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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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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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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9,561

작성
21.04.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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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숙원 홍씨 93. 용무용과 그들

DUMMY

숙원 홍씨 93. 용무용과 그들


관원이 사내에게 물었다.

“내금위 별감들과 함께 간 자들을 보았느냐?”

열대여섯 정도의 순박해 보이는 사내가 대답했다.

“예 나으리. 봤습니다요.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사내였습니다요. 봇짐을 메고 가다 끈이 풀어져 골목에서 매고 있는데, 별감 둘이 사내 둘을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요.”

“그자들의 용모파기를 그릴 수 있겠느냐?”

사내가 순하게 웃었다.

“예. 지가 다른 건 몰라도 눈썰미가 좋아 한 번 본 사람은 잊어버리질 않습니다요.”

“사례는 할 것이다.”

“아이고 사례는 무슨......실은 지가 벌이는 시원찮고 엄니가 아프시고...지 동생들도 여럿이고...저만 보는 입이 많습니다요. 염치없지만 받겠습니다요...”

사내는 수줍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는 약재를 꼭 안고는 말했다.

“한 사내는 지 또래로 보였고 얼굴이 갸름하며 길었습니다. 그리고 입이 얼굴에 비해 컸습니다요.”

갸름한 얼굴에 입이 큰 결이 사내를 보았다.

“앞서던 사내는 삼십 대 중반쯤 돼 보였고, 키도 크고 하관이 발달했으며 눈썹도 진하고 눈매가 매서웠습니다요...이 정도면 도움이 됐습니까요 나으리?”

“제대로 보았구나. 다른 누구에게 말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요 나으리. 관원 나으리들이 묻고 다니시길래 처음 얘기한 것입니다요.

그 순간 사내는 왜 관아에 데려가지 않고 이런 광으로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순간 결의 얼굴이 보였다. 사내가 놀라기도 전에 결의 검이 그를 베었다.


한성부 정청에 장문호와 관복차림의 용무용이 마주 앉아 있었다.

“대감, 별감들과 함께 간 자객들을 봤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습니다. 허니 범인을 잡는 일은 시간문제입니다.”

장문호가 버럭 화를 냈다.

“봤다는 사람이 나왔으면 범인을 잡아들여야 할 게 아니냐! 하루가 다 지나가고 있는데 어찌해서 범인을 색출해내지 못하는 것이냐! 대체 문 판관은 무얼 하고 있는 것이야!”

장문호는 초조했다. 어찌 찾아온 기회인데. 괘서사건과 왈패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었건만. 내금위 별감들 시신을 발견해 범인을 잡아다 저하께 바치려 했건만. 하루가 지나가고 있는데 어찌해서 아무 소식도 없는 것인지.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고 저하의 신임을 얻어 양원마마를 세자빈 자리에 앉혀야 하거늘.

용무용이 장문호를 보았다.

“대감,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입니다. 조금 늦는다 해도 높이 가셔야지요! 장차 국구가 되실 분이 아니십니까!”

국구란 말은 늘 장문호에겐 약이었다. 금세 누그러진 장문호가 용무용을 보았다.

“저하께 한성부에 도둑이 들었단 말은 하지 않았다. 민가의 도둑을 쫓다 발견했다 그리 아뢨다.”

“당연히 그리하셔야지요 대감. 괜히 한성부 관리에 소홀하다 책잡히실 것입니다. 아랫것들 입단속은 이미 해뒀습니다.”

장문호는 끄덕이며 용무용을 보았다. 볼수록 쓸만한 자가 아닌가.

장문호는 어젯밤 도둑에게 털린 금고를 힐끗 보았다. 뇌물로 받은 금괴가 통째로 사라졌다. 아까웠으나 그깟 재물이야 또 모으면 그뿐.

용무용은 장문호가 얄팍한 수로 한성부에 도둑이 들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용무용이 장문호를 보았다.

“대감께서 별감들을 살해한 놈들을 잡을 수 있도록 제가 돕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대감께서 형판대감께 향한 저하의 신임을 찾아오셔야 합니다.”

장문호가 끄덕였다.

“하온데 대감, 오늘 진양대군이 무례를 범했다 들었습니다.”

장문호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김 판관 자네가 선견지명이 있었네. 대군들이 그리 쳐들어올 줄 미리 알고 내게 방비하라 해줬으니.”

용무용이 걱정스레 말했다.

“대군들의 경솔한 행동으로 저하께 누가 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체 대군들이 무슨 생각으로 저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용무용은 한숨을 내쉬었으나 눈빛은 얼음장이었다.

“진양이 국구가 되실 대감께 무례를 범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요. 한성부를 판치고 다니며 대감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니질 않나...지금 양원마마가 후궁마마라 대감을 무시하는 듯합니다.”

장문호는 대노하여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진양이 그리 말하고 다닌단 말이냐! 앞으로 세자빈이 되시고 중전의 자리에 오르실 분이시거늘...”

용무용이 달랬다.

“진양이 그리 말한다 한들,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

“대감께선 앞으로 국구가 되실 분이십니다!”

.....

“그뿐입니까? 양원마마께서 용종을 생산하시면 세자 자리에 오르실 거고. 후에는 대감께선 이 나라 지존의 외조부가 되십니다.”

장문호의 어깨에 날개가 솟았다.

“또한 지금은 호판께서 대감과 나란히 있으나, 곧 있으면 호판이 대감의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 호판뿐이겠습니까? 형판, 아니 일인지상 만인지상의 자리가 문제겠습니까? 모든 것이 대감의 아래에 놓일 것입니다.”

.....

“허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진양의 기를 꺾을 방법은 제가 찾겠습니다. 허니 국구께선 큰 그림만 보십시오.”

.......


“대감, 추국은 내일부터 하시지요!”

“그래야 신중해 보이고 모양새가 좋습니다.”

“대감, 오늘부터 제가 번을 설 테니 심려치 마십시오.”

용무용은 허리 굽혀 인사했다. 장문호가 탄 가마가 떠날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한성부를 밝히는 횃불이 기세등등 타올랐다. 관원들은 창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용무용이 바로 서서 멀어져가는 장문호를 보았다. 큰 그림을 그리라 일러도 작은 그림밖엔 그릴 줄 모르는 위인이었다. 저리 가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좌불안석 다시 한성부로 올 것이다.

어젯밤 한성부에 잠입한 건 윤이었다. 윤이 도주하던 사이 석이 들어가 장문호의 금괴를 슬쩍했다. 윤은 관원들을 내금위 별감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유인했다. 용무용의 진짜 목적은 별감들의 시신을 이곳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관원들이 창을 열었다. 호가 계단을 내려오다 달려오는 석을 보았다. 호가 서둘러 뛰듯이 내려와 용무용의 곁에 섰다.

석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은밀히 말했다.

“형님. 이향이 양주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용무용이 잠시 길을 보았다. 이제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용무용이 계단으로 한 걸음 옮기는데 석이 덧붙였다.

“헌데 형님, 창이형님이 진양과 다른 곳으로 갔다 합니다.”

용무용이 돌아보았다.


용무용이 운종가로 들어섰다.

호와 석이 용무용 곁을 따랐다.

운종가는 평소와 같이 등불이 훤히 밝히고 있었으나 인적이 드물었고, 대여섯 명씩 조를 이룬 관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오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죄 지은 것도 없는 사람들이 괜히 잡혀갈까 싶어 눈길을 떨구고 지나갔다.

꽃신 상점과 부채 상점 사이의 골목 앞을 많은 관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앞에서 문 판관이 관원들에게 호통을 쳤다.

“대체 네놈들이 이러고도 나라의 녹을 먹는 관원이라 할 수 있겠느냐! 궁을 호위하는 내금위 별감들이 살해당했다. 이는 중차대한 일이다! 헌데 그 별감들을 유인해 간 살인자를 봤다는 백성을 지키지 못하고 또다시 죽게 하다니.”

.....

“네놈들이 그러고도 한성의 치안을 담당하는 관원이라 할 수 있느냐?”

“송구합니다 나으리.”

“피가 아직 식지 않은 걸로 봐 멀리 도망치진 못했을 것이다. 허니 찾거라.”

“예 나으리.”

“또한 이 주변 일대를 탐문해 그 검은 자객 둘을 본 자가 있는지 찾거라. 또한 본 자가 있다 하면 그들의 신변을 보호해 줄 거라 안심시키거라. 그래야 입을 열 것이다.”

“예 나으리.”

용무용이 다가섰다. 아둔하구나. 그리 큰 소리로 떠들면 아는 자들도 입을 다물 터, 알아서들 잘 처리해 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용무용은 문 판관과 눈이 마주쳤으나 그냥 지나쳤다. 문 판관은 용무용을 볼 때마다 같은 복색을 하고 있다 해서 다 같은 판관인 줄 아느냐는 눈빛으로 보았다.

용무용은 문 판관의 눈길이 따라오는 것도, 그 뒤로 김종서 수하들이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것도 알았다. 용무용의 눈에 비웃음이 스쳤다. 그리 천년만년 뒤만 따라온다 해서 심장을 뚫을 수 있겠느냐.

용무용은 걸었다.

용무용은 이향을 죽이고 나면 조금은 아쉬울 것 같았다. 용무용이 예상하는 수를 벗어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향은 이번에도 용무용이 계산한 수에서 벗어났다. 억새밭에 그리 자객들이 숨어있다 알려주었는데도, 창이를 보냈다?

네놈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네놈이 죽는 순간에도 그러한지 봐야겠다.

창이와 진양은 공주로 갔을 터. 이향과 백겸은 도성으로 향하고.

또한 안평이 양주에 있다면 백겸은 다시 양주로 갈 것이다.

백겸과 창이가 따로 있다...

용무용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생각지도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허나 기회란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기회가 찾아왔다 여기는 순간 의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기회는 만드는 것이기에. 성공을 해야 기회가 되는 것이다. 용무용은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용무용은 걸었다.


용무용이 결정을 내리고 대문으로 들어섰다.

집안이 평소보다 조용해서 보니 김종서가 홀로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김종서의 무거운 발소리만이 들렸다.

김종서는 저하께서 양주에 가신 일로 애태우고 있었다. 백겸을 불러 당부하려고 사람을 보냈다가 알게 됐다.

입궐해 저하께서 양주로 가셨다는 걸 알고 뒤늦게 군관들을 보내긴 했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백겸이 함께 있지 않았다면 양주로 달려갔을 것이다.

거기다 내금위 별감들의 시신을 하필이면 한성부에서 찾아냈다니, 무고한 백성들만 잡혀가 고초를 겪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됐다.

무엇보다 양주의 참담한 소식을 전해 듣고 가슴이 저려왔다. 저하의 심정이 어떠실지 알기에 김종서는 죄스러웠다.

김종서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달빛이 훤했다.

그때 용무용이 김종서에게 다가왔다.

“대감.”

김종서가 용무용을 보았다. 용무용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용무용이 쓴 전립의 구슬이 기분 좋은 듯 흔들렸다.


김종서가 누각에 앉아 용모파기를 보고 있었다.


“대감. 긴히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냐?”

“내금위 별감들의 주검에서 이것이 나왔습니다.”

용무용이 옷섶에서 용모파기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백겸이란 자의 용모파기입니다. 대감의 사람인지라, 혹시 몰라 가지고 왔습니다. 본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또한 판부사대감께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김종서는 백겸의 용모파기를 보았다. 용모파기가 장문호의 손에 들어갔다면 일은 일파만파 커질 게 자명했다. 내금위에서 백겸을 찾으러 나갔던 일을 함구하고 있으니 용무용이 이것을 자신에게 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헌데 의도가 무엇인가? 어찌해서 백겸의 용모파기를 숨겨 나에게 가져올 생각을 한 것인가?

김종서는 여전히 용무용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으나 의심스러운 점이 없었다. 그것이 의심스러웠다. 뒤를 밟는 일도 접어야 하는데 그리 할 수가 없었다.

백겸의 잃어버린 기억이 야속했다.

역당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해도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적어도 나비문신이 누군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창이가 떠올랐다.

“아버님...”

그때 인옥이 간난어멈과 함께 누각으로 올라왔다. 간난어멈이 찻상을 들고 있었다.

인옥은 곱게 빗은 머리에 산호로 장식된 비녀를 꽂고. 노란 저고리에 보라색 치마에 노리개까지.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인옥보다 먼저 차의 향이 김종서에게 다가왔다.

간난어멈이 찻상을 김종서 앞에 놓고 물러갔다. 인옥이 마주앉아 차를 우려내며 김종서의 눈치를 살폈다. 인옥은 김종서의 손에 든 용모파기를 봤으나 누군지 알아채지 못했다. 인옥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김종서가 용모파기를 접어두고 인옥을 보았다. 다 돌아온 것은 아니나 전처럼 집을 나가겠다고 하지 않았고 매무새도 단정했다.

문득 인옥을 이리 마음잡게 해준 단진이 떠올랐다. 맑은 눈에 결기가 가득한. 그러고 보니 백겸을 닮았다 했더니, 단진이 이 집에 찾아온 날 백겸을 다시 만났었다.

모두 역병을 앓고 일어났고...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 여겨졌다.

또르륵.

인옥이 차를 찻잔에 따랐다. 맑은 차가 작은 찻잔에 채워졌다.

“드...드셔보십시오. 국화차입니다...”

김종서가 찻잔을 들었다. 코끝으로 국화 향이 올라왔다. 허나 김종서는 차를 마실 수 없어 그대로 내려놓고 인옥을 보았다.

“내게 할 말이 있는 것이냐?”

“...저...아...아버님...”

“괜찮으니 말해 보거라.”

인옥의 큰 눈이 끔뻑끔뻑 했다. 인옥은 겁이 났으나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아...아...아버님...이...입궐하실 때 저도 데려가시면 아니 됩니까?”

김종서의 입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인옥은 단진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김종서가 언제든 놀라오라고 하고부터는 매 시간 단진이 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궁 생활이 녹록치 않으니 시간 많은 자신이 가야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인옥이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버님, 벗들도 저희 집에 한 번 왔으니, 저도 벗의 집에 놀러가 봐야 할 것 같아서...어찌 사는지도 궁금하고...”

...........


별채는 고요했고 방에서 불빛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용무용이 앉아 있고 순포, 윤, 호가 앉아 있고 석은 문 앞에 서 있었다.

용무용의 눈길이 촛불에 머물렀다.

용무용은 김종서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허나 태산만 한 의심은 좁쌀만 한 증거보다 힘이 약한 법이었다. 또한 그 의심에 갇혀 진짜 봐야할 걸 놓치는 법이었다.

순포는 용무용의 갑작스런 부름을 받고 왔다. 진양의 사병들이 뒤를 밟았으나 평소처럼 가뿐히 따돌렸다. 또한 백겸과 이향은 도성으로. 창이와 진양이 남쪽으로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가슴이 들썩였다.

거사를 앞당기는 것인가.

윤은 잔뜩 흥분해 눈의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용무용의 눈길이 순포와 윤과 호와 석을 향했다.

“창이와 진양이 남쪽으로 가고. 이향은 백겸과 도성으로 오고 있다.”

윤이 성급히 입을 열었다.

“형님, 제가 가겠습니다.”

일순 용무용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언제부터 네가 결정을 했더냐?”

“송구합니다 형님.”

“네가 죽을 날은 내가 정할 것이다.”

......

윤은 양주와 공주의 일들을 모두 혼자 처리한 터라 윤의 검은 또다시 피 냄새를 맡고 싶어 들썩이고 있었다. 윤은 창이를 닮고 싶고 창이의 검술을 익혔고 창이를 좋아했으나 늘 뛰어넘고 싶었다. 창이가 배신한 게 싫지만은 않았다. 윤에게 가장 값지게 죽을 기회가 왔으니. 윤은 직접 이향의 배를 갈라 이향의 피를 원한 맺힌 고려인의 땅에 뿌릴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윤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용무용이 말했다.

“네 검은 대의를 위한 것이지, 너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예 형님.”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물었다!”

윤이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예 형님.”

“아둔한 놈. 이길 수 있다 여기는 순간 지는 것이다. 죽일 수 있다 여기는 순간 죽는 것이다.”

.......

“이긴다 확신해야 이기는 것이다. 또한 너는 창이도 백겸도 이길 수 없다.”

........

“인정하는 것도 무인의 자질이다.”

“예 형님!”

“그 자질이 없다면 네놈은 그저 살수다. 명심하거라.”

윤이 고개를 숙였다.

“예 형님.”

용무용이 순포를 보았다.

“너는 이미 그들에게 역당이다. 허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들은 너를 쉬이 죽이지 않을 것이다.”

.....

“또한 너는 반드시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예 형님.”

“그 전에 죽는 걸 허락지 않을 것이다.”

“예 형님.”

“잊지 말거라. 네 피가 뿌려지는 날, 고려의 한 맺힌 우리의 아비가 어미가 누이가 형제들이 웃을 것이다.”

순포의 눈에 결기가 들어찼다.

“예 형님.”

용무용이 탁자 옆에 있는 함의 뚜껑을 열었다. 금괴가 가득 들어있었다.

장문호의 집무실에서 훔쳐온 것이었다. 용무용이 금괴가 가득 든 상자를 순포에게 밀었다. 순포가 용무용을 보았다.

“송파나루에서 색주가를 운영하는 마가를 찾거라.”

“마가라면...”

순포가 놀라 용무용을 보았다.


“형님. 어느 쪽으로 보냅니까?”

용무용이 웃었다.


순포가 색주가로 들어섰다.

송파나루의 색주가 일대는 그야말로 붉은색이었다.

이곳 색주가는 내금위 별감이 죽었든 조정 대신 전부가 죽었든 상관없는 곳이었다. 오늘도 술에 취해 묵직한 아랫도리를 놓일 곳을 찾는 사내들로 북적였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층으로 된 모든 색주가에 붉은 등이 걸려 있었다. 창기들은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붉은 옷을 입고 부채를 부쳐가며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주로 장사치나 양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대부가 사내들은 이곳을 지나가는 것 자체가 수치였기에 찾기 힘들었다.

어떤 색주가는 퇴기들이 모여 있어 찾는 사람도 미천했다. 퇴기들은 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를 올리고 치마를 들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했다. 허나 아무리 보여주려 해도 이미 시들고 짓밟힌 꽃에 눈길을 주는 사내는 없었다.

순포는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가슴이 들썩였다. 생각지도 않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그놈이 죽는 걸 보고 죽을 수 있으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순포 눈의 흉터가 실룩였다.

순포는 규모가 큰 색주가 앞에 멈춰섰다. 순포를 본 창기들은 물 만난 고기 마냥 달려들었다. 허나 순포는 밀쳐냈다.

순포가 위를 올려다보니 때마침 이층에서 마가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놈이 마가더냐?”

“초면에 말이 짧습니다. 말이 짧으면 명도 짧아지는 법인데.”

입가에 칼자국이 있는 마가는 눈에 칼자국이 있는 순포와 마주앉아 있었다. 마가의 주변으로 네 명의 살수들이 서 있었으나 순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마가는 뭔가가 미심쩍었다. 살수를 사는 놈 치고 얼굴을 드러내고 온 놈은 거의 없었다. 헌데 이놈은 눈에는 살기가 가득하고 눈의 흉터하며, 얼굴을 드러내고 나타난 게 마음에 걸렸다.

마가는 퉁퉁거렸다.

“요즘 이 바닥에도 일손이 딸려서, 애들 몸값이 비쌉니다.”

순포는 보고 있었다.

“다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다 보니...”

순포가 들고 온 상자를 탁자에 올려두었다.

마가가 보자기를 풀고 상자를 열려는데 순포의 손이 막았다.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이다.”

마가가 씨익 웃었다.

“재물이 실수가 없어야 사람이 실수가 없는 법이지요.”

마가가 순포의 손을 치우고 함을 여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괴가 가득 들어있었다.

마가는 서둘러 표정관리를 했다. 금괴가 들어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다.

마가는 장사꾼답게 선수 쳤다.

“선수금으로는 이 정도면 됐습니다.”

순포가 말했다.

“일을 잘 처리하면 이것의 두 배를 줄 것이다.”

마가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마가는 서둘러 금괴 상자를 앞으로 잡아당겼다.

“어떤 놈입니까?”

순포가 옷섶에서 용모파기를 꺼냈다.


마가는 이 바닥에서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돈만 주면 무조건 죽였다. 누가 무슨 이유로 죽이는지, 죽는 자가 무슨 죄를 졌는지 이유 따위는 궁금해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돈이 중요했다. 또한 일처리를 완벽하게 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순포도 거슬렸고 너무 많은 돈이 걸려있어 뭔가가 찜찜했으나 그깟 건 중요치 않았다. 남의 아가리를 벌려 꺼낸 돈도 돈이고, 똥 묻은 돈도 돈이고. 사람의 창자에 들어 있어도 돈은 돈이었다. 그것이 마가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리 많은 돈이 걸려있으니 위험부담 정도는 안고 가야 할 터, 또한 쉬운 놈은 아니란 뜻이었다.

마가가 살수들에게 말했다.

“애들을 다 부르거라.”

“예!”

“일이 끝나면 받은 금의 두 배를 챙겨준다니...”

마가가 씨익 웃으며 입가의 상처를 만졌다.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대체 이놈이 어떤 놈이기에 평생 만져보기도 힘든 만큼의 재물을 준다는 것인지.

마가가 용모파기를 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7 cr*****
    작성일
    21.04.05 11:34
    No. 1

    너무 재미있어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6 k1******..
    작성일
    21.04.05 12:02
    No. 2

    전개가 갈수록 흥미진진합니다!! 너무재밌어요!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15 mj******..
    작성일
    21.04.07 17:48
    No. 3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 궁금 궁금 궁금 궁금 궁금..... 작품 속 인물들이 다 살아있어요. 우리 작가님 내공이 하늘을 나는거 같아요.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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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숙원 홍씨 90. 이향, 양주로 향하다-1 +2 21.03.25 1,197 9 19쪽
89 숙원 홍씨 89. 비보 +2 21.03.22 1,230 9 20쪽
88 숙원 홍씨 88. 단진을 향한 이향의 마음 +2 21.03.18 1,283 9 16쪽
87 숙원 홍씨 87. 그들의 이향 +4 21.03.15 1,289 9 18쪽
86 숙원 홍씨 86. 낙엽비 +2 21.03.11 1,304 9 19쪽
85 숙원 홍씨 85. 단진, 부왕과 마주치다 +2 21.03.08 1,332 9 18쪽
84 숙원 홍씨 84. 용무용, 이향을 만나다 +5 21.02.04 1,381 10 24쪽
83 숙원 홍씨 83. 백겸, 김종서를 만나다 +3 21.02.01 1,437 10 19쪽
82 숙원 홍씨 82.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3 +2 21.01.28 1,483 10 23쪽
81 숙원 홍씨 81.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2 +3 21.01.25 1,513 10 18쪽
80 숙원 홍씨 80.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1 +2 21.01.21 1,523 10 21쪽
79 숙원 홍씨 79. 진양, 사저로 백겸과 창이를 부르다 +2 21.01.18 1,553 10 17쪽
78 숙원 홍씨 78. 단진과 공두, 김종서 집에 들다 +3 21.01.07 1,557 9 20쪽
77 숙원 홍씨 77. 목멱산의 첫 모임 +2 21.01.04 1,579 10 14쪽
76 숙원 홍씨 76. 모두 목멱산에 오르다 +2 20.12.31 1,600 10 23쪽
75 숙원 홍씨 75. 용모파기 +2 20.12.28 1,623 10 17쪽
74 숙원 홍씨 74. 진양과 안평, 입궐하다 +3 20.12.24 1,652 10 26쪽
73 숙원 홍씨 73. 다시 돌무덤으로 +2 20.12.21 1,670 10 21쪽
72 숙원 홍씨 72. 이향의 진귀한 서책 +2 20.12.17 1,700 10 25쪽
71 숙원 홍씨 71. 단진, 육갑을 마음에서 내려놓다 +3 20.12.14 1,719 10 14쪽
70 숙원 홍씨 70. 단진의 남자들 +2 20.12.10 1,731 10 25쪽
69 숙원 홍씨 69. 향의 고백 +4 20.12.07 1,749 10 16쪽
68 숙원 홍씨 68. 이향, 단진을 기다리다 +3 20.12.03 1,778 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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