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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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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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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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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04.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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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숙원 홍씨 92. 이향, 양주로 향하다-3

DUMMY

숙원 홍씨 92. 이향, 양주로 향하다-3


“세자저하시다.”

화톳불이 아까완 다르게 활활 타오르고 있고 마당 한 가운데 향이 서 있고. 그 곁으로 진양과 안평, 백겸과 창이, 별감들이 서 있고. 관원들은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했음에도 가지 않고 관원들 옆에서 함께 엎드려 있었다.

향이 상소를 썼다던 체격이 작은 관원을 보았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관원은 귀하신 분께서 미천한 놈의 이름을 물어보자 놀란 듯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김순호라 하옵니다...”

“일어서거라.”

관원은 일어섰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사내는 순하고 올곧아 보였다.

“고개를 들거라.”

관원이 향을 보았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평소 세자저하의 학문에 대해 익히 들은 터라 먼발치에서만이라도 저하를 한번 뵈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토록 고귀한 분과 눈을 마주치고 있자 가슴이 거칠게 요동쳤다.

향이 관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심지가 굳고 깊은 게 한눈에 보였다.

향은 문득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양주 관아의 현감이 백성들을 착취한다는 상소를 네가 올렸느냐?”

김순호가 놀라 보았다.

“저하...보...보셨사옵니까?”

향이 김순호를 보는 눈에 온기가 들어찼다. 그때 상소를 처음 읽고 문장이 뛰어나 식견 있는 유생이라 여겼었고 꼭 한번 보고 싶었었다.

“지금부터 이곳 관아는 현감이 공석이다. 다시 채워질 때까지 네가 현감을 대신해라.”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김순호가 놀라 향을 보았다. 김순호 뿐 아니라 모든 관원이 놀라 웅성거렸다. 백성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김순호가 고개를 숙였다.

“저...저하...아뢰옵기 송구하오나...소...소인은 서자이옵니다...”

“해서?”

“저하...”

“못하겠다는 것이냐?”

덩치 큰 관원이 김순호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니가 우리 양주에서 젤 똑똑하잖어!”

백성들은 “맞어!” “맞어!” 하며 좋아했다.

“하...하겠사옵니다 저하...”

백성들의 웃는 모습을 보니 향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며 진양과 안평은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향이 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김순호가 양주 현감이다. 허니 명을 따라야 할 것이다.”

“예 저하...”

향이 김순호를 보며 말했다.

“너는 오늘 관아를 비운 모든 관원들의 명단을 적어 그들을 옥에 가두거라.”

“예 저하.”

“또한 지금 당장 마을에 가서 시신을 수습하거라. 조심히 다뤄야 할 것이고.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거라. 한치의 소홀함도 있어선 아니 된다. 범인을 색출하는 일은 그 다음이다. 알겠느냐?”

“예 저하.”

때마침 향의 지시로 내려온 사헌부 감찰들이 들어왔다.


허허허허허허

영감 감축드립니다...

오늘처럼 이리 좋을 수가 있습니까....

허허허허허

한잔 쭈욱 들게나,,,,

집안에 각양각색의 등불이 훤히 밝혀져 있고 잔치가 한창이었다.

마루에 현감과 부사, 양주의 유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고. 사이사이마다 기녀들이 콧소리를 내며 술을 따르고 있었다.

마당에도 역시 술상이 거하게 차려져 있고 양반들이 기녀들을 끼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쪽에는 악공들이 연주를 하고 중앙에는 기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고관대작의 연회를 흉내 낸 듯했으나 품위는 없었다. 사내들은 연신 기녀의 젖가슴을 탐하고 기녀의 치마 속을 더듬느라 정신이 없었다. 질퍽하게 놀아도 누구 하나 나무라는 사람도 없었고 누구 하나 눈치 보는 사람도 없었다.

흥이 난 사내가 춤을 추는 기녀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눈썹이 흐릿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현감 임문석이 상석에 앉은 부사를 보았다. 부사 정경문은 점잖은 척하고 있었으나 탐욕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현감이 부사에게 물었다.

“영감, 마음에 드십니까?”

“흠...애썼네...”

현감이 부사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부사가 슬쩍 열어보니 은괴였다. 또한 그 안에 봉투가 있었다. 부사는 봉투를 열어 명단을 보고는 상 위에 올려놓았다.

관직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현감에게 돈을 바치고, 그 돈을 부사에게, 부사는 그 돈을 도절제사에게, 도절제사는 호판에게 바치고 있었다.

현감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부사 영감께서 이제 더 높은 곳으로 가셔야지요...이제 대감 소리 들으셔야지요!”

“내 자리가 탐이 나서 그런 소릴 하는 줄 누가 모를 줄 아는가?”

“예 영감. 탐이 나 죽겠습니다...해서...제가 영감을 밀어내려 합니다. 올해는 농사가 대풍이 들어 이자를 곱절로 내라 일렀습니다. 그걸 다 영감께 바치겠습니다. 허니 영감께선 아무 걱정 마시고 올라가시지요!”

“흠....탈나지 않게 조심하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 고을 백성들은 제가 잘 살피고 있습니다. 그 곡식 다 갖다 집에 쌓아놓으면 배만 부를 것이고. 그리하면 잠만 올 것이고. 그리하면 게을러질 것인데. 이자를 많이 내라 하면 적당히 먹어 몸도 가볍고.”

“그렇지요.” “그렇지요.”

“빈 곳간 채우려 더 열심히 일하고. 그뿐입니까! 영감께 보은하는 것이니 극락왕생하는 길이지요!”

허허허허허허

모두가 껄껄 웃었다.

“자네 입은 현감이 아니라 영상일세 그려...”

허허허허허허허

현감이 일어나 잔을 들었다.

“우리 대감, 곧 정2품 대감이 되실 분께 미리 감축드립시다!”

모든 사람들이 부사를 보며 술잔을 들었다.

“대감. 감축드립니다!”

부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듯 웃었다.

대감이라. 언제까지 이곳에서 부사로 지낼 수는 없는 터. 이번에 도성에 가서 호판대감을 만나 조정으로 불러 달라 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현감은 부사를 힐끗 보았다. 부사가 올라가면 이 자리는 자신이 차지해야 했다. 그리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재물을 바쳤던가!

부사가 술잔을 들자 기녀가 술병을 들고 부사에게 따르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허면 영감께서 이제 도성으로 가시는 겁니까? 허면 이년도 데려가 주시어요! 이년도 한양 구경 한번 시켜주시어요!”

현감이 나무랐다.

“영감이라니! 내일이면 대감이 되실 분께. 또한 한양에 가시면 한양 기녀들을 품으셔야지, 너 같은 시골 기녀를 뭐하러 데려가겠느냐! 모름지기 사내가 도성에 발을 담갔으면 한양기방 기녀를 품어야지. 아니 그렇습니까!”

한양기방이라 하면 한양에서도 으뜸가는 기방으로 권문세족만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돈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지방의 유지들은 한양기방에 다녀오는 걸 벼슬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대감, 저도 대감 덕에 한양기방 문턱 좀 넘어서게 해주십시오.”

여기저기서 저도 함께 데려가 달라 청하고 있었다.

부사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세를 부렸다.

“알았네...그깟 기방이 뭐라고...”

허나 부사도 한양기방의 문턱을 넘어본 건 호판을 따라 몇 번 간 것이 전부였다.

그때였다.

현감에게 뒷돈을 주고 관원이 된 자가 허겁지겁 달려와 외쳤다.

“현감 나으리 큰일 났습니다!”

관원의 목소리에 풍악이 끊겼다.

현감이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네 이놈! 오늘이 무슨 날인 줄은 알고 있느냐? 어디서 호들갑이야?”

“사헌부에서 감찰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현감은 콧방귀를 끼며 말을 막았다.

“사헌부에서 감찰이 나왔다면 미리 언질을 줬을 터. 네놈도 옥에 갇히고 싶지 않다면 썩 물러가라.”

이제껏 보고 있던 향이 입을 열었다.

“언질을 준 자가 누구더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한곳을 향했다.


“언질을 준 자가 누구냐 물었다.”

“저....저하....”

향의 갑작스런 등장에 진연장은 살얼음판이 됐다. 모두 향의 앞에 엎드려 바들바들 떨었다. 술에 곤죽이 돼 있던 사람들도 정신이 번쩍 들어 납작 엎드렸다.

약삭빠른 현감은 향이 다시 묻기도 전에 사헌부 관리들 이름을 줄줄이 내뱉었다.

세자저하를 한 번이라도 직접 본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부사는 조정에 들어가 뵐 줄 알았더니 이리 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향은 말없이 그들을 보았다.

“네 죄가 무엇인지 아느냐?”

......

......

“저하...죽여주시옵소서...”

“저하...죽여주시옵소서...”

현감과 부사는 죽여달라, 벌하여달라, 용서해달라, 살려달라 애원했다. 또한 부사는 백성들이 죽은 걸 몰랐다고 발뺌했다가 두세 명이 죽은 줄만 알았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리고는 현감이 다 처리한 줄 알았다고 했다. 현감은 부사가 내일로 미루라고 했다며,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해댔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웃던 자들이 이젠 저만 살겠다고 책임을 전가하며 할퀴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향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마디만 했다.

향이 조용히 말했다.

“너희들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촛불이 일렁였다.

양주 관아 집무실에 향이 앉아 있고 양옆에 진양과 안평이 앉아 있었다.

향과 진양, 안평은 양주 일대의 지도를 보고 있었다. 백겸과 창이, 최 무사가 서 있었다.

안평이 지도의 길을 가리켰다.

“저하...사옹골을 이 숲으로 지나왔다면 본 자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옹골은 산 중턱에 있었고 마을을 지나지 않고 산을 넘었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 위치였다. 허나 창이는 그들은 은밀하게 움직이나 숲을 넘어서면서까지 몸을 숨기진 않을 거라 여겼다.

진양이 창이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말했다.

“저하...허나 그들은 대범한 자들이옵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말을 타고 이 길로 왔다 여기옵니다. 분명 본 자가 있을 것이며, 인상착의는 검은 복색을 한 자객이 아닐까 사료되옵니다.”

창이가 향을 보았다.

“저하...”

향이 보았다.

“말해 보거라.”

창이가 지도를 가리켰다.

“이곳 억새밭에 숨어 있던 자들은 수십 명인 듯싶었사옵니다.”

안평이 놀라 보았다.

백겸이 말했다.

“소신도 그리 느꼈사옵니다. 적어도 서른은 넘은 듯싶었사옵니다.”

창이가 말했다.

“예 저하. 헌데 수십 명이 움직이게 되면 분명 누군가의 눈에 띄었을 것이옵니다. 숲길을 걸었다 해도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옵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둘 셋이 짝을 지어 움직였을 거라 사료되옵니다.”

안평이 물었다.

“허면 찾을 길이 없지 않느냐!”

백겸이 말했다.

“아닙니다. 만약 이들이 뱃길을 이용했다 하면, 둘 셋이 짝을 지었다고는 하나 평소보다 수십 명의 사람이 더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허니 매일같이 배를 움직이는 사공들은 알 것입니다.”

창이가 말했다.

“여러 날에 걸쳐 뱃길을 이용했다 하면 여곽에서 묵었을 터이니 그곳을 확인해봐야 하옵니다.”

진양이 향을 보았다.

“저하...먼저 뱃길로 이동했는지를 찾아야 할 듯하옵니다.”

향이 말했다.

“그렇구나. 뱃길을 이용한 사람들의 수가 늘지 않았다면. 그들의 본거지는 가까이 있다는 뜻이구나.”

진양이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저하.”

향이 최 무사를 보았다.

“상호군은 별감들을 남겨 이 일대 모든 나루터와 여곽, 사옹골을 중심으로 숲을 생계로 삼는 이들을 찾아 살펴보게 하거라.”

“예 저하!”

향이 진양을 보았다.

“진양은 지금 공주로 가거라.”

“예 저하.”

“안평은 이곳에 남아 살펴보거라.”

“예 저하.”

향이 모두를 보았다.

“우리는 자객 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건 그들의 본거지다.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 알겠느냐?”

“예 저하!”

“허나 무언가 알아냈다 해도 쉬이 움직이지 말거라.”

“예 저하!”

“또한 알아내지 못했다 해도 사흘을 넘기지 말고 돌아오거라.”

“예 저하!”

향이 창이를 보았다.

“창이는.”

“예 저하.”

“진양과 함께 공주로 가고.”

“...?”

창이는 대답하려다 놀라 보았다.

향이 백겸을 보았다.

“백겸은 안평과 함께 이곳에 남거라.”

백겸과 창이는 대답 대신 서로를 보았다.

갑작스런 향의 지시에 진양과 안평 뿐 아니라 최 무사까지 놀라 향을 보고 있었다. 억새밭에 숨어 있을 수십 명의 자객이 떠올랐다.

진양과 안평이 동시에 외쳤다.

“저하! 그건 아니 되옵니다!”


핫! 핫! 핫!

달빛이 길을 내주었다.

진양과 창이가 남쪽을 향해 달렸다.

진양이 그토록 애원했음에도 향은 단호했다.

진양과 창이가 나란히 강을 끼고 달렸다.

말에 오르기 전 향이 창이를 불렀다. 향이 창이를 보는 눈에는 온기가 있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품는다 해도 적이었는데 어찌 그리 온 마음으로 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품었다 해도 그리 백성을 죽인 자들과 한패였는데 어찌 창이를 보는 눈에 온기가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진양을 잘 지키거라.’

‘예 저하!’

‘조심하거라.’

‘....예 저하.’


창이는 진양을 보았다.

진양은 잔뜩 굳은 채 말을 거칠게 몰고 있었다. 진양은 창이에게 말에 먼저 올라 출발했다고 지랄지랄 해댔다. 창이에게 더욱 고집을 부렸어야 했다고 지랄지랄 해댔다. 아침나절에도 그러더니, 하루 종일 참고 있느라 속에 열이 났는지 온통 창이에게 퍼부어댔다. 자기를 지키라고 함께 보냈는데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아마도 습관이 된 듯했다.

헌데 이상하게도 진양과 둘이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또한 참담함에서 도망치듯 달리고 있으니 편해졌다. 허나 이리 달린다고 말의 꼬리가 날아가지 않듯 죄책감은 창이의 어깨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허나 이리 달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편해지니...창이의 눈길이 먼 곳을 향했다.


언덕에서 향이 말 위에 앉아 내려다보고 있었다. 관아가 한눈에 보였다.

향은 떠나려 했으나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이곳으로 왔다.

관아 안팎으로 횃불과 화톳불이 활활 타올라 훤히 보였다.

관아 안의 안평의 모습과 수첩을 들고 열심히 기록하며 살피는 김순호의 모습이 보였다. 김순호는 시신을 조심히 다루라 하며 돕고 있었다.

“조심하시오.”

덜컹.

안으로는 사옹골 마을 사람들의 주검이 조용히 옮겨지고 있고. 밖으로는 현감과 부사를 비롯해 진연장에 있던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들이 맨발로 포박당한 채 끌려나오고 있었다. 성난 백성들로 시끌벅적했다.

관아 문으로 죽은 자와 산 자가 교차하고 있었다.

현감과 부사는 옆으로 스쳐가는 수레의 시신을 힐끗 볼 뿐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찌하면 죄를 떠넘기고 이 난관을 헤쳐 나갈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백성이 죄인들을 둘러싸고 삿대질을 해댔다.

“이 쳐 죽일 놈!”

“이 사람도 아닌 놈!”

“이 천벌을 받을 놈아...”

“이놈아...네놈이 내 아들을 죽였어...살려내 이놈아...”

한 노파는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했고 이제껏 숨죽였던 백성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 먼저 돌멩이를 현감에게 집어던졌다. 백성들의 분노는 돌팔매질로 이어졌고 욕설이 난무했다.

.......

얼마나 백성들을 고단하게 했으면. 얼마나 백성들을 사지로 내몰았으면. 그 모습을 보는 향의 마음이 아팠다.

향이 관아에서 나올 때 백성들이 몰려와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울었다. 현감을 파직하는 게 마치 죽어가는 목숨을 구해준 일이라도 되는 듯 감사하다며 인사하고 또 인사했다. 어찌해서 저런 악한 사람을 보냈느냐 따지는 백성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백성들이 돌을 던지고 있었다.

.......

백성들의 분노가 슬픔으로 바뀌었다.

죄인들이 끌려가자 그 빈자리에 사옹골 사람들을 향한 애통함이 자리 잡아 관아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신을 옮기는 수레가 지나갈 때마다 백성들은 눈시울을 적시었다.

연신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향은 보고 있었다.

숨죽여 우는 백성이 이곳뿐이겠는가.

억울한 백성이 이곳뿐이겠는가.

백성에게 국법은 멀리 있고 부패한 관리는 가까이 있었다. 어찌하면 백성들의 곁에 청렴한 관리들을 둘 수 있을까. 어찌해야 청렴한 관리들이 백성의 곁에 있을 수 있을까.


백겸은 최 무사와 함께 향의 곁에 서 있었다. 모두 관아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백겸은 향을 보고 있었다.

향의 눈길은 움직임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 놀라울 뿐이었다.

평소 이성적인 백겸도 사옹골 사람들의 처참함을 직접 보고 온 터라 희희낙락하며 웃고 있는 그들을 보자 끓어올라 살의마저 느껴졌었다. 그 사람 같지 않은 관리들을 보며 안평도 가슴을 들썩이며 분노했고, 진양과 창이는 어찌나 바들바들 떠는지 검을 뽑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누구보다 노여웠을 터인데 향은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그저 한마디만 했다.


‘너희들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죽이겠다는 겁박보다, 칼을 들이댄 것보다 그 고요한 한마디가 더 무서웠다. 현감과 그들도 그걸 느꼈는지 죽여달라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해댔다.

향은 철저했다. 사헌부에서 내려온 감찰들이 관아를 수색하고. 그들의 집안을 수색하게 하고 죄인들을 도성으로 압송하라고 했다. 또한 진연장에 있던 자들은 옥에 가두었다. 또한 관원들 중에 근무 중인데도 불구하고 술을 마신 자도 옥에 가두었다. 별도의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그대로 두라고 했다.

졸지에 무고한 백성들이 갇혀 있던 옥사는, 탐욕스러운 자들과 태만한 관원들로 미어터질 지경이 됐다.

달빛이 향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백겸은 향의 온화함 속의 강인함에, 따스함 속의 차가움에, 조용함 속의 날카로움에, 놀란 것인지 반한 것인지 그저 보고만 있었다.

향은 사옹골의 주검 모두가 관아에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 말머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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