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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텔지아의 문서저장고

멸망하는 세계의 등반자는 영웅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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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슬라임
작품등록일 :
2023.09.29 16:50
최근연재일 :
2023.11.03 23: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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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4,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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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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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개화(1)

DUMMY

‘깡다구가 쎄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겁이 없는건지..’


폐기물 운송원의 한 수를 보여주겠다고 했을 때.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자신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폼을 그렇게 잡더니 한다는게 고작 시체로 협박.’


자신이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을 방법이다. 목숨이 달린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그가 택한 방법은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물불가리지 않고 돌진해오던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을테니까.


‘하지만 내가 그의 입장이었어도 저렇게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그녀의 모든 것을 걸고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미노타우르스 떼와 대치하여 시간을 번다. 아마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거야.”


물론 그도 미노타우르스들의 발을 잠시동안 묶어놓았을 뿐이었고 자신이 마무리 지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그가 시체로 협박을 이어나가고 있는 덕에 그들의 분노와 증오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겨우 참아내는 이들도 보였고,이를 갈며 숨을 고르는 이들도 보였다.


“우리도 피해자라고. 나라고 시체를 가지고 협박하고 싶을까. 5분만. ”


재민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에게 하소연까지 해가며 그들의 발을 묶어주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보다 더한 또라이가 있을 줄이야.”


***


‘5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약속한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것 같은데. 그녀는 미동조차 없었다.


나에게 한 마디를 내뱉은 이후로는 아예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벌어주는 시간들을 허투루 쓰는 것은 아닌가부터 시작해서 머릿 속에서는 수 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거기에 더해 미노타우르스들이 보내는 살기 어린 눈빛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진해져만 갔다.


아마 눈빛만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수백 번은 죽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결국 먼저 바닥을 보인 것은 나의 인내심이었다.


“대체 언제 끝나는 겁니까! 10분은 지난 거 같은데!”


간절함이 담긴 물음.


하지만 내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만약 그녀가 다 회복했는데도 저들을 다 쓸어버리지 못하다면 그때는 죽음을 받아들여야지.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 뭘 어쩔거야.”


너무 짜증이 난 나머지 무심코 튀어나와 버린 본심이 공기 속에 흩어짐과 동시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


“우는 소리하지마. 너 안 죽어. 네 미친 짓 덕분에 부작용도 대부분 해소 했으니까. 지금부터는 마음 편히 지켜보기만 해.”


“아일라..님?”


아까까지만 해도 꼬마였던 그녀의 외형이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있었다.


꼬마의 모습일 때에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 특색이 없던 외모이던 것에 반해 지금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붉은 머리와 차가워보이는 인상.


길거리에서 만났더라면 한 번쯤은 시선을 빼앗겼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줘. 그 시체.”


말만 그렇게 했을 뿐. 그녀는 내게서 시체를 강탈해갔다.


“오래도 기다렸다. 미련한 녀석들아.”


그녀가 시체를 내게서 빼앗아가자, 대부분의 시선 역시 옮겨갔지만. 몇몇은 여전히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 또한 그녀가 저것으로 무엇을 할지가 궁금했다.


아니 걱정이 앞섰다.


‘이미 자극할대로 자극했는데. 대체 저걸로 뭘 하려고..’


화르륵.


그녀는 시체를 태워 뼛가루로 만들었고, 그 뼛가루를 그들의 눈 앞에다 뿌려버렸다.


“설마 이걸 우리가 돌려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너희들 따지고 보면 이것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고생한 건데.”


“하하하.. 누가 누구더러 미친 놈이라는 겁니까. 당신이 제일 미친 것 같은데.”


시체가 눈 앞에서 뼛가루가 되어버리자 미노타우르스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멍을 때렸고, 몇몇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기도 했다.


뼛가루를 뿌리는 것도 과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혀를 차며 그들을 도발하기까지 했다.


“쯧. 근성 없는 것들. 이미 죽어버린 것에 미련을 가지니까. 너희가 그거 밖에 안 되는거야.”


이제 저들을 속박할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둘 사이에 남은 것은 결투뿐이었다.


그것을 설레는 마음 반 걱정스러운 마음 반으로 기다리고 있는 와중.


음머어어어!!


갑자기 고막을 때리는 울음소리가 모두를 훑고 지나갔다.


평생 들었던 모든 생물들의 울음소리들 중에서 가장 흉포하고, 거대한 소리였다.


그 울음소리가 신호가 된 듯 미노타우르스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렸고 이내 길을 텄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길을 통해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다른 것들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컸으며 손에는 성인 남성 둘을 합쳐놓은 듯한 거대한 양날도끼를 쥐고 있었다.


“미노타우르스 부족장. 골치 아프게 됐네. 리젠의 횟수가 채워지지 않았을 줄이야.”


아일라는 지금 등장한 녀석이 누군지 알고 있는 듯했다.


부족장은 나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오롯이 아일라를 눈에 담았다.


“인간. 굳이 그럴 필요. 없었다. 우리는. 그냥. 묻고 싶었다. 근데 왜?”


단순한 단어들의 조합이었지만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몰라 머리를 굴리는 사이.


아일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랄하네. 네가 우리랑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나왔겠지. 간만 보는 게 아니라. 네가 지금 나온 이유를 내가 맞춰볼까?”


“아일라님?”


“너는 빠져있어봐. 쟤도 다른 애들하고 별 차이 없어 덩치가 조금 크고 울음소리가 경직을 일으키는 것 말고는 없어.”


“쿠하하하하!! 어리석어. 애들. 노는데. 어른이. 오면. 실례.”


“애들이라고 무시할 정도의 숫자는 넘어선 것 같은데?”


아일라는 자신이 무시당한 것만 같은 느낌에 계속 그를 도발했지만, 그는 끄덕없었다.


오히려 아일라의 당돌함이 마음에 드는 듯 그녀에게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충격적인 거래를 제안했다.


“너 내 취향. 그러니. 내. 여자가. 그러면 저 남자는 살린다.”


“미쳤니? 널 죽이고 여기서 빠져나갈거야. 네가 여기 보스니까 널 죽이면 출구가 열리겠지,”


그녀는 못들을 걸 들었다는 듯 귀를 파내며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한 번만 더. 물음. 거절하면 죽음. 너 내 여자가 되자. 그게. 살 길.”


아일라는 중지 손가락을 곧게 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


장난감.


부족장에게 아일라는 장난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의 모든 공격.


심지어 많은 소고기 육포를 양산해낸 필살기조차 부족장의 살갗을 그을리게만 했을 뿐이었다.


그 공격을 가만히 맞아주고


“따뜻하다.”


라는 말을 지껄였을때에는 정말 눈 앞이 깜깜해졌다라는 말의 의미를 온 몸으로 느꼈다.


아일라는 정말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그를 공격했다.


하지만 부족장은 그 공격을 도끼의 날로 쳐내거나 날파리 쫓듯 손을 휘적거리는 것만으로 무효화시켰다.


그녀가 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남아있던 다른 미노타우르스들은 수가 줄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허억 허억.”


결국 연이은 공격에 지친 아일라는 숨을 몰아쉬었고, 부족장은 여유로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며 조롱했다.


“알겠냐? 너랑 나의 힘 차이. 절대 넌 날 못 죽임. 남자 창피하다. 겁쟁이.”


탑의 존재에게 겁쟁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지만 그 말을 들음으로서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녀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도 새끼 미노타우르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라는 생각마저 머리를 스쳐지나갈 때쯤.


“정신 차려. 저런 말 마음에 두지말고, 도망가.”


숨을 고르던 아일라가 내 정신줄을 붙들어주었다.


“나는 자폭할 거야. 그게 이 녀석한테 얼마나 데미지를 줄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도망갈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을거야.”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하면서도 책임감이 가득 묻어나오는 그녀의 목소리.


시간을 벌어 그녀를 회복시킨 것조차 소용이 었었는데. 자폭 공격이 통할 것 같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죽음을 각오한 이에게 그런 말은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미안합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아까 말했던 것 기억해? 이건 다 내 탓이라는거?”


부족장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우리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기획하고 성공했던 실험은 우리 클라이머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 가능성이 있었어. 그런데..”


으득.


그녀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열이 뻗히는지 이를 갈았다.


“그게 세상에 밝혀지면 현재의 기득권들이 쌓아올린 모든 것이 초기화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거든.”


나는 거기까지만 듣고도, 상황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미안함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왜 아일라님. 아니 네 탓이지? 이건 내 탓이다. 내가 개화를 했었더라면 우리 둘 다 살았을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높아졌겠지. 나야 말로 미안하다.”


그녀에게 미안함을 담아 고아가 된 후 그 누구에도 숙이지 않았던 머리를 숙였다.


머리를 숙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눈동자가 둥그런 구슬처럼 변했다.


“음. 누구한테 이런 사과를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너는 꼭 살아남아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그 말을 마친 뒤.


미련 없이 내게서 등을 돌렸다.


나는 그것을 신호삼아 정신 없이 둘에게서 멀어지려 노력했다.


“작별인사. 필요.없음. 어차피 둘 다 내 손에 죽음. 그게 결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너 내 짝 하고 싶어했잖아. 같이 죽어주면 생각해볼게.”


둘의 대화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이윽고 들려오는 폭발 소리.


콰아아아앙.


“저 정도면 죽었을 법도 한데..”


폭발 소리가 생각보다 컸기에 작게나마 희망을 가져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희망은 날 비웃었다.


“인간 여자아아아!! 감히. 감히. 남자. 너 찢어죽인다!!”


폭발소리가 멎자마자 들려오는 녀석의 절규.


절규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폭발이 적지 않은 데미지를 주기는 했지만, 죽이기엔 모자랐던 것 같았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된거지?”


소리를 내면서 멀어지는 것은 내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푸념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남들에게 한 번 쯤 있었던 행운, 그것의 자투리조차 구경해본 적 없고, 그것의 자리는 불행이라는 녀석이 대신 차지 했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 상황만 보아도 그랬다.


“이왕 데미지를 입을 거면 한 번쯤 죽어주면 어디가 덧냐냐!!”


콰당.


마음이 급해서 발이 꼬인 것인지 아니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볼품없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굴렀고, 무언가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나를 멈추어준 것은 무덤에 꽂힌 검이었다.


“이건 뭐야?”


탑에 대해 웬만한 것은 다 알고 있었고, 소문들조차 정리해서 메모하는 나조차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에 호기심이 앞섰기에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 때의 나는 몰랐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작가의말

이번 주는 연재주기가 유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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