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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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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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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9,561

작성
21.01.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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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숙원 홍씨 78. 단진과 공두, 김종서 집에 들다

DUMMY

숙원 홍씨 78. 단진과 공두, 김종서 집에 들다


김종서와 임 부장이 밤길을 걸어왔다.

“김 판관은 저자에 나와 상점을 돌아다니며 살폈다고 합니다. 특히 가죽 시세를 알아봤다고 합니다.”

김종서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함길도에서 잡은 동물의 가죽을 비싸게 팔 궁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김 판관은 탐욕스러운 자이긴 하나 대감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위험한 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판부사대감과 호판대감께 붙어 출세할 궁리만 하는 듯 보입니다. 어찌할까요? 계속 감시할까요 대감?”

.......

“계속 살피거라.”

“예 대감.”

김종서는 거슬렸다. 용무용이 대놓고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진즉 뒤를 밟는 일을 그만두게 했을 것이다.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가.


‘거흘합족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습니다! 확실한 증좌를 찾아오겠습니다!’

‘거흘합족을 조심 하십시오 영감!’


김종서를 보던 임 부장이 물었다.

“대감, 백겸의 말 때문에 그러십니까?”

“백겸이 괜한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걸 찾아야 한다.”

임 부장이 김종서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대감...실은...”

김종서가 임 부장을 보았다.

“군관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백겸이...”

김종서가 멈춰서 임 부장을 보았다.

“백겸을 본 자가 여럿입니다 대감.”

김종서가 놀라 되물었다.

“백겸이 살아 있느냐?”

“그것이...백겸인데 백겸이 아니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분명 백겸을 본 자가 있어 처음에는 잘못 본 거라 여겼습니다. 헌데 도성에서 백겸을 봤다는 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헌데, 헌데 어찌해서 지금에야 말하는 것이냐?”

“한 군관의 말로는 눈이 마주쳤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합니다. 해서 백겸은 백겸인데 백겸이 아니라고 하니, 차마 대감께 말씀드릴 수 없었습니다.”

김종서는 말없이 걸었다.


횃불들이 저만치 사라지자 골목 어귀에서 공두가 쏘옥 얼굴을 내밀었다. 스윽 나와서는 첩보작전이라도 하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팔을 들고 손을 까닥거렸다.

단진과 인옥이 살그머니 나왔다.

단진과 인옥을 본 공두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단진과 인옥은 후다닥 다시 골목으로 들어갔다.

기와집이 즐비한 북촌 일대의 밤은 고요했다. 오가는 사람도 드물었고 담장이 높아 안에서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대문마다 등불이 밝혀져 있고, 어떤 집엔 담장을 타고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곳에 등불이 비추고 있었다.

그 길에 서서 공두가 팔을 쫙 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단진은 장난치고 있는 공두를 보고는 도리질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팔을 꼭 붙잡고 있는 인옥을 보았다.

운종가에서 갑자기 도화가 기방에서 사람이 나왔다면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헤어졌다.

인옥을 데려다주기 위해 북촌으로 들어섰지만 인옥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진에게 십 분만 더. 십 분만 더. 하며 계속 길가에 서 있었다.

공두가 인옥에게 들어가라고 지랄지랄 했지만 인옥이 공두가 제일 좋아하는 걸 주겠다고 했다. 인옥이 최고급 비단으로 옷 두 벌을 해준다고 하자 공두가 말했다.


‘친구끼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리 헤어질 수는 없지. 더 많이 놀도록 하거라. 또한 닭 대여 값으로 십 분에 열 냥을 줘야 할 것이다. 허면 내가 뒤를 봐줄 것이다. 많이 가진 자는 많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해서 인옥을 찾으러 나온 승규와 가노들을 보고는 빨리 숨으라고 난리를 쳤다.

단진이 말했다.

“소이야...이제 집에 가야 돼...”

“봄아...나도 너 따라서 궁에 들어가면 안 될까?”

인옥의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단진은 입을 열었다 다물고 인옥을 보았다. 순한 듯 보이나 고집스러웠고 하나밖에 모르는 외골수였다. 인옥은 마음을 나눌 줄 몰라 친구도 단진이 전부였다.

모두가 조선에 와서 좋은 자리든 궂은 자리든 적응해 가는데 인옥이만큼은 겉돌고 있었다. 단진은 인옥에게 무심했던 자신을 책망했다. 인옥을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정말 할 수만 있다면 함께 궁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었다.

“봄아...제발 나도 데려가...제발...날 버리지 마...혼자 있기 싫어...”

단진이 인옥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또 올게...”

인옥이 도리질했다.

“봄아...제발 나도 데려가...나도 나인이 되면 안 될까?”

언제 왔는지 공두가 얄밉게 말했다.

“어허, 무뢰하기 이를 데 없구나. 애까지 낳은 여자가 어찌 감히 임금의 여인인 궁녀가 된다는 것이냐! 어서 들어가서 네가 낳은 애나 돌보거라!”

인옥이 민망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자 단진이 공두를 쫙 째렸다.

공두가 짜증스레 말했다.

“이제 들어가라고! 우리도 가야지!”


공두가 지랄지랄 등을 떠밀고 단진이 달래고 달래 겨우 집 앞에 도착했다.

허나 인옥은 더욱 단진에게 매달렸다. 보다 못한 공두가 인옥을 잡아떼어냈다. 인옥은 후다닥 도망가듯 나무 뒤로 숨었다. 단진이 공두에게 가만있으라고 하고는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

“소이야...들어가...또 올 거야...”

인옥이 단진을 잡고 애원했다.

“봄아...나 무수리라도 하면 안 될까...제발...”

공두가 화를 냈다.

“복에 겨워 지랄이지 복에 겨워 지랄이야. 저 좋은 집 두고 궁에 들어가? 야! 궁 생활이 얼마나 힘든 줄 아냐? 우리 집 화장실보다 좁은 방에서 자야하고.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고.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고.”

“그래도...봄이가 있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옥이지! 저 닭 때문에 밤새 두들겨 맞고...”

인옥이 서둘러 공두를 잡았다.

“그럼 원빈아....네가 우리 집에서 살아! 내가 대신 들어갈게!”

공두는 속이 터지는 듯 가슴을 쳐댔다.

“아! 진짜! 생긴 건 다람쥐 같은 게 참새 대가리도 아니고. 야! 빨리 안 들어가!”

그때 갑자기 대문이 열리고 안에서 승규와 가노 둘이 나왔다. 두 명의 가노가 제등을 들고 서 있고 승규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두는 저도 모르게 나무 뒤로 숨었다. 인옥은 몸을 잔뜩 움츠리고 단진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공두와 인옥, 단진은 그들에게 들키지 않게 숨어서 지켜보았다.

그러다 공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싶어 인옥을 밀어버리려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무얼 하는 것이냐?”

인옥이 돌아보고는 얼음처럼 굳었다.

김종서가 보고 있었다.


“저는 저하를 최측근에서 뫼시고 있는 동궁전 내관 장공두입니다. 제 옆에 있는 사람은 동궁전 나인 홍단진입니다.”

사군자가 그려진 병풍 앞에 김종서가 앉아 있고. 그 앞에 단진과 공두, 인옥이 앉아 있었다. 인옥의 옆으로는 승규가 있었다. 겁에 질린 인옥은 여전히 단진의 팔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공두는 어찌해서 인옥과 함께 있었는지를 설명했고 김종서는 듣고 있었다.

공두가 어찌나 말을 이상하게 하는지 단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진이 하지 말라고 눈짓했지만 소용없었다.

공두는 역병을 앓고 일어난 인연으로 인옥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시작은 좋았으나 갑자기 뻥을 치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인옥 때문에 궁에 늦게 들어가 야단을 맞고. 오늘도 인옥 때문에 저하의 중차대한 심부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승규가 고개 숙였다.

“아버님 송구합니다. 소자의 잘못입니다.”

승규도 김종서도 인옥이 동궁전 궁인들과 함께 있었다고 했으나 믿지 않았었다. 허나 그게 사실임이 밝혀졌다. 이는 인옥의 정신이 온전하다는 뜻이나 반기기만 할 수도 없었다. 김종서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하필이면 저하를 모시는 궁인들에게 이런 폐를 끼치다니. 사사로이 집안 단속도 하지 못해 저하께 누가 됐다 여기니 김종서는 마음이 불편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단진은 김종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문갑 위에 가지런히 놓인 짚신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 김종서가 입을 열었다.

“모든 게 다 내 부덕이네.”

단진이 김종서를 보았다.

“내가 사과하겠네. 우리 아이로 인해 피해가 갔다면 내가 책임지겠네.”

공두가 공손히 말했다.

“아닙니다 대감. 저는 그저 대감께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제 눈도 마님을 돕다 이리 멍든 것이지만 괜찮습니다. 저하께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불경이긴 하나, 어찌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보다 못한 단진이 공두를 툭 쳤다.

김종서가 말했다.

“그 또한 내가 책임을 지겠네. 다시는 우리 아이가 피해를 주는 일은 없게 하겠네.”

인옥은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저...절...보내실 건가요?”

김종서가 승규에게 조용히 일렀다.

“아범은 내일 차비를 하거라.”

인옥이 겁에 질려 단진을 잡고 다급히 말했다.

“봄아...날 버리고 가지 마...너 가면...날 멀리 보낼 거야...한번만 더 몰래 나가면 나를 멀리 보낸다고 했어...어디 먼 절에 가서 쉬게 한다고 했어...어떡해 봄아...”

단진은 그런 중요한 이야길 왜 지금에서야 하느냐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인옥이 김종서에게 울며 애원했다.

“선생님...다시는 안 나갈게요...다시는 안 나갈게요...”

승규가 난감해했다.

“부인...그만 하시오...”

“...제발 보내지 마세요...선생님 제발요...”

승규가 인옥을 데리고 나가려 하자 인옥이 필사적으로 단진을 붙잡고 늘어졌다. 김종서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진은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서둘러 말했다.

“대감마님! 모든 건 저의 잘못입니다. 마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

“궁 밖에 나와 이곳으로 온 것도 저이고. 마님을 담장 밖으로 끌어올린 것도 저입니다. 별채에서 기다리라고 한 것도 저이고. 마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한 것도 저입니다. 허니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김종서는 뜻밖의 말에 보고만 있었다.

“대감마님. 허니 마님을 보내지 마십시오! 보내시면 아니 됩니다!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단진이 인옥을 보고 다시 김종서를 보았다.

“허나 그 전에 대감마님께 두 가지 청이 있습니다!”

김종서가 잠시 보다가 말했다.

“말해보게.”

“대감마님. 저는 궁에 묶여 있는 몸이라 언제 나올지 알 수는 없으나, 궁 밖에 나올 때마다 마님께 인사를 드리게 허락해 주십시오.”

인옥이 단진을 보았다.

“허면 마님께서 잃어버린 기억을 다 찾을 수는 없으나, 예전처럼 살아가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김종서가 단진을 보았다.

“나머지 한 가지 청은...”

....

“마님을 믿어주십시오.”

.....

“저도 장 내관도 병을 앓고 일어나 기억을 잃었습니다. 모두가 미쳤다고 할 때 모두가 내쳐야한다고 할 때, 저하께서 믿어주셨습니다.”

....

“저하께서 저희를 믿어주셨습니다.”

단진의 눈에서 빛이 났다.

“해서 저희는 이렇게 자리를 잡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허니 마님을 믿어주십시오.”

....

“믿음만큼 강한 힘도 없고, 믿음만큼 특효약도 없습니다. 허니 믿어주십시오.”

김종서가 놀라운 듯 단진을 보았다. 맑고 고운 눈에선 기개가 넘쳐흘렀고 차분해 보이나 당차고 총명했고 깨끗했다.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백겸이 떠올랐다.

단진이 인옥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

“마님!”

물기 있는 인옥의 눈이 단진을 향했다.

“아버님께 약조를 하십시오. 다시는 말도 없이 밖에 나가지 않겠다 약조하십시오.”

“...서...선생님...”

“마님! 아버님이십니다!”

단진이 눈짓했다. 인옥이 김종서를 힐끗 보고는 단진을 보았다. 단진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인옥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아...아...아버님...잘못 했습니다...”

김종서와 승규가 놀라운 듯 인옥을 보았다. 김종서의 눈길이 단진을 향했다.


관복차림의 용무용과 석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평소와 다르게 어수선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당에 서 있는 가노들이 안채의 불빛을 보며 서성이고 있었다. 간난아범은 마루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고. 간난어멈과 몸종 분년이는 마님을 잘 감시하지 못했다고 불호령이 떨어질까 싶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승규가 나왔다.

간난아범이 쪼르륵 가서 승규를 올려다보았다.

“손님들이 아직 식사 전이니 상을 차리거라.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 나으리.”

승규는 잠시 있었다. 인옥의 말을 믿어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승규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간난아범이 서둘러 간난어멈에게 다가갔다.

“동궁전 항아님과 동궁전 내관 나으리 식사 준비를 하시라네.”

간난어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면...마님께서 동궁전 항아님을 만나셨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거네...”

“수다 떨 시간 없어. 어서 서둘러!”

용무용이 간난아범과 눈이 마주쳤다. 묻지도 않았는데 늘 그랬듯이 간난아범이 떠들었다.

“오늘도 마님이 없어져서 난리가 났는데, 동궁전 항아님과 내관 나으리와 함께 오셨더라구요. 지난번에도 마님께서 동궁전 항아님과 만났다 했을 때도, 아무도 안 믿었는데...사실이었네요...그 별채에서 그 항아님을 만나기로 한 거라네요...”

용무용의 시선이 댓돌 위의 신발을 향했다.


인옥의 처소에 단진과 인옥이 다과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저녁밥을 실컷 먹은 공두는 배를 두드리며 방 안의 물건을 만지고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단진도 인옥의 처소를 둘러보았다.

꽃나무와 과일나무가 그려진 병풍에, 자개 문갑, 화병엔 꽃이 꽂혀 있고, 나비문양의 촛대, 수틀과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가득한 방은, 누가 봐도 인옥의 방이었다.

단진은 인옥이 사는 곳을 보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더구나 남편인 승규는 인자한 사내였고 시아버지인 김종서는 곧은 분이었다.

김종서는 인옥을 믿어주기로 했고 단진에게 언제든 들르라 허락했다.

김종서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강인했다. 향의 충신인 김종서를 보던 단진의 눈은 따뜻했다. 단진은 안채에서 나오며 훗날 피가 뿌려지는 그곳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지만 잠깐이었다. 그렇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공두가 갑자기 인옥 앞에 앉아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는 누가 뭐라 해도 정신이 온전하다 여기게 해야 한다. 너는 시아버님의 총애를 얻어 반드시! 반드시! 곳간 열쇠를 손에 넣거라.”

단진이 도리질했다.

“시아버님이 어렵다면 네 남편을 먼저 공략하거라. 시아버님은 좀 무서워 보이나 남편은 순해 보이더구나. 베갯머리 송사를 들어봤을 것이다!!”

인옥이 움찔하자 단진이 공두를 때렸다.

인옥이 얼굴을 붉혔다.

“제발 그러지 마...”

“이래서야 이래서야...아들까지 낳고 살면서...”

인옥이 질색했다.

“아들이니 남편이니...제발 그런 말 하지 마...너무 끔찍해....나는 남자 손도 한 번 안 잡아봤어...”

공두가 인옥의 손을 덥석 잡았다.

“됐지? 남자 손 잡아봤으니. 눈 딱 감고 살 거라! 밤이 길어 혼자 잘 수 없다고 꼭 말하고.”

단진이 공두를 때리고 또 때렸다.

“나가! 나가!”

“앞으로 이곳이 내 집이다 생각하면 되겠구나...곳간 열쇠가 들어오면 관리는 내가 할 것이다...”

공두가 상 위의 곶감을 양손에 쥐고는 한 바퀴 빙 돌고는 밖으로 나갔다.

단진이 벌게진 얼굴의 인옥을 보았다. 꽃문양의 비녀를 꽂은 쪽진 머리를 보았다.


“봄아......나도 너와 함께 가고 싶어...”

“소이야...네가 여기 있으니까 난 참 든든해.”

....

“너 아까도 이재열 혼내줬잖아. 정2품 형조판서의 며느리가 노비 삼년을 혼내줬잖아. 내 친구 소이 멋지더라!”

......

“네가 힘 있는 사람이니까,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도와줄 수 있잖아!”

.......

“그리고 조선에 와서 갈 곳도 없는데. 네가 여기 있으니까 갈 곳이 있어서 좋아...맛있는 것도 먹고...원빈이도 그래서 좋아하는 거야. 원빈이도 궁에서 많이 힘들거든.”

“봄아...”

“잘 있을 수 있지? 내가 언제든 올 수 있게 기다려줄 거지?”

“...응. 봄아...”

그때였다.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소자 준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인옥이 질색했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들어오지 마!”

단진은 인옥에게 하지 말라고 말하려다 서둘러 일어섰다.

단진이 방문을 열어보니 어린 도령이 풀이 죽어 서 있었다.

아까 마당에서 본 그 도령이었다. 그때도 인옥에게 다가서지도 못하고 그저 보고만 있었다.

“도련님. 들어오십시오.”

준희가 인옥의 눈치를 살폈다. 인옥이 눈길조차 주지 않자 준희가 고개를 숙였다.

“어머님. 편히 주무십시오...소자 물러가겠습니다.”

단진이 밖으로 나와 방문을 닫고 준희 앞에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도련님. 저는 동궁전 나인 홍단진이라 합니다.”

“얘기 들었소. 홍 나인에게 신세를 졌소.”

....

“우리 어머님을 모셔와 줘서 고맙소.”

단진이 웃었다. 누가 봐도 인옥의 아들이었다. 눈매며 입매까지 인옥을 꼭 빼닮았다. 인옥의 아들을 보고 있으니 뭉클하고 마음이 이상했다.

단진이 잠시 보다가 말했다.

“도련님. 송구하오나 손 한번 잡아 봐도 되겠습니까?”

준희는 의아해하다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다.

단진이 준희의 작은 손을 잡았다.

“도련님. 마님께서 곧 도련님을 알아보실 것입니다. 허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홍 나인이 보기에 그리되겠소?”

“예 도련님.”

“그리 말해주니 고맙소. 들어가 보시오. 어머님께서 홍 나인을 좋아하시는 듯하니 자주 와주시오.”

“예 도련님.”

단진은 어른스러운 준희를 보았다. 어른스러웠으나 아직 어미의 품이 그리운 아이였다. 준희는 신발을 신고는 작은 입에서 긴 한숨을 내쉬고는 걸어갔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다시 돌아보고는 걸어갔다.

단진이 갔나 싶어 인옥이 쪼르륵 나왔다.

단진은 인옥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와 앉아 인옥의 손을 잡고 바라보았다.

이제 궁으로 들어가야 했다. 곧 나온다고는 했으나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돌아갈 때까지 혼자 있는 인옥이 마음 붙일 곳을 만들어줘야 했다. 인옥이 이곳에서 외롭지 않고, 저 아이도 외롭지 않을 길은 하나였다.

“소이야...내 부탁 하나 더 들어줄래?”

“뭔데?”

“저 아이는 지금 엄마를 잃었어...네가 기억을 못하니까...그런데 우리가 돌아가고 나면. 저 아이는 진짜 엄마를 잃게 돼...”

....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

“소이야...돌아갈 때까지 네가 저 아이의 엄마가 돼줘야 해.”

인옥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난 못해...”

“나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엄마 기억도 없는 나에게, 너는 엄마처럼 대해줬잖아...”

인옥이 단진을 보았다.

“나라고 생각하고 손잡아 주고. 나라고 생각하고 안아주고. 나라고 생각하고 눈 마주쳐주고. 나라고 생각하고 웃어줘...”

.....

“저 아이가 웃으면, 나도 웃고 있는 거야...”

.....

“그렇게 해줄래?”

인옥이 끄덕이자 단진이 활짝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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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6 k1******..
    작성일
    21.01.07 11:04
    No. 1

    잘보고갑니당~~!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16 vo***
    작성일
    21.01.07 14:03
    No. 2

    단진 너무 멋있네요. 든든하기도 하고 똑부러진 단진, 너무 매력적입니다. 날이 추운데 잼나게 봤습니다. 작가님, 건강 조심하시고 계속 건필해주세요~~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7 cr*****
    작성일
    21.01.07 17:49
    No. 3

    오늘은 단진이 진짜 멋지네요~ 반짝반짝합니다~~ 항상 재밌는 작품 감사해요~ 다음화도 기대하겠습니다!!

    찬성: 5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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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숙원 홍씨 82.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3 +2 21.01.28 1,484 10 23쪽
81 숙원 홍씨 81.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2 +3 21.01.25 1,515 10 18쪽
80 숙원 홍씨 80. 이향, 백겸과 창이를 만나다-1 +2 21.01.21 1,527 10 21쪽
79 숙원 홍씨 79. 진양, 사저로 백겸과 창이를 부르다 +2 21.01.18 1,558 10 17쪽
» 숙원 홍씨 78. 단진과 공두, 김종서 집에 들다 +3 21.01.07 1,561 9 20쪽
77 숙원 홍씨 77. 목멱산의 첫 모임 +2 21.01.04 1,582 10 14쪽
76 숙원 홍씨 76. 모두 목멱산에 오르다 +2 20.12.31 1,603 10 23쪽
75 숙원 홍씨 75. 용모파기 +2 20.12.28 1,625 10 17쪽
74 숙원 홍씨 74. 진양과 안평, 입궐하다 +3 20.12.24 1,655 10 26쪽
73 숙원 홍씨 73. 다시 돌무덤으로 +2 20.12.21 1,673 10 21쪽
72 숙원 홍씨 72. 이향의 진귀한 서책 +2 20.12.17 1,703 10 25쪽
71 숙원 홍씨 71. 단진, 육갑을 마음에서 내려놓다 +3 20.12.14 1,722 10 14쪽
70 숙원 홍씨 70. 단진의 남자들 +2 20.12.10 1,733 10 25쪽
69 숙원 홍씨 69. 향의 고백 +4 20.12.07 1,751 10 16쪽
68 숙원 홍씨 68. 이향, 단진을 기다리다 +3 20.12.03 1,781 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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