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215,173
추천수 :
1,167
글자수 :
809,561

작성
21.03.22 11:00
조회
1,232
추천
9
글자
20쪽

숙원 홍씨 89. 비보

DUMMY

숙원 홍씨 89. 비보


“저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공양왕 후손에 대해 말해준 그 궁녀가 죽었사옵니다.”

.....

“....또한 어른 아이 할 거 없이...그 마을 사람 모두가 죽었다 하옵니다.”

......

비현각으로 무거운 침묵과 함께 햇살이 내려앉았다.

향이 앉아 있고 양옆으로 진양과 안평이 앉아 있었다. 최 무사가 곁에 서 있고 박 내관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걱정스런 눈길로 향을 보고 있었다.

향은 그들의 만행이 도를 넘어섰다 생각했고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예상했으나, 마을 사람 모두가 죽었다는 비보에 가슴이 저려오고 참담했다. 이리 듣고 있어 참담했고 막을 수 없어 참담했고 지키지 못해 참담했다. 무고한 그들의 죽음이 너무도 참담했다.

......

안평은 향의 근심 가득한 얼굴을 보며 자책하고 또 자책하고 있었다. 저하께서 신하로 받아주셨고, 아바마마 앞에서 저하의 신하가 되기 위해 불이 되라 하시면 몸을 말리고 말려서라도 불이 되겠다고 큰소리 쳤었다. 저하의 신하로 살게 해달라 간청했었다. 헌데 어찌 이리 부족하단 말인가. 어찌 이리 저하께 심려를 끼친단 말인가.

......

진양은 자신의 무능함을 질책하고 또 질책하고 있었다. 저하께 손과 발이 된다 하더니 저하를 위해 모든 걸 다하겠다고 하더니.

아바마마께 부족한 걸 채우고 또 채우겠다, 갖추고 또 갖추겠다, 하루를 살아도 저하의 신하로 살게 해달라 간청했었는데. 차라리 죽겠다 그리 각오했었는데. 죽기를 각오하고 한 거라고는 고작...

백겸과 창이의 입조차 열지 못해 저하께서 직접 나서야 했고.

공양왕 후손의 일은 궁녀가 죽을 거라 예상했으면서도 안평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었다. 그 안일함이 이토록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다 죽다니. 저하의 무고한 백성이 다 죽었다 이리 고할 수밖에 없다니.

비현각에는 여전히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미동도 없어 마치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서책에 내려앉고 향의 얼굴에 내려앉은 햇살만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움직이고 있었다. 향의 눈썹에 내려앉은 햇살이 움직이더니.

무거운 침묵을 향이 깼다.

“모두가 죽었다?”

.....

“모두가?”

향의 참담한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안평은 고개를 떨구었다.

향의 입에서 깊은 근심이 새어나왔다.

안평의 눈가가 붉어졌다. 안평은 잠시 있다 일어나 향의 앞에 엎드렸다.

“저하...소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소신이 그 궁녀를 찾았기에 이런 비통한 일이 생긴 것이옵니다. 소신이 그 궁녀를 찾아 그들에게 길을 알려준 것이옵니다. 소신이 조금만 더 신중했다면 그 궁녀는 물론이고 그 마을 사람들이 그리 죽지는 않았을 것이옵니다. 허니 모든 벌은 소신이 받겠사옵니다. 허니 소신을 벌하여 주시고 저하께선 근심을 내려놓으시옵소서...”

진양이 안평의 옆에서 향에게 엎드렸다.

“아니옵니다 저하...모든 건 소신의 잘못이옵니다...궁녀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수수방관하였고, 또한 소신의 입에서 나간 말이 그들에게 전해진 게 분명하옵니다. 소신이 어리석어 제 감정 하나 제대로 단속 못해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졌사옵니다. 허니 소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향이 잠시 있었다.

“일어들 나거라.”

진양과 안평은 여전히 엎드린 채 있었다.

“일어나라 하질 않느냐!”


진양과 안평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안평의 눈가는 벌겠고 진양은 붉어진 눈길을 떨구고 있었다. 안평의 하얀 얼굴은 더욱 창백했고 진양의 까무잡잡한 얼굴은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듯했다.

향이 진양과 안평을 보았다.

“진양과 안평은 나를 보거라.”

진양과 안평이 보았다.

향이 엄히 말했다.

“그들을 잡을 때까지, 다시는 내게 너희들의 사사로운 감정을 보이지 마라.”

“저하...”

“진양 안평 상호군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거라.”

“예 저하.”

“우리가 상대해야 할 그들은 50년을 준비해온 자들이다.”

....

“그들은 50년을 준비해왔지만 우리는 아무 준비가 없다. 그들은 우리를 잘 알지만 우리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우리를 보고 있으나 우리는 그들의 그림자조차 어디 있는지 모른다.”

.....

“그들은 잃을 것이 없으나 우리는 잃을 것이 많다. 그들은 죽이고자 하고 우리는 지키고자 한다.”

.....

“우리는 지금 50년간 준비해 온 그들을 찾는 것이다. 50년간 준비해 온 것을 찾아 하루에 허물어뜨려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참담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

“허니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도 내 근심을 걱정할 때도 비통해할 시간도 없다. 지금은 백성을 걱정할 때다.”

진양과 안평의 눈이 살아났다.

“공양왕의 후손이 한 명일지 두 명일지 그 이상일지도 알지 못한다.”

진양과 안평이 놀라 서로를 보았다. 공양왕의 아들만 생각하느라 그 아들의 후손까지 있을 거란 생각까지는 못했었다.

“허니 지금 우리가 그들 모두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10년 후 50년 후에도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참담한 일이 자행될 것이다. 허니 반드시 찾아야 한다.”

진양과 안평의 눈에 결기가 서렸다.

“예 저하!”

향이 최 무사를 보았다.

“상호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자책할 시간이 없다. 명심하거라!”

“예 저하!”

향이 안평을 보았다.

“그 마을 사람 모두가 죽었다 했느냐?”

“예 저하. 소신의 사병이 알아본 바로는 양주 사옹골 마을 사람 모두가...죽었다 하옵니다.”

“하필이면 양주라.”

향은 부패한 관리가 떠올랐고 낮게 분노했다.

“모두가 죽었는데. 어찌해서 장계도 올라오지 않은 것인가.”

........

........

향이 옆에 둔 장계를 펼쳐 보여주었다.

“지난번 보여준 공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다. 십수 명이 죽었는데 원한도 아니고 이유도 모르는, 왈패들이 죽은 사건과 흡사하다. 또한 사체검시결과에 따르면 검술이 뛰어난 한 사람의 소행이었다.”

안평이 말했다.

“저하...공주 그 마을은 궁녀가 양주로 오기 전에 살던 곳이옵니다.”

진양이 말했다.

“저하...이 모든 사건이 그들의 소행인 것이 분명하옵니다.”

“분명 누군가는 그 자객을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궁녀를 찾기 위해 누군가에게 물어봤을 수도 있고. 어딘가에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안평이 말했다.

“예 저하. 해서 진양 형님과 소신이 다녀올 것이옵니다.”

진양이 말했다.

“예 저하. 소신들이 다녀오겠사옵니다.”

향이 말했다.

“내가 직접 갈 것이다.”

진양이 놀라 말했다.

“저하...그건 아니 되옵니다. 위험하옵니다. 소신들이 다녀오겠사옵니다.”

향은 단호했다.

“내 직접 봐야 할 일이다. 대체 백성을 돌봐야 할 관리가 무얼 하기에, 백성들이 이리 목숨을 잃었는데 장계조차 올릴 시간이 없는지, 직접 봐야겠다.”

향의 눈빛에 침묵에 노여움이 서려 있었다.

해서 누구도 더는 말리지 못했다.

“백겸과 창이를 찾아 데려오거라.”

진양이 말했다.

“예 저하. 그들은 소신의 집에 있사옵니다.”

박 내관이 향에게 다가왔다.

“저하...판부사대감께서 드셨사온데, 시급을 다투는 중차대한 일이라 하셨다 하옵니다.”

향이 보았다.


하....하....

장문호가 한숨을 깊게 내쉬고 있었다.

“어찌한다...어찌한다...이 불충을 어찌한다...”

비현각을 지키고 있는 금군들과 내관 나인들이 장문호를 힐끗 보았다.

장문호는 마치 부모를 잃은 듯 비통해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허나 머릿속에는 이번 기회에 저하께 점수를 따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괴문서사건도 해결하지 못하고 저하께서 주시하신 왈패들 사건도 해결하지 못해 면이 서질 않았다. 해서 이제껏 저하의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숨어 다니듯 하고 있었다. 헌데 내금위 별감들 시신이 떡하니 눈앞에 나타나줬다.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분명 내금위에서도 형조에서도 찾았을 터인데 운이 좋게도 한성부에서 찾아냈다.

장문호는 반드시 이번 일로 만회할 것이다.

장문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하늘은 자신의 편이었다.

헌데 어찌해서 이리도 소식이 없는지. 안에 진양과 안평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하께 감히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관이 긴한 이야기 중이니 다음에 들라 했으나 장문호는 시각을 다투는 중차대한 일이니 기다리겠노라 했다.

진양과 안평이 한성부를 드나들어 장문호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니더니, 오늘도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다 여기자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때였다. 비현각의 문이 열렸다.

장문호는 잽싸게 눈길을 떨어뜨렸다. 진양과 안평이 나오는 것을 알았으나 깊은 상심에 아무것도 안 보인 척했다.

박 내관이 장문호에게 다가왔다.

“판부사대감, 저하께서 들라 하십니다.”

“알았네...”

진양과 안평은 고개를 떨구고 안으로 들어가는 장문호를 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장문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비현각 밖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저하...이런 비통하고 참담한 일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이런 참담한 비보를 안고 온 소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

‘저하...내금위 별감들의 주검을 발견했사옵니다. 어찌 이런 망극한 일이 있단 말이옵니까!’

진양과 안평이 서로를 보았다.


‘저하...궁의 호위를 맡는 내금위 별감들이 죽다니요! 어찌 이런 망극한 일이 있단 말이옵니까! 저하...’

비현각 뒤뜰에 단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광화문 위로 하얀 구름이 걸려 있었다.

오늘도 여전히 광화문 주변의 경계는 삼엄했다. 궁을 둘러싸고 금군들이 지키고 있었다. 관복을 입은 신료들은 패를 보여주며 안으로 들어갔다.

저만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눈들이 있었다.

한쪽 외진 곳에선 검은 삿갓을 쓰고 검은 복색의 윤이 궁을 살피고 있고, 다른 쪽에선 붉은 꽃의 저고리에 붉은 색 치마를 입은 도화와 누더기 옷을 걸친 삼년이 윤을 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 기방으로 진양의 집에서 연통이 왔다. 진양이 백겸과 창이를 찾는다고 했다. 해서 그들이 진양의 집으로 간 사이 도화는 삼년과 함께 내금위 별감들의 행방을 찾기로 했다.

헌데 관복차림으로 급히 가고 있는 진양과 안평을 보았다. 입궐하는 건데. 백겸과 창이가 단진이 진양을 만나게 될까 걱정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무슨 일로 사람을 불러놓고 입궐하는 걸까 생각하며 가려는데 검은 삿갓을 쓴 사내가 따라붙는 걸 보았다. 삼년은 도화를 말렸으나 도화가 그 뒤를 쫓았다.

도화는 전에도 이곳에서 순포를 본 적이 있었다. 허나 저자는 순포는 아니었다. 순포보다 키가 좀 작았고 체격은 더 좋았다.

도화는 어떻게 해서든 사내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가까이 갈 수 없었고, 지나는 사내들의 시선이 모두 도화에게 머물렀다 가고 있었다. 도화는 붉은 꽃 저고리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문득 습관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데 돈을 써본 적이 없기에 이곳에 와서 돈은 있으나 옷을 살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큰 붉은 꽃, 작은 붉은 꽃, 꽃들이 수놓아진 옷들만 입고 있었다.

삼년이 고개를 빼고 윤을 살피다 말했다.

“어젯밤에 본 두 놈 중에, 형님이란 그놈 같기도 한데.”

“얼굴 못 봤다며?”

삼년이 거만하게 말했다.

“내가 올빼미가 아니니 이목구비는 못 봤지. 하지만 나 이재열이야. 우리 집안이 4대째 의사 집안이야. 나도 미래의 써전이고. 디테일에 강하다는 거지!”

도화가 삼년을 보았다.

“그렇게 디테일에 강해서, 내가 머슴 옷으로 갈아입고 수레를 끌고, 애들 뺨까지 때렸다고 했냐?”

삼년의 기세등등한 눈빛이 금세 기가 꺾였다.

“그거야...문종이 나보다 더 디테일에 강하니까, 진양도 봤잖아. 눈썹만으로도 나를 찾고. 우리 전주 이씨 직계 조상님들이 그 정도야! 나도 널 불고 싶진 않았지만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서여름하고 독고준 목숨이 위태로웠을 거야. 어쩔 수 없었어. 네가 그러길 바랬을 거라 판단했어.”

“야! 조용히 해!”

“아니 그런데...서여름하고 독고준 그렇게 안 봤는데...입이 되게 싸다.”

“네 입만 할까!”

도화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놈하고 붙어 있으려니 짜증이 났다. 가만 생각하니 두 명의 자객을 본 사람은, 어찌됐든 삼년뿐이었다. 백겸과 창이가 나왔을 땐 한 명뿐이었으니.

도화가 삼년을 보았다.

“.....진짜 비슷해?”

“그런 것 같아. 걸음걸이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어. 내가 기억력도 좋고 디테일에 강하니까!”

도화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아 눈길을 돌렸다.

그때였다. 사내가 몸을 숨겼다.

도화가 궁 쪽을 보니 진양과 안평이 나오고 있었다.

진양과 안평은 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서두르고 있었다.

진양과 안평이 걸어오는 길목에 있던 도화와 삼년은 몸을 숨겼다.

진양이 말했다.

“한성부에 들렸다 가야겠다. 시신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알아보고 사병들에게 그 일대를 둘러보라 해야겠다.”

“예 형님. 그리하는 게 좋겠소.”

“헌데 내금위에서도, 내 사병과 네 사병을 모두 풀었는데도 찾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한성부에서 찾았는지 모르겠구나.”

“그러게 말이오 형님. 어찌됐든, 못 찾은 것보단 낫질 않소.”

“허나, 우리가 찾았더라면 은밀히 수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한성부에서 찾았으니 조정이 시끄럽겠구나.”

도화가 나무 뒤에서 나와 멀어져가는 진양과 안평을 보았다.

“한성부에서 찾았다고?”

삼년이 도화를 잡았다.

“없어졌어...”


진양과 안평이 한성부 앞에 다다랐다.

평소와 다르게 한성부 앞은 수많은 관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주변 나무 아래에서 삼삼오오 모여 떠들어대는 관원들이 있었을 텐데 전혀 없었고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양이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 들어가려는데 관원들이 막아섰다.

“진양대군이다.”

관원들은 창을 바짝 치켜세우고 있을 뿐 비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못 들었느냐? 진양대군이라 하지 않느냐! 어서 비키거라!”

“송구하오나 대군마마. 오늘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진양의 눈에 날이 섰다.

“네 이놈! 지금 뭐라 했느냐?”

관원이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으나 창을 거두진 않았다.

“비키라 하질 않느냐!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아니 됩니다 대군마마. 판부사대감께서 누구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안평이 관아 안을 보았다. 관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했고 뭔지 모르게 어수선했다.

진양의 날선 눈이 관원을 찌르는 듯했다.

“비키라 하질 않느냐! 네놈들이 죽어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감히 대군의 앞길을 막고도 살기를 바라지는 않을 터.”

관원이 겁에 질려 말했다.

“대군마마....판부사께서 대군들이라 하더라도 들이면 소인들의 목을 칠 거라 했습니다.”

진양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제야 장문호가 자신들의 출입을 막는다는 것을 알았다. 왜...

그때였다.

“무슨 소란이냐?”

관원들이 소리가 들린 곳을 보고는 더욱 긴장해 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진양이 돌아보았다. 장문호가 가마 위에 앉아 보고 있었다.


한성부 앞을 지키던 관원들이 일제히 장문호에게 고개를 숙였고.

장문호는 여전히 가마에 앉아 있고 그 곁에 양 판관이 서 있었다.

진양과 안평도 그대로 있었다. 잠시 기싸움하듯 서로를 보았다.

장문호는 저하께서 수고하였다고 하셨으나 일각도 내주지 않으시고 나가보라고 했다. 저 두 대군은 반 시진도 넘게 있었던 것 같은데. 자신에게 내어줄 시간을 모두 저들에게 빼앗긴 것 같아 끓어올랐다. 어찌 잡은 기회인데.

진양이 치욕을 삼키고 먼저 한 걸음 내딛자 안평도 함께 내려와 장문호 앞에 섰다.

장문호는 그제야 손을 올려 가마를 내리게 했다.

진양과 안평이 예를 갖췄다.

“판부사대감.”

장문호는 천천히 내렸다.

“대군마마. 갑작스레 대군들께서 계시니 내 놀라 가마에서 내리는 것도 잊었습니다.”

.....

“대군들께서 한성부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진양이 말했다.

“내금위 별감들의 시신을 찾았다 들었습니다. 해서 살피러 왔습니다.”

“어찌해서 대군들께서 내금위 별감의 시신을 살핀단 말입니까? 또한 대군들께서 어찌 내금위 별감들이 죽은 걸 알았단 말입니까?”

장문호는 궁에서 진양과 안평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있었다.

해서 진양도 못 본 척했다.

“어찌 안게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어떤 놈들이 죽였는지를 찾는 게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는 별감들 시신을 살핀 연후에 저하께 아뢸 생각입니다. 허니 길을 열어주시지요!”

장문호는 마치 생전 처음 듣는 황당한 소리라는 듯 말했다.

“대군께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대군께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고 하시는 겁니까?”

......

“대군께서 내금위 별감들이 죽은 걸 알았다는 건, 그와 관련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진양의 눈에 날이 섰고 안평이 긴장해 진양을 보았다.

“어떤 놈들이 죽였는지는 한성부가 알아서 찾을 것이고. 저하께 보고하는 일 역시 조정의 녹을 먹는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어찌해서 대군들이 나선단 말입니까!”

“판부사대감!”

장문호가 시치미 떼고 야단치듯 말했다.

“보아하니 저하를 뵈러 입궐하시는 것 같은데, 대군들께선 저하를 뵈러 궁에 들어가시면서, 주검을 보고 갈 생각을 하셨습니까? 저하께 어찌 그런 불경을 저지르려 하십니까?”

진양이 사납게 대꾸했다.

“판부사대감, 지금 말씀 다 하셨습니까? 저하께서 불경이라 여기시겠습니까? 아니지요! 저하의 백성을 살피고 왔다 여기실 것입니다!”

장문호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쳤다.

“대군마마. 저하의 백성을 어찌 대군께서 살피려 하십니까?”

진양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벌게졌다.

......

“저하의 백성입니다. 조정의 녹을 먹는 신료가 몇인 줄은 아십니까? 어서 돌아가세요! 이러다 자칫 오해를 살까 염려됩니다!”

진양이 진노했다.

“오해라니! 오해라니요!”

안평이 더는 안되겠다 싶어 막아섰다.

“형님! 그만하시오...형님...저하께서 하신 말씀을 벌써 잊으셨소? 참으시오.”

진양의 몸이 분을 참느라 파르르 떨렸다.

안평이 장문호에게 말했다.

“판부사대감, 걱정이 앞서 그런 것이니 노여워 마십시오. 조금 전 우연히 비보를 들은 터라 확인하고 저하께 아뢰려 했습니다.”

장문호가 아랫사람 대하듯 말했다.

“잘 들으세요 대군. 왕실의 호위를 담당하는 내금위 별감의 죽음입니다. 이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허니 입을 다무세요.”

......

“오늘 일은 잊겠습니다. 허나, 저하를 생각하신다면 대군들께서 자중하셔야지요.”

장문호가 계단을 올라가자 관원들이 활짝 길을 열어주었다. 안에서 용무용이 장문호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원들이 다시 창으로 문을 막았다.

진양의 날선 눈이 한성부를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숙원 홍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한 주 휴재합니다 21.06.16 66 0 -
공지 숙원 홍씨 월, 목 연재합니다 +2 20.06.21 336 0 -
95 숙원 홍씨 95. 이향, 한성부에 가다 +3 21.04.12 1,101 9 18쪽
94 숙원 홍씨 94. 향을 기다리다 +2 21.04.08 1,118 9 13쪽
93 숙원 홍씨 93. 용무용과 그들 +3 21.04.05 1,133 9 21쪽
92 숙원 홍씨 92. 이향, 양주로 향하다-3 +2 21.04.01 1,148 9 18쪽
91 숙원 홍씨 91. 이향, 양주로 향하다-2 +2 21.03.29 1,172 9 16쪽
90 숙원 홍씨 90. 이향, 양주로 향하다-1 +2 21.03.25 1,200 9 19쪽
» 숙원 홍씨 89. 비보 +2 21.03.22 1,233 9 20쪽
88 숙원 홍씨 88. 단진을 향한 이향의 마음 +2 21.03.18 1,285 9 16쪽
87 숙원 홍씨 87. 그들의 이향 +4 21.03.15 1,291 9 18쪽
86 숙원 홍씨 86. 낙엽비 +2 21.03.11 1,307 9 19쪽
85 숙원 홍씨 85. 단진, 부왕과 마주치다 +2 21.03.08 1,334 9 18쪽
84 숙원 홍씨 84. 용무용, 이향을 만나다 +5 21.02.04 1,384 10 24쪽
83 숙원 홍씨 83. 백겸, 김종서를 만나다 +3 21.02.01 1,439 10 19쪽
82 숙원 홍씨 82.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3 +2 21.01.28 1,484 10 23쪽
81 숙원 홍씨 81.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2 +3 21.01.25 1,515 10 18쪽
80 숙원 홍씨 80.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1 +2 21.01.21 1,527 10 21쪽
79 숙원 홍씨 79. 진양, 사저로 백겸과 창이를 부르다 +2 21.01.18 1,558 10 17쪽
78 숙원 홍씨 78. 단진과 공두, 김종서 집에 들다 +3 21.01.07 1,561 9 20쪽
77 숙원 홍씨 77. 목멱산의 첫 모임 +2 21.01.04 1,582 10 14쪽
76 숙원 홍씨 76. 모두 목멱산에 오르다 +2 20.12.31 1,603 10 23쪽
75 숙원 홍씨 75. 용모파기 +2 20.12.28 1,625 10 17쪽
74 숙원 홍씨 74. 진양과 안평, 입궐하다 +3 20.12.24 1,655 10 26쪽
73 숙원 홍씨 73. 다시 돌무덤으로 +2 20.12.21 1,673 10 21쪽
72 숙원 홍씨 72. 이향의 진귀한 서책 +2 20.12.17 1,703 10 25쪽
71 숙원 홍씨 71. 단진, 육갑을 마음에서 내려놓다 +3 20.12.14 1,722 10 14쪽
70 숙원 홍씨 70. 단진의 남자들 +2 20.12.10 1,733 10 25쪽
69 숙원 홍씨 69. 향의 고백 +4 20.12.07 1,751 10 16쪽
68 숙원 홍씨 68. 이향, 단진을 기다리다 +3 20.12.03 1,781 9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