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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마왕관광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TARBLOOD
작품등록일 :
2014.08.01 21:21
최근연재일 :
2014.09.16 00:05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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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1
추천수 :
106
글자수 :
27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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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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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K01.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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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금발 여성이 이쪽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등 뒤로 한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날개는 까마귀의 그것처럼 새까만 깃털로 뒤덮여 있었다. 날개를 몇번 휘젓나 싶더니 순식간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몸을 감싼 하얀 드레스가 아슬아슬하게 물결쳤다.

여성의 손에서 불꽃이 일었다. 팔을 앞으로 뻗자 불덩이가 점점 커지면서 날아갔다. 공중에서 폭발하더니 불꽃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아래로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다. 불꽃이 황무지를 뒤덮었다가 사그라졌다. 그 속에서 고풍스런 건물들이 솟아났다.

금발이 다시 나왔다. 도시 상공을 가로지르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동마왕국 아르니스로 오세요. 이곳에서 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단얼은 피식 웃었다. 이때까지 본 관광 홍보물 중에서 제일 허접했다.

여자는 진짜 마족도 아니었다. 천공의 뭐더라. 대충 그 비슷한 제목의 판타지 영화였는데. 꼬꼬마 때 봐서 기억도 잘 안 난다. 거기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배우였다. 예전에는 인기 좀 끌었던 모양이지만 이제는 이런 싸구려 광고나 찍고 있다.

단얼은 다시 단말기 화면을 밀었다. 이건 지난번에 봤던 거고, 이건 또 그 배우네, 이건……. 문득 화면 위쪽의 시계로 눈이 갔다.

“뭐야? 시간이 벌써……”

달얼은 고개를 들어 공항 전광판의 시계를 확인했다. 네트워크에 실시간으로 연결된 단말기의 시계가 틀릴 리 없는데도.

얘는 연락도 없고, 대체 어디서 뭐 하는 거야.

한 시간 넘게 기다렸건만 문자 하나 없었다.

단얼은 단말기의 주소록에서 친구의 이름을 눌렀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다가 멈췄다.

“야, 여림! 너 지금 어디야?”

단얼은 단말기 너머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으응. 병원.]

“뭐어?”

어이가 없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식중독이래. 나 못 갈 것 같아.]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여림의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그럼 난 어쩌라고?”

[너라도 다녀와.]

“나 혼자?”

[이미 네 이름으로 등록해 놨어. 그쪽에 말하면 알아서 해줄…….]

“아아, 됐어. 그만두자.”

단얼은 가차 없이 단말기를 껐다.

여행권에 당첨된 사람은 여림이었다. 남친 없는 여자끼리 재밌는 추억을 만들어 보자던 것도 여림이었다. 제발 같이 가 달라며 단얼에게 매달린 것도 여림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당사자가 못 간다니 어쩌란 말인가. 입구에서 림이를 만나 같이 가기로 되어 있었다. 혼자라도 가라지만 단얼은 인솔자의 얼굴도 모르고 집합 장소도 모른다.

여행 가방 앞주머니에 꽂힌 책자를 집어 들었다. 파란 하늘과 초록색 벌판이 표지를 장식했다.


2만년 마족 역사의 상징, 신들의 도시

동마왕국 아르니스 동부에 위치한 고도 타리아의 이름 앞에는 ‘성지’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각종 종교의 발상지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유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리아는 제1 관문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200km 거리에 있다. 마계의 대도시중 관문에 가장 가깝다. 관문이 열린 후 첫 번째로 개방된 관광지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가 이곳을 찾는다.

가장 오래된……


누구 집인지도 모를 석조 건물 사진과 함께 설명이 이어졌다. 지난주 여림이 주고 간 여행사 책자였다. 맨 끝에는 여행사이름과 함께 로고가 들어갔다.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를 겹쳐놓은 듯한 이상한 그림이었다. 옆에는 ‘인영여행사 마왕국팀 문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 가는 장소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이젠 다 소용 없다.

단얼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항 입구로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서류 가방을 든 정장 차림의 남자, 카트 가득 여행 가방을 싣고 가는 가족, 똑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맞춰 입은 커플까지. 각자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냥 돌아가자. 어차피 늦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10시 비행기인데 출국 수속할 시간도 안 된다.

단얼은 공항 밖을 내다봤다. 도로 위로 아지랑이가 이글거렸다. 저 더위를 뚫고 다시 집까지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한여름에 무슨 삽질인지.

여행 가방을 잡고 일어섰다. 그때 단말기의 신호음이 울렸다. 모르는 연락처였다. 보나마다 광고겠지. 안 그래도 짜증인데 이건 또 무슨 쓰레기인지. 수신 거부를 누르려는데 소리가 뚝 끊겼다.

이것들이 정말…….

“타리아 여행권 당첨되신 분인가요?”

단얼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봤다. 남자였다.

“타리아요, 타리아! 10시 비행기!”

남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의 티셔츠에 낯익은 여행사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아저씨가…….

“단얼 씨 맞으시죠?”

“네? 네!”

엉겁결에 대답했다.

“여기서 뭐 하세요?”

“그게, 그러니까……”

“서둘러요. 다들 기다리잖아요!”

남자는 다짜고짜 여행 가방을 잡아채 끌고 갔다. 단얼은 그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멈춰선 곳은 동한항공사 마크가 붙은 창구였다. 그가 돌아서더니 손을 내밀었다.

“여권 주세요.”

“저기 저는……”

“어서요! 시간 없어요!”

단얼이 설명할 새도 없이 남자는 그의 손에서 여권을 가로챘다. 창구 직원과 몇 마디 나누나 했더니 다시 돌아섰다.

“이쪽입니다. 서두르세요.”

여행사 남자가 앞으로 튀어나가며 말했다.

“뭐해요? 시간 없다니까.”

이미 그의 손에는 단얼의 여권과 비행기 표가 들려 있었다.

단얼은 남자가 시키는 대로 짐을 부치고 검색대를 지나고 출국 심사대를 통과했다. 출국장 한 가운데 서 있으면 남자는 어디선가 나타나 단얼을 다음 코스로 안내했다. 붐비는 공항 안을 남자는 거침없이 뛰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단얼은 어느새 비행기 안에 있었다.

“30A, 여기네요.”

남자는 자리를 잡아주고 여권과 비행기표 그리고 배낭을 돌려줬다.

배낭은 또 언제 가져간 거야?

남자는 허리를 펴고 주변 승객들을 향해 빠르게 말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인영여행사의 문문이라고 합니다. 탑승 과정에서 약간의 소란이 있었습니다만……”

그는 단얼 쪽을 힐끗 쳐다봤다.

“이제 곧 출발합니다. 자……”

뒤에 서 있는 승무원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자세한 사항은 도착한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문문은 승무원에게 몇 마디 건넨 후 재빨리 비행기 뒤쪽으로 갔다. 이미 기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비행기는 미추홀공항을 출발해 황진으로 가는 동한항공 804편입니다. 비행시간은 이륙 후 4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단얼은 몸을 반쯤 일으켜 재빨리 주위를 돌아봤다. 주로 아저씨 아줌마들이었다. 효도 관광이라도 가는지 뒷줄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그나마 세 줄 뒤로는 좌석이 텅텅 비어 있었다. 평일에 출발하는 비행기라지만 여름 성수기란 점을 생각하면 너무 썰렁했다.

단얼의 오른쪽 좌석은 비어있었다.

아마 여림의 자리겠지.

결국 여림의 말대로 혼자 떠나게 됐다. 이젠 돌아갈 수도 없다. 대체 혼자 그 먼 곳까지 가서 뭘 하란 건지.

“안전띠를 매주세요.”

잘 훈련된 미소를 띠고 여성 승무원이 말했다.

단얼은 자리에 앉아 안전띠를 맸다. 비행기가 처음도 아니건만 괜히 긴장됐다.

단체 여행이라지만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여행이라면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이나 휴가철 마다 연례행사처럼 떠나던 가족여행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고등학교 이전까지의 얘기다. 부모님은 바쁘다는 핑계로 오빠는 계절 학기를 핑계로 올해 가족여행은 흐지부지 되었다.

단얼은 특별히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매번 그냥 주위에서 가라니까 가는 식이었다. 기대나 설렘 따위는 없었다.

이번에도 친구한테 잘못 걸리고 여행사 직원한테 끌려와 이 자리에 앉아있다. 같이 수다 떨며 세웠던 유치한 계획들은 여림의 식중독과 함께 다 날아갔다.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행의 설렘 때문일까.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떠나는 여행이라서? 아니면 목적지가 마족의 땅이라서? 마왕국이라니까 거창해 보이지만 그래 봤자 같은 행성, 같은 대륙일 뿐이다. 거리상으로는 몇 해 전 갔던 오크섬 보다도 가깝다. 우주 관광이라면 모를까. 마왕국은 이미 누구나 갈 수 있는 흔한 관광지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렘 같은 게 아니다. 이건, 그러니까…… 뛰어와서 그렇다. 그냥 숨이 차서 그렇다. 이 두근거림은 급하게 뛰어온 탓이다. 이륙시각에 쫓겨 급하게 비행기에 오른 탓이다. 단얼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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