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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짧은 군대생활 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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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맘세하루
작품등록일 :
2015.07.16 12:01
최근연재일 :
2015.07.28 14:09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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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7,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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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20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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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5. 쿼바디스

DUMMY

5. 쿼바디스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원주시내에 있는 공중목욕탕에 나갈 수가 있다.

병영 내에는 펌프질 하는 우물가 빨래터에서 간단한 샤워는 할 수 있어도 몸을 불려 때를 벗길 수준은 아니다.


목욕은 무료 이지만 희망자에 한하는 것이어서, 여름철에는 인원도 많지 않고 대부분이 중,신참 이하 병사들이다.


내무반에 남아봤자 고참들 치다꺼리나 할거고, 목욕 후에 자비로 극장구경도 있어서 신나는 날이다.


신참인 나는 눈치 보느라 자대 배치 2주만에 나가게 되었다.


“황일병님, 목욕 다녀오겠습니다.”


“응, 그래. 처음이지? 누룽지 한 사발 벗기고, 영화도 보고 와라.”


영화구경까지 허락 받고 들뜬 기분으로 20여명의 행렬에 끼어서 시내로 향했다.



인솔 하사관의 안내로 오랜만에 민간인 공중목욕탕에 들어갔더니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다.


옷을 홀랑 벗어 탈의실 개인 보관함에 잽싸게 넣었다.


군번 줄 같은 고무줄 인식표를 발목에 차고 뜨거운 김이 잔뜩 서린 욕탕 내로 들어섰다.


이 순간만큼 은 민간인이나 다름없다.


여름철이라 굳이 때를 불릴 필요까지는 없을 듯싶은 데 중,고참들은 서둘러 탕 속으로 들어간다.


어쩌면 아는 얼굴들이라, 반말하던 하급 병사들 앞에 계급장 없는 본연의 자기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기 싫은지도 모르겠다.


탕 밖에 앉은 병사들도 비누거품을 잔뜩 내어 중요한 부위를 위장하고 은폐한다.


한창 물오른 20대 초반이라도 벗겨놓은 알몸들은 천차만별이다.

가슴팍은 탄탄하지만 팔다리와 엉덩이까지 균형 잡힌 조각상은 드물다.


거시기가 자신 있는 병사는, 샤워꼭지 밑에서 탱탱한 두 쪽을 쓸어 올려가며 일부러 몸을 돌려 과시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크기에 열등감을 가지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내 것은 제일 작게 보이고, 옆에서 본 남의 것은 훨씬 크게 보이는 법이다.




“극장 갈 사람은 이쪽으로, 귀대할 사람은 저쪽으로..”


목욕을 끝내고 깎아놓은 밤톨처럼 볼이 뽀얗게 토실해진 병사들 거의 모두가 극장으로 향했다.

중고등학교 때 단체관람 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 왁자지껄하게 떠든다.



군인극장 입구에 ‘쿼바디스’ 라는 큰 간판이 걸려있다.

남자 주연 ‘로버트 테일러’와 여주인공 ‘데보라카’의 모습이 실제 배우 얼굴과 별로 안 닮게 그려져 있다.


여러 부대에서 관람 온 병사들도 많아서 극장 앞은 군인들로 제법 와글와글 붐빈다.



“부대 체면 깎는 짓은 하지 말고, 관람 끝나면 여기로 집합한다. 해산!”


자유로운 몸이 된 병사들이 다른 부대의 동기들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야, 굼벵이. 잘 있었나?”


“그래, 뺀질이. 너 좋아 보인다!”


불과 훈련소 몇 주일 동기들이지만, 오랜 고향친구라도 만난 듯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시냇가 빨래터에 모인 아낙네들처럼 부대내의 문제 선임자들을 입질에 올려 껌을 씹으며 맺힌 응어리를 풀 것이다.


나는 동기들 얼굴이 안보여서 일찍 입장을 했다.

500석쯤 돼 보이는 좌석은 절반 넘어 비어있어, 가장자리 5인석 줄 가운데에 앉았다.

군인극장 이지만 민간인 입장도 되는지 사복 입은 사람도 더러 보인다.


상영시작 벨이 울리자, 우르르 병사들이 몰려들어와 안쪽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잠시 후 전등불이 꺼지고 광고 화면이 나오는데, 내 줄 끝자리에 어떤 여자가 앉는다.


흠칫 놀라서 보니 어둑한 불빛이지만, 빈칸 건너 의자에 밝은 색 미니스커트 엉덩이가 뚜렷이 보인다.

전혀 예상 못했던 일이라 가슴이 약간 설레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가 시작되고 화면의 ‘기립 탈모’ 자막을 따라서 모두들 일어나 모자를 벗고, 태극기가 나오자 경례까지 붙였다.


다시 자리에 앉는데, 여자가 한 칸 비켜 와 내 옆에 앉는다.

얼핏 보니 단발머리에 앳되어 보이는 게 여학생이 분명하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는 아니니까 학생이라도 입장은 되겠지만, 저녁시간에 착 달라붙는 짧은 스커트를 입고 혼자 온걸 보면 보통 아이는 아니다.


예고편도 끝나고 본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신경은 온통 옆자리의 소녀 같은 여자에게 쏠린다.



말 갈퀴 달린 투구를 쓴 주인공이 이륜마차를 타고 등장하고, 창과 방패를 든 로마 병사들이 줄지어 사령관의 뒤를 따른다.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고, 돈 벌러 다니는 걸까?’



폭군 ‘네로’ 황제 궁전에는 방탕한 축제가 벌어지고 속살 비치는 가운만 걸친 무희들이 반라의 풍만한 몸매를 뒤틀며 흥겨운 춤을 춘다.


‘품행이 단정치 못해서 정학처분을 받았는지도 모르지..’



옆자리 소녀도 영화는 건성인 듯 나를 힐끔거리며 관심을 갖는 눈치다.


노예로 끌려온 ‘리지아’ 공주(데보라카)와 로마장교 ‘비니키우스’ (테일러)의 뜨거운 애정표현이 나올 때는, ‘으~음’ 하는 신음소리가 들릴 정도다.



기독교 교인들을 원형극장(클로세움)에 몰아넣고 굶주린 사자들 밥이 되게 하는 장면에서,


“엄마야! ~”


하면서 눈을 가린 채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 버린다.

연한 비누 향 같은 풋풋한 살 냄새가 코 끝에 전해온다.


얼른 고개를 들어 무안한 미소를 짓고 쳐다보는 소녀의 얼굴이 꽤나 예쁘다.

끄덕, 괜찮다는 몸짓을 하고 살짝 웃어 주었다.



무서운 장면이 좀더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세 시간짜리 영화는 필름을 많이 잘라 먹었는지 한 시간도 안되어 1부가 끝나고 막간 휴식시간이 되었다.

조명이 환하게 들어오고 우르르 몰려들 나간다.



“아까, 죄송했어요.”


“아닙니다. 장면이 좀..잔인했지요?”


화장기 없는 소녀의 맨 얼굴이 환한 불빛아래 반짝거린다.

분명 스무 살은 안되어 보인다.

몸을 내 쪽으로 돌려 앉은 소녀의 앞 가슴이 제법 봉긋하다.

짧은 치마 밑으로 드러난 허연 허벅지가 매끄러워 보여서 꿀꺽, 마른 침을 삼킨다.


“내일.. 외출 나올 수 있어요?”


뜻밖에, 까만 눈을 깜박이며 ‘제발 나 좀 만나주세요.’ 하는 갈망 어린 눈망울로 나를 빠끔히 쳐다본다.


하사관도 고참도 아닌 이등병 졸병에게 묻는걸 보면, 군인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니..그게..아직은 신참이라, 외출이 자유롭지가 않아서..”


“아..그런가요?”


소녀는 실망한 듯이 고개를 돌리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저..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하고는, 군살 없는 적당한 키의 몸매를 일으켜, 팡팡한 궁둥이를 보이며 돌아서 밖으로 나간다.


아쉬운 눈길로 뒤따르다, 뒷줄에 앉은 병사들 눈길이 민망하여 고개를 돌렸다.


‘영화를 보러 온 게 아니고 다른 목적이 있었구먼! 애인을 구하나 보네..’



붐비는 게 한산해졌겠다 싶어 화장실로 가는데, 극장로비 구석에 그 소녀가 네댓 명의 고참들과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뭇 사내들 앞에서 간드러지게 웃는 모습이, 아까 본 순진한 소녀가 아니고 딴 사람처럼 보인다.



볼일을 마치고 오면서 유심히 둘러보았는데, 로비 안에는 보이질 않는다.

극장 안에도 없고, 2부 상영이 시작되어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와 내일 약속이 되어서 가버렸거나, 아니면 극장 밖 다방에서 얘기 중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지? 어쩌면 남자를 밝히는 색골 일지도 모르는데..’



화면에는 타락한 로마 귀족들의 문란한 생활이 나오고,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핀레이 큐리)가 기독교인 집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네로’(피터 유스티노프)는 새로운 로마를 건설하고, 기독교인들이 많아진 옛 로마를 불태우며 반 미치광이처럼 시를 읊는다.


‘2부를 보지 말고, 다방에라도 갈걸 그랬나?’



기둥에 묶여서 황소의 공격을 당하는 데보라카의 쭉 뻗은 다리가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공주의 몸종 거인 ‘우르수스’가 황소를 때려 누이고,

나는 고참들을 때려 누인다.



‘비니키우스’(테일러) 마저 죽이려던 ‘네로’는 반기를 든 군중들에 쫓겨 도망가서 결국은 자살하고 만다.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던 ‘베드로’는 길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유명한 대사를 읊는다.


“주여,..어디로 가시나이까? (Quo Vadis Domine)”



나는 컴컴한 극장 안을 두리번거리며 뇌까린다.


“소녀여,.. 어디로 가버렸나이까?”

쿼바디스 포스터.png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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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16 밤길
    작성일
    15.07.20 16:22
    No. 1

    역시나... 원주 1군지사였군요. ㅎㅎ
    저도 원주 근무, 거기가 반곡동이었나? 헷갈리네요.
    38사단 직할대에 근무했는데 , 지금은 사단자체가 없어졌더군요.
    제 직무상 군지사에 자주 들랑거렸죠.
    통신보급계.

    잘하면 학성동 99계단 얘기도 나오겠네요.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15.07.20 18:18
    No. 2

    네, 밤길 용왕님. 어서 오십시요.
    같은 원주서 근무한 인연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99계단이면, 거기가 공원 맞지요? 우리부대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103 보충교육대고, 더 가면 계단 많은 공원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0 이리강
    작성일
    15.07.20 21:48
    No. 3

    아니. 소녀의 정체는 뭣이단가요?
    아~ 안타깝습니다. 하하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15.07.20 22:14
    No. 4

    아 , 이리강 님, 어서 오십시요.
    그 소녀, 저도 아직 정체가 궁금합니다. ㅎㅎ
    그때 그냥 용기를 냈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 지금도 후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고스테일
    작성일
    16.09.03 11:17
    No. 5

    정말 설레이는 경험을 하셨네요! 군인이라 더 그런것도 있었겠지만 민간인 이었어도 딱히 연인이 없었고 저런 상황이 되면 신경쓰이지 않았을까 싶답니다.

    정말 정체가 궁금해지긴 하지만.. 때론 의문이자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소녀도 또 다른 매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군시절은 아니었지만 입대도 하기 전에 저도 추억으로 남은 사람이 있긴 하답니다. 지금은 잘지내고 있을지.. 그때 용기를 좀 더 냈어야 했던건 아닌가 싶은 그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16.09.03 11:31
    No. 6

    예, 고스테일님.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예전의 여인들에 대한 기억이 가끔씩은 떠오르고, 님의 말씀처럼 지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지기도 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강건한
    작성일
    19.01.20 22:23
    No. 7

    겨울에 반신욕 하는 것 좋아해서 사우나 자주 갑니다.

    제가 애용하는 비누거품 은폐법... 꼬무륵.....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ch******..
    작성일
    20.06.29 17:49
    No. 8

    재밌게 읽고 있어요 추천도하구요. 호호호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20.07.02 14:21
    No. 9

    네, 참솔님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sk******..
    작성일
    20.10.24 17:11
    No. 10

    재밌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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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군인의 길 +12 15.07.19 1,074 50 7쪽
3 3. 달밤에 체조 +10 15.07.18 1,043 61 12쪽
2 2. 새끼 발가락 +12 15.07.17 1,265 60 6쪽
1 1. 논 산 +34 15.07.16 2,074 8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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