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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마왕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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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작품등록일 :
2014.08.0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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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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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35. 셋째 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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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뭐야?”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아스라자가 먼저 뒤를 돌아봤다. 아스라자의 시선을 따라 단얼도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만 빼놓고 니들끼리만 사진 찍은 거야?”

듀반이 아스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스라자는 재빨리 사진을 갈무리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야, 내놔.”

“뭘… 말씀이십니까?”

단얼은 아스라자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리는 걸 알아챘다.

“사진 내놔.”

“저에게 속한 물건입니다.”

“명령이다. 내놔.”

아스라자의 손이 주머니로 올라갔다. 하지만 얼굴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단얼은 깜짝 놀랐다. 소년의 외모를 하고 있어서 단얼도 자꾸 잊어버리지만 아스라자는 400살이 넘는 아저씨였다. 몸은 작아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어른이었다. 그런 아스라자가 거의 울상을 하고 있었다. 만난 지 하루도 안 됐지만 그렇게 적나라하게 감정을 표정으로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입을 삐죽이면서도 아스라자는 천천히 봉투를 꺼냈다.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몸은 따르지만 정말 싫다는 게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

“그러지 마.”

단얼이 아스라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봉투를 듀반에게 내밀었다.“제 꺼 드릴게요. 그럼 되죠?”

“그래도 돼?”

그렇게 말할 때 봉투는 이미 듀반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다.

“저는 원본 파일이 있으니까요. 또 뽑으면 되요.”

듀반은 그대로 사진을 들고 가버렸다.

아스라자도 건방지지만 저 아저씨도 정말 대책이 없다. 고작 사진 몇 장 때문에 어린애를 괴롭히다니. 깡패도 아니고.

그 사이 아스라자도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단얼의 손을 뿌리치고 사진을 다시 챙겨 넣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 출발한다.”

“출발? 어디로?”

“그새 잊었느냐. 그야 물론 청문회가 열리는 아르니스 국왕의 별궁이다.”

아스라자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 가버렸다.

별궁? 방금, 국왕의 별궁이라고….

단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추워서 떠는 것이 아니었다. 듀반이 준 코트 덕분에 더 이상 춥지 않았다.

분명 청문회에는 마왕도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곧 마왕을 보게 된다. 그것도 마왕의 궁전에서.

아스라자는 부하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뭔가를 지시했다. 총만 안 들었다 뿐이지 똑같은 제복을 차려 입은 마족들은 군인처럼 움직였다. 그들 사이로 차가운 긴장감이 흘렀다.

청문회라길래 단얼은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이곳은 마왕국. 마왕이 보는 앞에서 열리는 청문회다. 단얼이 알던 단순한 청문회가 아니다. 아스라자의 복장 하며, 이렇게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가는 것 하며, 증언하러 가는 게 아니라 한바탕 전투라도 벌일 분위기였다. 번역을 청문회라고 했지만 원래 마족어는 결투나 대전이나 뭐 그런 의미인지도 모른다.

단얼은 코트 자락을 들어 올렸다. 느낌은 그냥 평범한 옷이었다. 하지만 듀반의 말로는 마법이 걸려 있다고 했다. 마법옷을 입고 있어야 할 만큼 위험한 곳에 가는 건가. 단얼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너만은 반드시 무사히 돌려보낸다.]

듀반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껏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떤 비난을 듣더라도 단얼의 편을 들어줬다. 왜 그렇게까지 감싸고 도는지 누구보다 단얼 자신이 더 궁금했다. 하지만 차마 대놓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더 큰 진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더 큰 두려움이기도 했다. 단얼 자신이나 또 다른 누군가가 다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느새 저만치 옥상 구석에 가 있는 듀반이 보였다. 혼자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건너편의 조명 때문에 비교적 밝았다.

“아저씨도 카메라 있잖아요. 갖고 싶으면 직접 찍지 그래요?”

단얼이 옆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같은 대상이라도 누가 찍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듀반이 사진 한 장을 단얼 앞으로 들어 보였다. 사진 속에는 단얼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표정도 각도도 엉성해서 별로 잘 나온 사진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사진은 간직하고 싶었다.

“이거 쿤다가 찍은 거지?”

단얼이 재빨리 손을 뻗었지만 듀반이 더 빨랐다. 듀반은 사진을 챙겨 자켓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아스라자에게 보고 받았다. 쿤다와 하이마를 만난 일.”

듀반이 난간에 기댄 채 말했다.

“고마워요.”

“뭐?”

“아이들을 만나게 해준 것. 아스라자가 그랬어요. 아저씨가 시킨 일이라고.”

듀반은 단얼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갑자기 씩 웃었다.

“…”

그때의 단얼은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비디발라!”

아스라자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았다. 곧 가겠다.”

아스라자를 돌려보내고 듀반이 단얼 앞에 섰다.

“출발하기 전에 너한테 할 얘기가 있다.”

단얼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잠시 망설이다가 듀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마법을 걸어야겠어.”

“에?”

“걱정 마. 해로운 건 아냐. 이건 말읽기라는 마법이야.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 때 그 말에 담긴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전혀 모르는 외국어라고 해도 이 마법을 사용하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통역…이군요.”

“그래. 결과적으로 통역의 효과가 있어. 그렇다고 해당 언어를 쓸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야. 그냥 말을 알아듣게 되는 것 뿐.”

“왜 저한테 그 마법을 걸려는 거죠? 청문회장에는 통역이 없나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려는 거야.”

“만약의 상황?”

듀반이 눈을 감았다. 생각에 잠긴 듯 잠시 그러고 있었다. 다시 눈을 뜨고 단얼을 똑바로 쳐다봤다.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스라자와 아바니가의 사병들이 너를 지켜줄 것이다. 그들이 확실하게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너는 현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단얼의 머릿속에서는 그 말만 맴돌았다.

“…한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단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법에 걸리는 것은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듀반을 따라야 했다. 더 이상 투정만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좋아. 그럼 지금 한다.”

듀반의 손이 단얼의 머리에 얹어졌다. 호텔 건물의 조명 때문인지 그의 눈동자가 유난히 붉게 빛났다. 흰 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이 뒤섞인 머리는 이제 어색하지 않았다.

“됐다.”

듀반이 손을 치우고 물러섰다.

이게 끝?

단얼은 아무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 듀반이 말하지 않고 마법을 걸었대도 전혀 눈치 채지 못 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한 조치다. 내가 너한테 이 마법을 걸었다는 건 비밀로 해야 해. 상대가 마족어로 말할 때는 못 알아듣는 척 하란 뜻이야.”

“알았어요.”

듀반은 아스라자와 아바니가의 사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단얼도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갔다.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는 멈출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

아스라자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와 허리를 굽혔다. 그에 맞춰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거의 동시에 똑같이 움직이니 위압감이 더했다.

“론마드 대장!”

듀반이 먼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고귀한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울렸다. 단얼은 정신을 집중하려 애썼다.

“나야 말로 잘 부탁한다.”

그들은 마족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단얼의 뇌는 모국어인 동한어처럼 그 의미를 받아들였다.

남자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오르시지요, 폐하.”

마지막 단어는 비디발라. 그것은 아스라자가 듀반을 부를 때 사용하곤 하던 호칭이었다. 단얼도 이제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말할 때 남자의 마음속에 차오르는 존경과 경외까지 느낄 수 있었다.

론마드 대장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소파 같은 커다란 의자가 보였다. 호텔 옥상 한가운데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등받이가 달렸으니 의자 같은데 단얼 정도는 침대로 써도 될 만큼 자리가 넓었다. 팔걸이도 유난히 큰 게 전체적으로 이상한 모양의 의자였다. 가장자리를 따라 기둥이 세워져 있고 위쪽으로 그것을 잇는 대들보 같은 구조물이 서로 엇갈렸다. 그 둘레에 고리모양의 장식이 주렁주렁 달렸다.

“앉지.”

듀반이 먼저 의자에 앉았다.

“어서 와.”

그는 왼쪽으로 비켜 앉아 옆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단얼은 마족들 사이로 걸어갔다.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외국어일 때는 바람소리일 뿐이었는데 이제는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었다.

대장의 헛기침 소리 한 번에 잡담이 멈췄다. 하지만 그 말들은 메아리가 되어 단얼의 귓가에 울렸다.

인간 아이… 건방진… 더러워… 천박한… 노예… 무엄한… 저주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아스라자와 같았다. 듀반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를 따르지만 단얼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모른 척. 못 들은 척. 단얼은 최대한 태연한 척 하며 자리에 앉았다. 듀반과 거리를 두고 의자의 오른쪽 끝에 걸터앉았다. 의자는 푹신하고 부드러웠다.

앉으라니까 앉긴 했는데 대체 뭘 어쩌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왕의 별궁으로 간다더니 이런데 앉아서 뭐하는 건지.

“위치로!”

론마드 대장이 앞에서 소리쳤다. 곧바로 요란한 발소리가 울렸다. 병사 여섯 명이 달려와 의자 주위에 둘러섰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대들보처럼 생긴 부분에서 고리를 잡아 뺐다. 금속성 마찰음을 내며 고리에 연결된 굵은 줄이 빠져 나왔다. 고리는 병사의 조끼 부분에 달린 다른 고리에 끼워졌다. 병사들은 줄을 당기며 각자의 방향으로 뛰어갔다. 줄이 당겨질 때마다 의자가 조금씩 흔들렸다. 한참 멀어진 후에야 멈춰서더니 자세를 낮췄다. 의자를 중심으로 여섯 명의 병사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펴라!”

갑자기 공기의 흐림이 빨라졌다. 어스름 속에서 단얼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밤하늘을 향해 펼쳐지는 수십 개의 검은 날개들.

“1조 출발!”

회오리치는 바람과 함께 한 무리의 검은 날개가 건물위로 날아올랐다. 고리를 걸지 않은 병사들이었다.

“2조 준비!”

그것을 신호로 남은 병사들이 일제히 날개를 펄럭였다. 더욱 거센 바람이 주위를 휘감았다. 옥상에서 몇 미터 쯤 떠오른 채 병사들의 몸은 더 이상 날아오르지 못 했다. 의자에 연결된 줄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보하! 뭐 하나! 러그! 똑바로 날아! 드루! 빠르다!”

대장이 머리위에서 소리쳤다. 주위를 돌면서 부하들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이미 날아오른 병사들은 옥상 주변을 돌고 있었다. 선두에서 이끄는 자는 몸집이 유난히 작았다. 아스라자가 분명했다.

“준비 완료! 비상한다!”

마족들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의자가 들썩거렸다. 단얼은 팔걸이를 더욱 꽉 잡았다.

“하나! 둘! 셋!”

셋과 동시에 여섯 쌍의 날개가 바람을 때렸다. 그에 따라 의자도 위아래로 출렁이기 시작했다. 단얼은 너무 놀라서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듀반과 단얼이 앉아 있는 의자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의자는 이리저리 요동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러그! 오른쪽! 균형! 균형을 잡아라!”

론마드 대장은 여전히 머리위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옥상을 벗어나자 호텔에 켜진 화려한 불빛이 비행 행렬을 아래로부터 비춰왔다. 여섯 명의 마족이 끄는 의자가 휘청거리며 하늘을 날았다.

“하늘가마를 타 본 소감이 어때?”

뒤에서 듀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얼은 도저히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팔걸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있어야 했다.

어느 정도 높이까지 올라가자 의자의 흔들림도 가라앉았다. 그래도 여전히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였다.

단얼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하늘가마를 운반하는 마족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날았다. 날개를 펄럭이는 속도까지 정확히 맞추는 것 같았다. 가마 앞뒤로 일행을 호위하듯 또 다른 마족들이 따라왔다.

맨 앞에서 행렬을 이끄는 것은 아스라자였다. 대장이라는 남자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밤인데다 다들 비슷비슷해서 구분이 안 됐다.

단얼은 가마 뒤쪽을 돌아봤다. 타리아 리곤 호텔은 벌써 저만치 멀어져갔다. 거리가 벌어질수록 주위는 급격히 어두워졌다. 옆으로 또 다른 빛의 섬들이 보였지만 단얼까지 비춰주기에는 너무 멀었다.

“비행 공포증 있냐?”

듀반의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목소리에는 분명히 비꼬는 투가 담겨 있었다.

“그, 그런 거 없어요.”

단얼은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그래도 한 손은 팔걸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긴 안전벨트도 없나.

가마의 흔들림도 어느 정도 익숙해 졌다.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만 모른다면 자동차나 비행기의 진동에 비해 오히려 안락한 편이었다. 어차피 보이는 게 없으니 얼마나 높이 나는지 느낌도 없었다. 문제는 어둠이었다.

발아래가 온통 새까맸다. 간간이 희미한 빛이 보였지만 그게 더 무서웠다.

“마족들의 도시는 원래 다 이래요?”

“뭐가?”

“캄캄하잖아요. 이렇게 어두운 동네에서 어떻게 살죠? 해가 지면 다들 자나요?”

“어둡지 않아. 환하기만 한 걸.”

눈을 아무리 깜빡여 봐도 단얼에게는 그저 깜깜한 바닥뿐이었다.

“정말이요?”

“응.”

“저 아래 집은 무슨 색으로 보여요?”

“(@&^#%$!)”

“에? 뭐라고요?”

“그 색에 해당되는 개념이 인간에게 없기 때문에 너는 알아듣지 못 하는 거야.”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빛. 마족의 눈에만 보이는 세계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인간 단얼은 아마 영영 알 수 없으리라.

“마족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보는 세계가 다르잖아요.”

“보는 게 다르다고 다른 세계에 사는 건 아니지. 뭐, 조금 특별한 마법을 써서 다른 차원, 다른 시공간을 볼 수 있는 자들도 있긴 하지만 그건 예외고. 우리라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이제는 인간들도 가시광선 이외에, 자신들이 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다른 파장의 빛이 있다는 걸 알잖아? 말하자면 우리는 적외선 카메라나 자외선 감지기를 달고 태어나는 셈이지. 신체구조가 조금 다를 뿐. 마족과 인간이 사는 세계는 같아.”

듀반의 긴 설명이 끝나고 한동안 옷깃 스치는 소리만 이어졌다.

“그래도…”

단얼이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굳이 도시를 이렇게 어둡게 만들 필요가 있나요? 아저씨말대로라면 인간의 눈에만 안 보인다는 거잖아요.”

“마족은 일찍부터 인간이 좁은 영역의 빛밖에 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 파장의 빛만 제외한 조명을 개발했지. 그렇게 하면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고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니까. 예를 들면 전투에서….”

듀반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전투에서 유리하겠군요.”

“그래.”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는데도 이곳은 아직도 어둡군요.”

“그래….”

전쟁은 400년 전에 끝났는데. 가시광선만 가리는 조명 기술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는데. 그럼에도 마족들은 여전히 그 방식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그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걸까.

“아래는 그만 보고 위를 보는 게 어때?”

“네? 위에… 무슨…”

단얼은 그저 고개를 조금 위로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 그때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듀반이 말했다.

“반드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좋은 건 아니야. 정작 중요한 것을 볼 수 있어야지.”

눈앞에 셀 수 없이 많은 빛의 점들이 반짝였다. 구름처럼 흘러가는 빛의 무리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게 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별, 은하수, 성운과 성단들. 하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책으로만 보고 머리로만 알던 지식들은 껍데기일 뿐이었다. 어디에 시선을 고정해야 할지 감도 안 왔다.

타리아에 도착하고 벌써 세 번째 밤이었다. 그런데도 왜 여태 이 광경을 못 봤던 걸까. 그전에 19년 동안 살면서 왜 못 봤지? 저 별들은 마족의 땅에서만 빛나는 게 아닌데. 붉은 벽으로 갈라져 있을 뿐 인간의 땅이나 마족의 땅이나 하늘은 같다.

“별을 볼 때는 이렇게 하는 거야.”

“악! 뭐예요!”

듀반이 뒤에서 단얼의 어깨를 잡아 당겼다. 단얼은 그대로 푹신한 바닥에 눕혀졌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온통 별이었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았다. 교과서에 나오는 여름 별자리 이름을 열심히 외우던 때도 있었는데, 정작 진짜 밤하늘을 앞에 두고 어디가 고니자리고 어디가 독수리자리인지 찾을 수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단얼은 별들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검은 새들이 별의 바다를 날아 다녔다. 그들을 따라 단얼도 별들 사이를 날았다.

별똥별 두 개가 연달아 은하수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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