔다.

“누구냐!”

병사들이 불빛이 비치는 쪽을 보며 소리쳤다. 한 명이 다가가 남자의 팔을 잡았다.

“나는 여행사 관계자다. 이거 놓지 못 해!”

문문의 목소리였다. 불평은 아랑곳 않고 병사는 그를 론마드 앞으로 끌고 왔다.

“이봐, 그건 내 물건이야!”

손에 들고 있던 빛나는 물건은 압수되어 역시 대장에게 전달됐다. 손가락만한 손전등이었다.

“단얼 씨?”

단얼은 문문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어디 지하 벙커에 있다 나왔는지 옷도 얼굴도 깨끗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죠? 폭발에 지진에. 무슨 전쟁도 아니고.”

“아는 자인가?”

론마드 대장이 물었다.

“네. 여행사 직원이에요.”

“팀장입니다. 인영여행사 마왕국팀 팀장.”

문문이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놔줘라.”

대장의 명령에 병사가 문문의 팔에서 손을 뗐다.

“단얼 씨, 이게 무슨… 아니, 그 피는… 다친 겁니까?”

문문이 단얼에게 다가가려 하자 이번엔 론마드가 직접 막아섰다.

“아…”

단얼은 피가 묻은 자신의 손과 코트를 내려다 봤다.

“아니에요. 이거 제 피가 아니…에요.”

단얼이 코트 자락을 움켜쥐었다. 피가 벌써 굳기 시작해서 옷자락이 까끌까끌했다.

듀반의 피.

안 그래도 전날 단얼을 구하기 위해 마력을 소모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 거기다가 단얼 대신 총을 맞고 그렇게나 피를 많이 흘렸는데. 그런 몸으로 또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나서다니.

아스라자의 고속 비행 능력으로 핵폭탄을 대기권 밖까지 날려버린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멋대로 지껄여 버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다. 작은 인공위성 하나를 쏘아 올리는 데도 엄청나게 큰 로켓이 필요하다. 그렇게 큰 물체를 그것도 폭탄을 그렇게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을 리 없다. 그전에 마족의 하늘은 결계로 막혀 있다. 바로 멸살의 마왕 듀반이 만든 붉은 결계다. 폭탄은 대기권 밖으로 가져갈 수 없다. 결계 안에서 터질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지상까지 피해가 미칠 것이다. 그걸 막으려면… 그 다음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파리하라 씨는 상황을 알아본다고 나가더니 소식이 없고. 여기 책임자가 누굽니까?”

문문이 계속 떠들었지만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얼의 말에 듀반은 분명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가 말한 가능한 방법은 뭐였을까. 처음부터 혼자 남아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듀반이다. 뭔가 생각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걸까? 폭탄은 잘 처리된 걸까? 듀반은, 아스라자와 다른 사람들은 무사할까?

“…이봐요. 내 말 듣고 있는 겁니까?”

문문은 여전히 툴툴대고 있었다.

“알았으니 자리로 돌아가서 대기하시오.”

론마드 대장이 말했다.

“그전에 내 물건부터 돌려주시지.”

문문이 손을 내밀고 말했다. 론마드 대장이 손전등을 들어 올렸다.

확실히 그것은 단얼답지 못 한 행동이었다. 평소였다면 그럴 용기도 행동력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상황자체가 일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다.

론마드가 막 문문에게 손전등을 건네려는 순간 단얼이 그것을 가로채고 뛰어 나갔다.

“좀 빌릴게요!”

단얼은 손전등으로 발밑을 비추며 뛰어갔다. 아무리 손전등이 밝아도 비추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었다. 파편과 장애물을 신경 쓰느라 제대로 속력을 낼 수 없었다. 결국 금방 론마드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 이거 놔요!”

론마드의 커다란 손이 단얼의 어깨를 눌렀다.

손전등도 다시 문문의 손으로 넘어갔다.

“단얼씨, 이제 그만 정신 차리세요. 여긴 관광객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문문은 어스름에 싸인 별궁을 둘러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요. 다 끝났어요. 그만 호텔로 돌아갑시다.”

문문이 다가서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론마드가 단얼의 몸을 잡아 당겼다.

“이 인간 아이는 듀반 님께 속해 있다. 그분의 허락 없이는 데려갈 수 없다.”

문문은 론마드와 단얼을 번갈아 쳐다봤다. 입을 뻐끔거리면서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 했다. 위세 등등하던 여행사 팀장도 거구의 마족 군인이 위협적이긴 한 모양이었다. 몇 번 심호흡을 한 후에야 태연한 척 떠들기 시작했다.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관광객의 신병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건 납치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다. 이 인간 아이에 대한 결정권은 듀반 님께 있다.”

“당신, 뭔가 크게 착각한 모양인데, 지금은 6600년대야. 인간에 대한 결정권은 인간에게 있지 마족에게 있지 않단 말이지. 인간은 더 이상 너희 노예가 아니야!”

문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론마드의 목소리는 차분하기만 했다.

“이것 봐.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인영여행사의 문문이라고. 내가 담당한 관광객에게 문제가 생기는 건 용납 못 해. 이 학생은 내가 데려간다. 어서 그 손 놔.”

단얼은 론마드를 올려다봤다. 마침 그도 단얼을 보고 있었다. 단얼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지금 문문을 따라가면 다시는 듀반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그전에 어쩌면 그에 관한 모든 기억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본인이 싫다고 한다.”

론마드가 단얼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단얼은 재빨리 그의 뒤에 숨었다.

“말했지?”

문문이 론마드에게 삿대질을 했다.

“당신한테는 권한이 없어. 그 라맥의 괴물도……”

문문은 말을 맺지 못 하고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밀려온 밝은 빛이 주변을 환하게 비췄다.

무너진 건물 위로 지붕 대신 반디공 하나가 떠 있었다. 부서진 창문 사이로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단얼은 냅다 뛰었다. 건물 파편에 걸려 휘청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문문과 론마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그냥 뛰었다.

단얼은 아까 넘어왔던 창틀 앞에 섰다. 론마드 대장과 부하들은 여길 단숨에 넘었는데, 단얼에게는 너무 높은 벽이었다. 간신히 목만 내밀고 안을 들여다보는 게 전부였다.

“어?”

갑자기 단얼의 몸이 위로 떠올랐다. 론마드였다. 그가 단얼을 들어 창틀위에 올려놓았다.

“발밑을 조심해라.”

단얼은 창틀을 잡고 조심스럽게 반대쪽으로 내려갔다. 방안은 아까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다.

여기저기 그을리고 녹아내려 도저히 같은 장소로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널린 건물의 잔해는 녹고 뒤틀려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천장은 완전히 날아갔고 남아있는 벽채도 위태로워 보였다. 아직 형태를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황금과 보석으로 번쩍이던 마왕의 별궁은 간 데 없고 전쟁의 잔해만 남았다.

그 폐허 한쪽에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단연 눈에 띄었다. 검은 가운을 걸치고 있는 호리호리한 여성은 청염의 마왕이었다. 옷도 피부색도 바뀌었지만 약간 졸린 듯한 표정과 거침없는 태도는 그 자신이었다.

그의 우유빛 피부는 어느새 붉게 변해 있었다. 몸 주변으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다. 그러니까 마치 달아오른 쇳덩어리 같았다. 그의 몸 전체에 흐르는 열기가 단얼이 있는 곳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인간이라면 고열에 온몸의 세포가 파괴되어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마왕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렇게 마왕은 둘러선 신하들과 뭔가를 열심히 의논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수비대 대원들은 잔해를 조사했다. 서너 명이 방안을 돌아다니며 계속 바닥을 두리번거렸다.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정작 단얼이 찾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저 인간이 왜 아직 여기 있지?”

타리아 시장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또 다시 단얼에게 쏠렸다.

어떤 남자가 청염의 마왕 옆에서 소곤거렸다. 처음 보는 마족이었다. 얼굴이 길고 눈이 째진 게 어쩐지 기분 나쁜 인상이었다.

“프라시티 론마드!”

마왕의 부름에 론마드 대장이 잿더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저 아이를 왜 다시 데려왔지?”

“송구하옵니다. 저는……”

론마드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얼굴 긴 남자가 팔을 휘두르며 말했다.

“체포하라!”

귀족들 옆에 서 있던 병사 둘이 단얼 쪽으로 다가왔다.

“멈춰라!”

론마드의 목소리에 병사들이 멈칫했다. 론마드는 앞으로 튀어나와 단얼을 감쌌다.

“뷰쿠타, 이게 무슨 짓인가?”

“장군이야 말로 지금 누굴 감싸고 계신 것이오? 그 더러운 인간에게서 떨어지시오.”

얼굴 긴 남자가 다시 병사들을 향해 손짓했다. 하지만 부하들은 눈치만 볼 뿐이었다.

“이 아이는 듀반 님께 속해 있다. 그리고 듀반 님께서는 내게 이 아이를 맡기셨다.”

“이 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뷰쿠타가 이미 실내라고 할 수 없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폐하를 노리는 거듭된 암살시도, 백주대낮 틸라카 사원 앞에서 벌어진 반동세력의 난동까지. 급기야 그라이마 안에서 인간의 폭탄이 들어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소. 바로 그 무시무시한 천운포 말이 외다.”

“이 아이는 그 폭탄과 관련이 없다.”

“어찌 그리 확신하시오?”

“듀반 님께서 이 아이를 신용하신다.”

“하!”

뷰쿠타의 긴 얼굴이 한쪽으로 웃었다.

“그것이야 말로 이 인간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이유 아니겠소? 마력이라고는 없는 이 조그맣고 간사한 인간이 어떻게 멸살의 마왕에게 접근하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겠소.”

단얼은 말문이 막혀서 반박할 기분도 안 났다.

청염의 마왕은 홍염이 된 얼굴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곁에 서 있는 타리아 시장과 총리대신도 말없이 단얼을 노려봤다.

저 징그럽게 긴 얼굴의 뷰 어쩌고 하는 남자가 저러는 것은 듀반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단얼 편은 아무도 없다. 단얼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론마드가 남아 있지만 청염의 마왕과 그 부하들 앞에서 뭘 어쩔 수 있겠나. 단얼을 감싸다간 오히려 그까지 다칠 수 있다.

없는 것은 듀반만이 아니었다. 아스라자도 보이지 않았다. 단얼이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에 정말로 저 하늘까지 날아가 버린 건가. 두 사람 다 그렇게 핵폭탄과 함께 하늘로 올라간 건가.

단얼은 위를 봤다. 눈부시게 밝은 반디공 때문에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뷰쿠타의 말이 맞다. 전부 단얼 탓이다. 듀반을 그렇게 만든 것도 아스라자를 하늘로 보낸 것도 화려한 별궁이 한순간 무너져 버린 것도 전부 단얼 때문이다.

“그만… 됐어…요.”

목이 메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단얼은 재빨리 소매로 눈가를 비볐다.

앞을 막고 있는 론마드의 팔을 밀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려 했다. 론마드의 단단한 팔이 단얼을 놔주지 않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주름진 얼굴의 군인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단얼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폐하.”

론마드가 청염의 마왕을 향해 말했다. 이번에는 무릎을 꿇지 않고 그대로 선 채 고개만 숙였다.

“청문회를 통해 진실을 보셨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폐하의 영명함과 지혜를 보이시옵소서.”

“무엄하다! 감히 폐하께 무슨 망발이냐! 그…”

뷰쿠타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주위의 눈치를 보다가 스스로 입을 닫았다.

다른 신하들은 가만히 마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잔해를 조사하던 수비대 대원들도 어느새 조용히 서 있었다. 아직도 어딘가 무너지고 있는지 간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 꼬마.”

드디어 청염의 마왕이 입을 열었다.

“너에게 멸살의 마왕은 무엇이냐?”

“……”

전혀 예상 못 한 질문에 단얼은 대답을 찾지 못 했다.

“인간! 어서…”

“씨발, 너나 닥쳐!”

끼어들려는 뷰쿠타의 입을 마왕이 일갈했다.

“듀반이 너에게 말읽기 마법을 걸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얼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미 다 들켜버렸는데 무슨 상관이람.

“아마 그 바보들은 말읽기 마법이란 게 있는 줄도 몰랐겠지만. 같은 말읽기라도 녀석의 마법은 누구보다 정교하다. 지금의 너라면 내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 지 알 것이다.”

마왕에게 투르 같은 가식이나 숨은 저의는 없었다. 그는 순수하게 말 그대로의 대답을 원했다.

듀반에 대한 단얼의 마음. 단얼이 아는 듀반의 모습.

“무섭지만…”

단얼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목소리를 냈다.

“무섭지만, 좋은 아저씨였어요. 다정하고, 친절하고… 처음엔 이상한 아저씨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냥 제 생각이었어요. 편견…이었어요. 제가 좀더… 좀더…”

목이 메어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보내줘라.”

“폐하! 아니 되옵니다.”

뷰쿠타가 또 입을 놀렸다.

“닥치랬지! 자꾸 지랄하면 태워버린다.”

마왕이 다시 단얼을 내려다 봤다.

“그냥 인간 꼬마잖아. 설사 음모에 가담했다 해도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겠어. 무엇보다 녀석과 약속했다.”

마왕은 신하들을 향해 돌아섰다.

“론마드, 호텔까지 호위해줘라.”

“네.”

이렇게 끝나는 건가. 듀반도, 아스라자도. 이대로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건가.

단얼은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듀반과 아스라자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남아 있다 해도 알아 볼 수 없으리라. 다 끝났다. 듀반이 없으면 결계도 없다. 붉은 결계가 사라지면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 이 모든 일이 다 단얼 탓이다.

“가자.”

론마드가 단얼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어느 때보다도 다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청염의 마왕과 그의 신하들은 또 다시 뭔가를 의논하기 바빴다. 단얼이 듀반의 말읽기 마법에 걸려있다는 것을 알아서 인지 마족들의 목소리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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