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STARBLOOD

마왕관광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TARBLOOD
작품등록일 :
2014.08.01 21:21
최근연재일 :
2014.09.16 00:05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6,234
추천수 :
106
글자수 :
271,581

작성
14.09.04 00:05
조회
421
추천
0
글자
18쪽

K34. 셋째 날 (11)

Attached Image



DUMMY

- 밤


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9시 반이었다. 문문은 아침 8시에 출발하니 늦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얌전히 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타리아의 마지막 밤을 불태우기 위해 지하 게임장으로 쇼핑몰로 흩어졌다. 지연이 같이 게임장에 가자고 말했지만 단얼은 이번에도 적당히 거절했다.

하지만 단얼도 결국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프론트 데스크의 직원이 알려준 대로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사진 출력소가 보였다. 다행히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일이 많은지 늦은 시간임에도 기계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출력소를 지키는 사람은 젊은 남자 마족이었다. 머리에는 뿔을 달고 최신형 컴퓨터와 프린터를 조작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직원은 얼굴도 잘 생긴데다 친절하기까지 했다. 단얼이 오늘밤 사진이 꼭 필요하다니까 표정 한번 구기지 않고 주문을 받았다. 출력할 사진을 고를 때는 화면 속의 귀족 소년과 마족 아이들에 대해서도 전혀 따져 묻지 않았다.

사진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단얼은 방으로 올라가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청문회에는 마왕도 나온다고 했다. 그럼 정장이라도 입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단얼의 가방에는 티셔츠와 가벼운 여름옷들뿐이었다. 어디 가서 빌려올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그나마 얌전해 보이는 옷으로 챙겨 입었다. 어차피 아스라자나 투르의 화려한 옷에 비하면 뭘 입어도 마찬가지였다.

단얼은 다시 서둘러 지하로 내려갔다. 듀반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그전에 찾아와야 한다.

막상 내려가 보니 너무 서둘렀는지 아직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출력소 직원은 단얼을 맞으면서도 재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말로는 금방 된다지만 무척 바빠 보였다. 옆에 있으면 독촉하는 것 같아서 단얼은 한 바퀴 둘러보고 오겠다며 게임장 쪽으로 갔다.

게임장은 호텔 지하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포셈 저택의 중앙홀 만큼이나 높은 천장에는 화려한 조명이 빛났다.

대부분 공간은 카지노로 꾸며져 있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며 늘어선 화면에서는 요란한 숫자와 그림들이 번쩍거리고 지나갔다. 단얼은 이름조차 헷갈리는 카드 게임이 테이블마다 이어졌다. 룰렛이랬던가. 작은 칸이 그려진 바퀴를 돌리는 게임도 보였다.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닭살 커플이었다. 소라가 옆에서 비명을 질러대고 탁준이 뭔가를 테이블위에 던지고 있었다. 아마 주사위나 뭐 그런 거겠지. 환호와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지는데 그 속에서도 소라의 목소리는 단연 튀었다.

그 건너편 카드 테이블에는 지연의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이미 술기운이 오른 얼굴로 카드에 집중하려 애썼다. 딸과 부인은 어디에 떨궈놓고 왔는지 혼자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천장도 높고 공간도 넓은데 어째서인지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흥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게임장의 직원들은 대부분은 마족이었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뿔을 달고 카드를 돌리거나 인간 손님들에게 술을 따랐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분장한 배우처럼 느껴졌다. 카지노 한복판에 서 있으려니 도저히 여기가 마왕국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반대쪽에 있는 게임기들을 보면 더욱 그랬다.

단얼도 광고에서나 보던 최첨단 게임기들이 즐비했다. 모션 캡처 액션 게임, 3D 가상현실 게임, 전투기 조종석을 그대로 옮겨놓은 시뮬레이션 게임, 도대체 정체가 뭔지 모르겠는 처음 보는 게임기까지.

어른들은 물론이고 취침시간이 한참 지났을 아이들까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대전 액션 게임이었다. 플레이어가 서 있는 부분만 바닥을 높여 무대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 주변으로 여기저기 모니터를 설치해 게임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구경꾼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그 게임의 이름이 리얼 뭐시기였을 거다.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컴퓨터가 인식해 바로 게임에 적용한다. 신체접촉만 없다뿐이지 실감나는 격투기를 경험할 수 있다고 열심히 광고를 해댔다. 게임 한번 하겠다고 온몸을 움직여야 한다니. 컴퓨터 게임이라면 손가락 몇 개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단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땀을 빼고 싶으면 차라리 밖에 나가서 뜀박질을 할 것이지.

양쪽 무대에 올라선 플레이어는 허공에 주먹을 날리거나 발길질을 해댔다. 유효 공격이 나올 때마다 조명이 번쩍이고 요란한 효과음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구경꾼들의 환호와 야유도 이어졌다.

리얼은 무슨. 플레이어가 살짝 손을 흔들기만 해도 화면 속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과장되고 연출된 그냥 게임일 뿐이었다.

이번 경기의 플레이어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그에 비해 상대는 왜소해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여자 같기도 했다. 게임 속 캐릭터는 검은 날개와 날카로운 뿔을 단 마족과 귀여운 차림의 미소녀였다. 단얼은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데다 게임이 정신없이 진행되어 누가 어느 캐릭터를 조종하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마족과 미소녀라니. 상대가 될 리 없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다. 게임 속에서라면 어린 소녀가 마왕을 쓰러뜨리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미소녀 쪽을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기대를 무시하고 검은 마족이 소녀를 밀어 붙였다. 눈에서 불까지 뿜어대며 가차 없이 공격했다. 하지만 한순간 전세가 역전됐다. 뭘 어떻게 한 건지 소녀는 마족을 넘어뜨렸다. 틈을 주지 않고 연속 공격을 쏟아 부어 캐릭터의 생명 게이지를 바닥까지 깎아 버렸다.

게임의 끝을 알리는 경쾌한 음악이 울렸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패자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무대에서 내려갔다. 승자는 두 팔을 치켜들고 돌아가며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화면에 승자 표시를 띄우고 무대에 당당히 서 있는 미소녀 캐릭터의 플레이어는… 진수였다.

게임 화면에 정신이 팔려 진수를 전혀 알아보지 못 했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단얼을 감시하는 걸까? 그냥 놀러 왔을 리는 없다. 문제의 테러 사건과 관련된 청문회가 열리는데 이런 곳에서 놀고 있다니 말이 안 된다.

반대편 무대에 새로운 도전자가 올라왔다. 하지만 진수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관객들은 아쉬운 듯 탄성을 질렀다. 그것도 잠시, 다음 플레이어가 올라오자 사람들은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단얼은 진수를 못 본 척 재빨리 자리를 떴다.

“단얼!”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무시했다. 하지만 이미 진수가 바로 옆까지 따라와 있었다.

“얼이 맞지?”

“아, 진수… 오빠.”

침착해라.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어.

“언제 내려온 거야?”

진수가 첫날과 똑같은 다정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피곤해서 쉰다고 안 했어?”

“그, 그냥… 구경이나 하려고요.”

“여기 굉장하지?”

진수가 게임장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최고급 술, 최첨단 게임, 최신 유행 음악… 뭐든 다 있다니까. 아, 물론 온라인 게임은 안 되지만. 게다가 24시간 개장이라고.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 놀진 말아라.”

그가 단얼의 눈앞에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낮에 그런 일도 있었는데 조심하라고. 집에 무사히 돌아가고 싶으면 말야. 누구처럼 체포라도 되면…”

그 말에 단얼은 숨을 삼켰다. 진수는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단얼의 심장은 쪼그라들었다.

“그 표정은 뭐야? 그냥 해본 말인데, 너 겁먹었냐?”

진수의 얼굴에 장난기가 짙어질수록 단얼의 몸은 굳어갔다.

“하하! 설마 별 일이야 있겠냐? 그 아저씨도 벌써 풀려났던데.”

“네? 드…”

단얼은 듀반이라고 할 뻔 했다. 간신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현호… 아저씨가 여기 있어요?”

“응. 좀 전에 봤어. 카지노 VIP룸으로 들어가던 걸. 멀리서 봤지만 분명히 현호 씨였어. 그 아저씨가 좀 눈에 띄잖아.”

진수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체 왜 이러는지 단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진수가 정말 듀반을 본 것이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듀반이 도착했다고. 단얼을 데리러 왔다고. 단지 그 사실을 알려주려는 걸까. 현호가 아드파타라는 것도, 사실은 듀반이란 이름의 마족이란 것도, 수비대에 체포된 게 아니라 숨었던 것뿐이란 것도 다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타리아가 사실은 테러리스트가 활개치고 집 없는 아이들이 거리를 떠도는 위험한 도시란 사실도 다 알고 있으면서. 지금 단얼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저 관광지의 화려함을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으로밖에 안 보였다. 모른 척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진수가 놀랍다 못 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아까 한 말은 그냥… 무리하지 말란 뜻이었어.”

진수가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저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너무 완벽해서 도저히 가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너 낮에도 탈진해서 한번 쓰러졌잖아. 적당히…”

“누나!”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진수가 멈칫했다. 단얼은 가까이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까.

“얼이 누나!”

갑자기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년을 알아보기까지 단얼의 뇌는 1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단얼보다 작은 키에 날렵한 몸. 검은 머리카락은 완전히 빗어 넘겼다. 검은색 민소매티에 검은색 바지. 발목까지 오는 검은색 부츠는 바짓단을 안으로 넣고 신발 끈을 단단히 맸다.

“누나! 같이 게임하기로 했잖아.”

어리광부리는 소년을 연기하면서도 건방진 눈빛만은 감출 수 없었다.

“어…? 응…!”

단얼은 아스라자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적당히 대꾸했다.

“뭐야? 그새 남친까지 만든 거냐?”

진수가 단얼과 아스라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숙맥인 줄 알았는데, 제법이다, 너.”

“아, 아하하…”

단얼은 그냥 두 사람 사이에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부터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연기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모른 척 하는 것인지. 진수도 아스라자도 이미 단얼의 인식 범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둘 다 너무 늦게까지 놀진 말아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착한 어린이지.”

그 말을 남기고 진수는 휭 하니 가버렸다.

아스라자는 그가 등을 돌린 후에도 눈을 떼지 않았다. 진수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는 이미 원래의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대기하라고 했을 텐데. 여기서 뭐하고 있나?”

“너야 말로 그런 차림으로 뭐하는 건데?”

초강력 헤어젤을 통째로 처바른 듯한 머리 하며, 새까만 민소매티 하며. 명문가의 귀공자 아스라자는 어디 가고 완전히 불량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이건… 됐으니까 어서 가자. 듀반 님께서 기다리신다.”

아스라자가 카지노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잠깐!”

“시간 없다. 이 이상 저항하면 힘으로 끌고 간다.”

“그런 게 아냐. 가! 간다고. 그전에 찾아올 물건이 있어.”

“나중에 해라.”

“안 돼. 꼭 오늘밤에 찾아와야 해.”

“시간 없…”

“잠깐! 잠깐이면 된다니까. 바로 옆이란 말야. 1분도 안 걸려.”

“좋다. 서둘러라.”

아스라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단얼은 출력소로 향했다. 거의 뛰다시피 했다. 도착했을 때는 숨이 차오를 지경이었다.

“저기… 사진…”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출력소의 마족 남자는 변함없이 친절한 태도로 네 개의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같은 사진을 네 장씩 뽑으라고 하시길래. 네 묶음으로 담았습니다.”

단얼은 사진 값을 내고 거스름돈은 받지 않고 그냥 나왔다. 급하기도 했지만 직원의 친절에 비하면 아깝지 않은 팁이었다.

“끝났나?”

문밖에 이미 아스라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이쪽이다.”

단얼은 또 다시 게임장을 가로질러 뛰어야 했다. 아스라자는 그냥 편하게 걷는 것 같은데 은근히 발이 빨랐다.

어린 아이가 카지노를 왔다 갔다 해도 뭐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인간 관광객들은 게임에 몰두한다지만 카지노 직원들도 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아스라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의 눈에는 그저 소년의 모습일 뿐이지만 마족들은 그 이상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아스라자는 게임장 끝에 있는 문으로 다가갔다. 옆에 서 있던 경비가 허리를 숙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아까 진수가 말한 VIP룸이란 곳이 여긴가. 듀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스라자와 단얼이 방에 들어서자 여마족 둘이 다가왔다. 둘 다 아스라자와 비슷한 옷을 입었다. 여자지만 큰 키 하며 단단해 보이는 팔뚝하며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첫 번째 여자는 아스라자가 옷 입는 것을 도와줬다. 옷이라기보다 장비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검은 조끼처럼 생긴 그것은 주머니가 많고 여기저기 금속성 물체를 달고 있었다. 아스라자가 주머니 안을 일일이 확인하는 동안 여자가 앞뒤로 돌아가며 버클을 채웠다. 헐렁하던 조끼가 아스라자의 가슴과 허리에 꼭 맞춰졌다. 주렁주렁하던 부속물들도 단단히 고정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스라자는 또 다른 여자와 계속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목소리 낮추지 않아도 되는데. 어차피 하나도 못 알아듣거든.

마지막으로 아스라자의 손에 장갑이 채워졌다. 표면에 반짝이는 물체는 단순한 장식 같지 않았다.

“이쪽이다.”

아스라자가 턱짓으로 방 반대쪽 벽을 가리켰다. 여자들이 다가가 뭔가를 조작하자 벽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문이 드러났다. 좀 더 정확히는 엘리베이터의 문이었다. 인간 관광객이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숨겨진 엘리베이터.

단얼은 아스라자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다른 두 사람도 뒤따라 탔다.

관광호텔에 어째서 이런 시설이 있는 건지. 이젠 따질 기분도 들지 않았다.

키 큰 여자 둘이 앞에 버티고 있으니 엘리베이터 안이 더욱 좁게 느껴졌다.

단얼은 손에 들고 있는 네 개의 봉투를 다시 확인했다.

힐끗 옆을 보니 아스라자는 아직도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 소년은 계속 바빠 보였다. 서두르고 재촉하고.

지금 말할까. 나중에 언제 또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저기, 아스…”

그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맞다. 이 호텔은 4층까지 밖에 없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옆으로 돌아가니 계단이 나왔다. 한 층 더 올라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타리아의 밤공기가 차가웠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지만 밖에 오래 있고 싶지는 않았다.

주위가 조금 어두웠다. 걷는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호텔 주변의 밝은 빛이 그곳까지 퍼져 올라왔다.

호텔 옥상 여기저기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다섯… 열…. 대충 봐도 열 명이 넘었다.

그리고 저 앞에 유난히 커 보이는 실루엣이 서 있었다. 단얼을 발견하고 그가 다가왔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듀반은 검은 수트 차림이었다. 넥타이까지 반듯하게 매고 있으니 대기업 회장님 같았다. 혹은 마피아 보스거나. 진수의 말처럼 카지노 VIP룸에나 어울릴 복장이었다.

듀반이 손가락을 튕기자 옆에 있던 남자가 뭔가를 건넸다. 어스름 속에서도 주홍색이 선명한 하늘거리는 물체였다.

“타리아의 밤하늘은 춥다고.”

듀반이 그것을 펼쳐서 단얼의 몸에 둘러줬다. 망토처럼 생긴 코트였다. 길이가 짧아서 엉덩이를 겨우 덮을 정도였고 재질도 얇아 보였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단추를 채워주기 위해 듀반이 단얼 앞에서 무릎을 구부렸다. 단얼은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

“제, 제가 할게요.”

“가만 있어.”

단얼은 뒤통수를 찌르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이번엔 아스라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누구도 단얼을 반기지 않았다.

옷매무새를 만져주며 듀반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 옷에는 방어 마법이 걸려 있다. 일이 끝날 때까지 절대 벗지 마.’

이건 또 무슨 소린지. 그냥 청문회에서 증언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그 전에 호텔 옥상에서 뭘 하는 건가 싶었다. 적어도 여기가 청문회장 같지는 않았다.

따져 묻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이미 듀반은 옆 사람과 대화중이었다.

듀반과 단얼을 제외하고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스라자와 비슷한 복장이었다. 그게 그들의 제복 같았다.

아스라자는 쉴 새 없이 그들에게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잠깐 쉬나 싶으면 또 누군가 달려와서 아스라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식으로 단얼은 번번이 타이밍을 놓치곤 했다.

“저기…”

단얼이 입을 떼려는 순간 아스라자 앞에 누군가 종이뭉치를 내밀었다.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라.”

아스라자는 빠르게 종이를 넘겨봤다. 옆 사람에게 마족어로 지시를 내리다가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머뭇거리는 태도 얼마나 짜증나는지 아나?”

“너의 그 건방진 태도도 짜증나거든.”

“할 말은 그게 다인가?”

아스라자는 종이를 옆 사람에게 돌려줬다. 그러고 나서야 단얼을 쳐다봤다.

“이거 받아.”

단얼이 들고 있던 봉투중 하나를 내밀었다.

“뇌물은 받지 않는다.”

아스라자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

아스라자는 단얼의 손에서 봉투를 낚아채 갔다. 유명 사진회사 이름이 새겨진 앞면을 몇 초 동안 빤히 쳐다봤다.

“사진?”

“아까 찍은 사진이야. 그리고 이것도…”

단얼이 남아 있던 봉투에서 두 개를 더 내밀었다.

“부탁할 게. 쿤다와 하이마한테 전해줘.”

아스라자가 봉투와 단얼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러니까 부탁한다고. 그 애들이 있는 곳은 너희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시설이라며. 바쁘겠지만 부탁할게.”

아스라자가 이번에는 부드럽게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근처에 들르게 되면 전해주지.”

“고마워.”

아스라자는 아이들에게 전해줄 봉투를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그대로 가버리나 했는데 뭔가를 계속 꼼지락거렸다.

단얼이 다가가 어깨 너머로 살짝 들여다봤다. 아스라자는 첫 번째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 하나씩 넘겨보고 있었다. 네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한참을 쳐다봤다. 마음에 들어서인지 그 반대인지 알 수 없었다.

“뭐야?”




Attached Image

Copyright © Albireo J. All Rights Reserved.

E-mail : [email protected] | twitter : @starblood_tw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왕관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안 봐도 되는데 읽어두면 편해지는 공지 (2014/08/26) 14.08.15 414 0 -
공지 오타오류 신고는 쪽지나 전자우편을 이용해주세요. 14.08.15 348 0 -
46 K46. 넷째 날 (2) - 타리아편 완결 +1 14.09.16 401 1 21쪽
45 K45. 넷째 날 (1) 14.09.15 209 0 20쪽
44 K44. 셋째 날 (21) 14.09.14 380 0 19쪽
43 K43. 셋째 날 (20) 14.09.13 245 0 16쪽
42 K42. 셋째 날 (19) 14.09.12 342 0 14쪽
41 K41. 셋째 날 (18) 14.09.11 311 0 13쪽
40 K40. 셋째 날 (17) 14.09.10 290 0 15쪽
39 K39. 셋째 날 (16) 14.09.09 347 0 17쪽
38 K38. 셋째 날 (15) 14.09.08 350 1 14쪽
37 K37. 셋째 날 (14) 14.09.07 359 0 12쪽
36 K36. 셋째 날 (13) 14.09.06 494 1 13쪽
35 K35. 셋째 날 (12) 14.09.05 305 0 17쪽
» K34. 셋째 날 (11) 14.09.04 422 0 18쪽
33 K33. 셋째 날 (10) 14.09.03 349 0 15쪽
32 K32. 셋째 날 (9) 14.09.02 205 0 15쪽
31 K31. 셋째 날 (8) 14.09.01 406 0 18쪽
30 K30. 셋째 날 (7) 14.08.31 262 1 15쪽
29 K29. 셋째 날 (6) 14.08.30 392 0 15쪽
28 K28. 셋째 날 (5) 14.08.29 368 0 14쪽
27 K27. 셋째 날 (4) 14.08.28 388 1 14쪽
26 K26. 셋째 날 (3) 14.08.27 267 1 14쪽
25 K25. 셋째 날 (2) 14.08.26 397 2 16쪽
24 K24. 셋째 날 (1) 14.08.25 257 2 16쪽
23 K23. 둘째 날 (17) 14.08.24 406 4 14쪽
22 K22. 둘째 날 (16) 14.08.23 292 2 12쪽
21 K21. 둘째 날 (15) 14.08.22 311 2 17쪽
20 K20. 둘째 날 (14) 14.08.21 331 4 11쪽
19 K19. 둘째 날 (13) +1 14.08.20 465 4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