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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텔지아의 문서저장고

멸망하는 세계의 등반자는 영웅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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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슬라임
작품등록일 :
2023.09.29 16:50
최근연재일 :
2023.11.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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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4,282

작성
23.10.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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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 버려지다.

DUMMY

“씨발.”


내가 처한 상황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저 단어만큼 적절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재민아. 네가 해줘야 할 게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장이 자신을 콕 집어 사근사근하게 대했던 것은 처음이었고 거기서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그 인간. 아니 인간의 가죽을 쓴 악마는 그 누구에게도 친절히 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는 뭔가를 잘못 처먹었는지 그 날 따라 모든 이들에게 친절했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심지어 선수금까지 가볍게 던져주었다.


사장은 푼돈을 주는 것처럼 휙하고 던졌지만 품으로 안아본 주머니는 묵직했다.


“이번 의뢰의 수당은 너한테 모조리 돌아갈거고. 방금 그건 착수금. 착수금 1만바트에 성공보수 1만 바트. 총 2만 바트다. 마음만 같아서는 내가 하고 싶지만 의뢰인께서 너를 콕 집으셨다.”


“무슨..”


1년 넘게 이 곳에서 굴렀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와 달리 싱긋 미소를 지으며 의뢰자의 정보를 흘리는 그.


“그리고 그 의뢰자의 신분은 네가 환장하는 클라이머의 의뢰다. 그것도 꽤나 높으신 분. 너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만..”


클라이머가 의뢰인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입은 곧바로 승낙을 외치고 싶어했지만, 그래도 한 가닥 남아있었던 정신줄은 제 할 일을 했다.


“무슨 의뢰길래. 다른 인부들 다 재끼고 저한테 시키십니까?”


하지만 그는 이제 주도권이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것을 느꼈는지 내가 원하는 대답은 들려주지 않았고 선택만을 종용했다.


“쉬운거야. 쉬운거. 할거야? 말거야? 내가 우리 회사 에이스한테 이상한 거 시킬까봐? 너 나가리 되면 손해를 보는 건 나야.”


에이스.


낯간지러운 말은 입에 담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의 입으로 전해들은 탓일까.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계약서에 싸인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다며 웃는 사장은 의뢰서를 건넸고 혹시나하는 마음에 꼼꼼히 읽어 내려갔지만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평범한 의뢰서였다.


“의뢰내용은 정말로 평상시 저희들이 하는 폐기물 운송에 불과하군요. 특이한 점을 굳이 꼽자면 폐기물을 제가 아닌 의뢰자가 버리고, 그 의뢰자가 돌아오는 것을 데려오는 것.”


나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것조차 억지로 트집을 잡은 것에 불과했다.


탑을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얻고 클라이머들과 등반할 자격조차 얻지 못한 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무수히 많이 존재했으니까.


“그럼 이제 가봐. 폐기물은 미리 네 차에 실어놨으니까.”


사장은 내가 의뢰를 받게 하는 것이 목표였는지 그것이 끝나기 무섭게 원래의 그로 돌아가 있었다.


손을 휘휘저어 쫓아내던 그는 돌아서며, 내게 주의할 점을 일러주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이번 폐기물이 탑의 소관이라고 미리 열어볼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거야. 우리가 취급하는 것 따위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걸 수도 있으니.”


그제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행히 직장에서 멀지 않아 금방 도착한 탑의 입구.


입구는 생각보다 평범했지만 출퇴근하며 눈으로 보았던 탑은 따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곳이었다.


교과서의 그림이나 사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건축물의 웅장함.


그것에 압도 되어 넋을 놓고 멍하게 그것을 바라보기를 몇 분.


나의 감상을 방해한 것은 높고도 새침한 목소리였다.


“확실히 사진보다는 실물이 낫구나. 너?”


잘 쳐줘봐야 이제 갓 초등학교를 입학 할 나잇대의 꼬마가 나를 위 아래로 훑었지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풍기고 있는 분위기부터가 그녀가 의뢰인임을 증명했기 때문에


“혹시 제게 탑으로 폐기물 운송을 부탁하신 분이 당신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 야밤에 당신을 누가 기다릴거라고 생각해? 지금 상황이 좀 꼬여서 할 일이 많아. 들고 따라오면서 들어,”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귀찮음.


그녀는 앞장서서 탑으로 걸어가며,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도 당신이 해야 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원래 하던 일이잖아? 뭔가 문제가 생기면 내가 보호해줄테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폐기물의 처리에 있어서는 전문가나 다름없었기에 걱정은 없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저.. 저는 아직 클라이머가 아닌데.클라이머가 아니라면 탑을 오르는데 상당한 위험이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하. 내가 너를 지명했는데.그것도 모를까봐?”


의뢰인은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개화 트리거를 못 찾은 것뿐이잖아. 그 트리거는 대부분 탑에서 얻을 수 있어. 시간 없으니까. 일단 이거 먼저 해결하면서 네 개화 트리거도 찾아보자.”


“아.알겠습니다.”


왜 저 여자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고, 무슨 이유로 날 도와주려 하는 건지에 대해서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말 한 마디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서 개화의 트리거를 찾지 못하거나,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의뢰를 완수하는 것만 생각하자. 나머지는 그 다음 생각해도 충분해.’


“내 손을 잡아.”


내가 마음 속으로 다짐을 되뇌일 때.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의뢰인님.”


의뢰인이라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듯 그녀는 이름을 알려주었다.


“아일라. 그게 내 이름이야. 이상한 호칭말고, 아일라님이라고 불러.”


***

탑의 내부는 별 것 없었다.


몬스터가 도처에 자고 있다는 것 만 빼면 어릴 적에 자주 들리던 동굴과 비슷한 곳이었으니까.


밤이라 그런지 내부가 보이지 않았음에도 아일라는 제 집인것 처럼 쏘다니고 있었다.


“여기가 좋겠네. 미노타우르스는 지금쯤 자고 있을테니 빨리 처리하고 네 트리거나 찾으러 가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롤리팝 사탕을 오독오독 깨물어가며 망을 보는 아일라.


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폐기물을 꺼내 처리하려고 했다.


철컥.


하지만 상자의 봉인을 풀고, 안을 들여다 보자 생각지도 못한 것이 그 안에 잠들어있었다.


폐기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염된 새끼 미노타우르스의 시체였다.


무수한 시체들을 봐온 나로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훼손이 심한 시체였다.


비릿한 피 냄새와 악취는 시체에 깊숙이 배여있었고, 몸 어디를 둘러봐도 멀쩡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아일라도 마찬가지였는지 가까이 와서 본 후 큰 소리로 내게 외쳤다.


“.. 이건? 내가 의뢰한 실험 폐기물이 아닌데. 설마? 빨리 닫아. 소 대가리들 몰려오기 전에!”


아일라의 발빠른 대처가 아니었더라면 잠 자고 있던 미노타우르스들을 전부 깨워 그들에게 이 현장을 보여줄 뻔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시체에서 나온 냄새를 맡은 것인지 다른 무언가가 그들을 깨운건지 하나 둘 일어나서 정확하게 시선을 이쪽으로 돌렸다.


“음모오.”


시체를 추모하는 듯한 짧은 울음 소리 이후 우리가 시체를 훼손한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쫓아왔다.


고위 클라이머라는 사장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처음 그들을 마주쳤을 때만 하더라도 걱정이라는 감정 대신 대단하다는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가을에 단풍 잎이 떨어지듯이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두 세 마리가 쓰러졌으니까.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아일라는 혼자였고, 적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 뿐 만 아니라 그들은 죽은 동족의 시체를 방패 삼아 그녀의 마법을 막아냈다.


“기껏해야 탑의 잔재 주제에 머리까지 굴리네.”


그녀는 자신의 마법이 막힌 것이 분한지 오독오둑 씹고 있던 사탕을 바닥으로 버렸다.


그 후 그녀는 품 속에서 지팡이를 꺼낸 뒤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 마법진은 순식간에 몸집을 불려 그녀의 시야에 닿는 모든 미노타우르스들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자, 당황한 그들.


“소고기는 바짝 익힌 육포가 제일이지.”


라는 말과 함께 손가락을 튕기자 미노타우르스들은 불 판에서 익어가는 소고기 신세가 되었다.


화르르륵.


덕분에 나와 그녀를 제외하고서는 살아있는 존재가 없었다.


“봤지? 내 옆에만 붙어있으면, 죽을 일은 없다니까?”


아일라는 자신이 만든 풍경에 감탄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그렇게 자신이 있을만 하시군요.”



사태가 진정되었다고 생각해 한 숨을 돌리는 중이었다.


“음모오..”


하지만 무리들 중 확실하게 구워지지 않은 개체가 하울링으로 모든 이들을 불러들였고, 하울링이 다른 이들의 하울링으로 이어지는데에는 5초면 충분했다.


음머어어어!!


구우우우!!


쿠웅, 쿠웅.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그들의 돌진 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많았다.


돌진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딛고 서 있는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후우.. 나 때문에 미안. 내가 나대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걱정하지마.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 한 몸은 멀쩡하게 나가게 해줄테니까.”


그녀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을 내뱉고는 눈을 감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그런 것 보다 우리 살 수 있는 건 확실해?”


내 두려움을 그녀가 일부나마 해소시켜주길 바랬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주문을 외우는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일라를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안색은 파리했고, 온 몸은 바들바들 떨려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믿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하는 건 그녀가 맘 편히 몸을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


“이봐요. 아일라.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해?”


그녀는 입을 여는 대신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5분. 그 약속 지켜요.”


나는 새끼 미노타우르스의 시체가 담긴 상자를 집어들었다.


“뭐하려고?”


집중하느라 입을 열지 않던 아일라는 내가 무언가를 하려는 지 궁금해했다. 아니 불안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클라이머로서 비장의 한 수가 남아있다면 이 쪽은 또 폐기물 운송원으로서의 한 수가 남아있거든. 그 쪽도 도박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거 뭐 있어?”


“딱 5분이면 돼. 그 전에 죽지마.”


“그 이상은 하라고 해도 못하니까. 나 죽기 전에 알아서 들어와.”


등에 맨 미노타우르스의 시체가 내 인생에서 짊어졌던 짐 중에서도 가장 무겁게 느껴졌지만 내색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서로가 힘들다는 것쯤은 말 안해도 알 수 있었으니까.


“야 이 소대가리 새끼들아. 정지. 정지.”


내가 꺼낸 비장의 한 수.


그것은 바로 훼손된 시체를 인질로 잡기였다.


내 말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죽일 기세로 달려오던 이들이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굳었다.


덩치는 산만한 것들이 발은 어찌나 빠르던지 조금만 늦었어도 포위 당해 갈갈이 찢겼을 것 같았다.


“우리가 이런 거 아니라고 해도 너희가 그런 걸 따지는 애들은 아닐 것 같아. 우리도 알고 보면 피해자라고. 피해자.”


미노타우르스와 나 사이의 거리는 10M.


그다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그들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가 들고 있는 시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손으로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겁고, 악취가 풍겨와 당장이라도 내팽개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음머어!!


내가 손에서 이걸 놓는 순간 저들은 나를 반으로 갈라서 회를 떠버릴 만큼의 살기와 분노를 나에게 보내고 있으니까.


“진정해. 진정해. 친구들 나라고 이러고 싶었겠어? 시체를 능욕하는 일은 인간으로서도 못할 짓인데.”


평소 진상 같은 손님들만을 맡아와서 그런지 혀에 기름칠을 한 것마냥 입에서는 말이 술술나오고 있었다.


저들이 내 말을 온전히 이해할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이것은 공포를 억누르기 위한 행동일뿐이었다.


“너희에게 이 아이의 시체가 중요한 만큼 우리도 우리의 목숨은 소중하거든. 그러니까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자고, 5분이면 충분해.”


“나보다 더한 또라이가 있을 줄이야.”


등 뒤에서 아일라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미친 짓을 하고 살아나갈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해볼만한 행동이었으니까.


작가의말

소고기는 실제로 빠짝 익히면 맛 없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4 두더지님
    작성일
    23.10.05 14:56
    No. 1

    작가님...주인공 음메들이랑 대화가 되는거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10.15 08:53
    No. 2

    제목을 봤을 때
    탑 등반 판타지 같은데, 긴장과 호기심을 적당히 버무린 출발 같군요.
    선작, 추천 누르며 재밌게 읽고 갑니다.
    힘차게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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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하는 세계의 등반자는 영웅이 되고 싶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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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5. 훈련(3) 23.10.24 7 0 11쪽
13 5. 훈련(2) 23.10.23 8 1 11쪽
12 5. 훈련(1) 23.10.20 12 1 11쪽
11 4. 버려진 흡혈귀의 굴(3) 23.10.18 10 1 11쪽
10 4. 버려진 흡혈귀의 굴(2) 23.10.17 15 1 11쪽
9 4. 버려진 흡혈귀의 굴(1) 23.10.16 10 0 12쪽
8 3. 기브앤 테이크(2) 23.10.13 11 0 12쪽
7 3. 기브앤 테이크(1) 23.10.12 15 0 11쪽
6 2.등반(3) 23.10.11 18 0 12쪽
5 2.등반(2) 23.10.10 24 0 12쪽
4 2.등반(1) 23.10.09 35 1 11쪽
3 1.개화(2) +1 23.10.06 43 2 12쪽
2 1.개화(1) +2 23.10.04 45 3 12쪽
» 0. 버려지다. +2 23.10.03 8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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