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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마왕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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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BLOOD
작품등록일 :
2014.08.0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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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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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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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31. 셋째 날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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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복도를 지날 때부터 관광객들의 탄성과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문문조차 일행을 재촉하면서도 벽에 걸린 그림이나 조각상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지연의 아버지는 커다란 도자기 앞에서 한참을 서있기도 했다.

단얼로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셈이었다. 그래도 화려한 저택 내부를 다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디지털 이미지에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회랑을 지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정원 쪽으로 뛰어 나가려는 닭살 커플을 붙잡느라 문문이 애를 먹었다.

역시나 사람들의 반응은 중앙 홀에서 절정을 이뤘다. 진수는 카메라 렌즈까지 바꿔가며 천장화를 찍어댔고 지연은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벽화의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 했다.

“아! 에미타 님!”

조송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모았다. 문문이 부를 때까지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다.

닭살 커플은 계단을 올라가려다가 젊은 집사에게 제지당했다. 두 사람은 아쉬운 듯 위층을 올려다봤다.

그리로 쭉 올라가면 단얼이 있던 침실이 나온다. 그것 말고도 방이 많았다. 듀반은 그중 어딘가에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

집사 할아버지는 홀 안쪽의 또 다른 문으로 손님들을 안내했다.

공연장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넓은 공간이었다. 방 가운데 긴 테이블이 보였다. 사람들이 다 앉아도 반에 반도 못 채울 만큼 지나치게 길었다. 한쪽 끝에 등받이가 높은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각각 여섯 개씩 열두 개의 의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 부분만 식탁보가 덮여 있었다. 테이블의 나머지 공간은 아무것도 없이 매끄러운 나무 표면을 드러냈다.

수십 미터는 될 것 같은 기다란 테이블을 놓고 한쪽 끝에서만 사람이 밥을 먹고 있는 장면. 만화에서나 보던 상황이었다.

단얼은 의자가 없는 쪽 끝에서부터 테이블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식탁보가 없는 부분은 표면에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체가 하나의 나무판이었고 언뜻 봐서는 이음매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무 하나로 만든 건가? 무슨 나무일까? 이걸 어떻게 여기까지 옮긴 거지? 온갖 물음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수령 천 년의 고목으로 만든 탁자입니다.”

언제 왔는지 옆에서 집사 할아버지가 말했다.

“인간들이 흔히 메타세쿼이아라고 부르는 종입니다. 이 저택을 다시 지을 때 아스라자 도련님께서 이로크에서 보내오셨습니다.”

친절한 설명에 단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에 관심을 보이는 건 단얼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벽과 천장의 장식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눈부신 황금 벽채로 그려 넣은 꽃무늬며 동물무늬에 몇몇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창밖에 저녁 해가 기울어 가는 가운데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에 이미 불이 들어와 있었다. 샹들리에 불빛이 넓은 실내를 환하게 비췄다. 촛불도 아니고 전등도 아닌 둥근 것이 빛을 발했다.

“환영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한쪽으로 쏠렸다. 검은 옷의 남자가 방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젊고 잘 생긴 남자였다. 먼 친척이라더니 아바니 아나사나 아스라자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머리도 갈색이었고 도도한 아스라자와 달리 눈빛이나 몸가짐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그래도 귀족은 귀족이었다. 같은 검은 옷이라도 집사나 하인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매와 옷깃에 살짝 들어간 금색 장식만으로도 권위를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옷감 재질부터 확실히 달랐다. 자켓 표면에 보일 듯 말 듯한 무늬가 들어가 있었고 셔츠 소매에서 은색가루가 반짝였다.

“아르니스의 관광청장 마하닐라 투르 백작이십니다.”

스칸다 집사장이 귀족 남자 옆에 서서 말했다. 언제 또 저기까지 간 건지.

“인영 여행사의 문문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문문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반갑습니다.”

투르가 손을 내밀었다. 문문과 악수를 나누는 자세가 자연스러웠다.

“모돌 건설 상무이사 지석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지연의 아버지가 나섰다. 언제는 안 가겠다고 버티더니.

“이쪽은 제 아내, 그리고 딸입니다.”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멋진 저택이에요!”

지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저야 말로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다음으로 아줌마들과 인사를 나눴다.

“오원지입니다.”

“유봄입니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루 식당 조리사 조송이라고 합니다.”

“아하, 조리사시군요. 타리아의 음식에 대한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닭살 커플은 여전히 딱 붙어서 관광청장과 인사했다.

“탁준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 소라입니다.”

분명 결혼 안 했다고 했으면서. 그 사이에 어디서 식을 올린 거냐.

“저희 남편은 음악가랍니다.”

언제는 락커라더니.

“귀한 분들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투르는 변함없이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대단한 인내력이었다.

“우리 차례다.”

진수가 단얼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어느새 투르가 테이블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진수입니다.”

진수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실례지만 하시는 일이….”

투르가 진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프로그래머입니다. 조그만 게임 개발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프로그래머는 현실에서도 총을 들고 다니는구나.

“첨단산업에 종사하고 계시군요.”

투르가 웃으며 말했다.

관광청장 씩이나 되는 그가 진수의 정체를 모를 리 없었다. 두 사람 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그보다 청문회는 어떻게 되는 걸까. 거기에 관광청장도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듀반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얼아, 뭐해?”

단얼은 깜짝 놀라 몸을 움추렀다. 진수가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숙녀분, 성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마하닐라 투르 백작이 단얼을 향해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단…얼…입니다.”

자신을 쳐다보는 투르의 시선에 단얼은 숨이 막혔다. 아스라자의 까만 눈동자와는 다른 기묘한 느낌의 초록색 눈이었다.

“단. 얼. 좋은 이름이군요. 반갑습니다.”

투르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단얼이 그 손을 잡으려다가 멈칫했다.

상대는 마족. 그것도 정부의 요직을 맡고 있는 귀족이다. 당연히 마법도 쓸 수 있겠지. 듀반은 대상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마법을 걸거나 풀 수 있었다. 이 사람도 그런 마법사라면. 이 손을 잡는 순간 단얼에게 뭔가 마법을 걸려 한다면….

그때 투르의 손이 앞으로 다가왔다. 단얼의 손을 잡더니 얼굴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입술이 단얼의 손등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단얼이 손을 빼려 했지만 투르가 놔주지 않았다. 미소 띤 초록색 눈으로 단얼을 쳐다볼 뿐이었다.

입술이 닿던 순간의 차가운 감촉이 손을 지나 온 몸으로 퍼졌다. 그것은 신사가 숙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손등에 입을 맞추는 따위의 인사법이 아니었다. 이 자는 테러리스트나 아스라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경멸하고 있다.

“자, 여러분!”

투르가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단얼은 그제야 벗어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투르의 말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이블 끝의 커다란 의자는 투르의 자리였고 다들 그 가까이에 앉으려고 서로 눈치를 봤다. 결국 투르의 오른쪽에는 지연의 부모와 지연이 차례로 앉았다. 투르의 왼쪽은 유봄의 차지였다. 문문조차 닭살 커플과 다른 아줌마들에게 밀려 났다. 진수는 어느새 지연 옆에 앉아 있었다. 첫날부터 티격태격하던 걸 생각하면 의외의 자리배치였다.

단얼은 아예 처음부터 왼쪽 맨 끝자리에 앉았다. 마주보는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사건만 없었다면 아마 현호가 그곳에 앉아 있으리라. 아니, 그랬더라면 투르가 이렇게 단얼과 다른 인간 관광객들을 만찬에 초대하지도 않았겠지.

“이런, 자리가 하나 비었군요. 열두 분이라 들었습니다만.”

“아, 그게…”

투르의 오른쪽 다섯 번째 자리에 앉아 있던 문문이 말했다.

“낮에 틸라카 대사원 앞에서 소동이 좀 있었습니다. 그때 한 명이 수비대에 체포되었습니다.”

“아!”

투르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폭행죄로 연행되었다는 그….”

“영사관측에서는 곧 풀려날 거라고 합니다만. 제가 맡은 관광단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부끄럽습니다.”

“아닙니다.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일 것입니다. 가능한 빨리 처리되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아… 이런… 감사합니다!”

그러는 사이 열 명 정도 되는 남녀 집사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만찬 내내 음식을 나르고 시중을 들었다. 스칸다는 한쪽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제야 좀 집사장다워 보였다.

나오는 음식들은 점심에 먹던 것보다도 더 푸짐하고 화려했다. 각종 야채와 꽃까지 동원해 세밀하게 장식을 하고 금색 테두리를 두른 번쩍이는 접시에 담겨 나왔다.

포도주가 나올 때도 타리아산이 최고라며 투르 백작이 한참동안 자랑을 했다. 가게에서 파는 것들과 달리 병에는 어떤 상표도 붙어있지 않았다. 지연의 아버지가 좋아하는 걸 보니 좋은 술이긴 한 모양이었다. 단얼에게도 따라주기 위해 집사 하나가 다가왔다. 단얼은 고개를 저으며 아예 잔을 엎어 버렸다.

식사 내내 문득문득 투르 백작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쪽을 바라보며 씩 웃곤 하는 진수도 거슬렸다. 차라리 찡그린 얼굴로 잔소리를 해대는 문문이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단얼은 열심히 음식들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점심을 늦게 먹어 아직 배고플 시간도 아니었지만 먹고 또 먹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제 곧 청문회에 나가야 한다. 마왕 앞에 나가야 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또 픽픽 쓰러져서 듀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만찬은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투르 백작에게 한 마디라도 더 건네 보려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것만 빼면.

“그 공연 너무 좋았어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족을 직접 보게 되다니!”

언제나 지연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갑작스럽게 마련된 공연인데 만족하셨다니 기쁩니다.”

투르의 표정만 봐서는 전쟁터도 공연장이 될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좀 위험해 보이더군요.”

지연의 아버지가 말했다.

“안전을 위해 수비대를 대기시켰다지만 공중에서 폭죽을 떨어뜨리는 것은 심했습니다.”

“그렇군요. 담당자에게 전달해 조치하겠습니다.”

담당자는 무슨. 테러리스트나 잡아들이시지.

“그런데, 그 작은 마족 정말 빠르지 않았어요? 마지막에 날아가던.”

유봄이 끼어들었다.

“어린 아이 같던데.”

질세라 오원지도 한 마디 했다.

“애라고요? 너무 빨라서 아무 것도 안 보이던데요.”

이번엔 소라였다.

“저는 봤어요. 애가 아니라 어른이었어요. 남자고. 커다란 검은 날개가 완전 멋졌어요.”

지연이 빠르게 말했다.

“그래. 내가 볼 때도 애는 아니었어. 어린 애를 그렇게 위험한 공연에 동원하지는 않겠지.”

지연의 어머니가 거들었다.

“저도 배우들의 자세한 신상까지는 모릅니다.”

투르가 적당히 빠져 나갔다.

누굴 말하는지 단얼은 대충 짐작이 갔다. 어린 아이 같은 어른 남자. 검은 날개. 빠른 비행속력. 그리고 마지막에 악당을 해치운 영웅. 듀반은 그를 ‘초속의 대공’이라고 했다. 북마왕국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인간들 앞에서 공연을 펼치는 배우는 절대 아니었다.

틸라카 대사원 앞에서 펼쳐진 공중 공연에 대해 한참동안 토론이 벌어졌다. 투르는 정말로 그런 공연을 준비했던 것처럼 진지하게 대답하곤 했다. 정작 현호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그와 관련된 기억들이 몽땅 지워진 것처럼.

소스를 잔뜩 뿌린 닭고기가 나올 때쯤 대화는 다른 주제로 옮겨가 있었다.

“그럼 백작님이 나중에 이 저택을 물려받게 되시는 건가요?”

지연이 물었다.

“아닙니다.”

“아바니 아나사 님의 후계자시잖아요?”

“아닙니다. 저는 마하닐라이고 아바니의 후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저택과 작위는 주인의 아들이 물려받겠지.”

지연의 아버지가 말했다.

“아들이 있으면 백작님에게 저택을 맡기지도 않았겠죠. 대를 이을 자식이 없으니까 친인척에서 후계를 찾는 거 아니겠어요?”

지연도 지지 않았다.

“이런, 오해가 있으신 것 같군요.”

투르가 웃으며 말했다.

“아나사 님께서는 슬하에 따님 한 분과 아드님 한 분을 두셨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왜 백작님께 이 저택을 맡기는 거죠?”

“아직 어린가 보네요.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임시로 맡기는 거겠죠.”

조송이 끼어들었다.

“아니면 뭔가 다른 결격사유가 있거나.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소라가 얼굴을 찡그리고 말했다. 그런 거? 어떤 거?

“하하하! 결격사유라고요?”

투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나사 님의 두 자재분은 훌륭한 분들입니다.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가문을 이을 수 없었지요. 그런 것도 결격사유라면 결격사유겠군요. 하하!”

“얼마나 대단하길래 12귀족의 후계자 자리도 포기하는 거죠?”

지연이 또 물었다.

“죄송합니다. 왕국과 12귀족 내부의 일이라 자세한 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투르가 웃으며 말했다. 부드러운 미소 앞에 누구도 더 이상 따지고 들지 못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른들의 알콜 섭취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대화 내용도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백작님은 왜 뿔이 없으세요?”

지연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그제야 사람들이 투르의 머리를 확인하고 몇몇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의 뿔은 물론 여기에 있습니다.”

투르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머리를 톡 쳤다.

“어디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여러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답니다.”

“정말이요? 마법인가요?”

“네.”

“정말 있다고요? 만져 봐도 되나요?”

“지연씨!”

문문이 소리쳤다. 이어서 지연을 향해 열심히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지연은 투르 백작의 머리만 쳐다봤다.

“하하! 저희 마족에게 뿔은 민감한 신체부위중 하나입니다. 침실을 같이 쓸 만큼 가까운 사이라면 모를까 다른 이의 뿔을 만지는 것은 실례가 된답니다.”

“침실에서 백작님의 뿔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요? 부럽네요.”

소라가 턱을 괸 채 말했다.

“아쉽게도 현재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어머! 그럼 혹시, 백작님은 미혼이세요?”

“그렇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고 아니면 아닌 거지 저 애매한 대답은 뭔가.

“이렇게 젊고 매력 넘치는 분이 아직도 솔로라니 의외네요.”

“원래 완벽한 남자일수록 짝을 구하기 힘든 법이에요.”

유봄이 또 끼어들었다.

백작의 이상형부터 취미까지 온갖 유치한 질문들이 오갔다. 연예인 인터뷰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단얼은 먹는 데 집중했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감자 한 조각까지 열심히 집어 먹었다.

문득 옆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만찬 시작부터 단얼을 접대하던 집사 복장의 젊은 여자였다. 벌써 그릇을 치우려는 건가 싶어 단얼은 부지런히 남은 고기와 야채를 긁어먹었다.

집사는 그릇을 치우는 대신 단얼이 엎어놨던 잔을 다시 뒤집었다. 그리고 붉은 포도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안 마신다니까요.”

단얼이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아!”

집사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잔이 넘어가며 내용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놀란 여자가 병을 흔들어 대는 바람에 남아 있던 포도주까지 바닥에 쏟아졌다.

단얼이 피할 새도 없이 이미 테이블 위부터 바닥까지 붉은 액체가 흥건했다. 운 좋게도 몸에 튄 분량은 아주 적었다. 무릎과 허벅지에 조금 묻은 정도였다. 옷에 튀었다면 빠느라 애먹었을 텐데 여름이라 짧은바지를 입어 다행이지 싶었다.

“죄송합니다!”

집사가 허리를 숙였다.

“괜찮아요.”

단얼은 등받이 쪽에 뒀던 가방을 앞으로 가져왔다. 휴지를 꺼내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집사는 들고 있던 행주로 탁자를 닦으면서도 계속 사과했다.

“괜찮으십니까.”

어느새 스칸다 집사장이 다가와 있었다. 다른 집사까지 달려와 테이블과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무슨 일인가?”

투르의 목소리가 커졌다.

“라야가 숙녀분께 포도주를 쏟았습니다.”

집사장이 대답했다.

“귀한 손님께 이 무슨 실례인가!”

그러는 사이 단얼은 휴지를 찾아 가방 안을 뒤졌다. 분명 출발할 때 새로 산 여행용 티슈를 넣어뒀는데 어째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냅킨으로 다리를 닦았다.

“모시고 가서 씻겨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집사장이 말했다.

“괜찮아요. 그냥…”

‘아스라자 도련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스칸다가 단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단얼이 고개를 들었을 때 집사 할아버지는 정중하게 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닥에서는 젊은 집사 둘이 무릎을 꿇고 열심히 걸레질을 했다. 사람들은 이쪽의 소란에는 아랑곳 않고 다시 투르 백작과 유치한 대화를 이어갔다.

단얼은 가방을 챙겨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급하게 모시고 나오려다보니 실례를 범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집사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그렇게 많은 포도주를 쏟으면서 옆 사람한테는 거의 안 튀다니. 대단한 기술이었다.

“이쪽입니다.”

집사 할아버지가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단얼은 그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드디어 청문회에 나가는 건가. 근데, 방금 집사 할아버지는 분명 아스라자라고 했다. 왜 듀반이 아니지?

두 사람은 아까 있던 침실을 지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집사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단얼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집사장이 복도에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 방은 응접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가운데 둥근 탁자를 중심으로 의자가 넷. 실내 장식은 역시나 번쩍번쩍했다. 벽난로 주변까지 온통 금을 박아 넣었다.

창가에는 키 작은 나무가 심어진 화분이 세 개 놓여 있었다. 밖은 이미 깜깜했다. 회중시계를 꺼내 보니 8시가 넘었다.

똑똑.

“네!”

노크 소리에 단얼은 자기도 모르게 대답해 버렸다.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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