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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마왕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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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작품등록일 :
2014.08.0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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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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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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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37. 셋째 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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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단얼은 문 앞에 서 있는 덩치 큰 남자를 봤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어째서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전에 뒤따라 들어온 남자를 발견하고 단얼은 너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문문이었다. 여행사 티셔츠 대신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 문문이었다.

그제야 단얼은 앞에 남자를 알아 볼 수 있었다. 타리아 리곤 호텔의 지배인 아스타나 파리하라. 못 알아 볼 만도 했다. 그의 머리 양쪽을 싸고 있던 뿔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큰 뿔이 사라지니 딴 사람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친절한 미소를 띠고 인간 관광객을 접대하던 호텔 지배인이 아니었다.

듀반과 아스라자는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는 누구의 머리에서도 뿔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마족이다. 그것도 귀족의 호칭과 강력한 힘을 지닌 권력자들. 그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뿔 보나 감춰진 마법의 뿔이 더 무서웠다.

아스타나 파리하라가 다가가자 귀족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심지어 그가 소개하자 문문과 악수를 나누는 마족도 있었다. 그에 비해 투르 백작을 제외하고 마족들 중 누구도 듀반이나 아스라자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쪽과 저쪽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인간 문문이 벽을 뚫고 다가왔다.

“현호 씨.”

그가 악수를 청했지만 듀반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문문은 무안한 손을 등 뒤로 돌렸다.

“일이 이렇게 되어 유감입니다. 비록 무료 이벤트 관광이라고는 하나 즐거워야할 여행을 망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무슨 말인가. 나는 이 여행을 충분히 즐기고 있네.”

듀반이 등받이에 팔을 올린 채 말했다.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문문이 단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단얼은 애써 심호흡을 했다. 어째서 진수가 아니라 이 사람이 여기 있지?

“단얼 씨. 대단하십니다.”

“에?”

“제가 이 일을 맡은 후로 여기까지 오시는 분은 처음 봅니다. 대개는 기억을 지우고 조용히 본국으로 돌아가는 쪽을 선택하시지요.”

“그런…가요.”

선택 좋아하시네. 기억을 지우면 지웠다는 기억조차 사라진다고 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어떻게 알겠나.

“그럼…”

문문이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을 펼쳐 단얼 앞으로 밀었다.

“이게… 뭐죠?”

단얼은 앞에 놓인 종이와 문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비밀유지 서약서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이번 사건과 관련된 정보 및 허가된 관광지 이외의 장소에서 알게 된 모든 정보를 발설하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맨 아래 빈칸이 보이시죠? 서명하시면 됩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 대부분 문문이 말한 대로였다. 마지막 줄에는 조금 다른 문장이 붙어 있었다.

‘…했거나 더 이상 비밀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마법적 수단에 의해 관련 기억을 삭제하는 것에 동의함.’

문문이 펜을 꺼내 종이 옆에 놓았다.

“형식적인 겁니다. 그냥 서명하시면 됩니다.”

누굴 바보로 아나. 여기에 서명하는 것은 기억 삭제에 동의하는 일이다. 설마, 다른 관광객들한테도 이런 식으로 기억을 지워온 건가. 동의서라며 서명을 받아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기였더라, 그런 뻔한 수법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던데.

문문은 태연한 얼굴로 서 있었다.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복장. 듀반은 뭘 입어도 튀는데 이 남자는 뭘 입어도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사람보다 여행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만큼 특징이라고는 없었다. 휘황찬란한 마왕의 별궁 한가운데 마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안 하면요…. 서명… 안 하면… 어떻게 되죠?”

갑자기 목소리가 갈라졌다. 단얼 자신이 더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문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말단 직원 사정도 좀 봐주세요.”

문문이 펜을 집어 들고 다른 손을 단얼을 향해 뻗어왔다.

“어려운 일 아니라니까요.”

“싫어요!”

단얼은 몸을 돌려 피하려 했다. 하지만 문문은 끈질기게 테이블 너머로 손을 뻗었다.

“자, 여기에…”

“!”

작고 하얀 손이 문문의 굵은 손목을 잡았다.

“싫다고 하지 않나.”

어느새 아스라자가 옆에 서 있었다. 손은 소년의 것이고 목소리는 듀반의 것이었다.

단얼은 그제야 자신이 듀반의 팔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단단한 팔을 더욱 꽉 붙잡았다.

처음에는 이상한 아저씨라고 생각했다. 그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 끔찍한 광경에 죽을 만큼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이 사람뿐이다. 단얼을 믿어주는 것도 이 사람뿐이다. 서약서 따위 없어도.

“이거 왜 이러십니까. 이러니까 제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잖습니까.”

문문이 힘을 빼자 아스라자도 그의 손을 놓아줬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문문이 손목을 문지르며 말했다.

“…”

듀반은 차만 마시고 아스라자는 옆에 서서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단얼 씨가 입을 연다면 가장 난처한 사람은 당신 아니신가요? 라맥의 괴물 듀반.”

이건 또 뭔지. 아드파타, 오드윙의 악마, 어쩌고 괴물…. 듀반은 대체 이름이 몇 개나 되는 걸까. 그전에 악마니 괴물이니. 왜 다들 그런 이름으로만 부르는 걸까.

듀반은 찻잔을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서약은 이 아이보다 자네가 해야 할 것 같군.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나?”

문문의 입꼬리가 아까보다 더 길게 올라갔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 이상은 모릅니다. 저는 진수 씨처럼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문문은 다시 종이와 펜을 챙겨 넣었다.

“이 학생을 입 다물게 하는 게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평범한 여행사 직원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진수 오빠처럼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지…”

단얼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질문이 튀어나와 버렸다.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쓸데없이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알면 알수록 위험해 진다.

“아, 아니에요. 방금 그건.”

단얼은 손을 내저으며 듀반에게서 떨어졌다. 심장이 거칠게 움직였다. 문문의 등장에 놀라서인지 방금 자신의 행동에 당황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의외로 듀반은 순순히 설명해줬다.

“녀석은 정보부 비밀 요원이야.”

문문과 대화할 때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였다.

“아마 진수란 이름도 가짜일 걸. 너희 정부에서는 관광객의 안전을 살핀다는 명분으로 가끔 그렇게 요원을 관광단에 끼워 넣지.”

그냥 네트에 떠도는 헛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진짜였던 건가.

“아무튼, 더 이상 그쪽에서 널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단얼은 구석에 앉은 문문을 봤다. 그는 뿔 없는 아스타나 파리하라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치는 아니야.”

듀반이 말했다.

“문문도 진짜 이름이고. 인영여행사 소속인 것도 맞아. 인영은 관광 개발 초기부터 이 사업을 이끌어온 회사지. 그런 만큼 이 바닥에서 영향력도 크고. 일개 직원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다. 자기 말로는 말단 직원이라지만…”

차로 목을 축인 후 계속 말했다.

“문문은 현장 경험도 많고, 무엇보다 이번 관광단의 총책임자이니까.”

‘그래서 그런 걸 훤히 다 알고 있는 아저씨야 말로 정체가 뭐냐고요’라는 말이 단얼의 목구멍 안에서 맴돌았다.


청문회라더니 마족들은 따로따로 앉아서 수다만 떨고 있었다. 마왕은 나타날 기미도 안 보였다. 한밤중에 사람을 불러 놓고 뭐하는 건지.

단얼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화려한 실내장식도 부담스럽다 못 해 이젠 지겨웠다. 그냥 하품만 나왔다.

“시계 가져왔니?”

듀반이 물었다.

“네?”

“내가 준 시계.”

“아!”

단얼은 바지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냈다. 뚜껑을 열어 보니 바늘이 이미 자정을 향하고 있었다. 졸음이 몰려오는 게 당연했다.

듀반의 손바닥이 앞으로 나왔다.

달라는 건가? 하긴, 처음부터 돌려줄 생각이었으니까.

단얼은 시계를 듀반에게 건냈다.

“이 시계에는 몇 가지 기능이 있어.”

듀반이 집개와 가운데손가락으로 시계를 집었다.

“그중 하나가 각성기능이지. 이렇게 시계를 손에 들고 ‘내일 아침 몇 시에 일어나겠어’라고 생각하면, 그 시각에 정확히 깨어나게 되. 소리나 촉각 같은 감각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뇌에 직접 작용하는 방식이지.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어도 아무리 피곤해도 뇌를 완전히 각성시켜 버린다. 그렇게 깨어나면 한두 시간 안에 다시 잠들 수 없게 되고. 무리하게 사용하면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몸을 망칠 수 있어.”

단얼은 아침에 깨어나던 순간을 떠올렸다. 정확히 5시였다. 전날 밤 시계를 손에 쥔 채 자신이 생각했던 바로 그 시각. 집에서는 엄마가 잔소리를 퍼부어도 제시간에 간신히 일어날까 말까하는 단얼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그게 시계 때문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소리도 빛도 아무 것도 없었다. 소리도 없이 사람을 깨우는 시계의 마법이었다.

듀반의 설명이 계속 됐다.

“지금은 내 마력으로 각성기능을 활성화 시킬 거야.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네가 중간에 졸거나 하면 안 되니까. 무리시켜서 미안하지만 이해해 주길 바란다.”

단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듀반은 시계줄 끝에 달린 작은 고리를 단얼의 코트 아래쪽 단추 구멍에 끼웠다. 그리고 시계를 그 옆에 주머니 안으로 떨어뜨렸다.

“반드시 몸에 지니고 있도록 해.”

단얼은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졸렸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게 또렷해 졌다.

건너편에서 귀족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에미타네리…… 다네.’

‘……루크마야……. 아무리 ……하나 ……입니다.’

‘아나사 님께…… ……합니다.’

‘아스라자의… …입니다. 책임지고 ……했습니다.’

‘관광객 ……이고 ……하십니다.’

‘…… …… …… 아이들 ……’

‘…… …… 폭발 …… ……’

‘…… 죽음 …… …… ……’

‘범인 …… …… …… ……’

“괜찮아?”

갑자기 눈앞으로 다가온 듀반의 얼굴에 단얼은 깜짝 놀랐다.

“괜찮아?”

그가 다시 물었다. 듀반의 목소리에 단얼의 감각들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직 입안에 남아 있는 고소한 맛. 희미하게 번지는 차향. 그리고 듀반의 흑백머리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 생뚱맞게도 이 아저씨가 무슨 샴푸를 쓰는지 궁금해졌다.

“네! 괜찮아요.”

단얼은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여기가 원래 이래. 밤에도 일이 많지. 마족들은 잠이 적거든.”

듀반이 머리 뒤로 손을 얹고 말했다.

“나이요….”

“나이가 뭐?”

“인간들은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준다고 하거든요. 마족도 그런가 해서요. 몇 백 년 동안 점점 잠이 줄어들게 되면, 나중엔 거의 안 자게…”

듀반은 고개를 기울인 채 단얼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떠든 것뿐인데 듀반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단얼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냥…. 아니겠죠. 인간과 마족은 다르니까.”

“맞아.”

“네?”

“마족도 나이가 많을수록 잠이 적다고.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듀반은 아스라자를 향해 곁눈질을 보냈다.

소년은 여전히 듀반의 오른쪽에 석상처럼 서 있었다. 듀반의 말대로라면 마법으로 소년의 몸을 유지하고 있는 아스라자는 잠이 많을까. 저 또래의 아이들은 진작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아스라자는 전혀 졸린 기색이 없었다.

“아스라자, 너도 좀 앉지 그래?”

단얼의 목소리에도 아스라자는 째려보는 게 고작이었다.

“…”

“부르잖아. 대꾸라도 해주지 그래?”

듀반이 거들었다.

“임무중입니다. 방해하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가만히 서 있는 것뿐이면서. 임무는 무슨.

다시 단얼이 말했다.

“힘들지 않아? 뭐라도 좀 마시던가.”

아까부터 집사들이 방안을 돌아다니며 차와 다과를 대접하곤 했지만 아스라자에게는 물 한 잔 갖다 주지 않았다.

“너는 이…”

아스라자가 말하려는 순간 문이 확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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