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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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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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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9,561

작성
20.11.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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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숙원 홍씨 67. 단진의 깊은 슬픔

DUMMY

숙원 홍씨 67. 단진의 깊은 슬픔


“너 미쳤어?”

“민혁을 죽인 놈이야!”

“민혁은 죄인의 몸으로 도망치다 죽은 거야!”

“죄인이 아닌 거 우린 알잖아! 그리고 그놈이 죽였잖아!”

“그자가 민혁을 죽였단 증거가 어딨어? 어딨는데?”

백겸은 단진을 무섭게 노려봤지만 단진은 지지 않았다.

“내가 봤어! 내가 봤잖아! 그리고 그놈이 알아. 제가 죽인 걸 그놈이 알아. 그놈이 자백하게 하면 돼!”

“무슨 수로? 무슨 수로 할 건데? 그자는 한낱 궁인 따위가 어쩔 수 없는...양반이야!”

“아무리 양반이어도 사사로이 사람을 죽이면 죄를 받아. 그게 조선의 법이야!”

백겸이 버럭 소리 질렀다.

“조선의 법 바탕이 신분제도야! 남녀가 유별하고. 백주대낮에 대체 무슨 짓이야? 사고치지 말랬지! 넌 대체 왜 가만 못 있어! 왜! 제발 좀! 가만히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있어! 왜 그걸 못해!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민혁 생각을 했다고!”

백겸이 매몰차게 말했다.

“아까 그자 말 틀린 거 하나도 없어. 넌 민혁이 죽은 거 기억하지도 않고 있었잖아!”

단진의 가슴에 또다시 비수가 꽂혔다. 단진은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야! 나 때문에 민혁이 죽었는데. 민혁이 죽은 것도 잊고 있어서. 미안해서. 더 늦기 전에 이렇게라도 해야겠어. 그놈 신고할 거야.”

운종가의 인적이 드문 뒷골목에서 백겸과 단진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화와 공두는 그들을 보고만 있을 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백겸은 단진이 진양과 맞설 때 나비문신의 위험 때문에 나서지 못했다. 단진과 자신을 연결시켜선 안 되기에 보고만 있었다. 보는 내내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가슴 속의 불안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올라 순식간에 재가 됐다.

백겸은 단진을 보았다. 단진의 앙다문 입술이, 눈빛이 고집을 꺾을 의사가 없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백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단진을 데리고 집으로 가야 했다.

골목으로 창이와 인옥이 달려왔다. 창이는 자신을 기다리던 인옥에게 모든 정황을 들었다. 창이가 단진에게 가려 했지만 도화가 막아서며 나서지 말라고 했다.

백겸이 단진을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그럼. 가서 그자가 민혁을 죽였다고 신고해!”

단진이 놀라 보았다.

“그 전에. 나부터 해!”

단진은 멀뚱히 있었다.

백겸이 싸늘히 말했다.

“내가 사람 여섯을 죽였어. 그래서 왈패들과 부부가 죽었어. 그러니까 나부터 살인자라고 신고해!”

“말이 되는 소릴 해! 대체 왜 그래?”

백겸이 무섭게 보았다.

“가! 가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백겸이 단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창이가 말리려고 나섰지만 백겸이 확 밀치고 갔다. 창이가 또다시 말리려 했지만 도화와 공두가 동시에 막아섰다.

창이는 마른세수를 했다. 어리석었다. 자리를 떠나서 한가하게 장신구 구경이나 하던 자신을 죽이고 싶을 만큼 책망했다.

백겸의 아귀의 힘이 어찌나 센지 단진은 팔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백겸이 무서운 얼굴로 여리여리한 단진을 잡아끌고 가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한성부 관아 앞까지 왔을 때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도화가 나섰다.

“서여름, 너 미쳤어?”

도화가 단진을 보며 다급히 말했다.

“서봄 그만해! 잘못했다고 해. 안하겠다고 해!”

백겸이 단진의 팔을 놓고 등을 확 떠밀었다.

창이는 마치 자신을 밀기라도 하듯 움찔했다. 창이의 몸이 움직이자 그를 잡고 있던 공두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백겸이 싸늘히 말했다.

“들어가! 들어가서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해!”

단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겸이 한성부를 지키는 관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왈패 열둘과 부부가 죽은 살인사건에 관해 제보할 사람이 있습니다!”

도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창이도 공두도 인옥도 모두가 놀라 보고 있었다.

도화는 백겸이 이런 무리수를 둘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늘 이성이 앞선 백겸이었다. 백겸의 마음을 잘 알지만 이건 너무도 위험했다.

백겸의 목소리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다. 나무 그늘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관원들과 안으로 들어가려던 판관의 시선이 백겸과 단진을 향했다.

단진은 너무 놀라 입만 뻥끗거렸다.

도화가 단진의 팔을 잡고 노려보았다.

“그만해! 너 여름이 죽일 거야?”

백겸이 차갑게 말했다.

“지금 결정해! 지금 그자랑 나를 고발하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던가. 아니면 그자를 잊어! 그리고 다시는 민혁 입에도 올리지 마!”

관원 셋이 다가오자 단진은 당황했다.

“누가 목격자요?”

백겸이 단진의 등을 관원들에게 확 떠밀었다.

관원이 단진에게 물었다.

“진짜 뭘 봤소? 그 살인사건이 단서가 없어 골치 아픈데, 진짜로 봤소?”

단진에게 또다른 관원들 여럿이 다가왔다. 단진의 가슴이 거칠게 뛰었다.

관원들은 판한성부사 장문호에게 살인사건의 범인을 빨리 잡아오라고 달달 볶이고 있었다. 장문호가 무예시합 준비에 정신이 나가 있을 때는 살인사건이 어제 오늘 일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허나 이번 살인사건을 세자저하께서 직접 살피러 온 걸 뒤늦게 알고는 난리를 치고 있었다.

관원들은 뭐라도 건질까 싶어 동시에 질문을 쏟아냈다.

“나...나는...”

눈매가 매서운 판관이 다가왔다. 관원들이 단진이 단서를 알고 있다고 보고했다.

판관의 눈이 단진을 향하자 단진은 당황해 한 걸음 물러섰다.

창이가 더는 참을 수 없어 백겸에게 말했다.

“그만해! 봄이 알아들었어! 더는 안할 거야!”

창이가 단진을 데리고 가려는데 관원들이 막아섰다.

“그냥 갈 수는 없소. 뭘 봤는지 안으로 들어가서 말해주시오!”

공두가 잽싸게 나섰다.

“보긴 뭘 봤겠습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싸움질을 해대고. 참으로 나랏일 하시는 분들 뵙기 송구스럽습니다. 사내와 낭자 저 기녀까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렇고 그런 젊은이들 치기어린. 뭐 그렇고 그런 일입니다. 뭐 이런. 송구합니다.”

관원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찌푸렸다.

공두는 그들이 의심스러운 눈길을 거두지 않자 쓰개치마를 쓰고 있는 인옥의 등을 밀었다.

“형판대감 며느님이십니다. 저 낭자가 이분의 인척입니다.”

인옥은 당황했지만 단진의 팔을 잡았다.

“이...이보시오. 어찌 아...아녀자의 길을 마...막는 것이오! 내...우리 아버님께서 아신다면 좋지 않을 것이오!”

관원들과 판관은 그제야 무사와 낭자, 마님과 기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들을 쭉 보았다.

혹시나 싶어 와봤던 판관이 인상을 팍 썼다.

“아실만한 분이 대체 여기서 무얼 하시는 겁니까?”

판관이 가자 공두가 먹던 인절미를 관원에게 내밀었다.

“이거라도 드시겠습니까! 사랑싸움에 집안 반대에, 뭐 그렇고 그런 거지요.”

관원이 눈을 부라리며 궁시렁댔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팔자 좋은 소리들 하고 있네. 우리는 살인사건 때문에 잠 한숨 못 자는데.”

인옥이 멍하니 있는 단진을 잡아끌었다.


백겸과 단진, 창이, 도화, 공두, 인옥이 국밥집 방에 둘러앉았다.

백겸이 단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자도, 민혁도 잊어!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마. 궁에 들어가서도 문종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하루하루 나인으로서 해야 할 일만 해.”

“내 일은.”

단진이 입을 열자마자 백겸이 고함쳤다.

“네 대답을 들으려는 게 아니야! 시키는 대로 해! 아무 말도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백겸의 목소리 끝이 벌벌 떨렸다. 백겸이 어찌나 성을 내는지 창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공두도 백겸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걸 처음 본 터라 눈치껏 조용히 있었고 인옥은 무서워서 단진의 곁에 더욱 바짝 붙어 앉았다.

백겸이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다 함께 집으로 돌아갈 거야!”

백겸의 눈길이 문을 향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보기 싫은 얼굴이 들어왔다.

삼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단진의 앞에 앉았다.

단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두와 인옥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이가 버럭 성을 냈다.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꼭 오늘 이래야 돼?”

창이가 일어나 삼년에게 말했다.

“봄이 앞에 나서면 죽인다고 했지! 나가!”

창이가 삼년을 끌어내려 하자 백겸이 벌떡 일어나 막아섰다.

단진은 놀란 눈으로 삼년을 보고 있었다.

“...네가 왜...네가 왜 여깄어? 네가 왜!”

삼년은 대답 대신 백겸을 보았다.

백겸이 말했다.

“앞으로 함께 할 거야. 같이 왔으니까 같이 돌아갈 방법을 찾을 거야.”

단진이 벌떡 일어섰다.

“누구 맘대로! 누구 맘대로! 저 자식이랑 함께 하느니 나는 돌아가지 않아!”

공두가 벌떡 일어서 단진이 옆에 섰다.

“누구 맘대로! 누구 맘대로! 나도 저 자식 싫어! 우리 궁팀 브레인은 나야!”

백겸이 싸늘하게 공두를 보자 공두는 못 본 척했다.

인옥도 일어나 단진의 곁으로 가 모기소리로 말했다.

“나도.”

단진과 공두, 인옥, 창이가 한쪽에 서고 백겸과 도화, 삼년이 한쪽에 서서 서로를 보았다.

조선에 와서 처음으로 함께 모인 그들은 삼년으로 인해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단진이 삼년을 노려보았다.

“나가!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민혁이 누구 때문에 죽었는데!”

삼년이 바로 대답했다.

“서봄 너 때문에!”

“뭐?”

백겸이 말했다.

“그래. 봄이 너 때문에 민혁이 죽었어. 그러니까 더는 민혁 얘기 꺼내지 마!”

창이가 소리쳤다.

“서여름, 너 미쳤어?”

창이가 삼년에게 다가가려는데 백겸이 막아섰다.

단진은 무섭게 삼년을 노려보고 있었고 삼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겸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봄이랑 이재열 빼고 다 나가. 너희 둘은 지금 다 해결해.”

창이가 삼년을 끌어내려 했지만 백겸이 완강하게 막아섰다.

단진이 삼년에게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나가 있어 준아.”


해가 기울고 있었다.

밥때가 되어 주막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이 많아지고 담장 너머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빨라졌다. 국밥집 주모는 가마솥 뚜껑을 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을 휘휘 젓고 있었다.

국밥집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의 시선이 만개한 노란 꽃이 그려진 전모를 쓴 화려한 도화에 닿았다. 도화는 그제야 전모를 풀어 옆에 두었다.

백겸과 도화는 평상에 앉아 있고 인옥은 마루에 걸터앉아 방을 보고 있었다. 창이는 불안함에 왔다 갔다 하고 있고 공두는 평상에 앉아 국밥을 먹고 있었다.

공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서여름, 너 봤지? 궁에서 우는 닭이 밖에서도 운다고! 내가 그간 얼마나 고생했는 줄 직접 보니 알겠지! 쟤가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야. 내가 저 닭 때문에 밥을 못 먹어 뼈 밖에 안 남았어!”

공두는 맛나게 먹으면서 입을 놀려댔다.

“입맛 없어도 먹어야지. 그래야 저 닭 챙겨 들어가지! 그래도 이재열 저 자식하고는 한배 못 타! 궁팀 브레인은 나야!”

방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울어가는 해가 홀로 방안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해가 기울었다.


방안에 어둠만이 찾아왔을 뿐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단진은 삼년을 노려보고 삼년은 증오심 가득 찬 눈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삼년은 자신의 방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 익숙하게 두 개의 촛불을 밝혔다.

삼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보기만 할 거야? 너도 궁으로 들어가야지! 빨리 말하고 끝내자! 네가 좋든 싫든 나는 앞으로 너희들하고 한배를 탔어. 나는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 그걸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줬고. 우리는 힘을 합쳐 역사를 바꾸고 집으로 돌아갈 거야!”

“너는 돌아가는 방법을 몰라! 너는 아무것도 몰라. 너는 비겁한 겁쟁이에, 배신자에 거짓말쟁이니까.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몰라 물어?”

“몰라 물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너 때문에 민혁이 죽었어!”

“아니. 아니. 아니야. 민혁을 죽인 건 서봄 너야!”

“네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얘길 해! 네가 배신해서, 네가 민혁을 배신해서 민혁이 죽었어!”

“아니야. 나는 민혁을 배신하지 않았어! 나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야! 그게 죄라면 죄야! 살고 싶어서, 그저 살고 싶어서!”

“네가 살고 싶어서 민혁을 죽인 거야. 너 때문이야! 그게 잘못이 아니야?”

“아니. 나는 민혁을 배신한 거고. 민혁을 죽게 한 건 너야 서봄!”

“네가 배신해서 죽은 거야! 널 믿은 친구를 배신했어! 그러니까 입 닥쳐!”

“입 닥칠 건 너야 서봄! 오버도 정도껏 해 역겨우니까!”

“뭐?”

삼년의 가슴에 쌓여있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너. 네가 무슨 짓을 했는 줄 알아? 나한테 하나뿐인 친구를 빼앗아갔어. 그게 너야! 너는 민혁이 죽었어도 상관없잖아! 너는 저 밖에 있는 너한테 끔찍하게 잘하는 서여름! 독고준! 왕태희! 나원빈! 김소이! 가 있지만. 나는...나한테는 민혁이 전부였어...”

삼년의 눈이 붉어졌다.

“그런 하나뿐인 친구를 내가 배신했어. 그래! 나는 배신자야! 그런데 내 친구를 죽인 건 너야. 서봄. 너를 용서 안해!”

삼년이 증오심 가득한 눈으로 단진을 노려보았다.

“죽어도 용서 못해! 그래도 나는 친구를 배신하면서 살아남았기에 집으로 돌아갈 거야! 그러니까. 너는 닥치고 나를 참아내! 내가 너를 참듯이! 너는 내 친구를 죽게 했으니까. 너는 민혁 생각 안하지? 나는 매일 밤. 아침에 눈떠서 잠 잘 때까지, 잠을 자면서도 민혁의 피를 깔고 살아. 민혁의 피냄새를 맡고도 견뎌. 그러니까 너야말로 닥치고 있어!”

단진은 잠시 있다가 차갑게 말했다.

“아니. 그런 식으로 널 합리화 시키지 마. 민혁을 배신하고 죽게 한 건 너야. 내가 아니야........그래, 그래! 내가 죽게 했다 쳐. 하지만.....”

단진의 눈이 사나워졌다.

“그래! 내가 민혁을 죽였어! 내 치기어린 행동으로 민혁이 죽었어! 하지만...”

단진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민혁을 살리고자 했고. 너는 네가 살고자 했어! 그건 변하지 않아!”

삼년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삼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촛불이 흔들렸다.

삼년의 눈물 앞에 단진은 냉정했다.

“잊지 마! 나는 민혁을 살리고자 했고, 너는 네가 살고자 했다는 거.”

삼년의 눈에 독기가 들어찼다.

“네가 무슨 거짓말로 여름일 속였는지 몰라도 나는 안 속아!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

단진이 나가려는데 삼년이 소리쳤다.

“서봄 너는 민혁을 죽였고! 저 밖에 있는 모두를 죽게 할 거야!”

단진이 삼년을 노려보았다.

“너는 너만 잘났지! 너만 정의롭고, 너만 옳지! 그래서, 그래서 너 때문에, 서여름과 독고준은 살인자가 됐어! 네 그 알량한 영웅놀이 때문에. 아직도 모르겠어?”

단진의 눈동자가 허둥댔다.

“모르는 거야? 모른 척하고 싶은 거야? 네가 문종 따라 들어가던 날. 그 자객들. 누가 죽였을 것 같아? 서여름하고 독고준이야! 그 죽은 시신을 누가 치웠는 줄 알아? 나랑 왕태희야! 그 장대비 속에서...”

.......

“네가 히히덕거리고 좋아 죽을 때 서여름하고 독고준은 너를 위해 사람을 죽였어. 멀쩡한 모범생들을 살인자로 만들었어. 죽은 자의 피를 손에 묻히고 벌벌 떤 걸 너는 모르지? 몰랐겠지? 모르고 싶겠지! 문종 보며 실실 좋아 죽느라. 결국! 네가! 너 때문에 모두가 죽게 될 거야! 여기 온 것도 너 때문이고, 우리는 다 죽게 될 거야! 민혁이 옆에 누구부터 묻히게 될까?”

단진이 삼년의 뺨을 후려쳤다. 단진의 손이, 마음이 바들바들 떨렸다.

삼년은 단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너는 다 죽일 거야! 진짜 살인자는 너야!”


창이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창이가 삼년에게 주먹을 날렸다. 삼년이 벽에 쿵 부닥치며 주저앉았다. 삼년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창이가 삼년을 짓밟았다. 백겸이 용수철처럼 튀어 들어와 창이를 말렸다.

단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창이가 삼년을 죽일 듯이 패자 백겸이 창이를 잡았다.

“그만해! 애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여버릴 거야!”

창이가 백겸을 밀쳐내고 삼년을 걷어찼다. 문짝이 떨어져 나가며 삼년이 마당으로 고꾸라졌다. 창이가 뛰쳐나가려는데 백겸이 무섭게 막아섰다. 창이가 백겸의 몸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창이가 나가려는데 백겸이 창이를 잡아 던지듯이 밀어댔다. ‘쿵’ ‘쿵’ 소리가 날 때마다 단진의 몸이 움찔했다. 그들의 거친 몸싸움을 단진은 놀란 눈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단진은 그제야 그들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볼 수 있었다. 알면서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걸까 생각하자 자책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단진의 눈에서 고통이, 슬픔이 흘러내렸다.

백겸이 창이를 벽에 밀어붙이고 진정시키려 했다.

“그만해!”

“비켜!”

“집에 가려면 쟤도 있어야 돼! 집에 가야 할 거 아냐!

창이가 고함쳤다.

“넌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중요해!”

“중요해!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어? 대체 너는 뭐가 중요한데?”

“봄이!”

......

“나는 봄이가 중요해!”

“뭐?”

백겸은 한 대 맞은 듯 멍한 표정으로 창이를 보았다. 백겸은 창이의 눈을 보았다.

사내의 눈빛이었다.

백겸은 창이를 보고만 있었다. 왜 이제껏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봄이 생각은 안해? 봄이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살게 할 수는 없어. 적어도 봄이가 스스로 내려놓게 기회는 줘야지!”

창이가 백겸을 확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등불이 훤히 밝혀진 국밥집에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하고 있었다. 창이가 튀어나오자 모두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삼년은 나동그라진 채로 있었고, 공두와 도화는 그저 보고 있고 인옥은 울고 있었다. 국밥집 주모가 주걱을 들고 떨어진 문짝과 삼년을 보고 있고 손님들은 수저를 든 채로 있었다.

창이가 삼년에게 달려들어 걷어찼다. 창이는 죽을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 창이가 거칠게 숨을 내뱉고 삼년의 멱살을 잡아 밖으로 내던졌다.

“가! 가 이 자식아! 죽고 싶지 않으면 가! 다시는 봄이 앞에 나타나지 마!”

“싫어! 못가!”

삼년이 다시 기듯이 들어와 창이의 가슴팍에 매달리다시피 했다. 창이가 삼년을 떼어내려 했지만 삼년은 필사적이었다. 창이의 옷섶에서 장신구가 툭 떨어졌다. 삼년이 그 장신구를 밟았다. 장신구가 ‘툭’ 하고 부러졌다.

“차라리 죽여! 못가!”

단진은 넋이 나간 듯 있었고 백겸 역시 멍하니 있었다.

창이가 허리를 굽혀 장신구를 주워들었다. 큰 별이 부러졌다.

창이의 희망이 부러졌다.

도화는 갑작스레 조용히 있는 창이가 불안했다. 폭풍전야 같았다.

삼년이 피를 뱉어내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

“서봄. 잘 봐둬! 네가 결국 나를 죽이는 거고! 독고준을 살인자를 만드는 거야! 여기 보는 사람들 많아! 너는 독고준이 살인자로 참형당하는 걸 보게 될 거야!”

창이가 검을 뽑아들었다.

삼년이 창이를 보았다. 창이의 눈은 산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삼년은 겁에 질려 소리조차 낼 수 없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도화와 공두, 인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창이가 비명을 내지르며 삼년에게 검을 내리쳤다.

“준아!”

그 순간 뒤에서 단진이 창이를 안았다.

“안돼...안돼...준아...준아 그만해...제발. 그만해...준아. 그만해. 하지 마. 제발...그만해. 그만...그만해...준아...제발....”

검이 삼년의 얼굴 가까이에서 멈추었다. 삼년의 몸과 갈 곳 잃은 검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제발 그만해...준아. 그만해...”

창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검이 있었다. 창이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창이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단진이 창이의 등 뒤에서 울고 있었다. 창이는 그대로 있었다.

밤하늘의 별조차도 숨죽이고 있었다.

.......

창이는 자신을 힘껏 안고 있는 단진의 팔에 눈길이 닿았다.

단진이 어찌나 힘을 주고 있는지 그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창이가 단진의 팔을 조심스레 떼어내고 단진을 바라보았다.

“미...미안해 준아...미안해...하지 마...제발...그러지 마...그러지 마...”

창이가 단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눈물은 금세 차올랐다.

“울지 마 봄아...머리 아퍼.”

백겸은 멍하니 창이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창이가 단진의 눈물을 닦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시는 네 앞에 오지 못하게 할게.”

창이는 잠시 있다가 덧붙였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창이가 단진에게 미소 짓고는 돌아서서 삼년의 뒷덜미를 잡았다.

“너 우리가 등신인 줄 알지? 다 알아! 왈패들한테 쫓기는 거! 내가 너를 죽이는 일은 없을 거다. 너를 죽이고 싶어 하는 그놈들에게 손과 발목이 잘린 채 살아.”

삼년은 정신이 번쩍 들어 끌려가지 않으려 버둥거렸다.

“사...살려줘...제발...살려줘...서봄 살려줘...”

단진은 창이를 보고 있었다. 단진의 눈에 고인 눈물에 창이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담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도끼와 짱돌로 만든 무기를 든 십여 명의 왈패들이 국밥집으로 들이닥쳤다.

“으미 시벌. 여기 있었냐!”

삼년의 눈에 공포가 들어찼다. 창이가 삼년을 왈패들에게 집어던졌다. 삼년이 왈패들에게 끌려가며 단진을 보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살려줘! 살려줘 서봄! 살려줘...”

백겸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백겸이 따라가려는데 도화가 막아섰다.

“그냥 둬.”

단진은 멍하니 있었다.

도화가 단진을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이재열. 왈패들에게 가면 죽게 될 거야. 결정은 네가 해!”

단진의 눈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삼년이 보였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육갑이 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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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 cr*****
    작성일
    20.11.30 11:44
    No. 1

    너무 기다렸어요 작가님~~ 오랜만에 맛난 단진 일행들의 깊어진 감정에 오늘은 같이 슬퍼하며 봤네요. 역시 최고! 다시 볼수 있어 너무 반갑습니다~다음화도 기대할게요!!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6 k1******..
    작성일
    20.12.07 11:00
    No. 2

    넘넘재밌어용!! 오래기다린만큼 행복하네용!!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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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숙원 홍씨 88. 단진을 향한 이향의 마음 +2 21.03.18 1,285 9 16쪽
87 숙원 홍씨 87. 그들의 이향 +4 21.03.15 1,293 9 18쪽
86 숙원 홍씨 86. 낙엽비 +2 21.03.11 1,308 9 19쪽
85 숙원 홍씨 85. 단진, 부왕과 마주치다 +2 21.03.08 1,336 9 18쪽
84 숙원 홍씨 84. 용무용, 이향을 만나다 +5 21.02.04 1,384 10 24쪽
83 숙원 홍씨 83. 백겸, 김종서를 만나다 +3 21.02.01 1,439 10 19쪽
82 숙원 홍씨 82.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3 +2 21.01.28 1,485 10 23쪽
81 숙원 홍씨 81.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2 +3 21.01.25 1,515 10 18쪽
80 숙원 홍씨 80.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1 +2 21.01.21 1,527 10 21쪽
79 숙원 홍씨 79. 진양, 사저로 백겸과 창이를 부르다 +2 21.01.18 1,560 10 17쪽
78 숙원 홍씨 78. 단진과 공두, 김종서 집에 들다 +3 21.01.07 1,562 9 20쪽
77 숙원 홍씨 77. 목멱산의 첫 모임 +2 21.01.04 1,584 10 14쪽
76 숙원 홍씨 76. 모두 목멱산에 오르다 +2 20.12.31 1,604 10 23쪽
75 숙원 홍씨 75. 용모파기 +2 20.12.28 1,626 10 17쪽
74 숙원 홍씨 74. 진양과 안평, 입궐하다 +3 20.12.24 1,655 10 26쪽
73 숙원 홍씨 73. 다시 돌무덤으로 +2 20.12.21 1,675 10 21쪽
72 숙원 홍씨 72. 이향의 진귀한 서책 +2 20.12.17 1,703 10 25쪽
71 숙원 홍씨 71. 단진, 육갑을 마음에서 내려놓다 +3 20.12.14 1,724 10 14쪽
70 숙원 홍씨 70. 단진의 남자들 +2 20.12.10 1,734 10 25쪽
69 숙원 홍씨 69. 향의 고백 +4 20.12.07 1,753 10 16쪽
68 숙원 홍씨 68. 이향, 단진을 기다리다 +3 20.12.03 1,783 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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