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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마왕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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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작품등록일 :
2014.08.01 21:21
최근연재일 :
2014.09.16 00:0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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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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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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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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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K21. 둘째 날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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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젠장. 거물급 마족이라더니 이런 괴물일 줄이야.”

진수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그게 너의 본모습이냐. 이거 아주 재미있게 됐군.”

작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현호의 등과 날개에 가려 단얼에게는 테러리스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말투를 보니 상대가 괴물이라고 해도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 그만 해요.”

단얼은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조금 전까지 현호였던 마족인지 괴물인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머리 양쪽에 솟아 나온 뿔이 선명했다. 이때까지 봤던 마족들의 뿔에 비해 특별히 크거나 별다른 모양은 아니었다. 길이가 한 뼘 정도 되는 두 개의 뿔은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뻗어 나왔다. 그것만 빼면 단얼이 아는 현호의 얼굴에서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흑발과 백발이 섞인 머리도 그대로였다.

단얼은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목에 힘을 줬다.

“그만 하세요. 저들의 무기가 어떤 건지 안다면…”

현호가 씩 웃었다.

“걱정마라. 저들의 무기는 내 갑옷을 뚫을 수 없다.”

단얼은 그냥 어이가 없었다. 갑옷은 고사하고 그나마 입고 있던 옷까지 찢어버렸으면서. 맨몸으로 대체 뭘 어쩌겠단 건지.

마족을 죽이기 위해 인간은 온갖 무기를 만들어 왔다. 마지막 인마전쟁이 끝난 후에도 멈추지 않았고 눈앞의 테러리스트들은 그 중에서도 최신 기종을 들고 있다. 인간이고 마족이고 어른이고 아이고 가리지 않고 죽이는 살인 도구다. 전설의 마왕 에미타라도 된다면 모를까 그걸 정통으로 맞으면 살아남지 못 한다.

“위험하다. 물러나라.”

현호의 검은 날개가 뒤로 펄럭이며 단얼을 밀어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아저씨거든요.

딸기와 바닐라가 다가와 단얼의 손을 잡았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아이들의 표정은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이 아이들은 뭔가 알고 있는 걸까.

“에르파 아드파타!”

테러리스트의 외침과 동시에 요란한 총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얼은 눈을 감아 버렸다.

총소리가 멎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현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먼지라도 털어내듯이 가볍게 날갯짓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의 검은 날개와 흰 날개 모두 깨끗했다. 희미하게 뭔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말도 안 돼.

테러리스트가 화난 목소리로 뭐라고 떠들어 댔다. 현호는 차분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뭐라고 하는 거예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진수에게 단얼이 물었다.

“아드파타가 저들에게 물러가라고 말하고 있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총소리가 들렸는데.”

“나도 몰라. 이렇게 강력한 방어 마법은 처음 본다.”

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젠장. 오드윙의 악마 아드파타라니. 적이 아니란 게 고마울 뿐이다.”

아까는 괴물이라더니 이젠 악마랜다.

“진수군.”

“아, 네.”

현호의 무거운 목소리에 진수가 재빨리 몸을 세웠다.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네….”

당사자를 앞에 놓고 그런 말을 했으니.

“그만 돌아가자.”

현호가 검은 날개와 흰 날개를 접었다. 그렇게 흰색과 검은색의 날개가 가지런히 접혀 있으니 새삼 위화감이 느껴졌다.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백마왕처럼 차라리 양쪽 다 흰색이라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짝짝이 날개는 적응이 안 됐다.

시야를 가리던 날개가 치워지자 단얼은 거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새 주위가 조용해져 있었다. 열 명도 넘는 테러리스트가 순식간에 사려져 버렸다. 길에 쓰러져 있던 동료의 시신도 가져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그 시커먼 테러리스트가 물러난 걸까.

현호가 앞으로 나가 길 양쪽을 살펴봤다.

“쿤다 하이마.”

현호의 부름에 딸기와 바닐라가 그에게 뛰어갔다.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현호에게 계속 뭔가를 말했다.

“일단 여기서 본 건 모두 비밀로 해줘.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할게.”

진수가 말했다. 그는 다시 현호에게 다가갔다.

이런 엄청난 일을 모른 척 하라고? 납치될 뻔 했으니 당장 대사관에 연락해야 한다. 테러리스트가 설치는 위험한 곳에 더 이상 관광객을 보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아직 폭탄이 남아 있을지 모르는데, 언제 터질지 모른다면서 다들 뭐 하고 있는 건지.

단얼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진수를 따라갔다. 중간쯤 갔을 때 갑자기 현호가 소리쳤다.

“엎드려!”

뭐지? 아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단얼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지면에서 멀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거리와 건물들이 까마득했다. 오른쪽으로 레바의 탑과 광장이 보였다.

펄럭이는 소리에 단얼은 위를 올려다봤다. 검은 옷에 검은 두건 그리고 검은 날개. 현호의 짝짝이 날개가 아니라 둘 다 검은 진짜 마족의 날개였다.

“떨어져 죽고 싶지 않으면 팔이 빠지지 않게 조심해라.”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였다.

단얼의 양쪽 겨드랑이가 배낭끈에 걸쳐져 있었다. 그 상태로 몸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꼴이었다. 자칫 그대로 팔이 배낭에서 빠지면 자유낙하를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단얼은 재빨리 겨드랑이를 붙이고 팔짱끼듯이 양팔을 겹쳤다.

늘 매고 다니는 작은 배낭 때문에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테러리스트가 날개를 펄럭이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단얼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테러리스트에 폭탄에 저격에 공중 납치까지. 무슨 관광이 이래. 이젠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꿈이라면 가장 지저분한 악몽이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단얼은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닥치고 얌전히 있어!”

테러리스트가 배낭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때 뭔가가 옆으로 휙 지나갔다. 위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별로 좋은 의미 같지는 않았다.

갑자기 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타리아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늘을 가리키며 이쪽을 쳐다봤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빠르게 다가왔다. 단얼은 눈을 감아 버렸다. 몸을 스치는 바람이 거세지고 흔들림도 심해졌다. 그럴수록 단얼은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거리의 웅성거림이 가까워지다가 멀어졌다.

간신히 다시 눈을 떴을 때 저 앞에 다른 색의 날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날개가 점점 다가오는가 싶더니 그 위로 검은 날개 한 쌍이 덮쳤다. 검은 날개 셋과 흰 날개 하나가 공중에서 뒤엉켰다. 그들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족 테러리스트는 오른쪽으로 돌면서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이미 저 아래 건물에 그의 부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려간다.”

건물 옥상이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공중에 멈췄다. 그 상태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테러리스트는 의외로 부드럽게 단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미 십여 명의 부하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우두머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오자 부하들이 뒤로 물러났다.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는 날개를 쫙 펼쳤다. 그가 갑자기 커 보였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양쪽 날개가 그의 등 뒤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날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조그만 남자로 돌아왔다.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는 부하들에게 차례로 뭔가를 지시했다. 그의 명령을 받은 한 명이 다가와 단얼의 손을 앞으로 묶었다.

저항해 봤자 소용없겠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죽이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아드파타!”

그 소리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단얼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단얼의 배낭을 잡고 뒤에서 끌어당겼다. 단얼은 제대로 서지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야 했다.

이놈에 배낭!

이번에는 누군가의 팔이 단얼의 목을 눌렀다. 간신히 숨을 쉴 수 있는 정도였다.

“나에!”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바람이 잦아들었다.

눈을 떴을 때 저 앞에 현호가 서 있었다. 검은 날개와 흰 날개를 하나씩 달고.

그는 이미 포위당한 상태였다. 적들은 모두 인간의 무기로 완전무장했다. 아까는 현호가 무슨 마법이라도 써서 어떻게 막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이미 단얼이 인질이 된 상태였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순순히 물러났던 건 거짓이었나.”

현호가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쉬딘! 그런 단순한 속임수에 넘어가다니 과연 마녀의 개다.”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보기에는 저렇게 작고 별거 없어 보이면서 어떻게 우두머리가 됐는지 알 것도 같았다.

“여기서 너희를 죽이고 싶지 않다. 그 아이를 놔줘라.”

현호가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여전히 웃통은 맨살이었고 두 손은 맨손이었다.

“너야 말로 죽고 싶은 게로구나. 그 요상한 날개를 달고 있다고 네놈이 진짜 전설의 아드파타인 줄 아나? 너는 돌연변이 괴물일 뿐이다.”

우두머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부하들이 일제히 현호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인간, 너희 미개 종족에게는 아마 저게 안 보이겠지. 이 몸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자면 저 자는 지금 마나를 모아 공격 마법을 날릴 기회를 노리고 있다. 마나의 빛을 보니… 번개로군. 아니, 바람인가? 너무 약해서 모르겠다.”

그렇게 말할 때 그 놈은 썩소를 짓고 있을 것 같았다. 아주 흉측한 얼굴로.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우두머리가 권총을 빼들었다. 총구가 단얼의 머리를 겨눴다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안 죽인다고 했잖아!

“지도자께서는 산 채로 데려오라 하셨지 온전한 상태로 데려오라는 말씀은 없으셨다. 팔다리가 날아가도 머리만 살아 있으면 그만이다.”

단얼에게는 더 이상 놀랄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나 더 있다.”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가 단얼의 눈앞으로 왼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안에 네모난 물체가 들려 있었다. 검은 표면에 튀어나온 빨간색 버튼이 선명했다. 테러리스트는 몸을 돌려 현호를 향해 손을 높이 들었다.

“수비대에서는 이미 탑에 설치된 폭탄을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장난감이었다. 진짜는 이거지.”

현호의 두 날개가 하늘을 향해 펼쳐졌다. 어깨부터 가락뼈까지 팽팽하게 당겨졌다. 깃털들이 양쪽으로 칼날처럼 늘어섰다.

그러게 관광객들 먼저 대피시켜야 한다니까. 지금이라도 날아가서 사람들한테 알려요!

하지만 현호의 날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햇빛을 반사해 흰 날개가 눈부시게 빛났고 반대쪽은 검은 비단처럼 번들거렸다.

“밀리유누 운러 이구쟌 칸라자.”

현호가 말했다.

“에하나 구살리메 칸라자 지게바.”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도 마족어로 받았다.

어째서인지 현호가 천천히 날개를 접었다.

설마 포기하는 거야?

“인간.”

테러리스트가 다시 단얼을 향해 말했다.

“저 돌연변이 괴물이 지금 국왕과 너의 목숨을 저울질 하고 있구나. 너는 정체가 뭐냐. 어째서 너 따위를 위해 저 자가 저리도 애를 쓰는 것이냐.”

질문을 할 거면 이거나 좀 풀어주고 하던가. 그러는 너희야말로 나한테 왜 이러는데.

단얼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우두머리가 눈짓을 보내자 목을 누르던 팔이 치워졌다. 간신히 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단얼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주저앉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현호가 왜 저러는지, 그의 정체가 뭔지 가장 궁금한 사람은 단얼 자신이었다.

“어서 말해라.”

바로 옆에서 기계가 맞물리며 철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단얼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덜덜 떨렸다.

“얼이라고 했나.”

드디어 현호가 입을 열었다.

“나 듀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너만은 반드시 무사히 돌려보낸다. 눈을 감아라.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절대 떠서는 안 된다.”

그의 두 날개가 다시 활짝 펴졌다. 마족의 검은 날개. 그것과 대비되는 새하얀 날개.

대체 뭘 어쩌려는 걸까. 앞서 수많은 총알을 막아낼 때도 단얼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에도 마법을 썼다고 했는데 단얼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 했다. 그의 마법은 인간에게 안 보이는 걸까. 눈을 감으라는 걸 보니 이번에는 뭔가 일이 벌어지는 게 분명하다. 보고 싶다. 왜 눈을 감으라는 거지? 보고 싶어….

“어서 감아!”

현호가 버럭 소리쳤다. 단얼은 두 눈을 꽉 감았다.

현호도 테러리스트도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협상 결렬. 이제부터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려 한다.

그렇게 몇 초, 혹은 몇 분이 흘렀을까. 주위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멀리서 마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갑자기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단얼은 반사적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손이 묶인 탓에 그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악취가 스며들었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지독한 냄새였다. 단얼은 현기증을 느끼고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발바닥에 물컹한 느낌이 전해졌다. 깜짝 놀라 다시 자세를 잡으려는데 뭔가 끈적끈적한 것이 신발에 붙어 있었다.

뭐지? 뭐야? 뭐냐고!

단얼은 아주 조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검은색, 아니, 빨강인가.

조금 더 시야를 열었다.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는 광경 앞에 단얼의 두 눈이 활짝 열렸다.

붉은 바닥위에 검은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었다. 검은 것들 중에 온전히 사람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부는 아직도 붉은 액체를 쏟아냈다. 그 색과 형상이 뭘 의미하는지 단얼의 뇌는 해석을 거부했다.

“눈… 뜨지 말라고 했지.”

무겁고 지친 목소리였다. 붉은 바다 한 가운데 그가 서 있었다.

악마.

더 이상 단얼이 알던 현호라는 남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온몸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키도 더 커진 것 같았다. 흑과 백이 뒤섞인 머리카락과 흑과 백으로 나뉜 날개만이 현호가 맞다고 호소했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 붉은 액체가 묻어 있었다. 흰 날개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색은 특히 더 도드라져 보였다.

단얼은 힘겹게 발을 내딛었다. 발바닥에 닿는 끈적한 느낌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현호를 향해 나아갔다.

오드윙의 악마 아드파타. 진수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괴물이라고도 했다. 지금 저 모습을 보며 단얼도 그 단어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단얼을 몇 번이나 구해줬다. 처음 봤을 때부터 무서운 아저씨라고 생각했다. 다들 거리를 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얼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쉽게 어울렸다. 정작 혼자 겉도는 사람은 단얼이었다. 그는 언제나 다정했고 다가갔을 때 거부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무리 끔찍한 짓이라도.

어째서….

현호가 손을 뻗자 단얼의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대체 뭘 어떻게 한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괜찮나?”

현호가 물었다. 단얼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직도 진동하는 악취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단얼은 천천히 앞으로 손을 뻗었다. 새하얀 왼날개에 손을 대려 하자 현호가 움찔했다. 하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정작 단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깃털에 맺혀 있던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다쳤…어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이것은 나의 피가 아니다.”

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논리가 중추 신경계를 헤집고 다녔다.

아니야. 이건 피가 아니야. 그냥 붉은 액체야. 붉은색 물감이야. 그리고 저기 검은 것들은… 그러니까….

“네 탓이 아니다.”

현호가 단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단얼도 피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현호의 날개가 앞으로 나오며 단얼의 몸을 감쌌다. 그의 날개는 부드럽고 한없이 포근했다. 눈을 감고 그대로 잠들고 싶을 만큼 편안했다.

쉬고 싶어.

[그래, 쉬어라.]

코를 찌르던 역한 냄새도 시야를 어지럽히던 붉은색도 어느새 희미해져 갔다. 의식이 흐려지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 무중력의 우주까지 날아간다. 멀어져 간다. 태양도 달도 빛도 어둠도 사람도 세계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 다른 세계의 일처럼 까마득하게 먼 이야기가 된다.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멀어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얼!]

이름. 이름을 부르고 있다.

[단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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