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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하는 세계의 등반자는 영웅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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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슬라임
작품등록일 :
2023.09.29 16:50
최근연재일 :
2023.11.03 23: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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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4,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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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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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개화(2)

DUMMY

개화 (開花).


본래는 다른 뜻이었으나, 각성자와 클라이머들 사이에서 ‘어떠한 계기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자각하는 행위’를 뜻하는 단어로 굳어져버렸다.


하지만 탑이 세워지고 꽤 긴 시간이 지금까지도 어떠한 계기를 찾는 확실한 방법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개화를 앞 둔 사람이 그 계기를 마주하여 느낀다면 모를까.


검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언젠가 읽었던 개화에 관련 된 책의 내용이 머리를 스쳐갔다.


“아무리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지만..”


몸도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알아차린 듯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개화를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이야.’


개화.


그것은 클라이머와 각성자를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


물론 개화를 한다고 해서 바로 클라이머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스르륵.


흥분한 탓일까. 힘이 준 것이 무색하게 뽑혀버린 검.


“스틸레토?”


무덤에서 뽑아낸 무언가는 일반적인 검이 아닌 한 쌍의 스틸레토였다.


피를 머금은 듯한 새빨간 색과, 죽음을 상징하는 보라색.


“두 개의 스틸레토가 한 자루처럼 합쳐져 있었으니 착각하는 게 당연할지도. 한 번 휘둘러나 볼까.”


허공에 스틸레토를 휘두르는 것이 창피하긴 했지만, 창피함보다는 나의 재능을 드디어 확인 할 수 있다는 설레임이 더 컸다.


후우웅


힘을 들이지 않고 손목만으로 가볍게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가르는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탑 안에서 나온 물건이기에 보정을 받는걸까. 그게 아니라면 모든 클라이머들의 재능이 이렇게 대단한 것일까.”


방금 전 내가 선보인 휘두름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면 설명이 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것을 판단할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폐기물 운송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많은 클라이머들을 만나지만 클리어한 이후에 거들먹거리는 것들을 받아주거나 부산물을 처리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임무였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문제다. 무기에 적응하는 건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건 좋네. 그러고보니. 무덤도 사라졌군.’


스틸레토에개 정신이 너무 팔린 나머지 그제야 무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와 동시에 지금과 비슷한 사례를 어디선가 봤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렴풋이 떠오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에는 사례를 찾아냈다.


‘설마. 에이 많이 지치긴 한 모양이야.자꾸 쓸데없는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하지만 사례를 찾아낸 즉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전재민. 정신차려라. 지금 개화를 해낸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행운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화의 트리거를 찾기 위해 애를 쓰는데.”


고개를 젓는 것으로 잡념을 털어내지 못한 것을 느낀 나는 소리를 내어 자신을 달랬다.


그제야 겨우 진정된 맘.


하지만 세상은 오늘 내가 침착함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머릿 속으로 무수한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으니까.


“끄으윽.”


내 몸을 마치 수천마리의 벌레가 자신의 집처럼 기어다니는 오싹한 느낌과 동시에 누군가가 나를 용암에다 집어던진 것처럼 주체할 수 없을만큼의 뜨거움이 공존했다.


“우웨에엑.”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 바깥으로 계속해서 내뱉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치기를 한참.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고통.


그러나 여전히 역겨우면서도 공포스러운 느낌은 몸 안에 남아 있었다,


“후우. 오늘 하루 정말 스펙타클하네.”


누군가가 내 머릿 속에 집어넣은 듯한 수 많은 정보.


“정보를 줄거면 내가 열람할 수 있게 만들던가!! 대부분의 정보들은 읽지 못하게 하면 무슨 소용인데!”


오늘 하루 참고 참아왔던 부정적인 감정.


그 감정들이 방금 전의 상황으로 인해 허용량을 초과해버렸고 나는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그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몸이 뜨거워질 것만 같은 고통들을 버티며 수 많은 정보들을 머릿 속에 저장당했지만, 지금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일부 뿐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정보들은 기억 속 깊은 저 편에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았다.


“지금 다시 꺼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어. 중요한 건 아티팩트라는 것과 그 중에서도 많은 비밀을 품고 있다는 것 정도.”


***

아티팩트.


탑에서 드물게 나오는 다른 차원의 물건.


그 중에서도 현재 인류의 수준으로서는 복제할 수도 모방할 수조차 없는 고차원적인 무구들을 총칭하는 이름이었다.


정보를 읽어들이기 무섭게 딸려오는 스틸레토의 주의사항.


「주의 이 단검들은 영혼귀속 아이템이며 사명을 이루어줄 자만을 주인으로 선택합니다. 소유자가 성장할수록 제한되어 있는 능력들이 서서히 해금될 것입니다. 당신의 앞길에 축복만이 가득하길.」


그와 동시에 머릿 속을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지켜보겠다.』


다섯음절로 이루어진 묵직한 한 마디를 듣는 순간.


자신에게 정보를 쑤셔 넣은 것이 목소리의 주인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켜본다? 개같은 소리하고 있네. 언젠가는 이 고통을 똑같이 돌려주마!!”


그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정보를 집어 넣은 남자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사이.


저 멀리서 잊고 있었던 부족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남자의 냄새!! 엄청 빠르구나! 하지만 끝이다. 죽인다!”


체감상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것 같았으나,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은 미노타우르스.


그의 집념에 놀라는 한편 재민은 자신이 얼마나 멀리 온 것인지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멀리도 왔군. 일단 여기서는 도망을 가는 게 맞는 선택이지. 컨디션도 좋은 상태가 아니고. 하지만 아일라의 마지막 공격이 그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 궁금하다.’


호기심과 이성적 판단이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격돌하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부족장의 분노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들려온 흥분의 찬 음성.


“찾았다!!”


아까와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에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하하하!! 그래도 아일라는 속 시원하게 눈을 감았겠네. 처음 보았을 때보다 지금의 모습이 네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소대가리.”


지금 부족장의 모습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아수라백작이었다


자폭 공격이 오른쪽에 적중했던것인지 오른쪽 몸이 검게 타버렸고,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부족장을 보고 마음껏 웃었던 나와는 달리 그는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아까 나를 보고 겁쟁이라고 했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반응을 보여주는 그.


“인간? 분명 얼굴은 똑같이 못생긴 인간이 맞다. 왜 아까랑 다른 기분? 위험한 느낌.헷갈린다.”


무시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 안에는 경계가 살짝 섞여있었다.


‘개화를 했다는 것을 눈치를 챈 건가? 시간을 끌면 내가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저 녀석과 결단을 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부족장의 말을 듣고서야 결심이 선 나는 그대로 스틸레토를 들어 허공을 갈랐다.


서걱.


물이 잔뜩 들어간 나무를 벤 듯한 느낌이 손 끝으로 전해졌고 이윽고 짙은 연갈색의 나무로 된 문이 나타나 나를 집어 삼켰다.


***


문은 재민을 집으로 돌려보내줬고, 재민은 집에 도착했다라는 사실에 긴장이 풀렸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잠이 들었다고 해서 그의 고통스러운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엔 또 무슨 상황인거지? 꿈인데. 꿈인 걸 알고 있다. 자각몽인가.”


평소 꿈도 잘 꾸지 않는 재민이었기에 자각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었다.


“일단 나가볼까?”


신기한 감정도 잠시, 문을 열었을 때. 펼쳐진 광경에 그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짝.


‘쎄게 때렸음에도 아프지 않은 걸 보면 현실은 아닌게 맞다는 소린데.’


지금 재민의 눈 앞에는 탑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탑들이 발 디딜 틈 세워져 있었다.


“꿈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하지는 마라.”


멍하니 탑만을 바라보고 있던 재민을 향해 낡은 후드를 푹 눌러 쓴 어떤 사내가 충고를 건네기 시작했다.


“탑을 믿지도 말고 의존하지도 마. 탑은 네가 강헤지기 위한 수단일 뿐. 내가 믿어도 되는 건 네 실력 뿐이다. 앞으로 세상은 많이 바뀔거다.”


남자의 목소리에서는 알 수 없는 회한과 후회.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재민은 눈 앞의 사내가 궁금해졌다.


“너는 누구지?”


누구이기에 자신의 꿈 안에 들어와 이것은 꿈이며 허황된 소리를 내뱉을 수 있을까?


사내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웃어넘길 뿐이었다.


사내는 재민이 원하는 대답 대신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었다.


“음. 나를 뭐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지는 나도 몰라.”


재민은 남자의 대답이 어이가 없었다.


본인을 소개할 수 있는 말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이없어하는 재민을 대신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는 사내.


“기회를 너무나 많이 놓친 사람이라고만 해두지. 언젠가는 만나게 될거고, 그 전에 넌 내 존재를 알게 될거야.”


그 말을 끝으로 허허로이 웃은 사내는 재민의 곁을 떠났고, 그것을 끝으로 재민은 꿈에서 깨어났다.


“꿈을 꿔도 무슨 이런 꿈을 꾸지?”


잠에서 깬 재민은 다시 한 번 잠을 청했지만, 한 번 달아난 잠은 쉽게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김에. 앞으로의 계획이나 생각해놓자.”


책장에서 노트를 꺼낸 그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써내려 갔고, 커다란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회사. 아일라. 성장.


회사는 나가지 말자. 죽은 줄 알고 있을테니까 괜히 모습을 드러냈다가는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추측이 아닌 확신을 가지고 내뱉은 말아었다.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채는 순간, 무슨 수를 써서든 입을 막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타인의 돈에는 관대하나 자신의 주머니에서의 불필요한 소모가 일어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내였으니까.


“선수금도 받았고, 저축해 놓은 것이 있고 당분간 돈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긴 해.”


돈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니, 사장에 대한 화가 올라왔다.


“나를 버림패로 쓴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사장에 대한 분노를 뒤로 한 체 아직 남은 두 가지의 키워드들을 바라보았다.


“아일라...”


그녀와 관련된 것은 아직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


“당신한테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하늘에서 당신이 지켜볼 때. 통쾌하다고 느낄만큼 제대로 복수를 해줄게요.”


입이 썼지만 어쩔 수 없었고, 그녀도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다.


“마지막 남은 나머지 하나. 성장.”


그에 대해선 탑을 오르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흐으음..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다른 이들의 뒤를 쫓는 것 밖에 되지 않아. 그 이상한 놈의 말도 마음에 걸리고.”


이런 고민을 그의 고민을 이해하듯 갑자기 눈 앞에 떠오른 활자들.


-긴급 탈출 페널티: 페널티가 지속되는 동안은 두 자루의 단검이 한 자루의 단검으로 변합니다.


패널티에 대해서 듣자마자 한 쌍의 스틸레토가 무덤에서 보았던 기다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페널티 해소 방법은 간단합니다. 소멸형 탑3개를 10일 내에 혼자서 무너뜨리면 됩니다. 해소하지 못할시 더욱 큰 패널티가 부과됩니다.


반대로 5일 안에 페널티를 극복하신다면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작가의말

11/5 수정. 내용 상의 변화는 없음 몇몇 문장이 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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