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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짧은 군대생활 긴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맘세하루
작품등록일 :
2015.07.16 12:01
최근연재일 :
2015.07.28 14:09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1,846
추천수 :
403
글자수 :
47,259

작성
15.07.25 20:56
조회
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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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 유격 올빼미 (3)

DUMMY

9. 유격 올빼미 (3)



급작스런 소나기에 놀란 조교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하는 수 없이 나무 숲 속으로 비를 피하게 한다.


난데없는 소나기 덕분에 2일째 훈련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굳이 샤워할 필요도 없게 빗물에 흠뻑 젖은 올빼미들은 오슬오슬 떨면서도,


“어구야!~ 이렇게 이틀만 쏟아지면 그냥 놀다가 가겠네!”


희망 섞인 얘기를 지껄이며 각자의 텐트로 뛰어갔다.



텐트 속에서 배낭의 속옷을 꺼내 갈아입고, 훈련복도 입고간 군복으로 바꿔 입었다.

비에 젖은 옷을 꽉꽉 짜서 배낭에 널어두고, 판초우의를 걸치고 저녁배식을 받으러 갔다.


그 사이 소나기는 멎어가는데, 숙영장 황토 흙 길은 벌써 질퍽한 진흙탕이 되었다.

국물에 빗방울이 들치지 않게 배식판을 판초우의 품속에 안고 올 때 뜨뜻한 온기가 몸을 녹여준다.


빗물이 툭툭 거리는 텐트 속에서 판초우의 뒤집어쓰고 궁상맞게 앉아, 식어가는 돼지국물을 홀짝거리며 퍼먹다 보니, 집 생각이 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망할 놈의 김일성이는 왜 생겨나, 애꿎은 젊은이들 이 고생을 시키나? 내일은 제발 햇볕이 쨍 하고 나야 할 텐데..’


담요 두 장을 돌돌 말아 새우처럼 웅크린 채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지 하면서 흰 염소 검은 염소를 번갈아 세었다.




3일째 아침,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햇볕이 더 뜨겁게 내리쬔다.

빗물이 덜 말라 길바닥의 움퍽 패인 곳은 질척거린다.



또 바뀐 조교들의 인솔로 ‘밧줄잡고 경사면 오르내리기’ 장애물 코스로 이동했다.


“아침 기지개 켜기를 한다. PT체조 9번 ‘몸통 뒤로 젖히기’다.

다리는 어깨넓이로 벌리고 깍지 낀 손바닥을 머리뒤통수에 놓는다. 실시!”


무표정한 시선으로 올빼미들을 훑어 보면서 무게를 잡는 폼이, 조교 신참인듯하여 다소 불안해진다.

함께 온 고참은 멀찌감치서 딴전을 편다.


하나에 몸을 뒤로 15도 젖히고 둘에 30도, 셋에 45도 젖힌 다음, 넷에 준비동작으로.

기지개를 확실히 켜니까, 제법 기분은 상쾌하다.


뱃가죽이 당겨서 통증을 느낄 만큼 기지개를 켜고서야, 11미터 높이의 장애물 통과 훈련이 시작된다.


“밧줄잡고 올라가서 양팔 벌려 ‘유격’ 구호 외치고, 좌향좌 자세에서 경사면을 받침 목 밟으며 내려온다.”


설명 후에 직접 숙달된 동작으로 60도 경사면을 밧줄잡고 올라가더니, ‘유격’ 외치고 몸을 틀어 뒤쪽 45도 경사면을 성큼성큼 내려온다.

체중 나가는 분대원은 힘들어서 끙끙거리지만, 오르락 내리락 재미가 있다.



코스를 이동하여 ‘외줄 잡고 건너기’코스.

타잔 같이 줄을 잡고 6미터쯤의 웅덩이를 건너 뛰는 것인데, 빗물이 고여 진흙탕이 되어있다.


“PT 8번, ‘몸통 받쳐 온몸 비틀기’ 4회 실시한다. 실시!”


어제 하다가 소나기 때문에 중단한 줄 아는지, 고약한 신참 조교가 제일 힘든 PT 8번을 교범대로 다시 시행한다.


PT 9번으로 뒤로 젖혀 늘어난 뱃가죽을, 이번에는 땅바닥에 누여 PT 8번으로 앞으로 댕겨 원위치 시켜주며 6회, 10회 실시로 올빼미들을 손도 안대고 잡는다.


온 몸통이 꽈배기 된 분대원들이 씩씩거리면서도 타잔 놀이는 잘한다.


“아, 아아~ 아, 아~”


한 손으로 밧줄 잡은 채 입가에 손을 대고 타잔 흉내를 내던 병사가, 철버덕 진흙탕에 떨어져 분대원들을 한바탕 웃기고 피로를 풀어준다.



코스를 옮겨 ‘그네 타고 건너기’ 이다.

폭은 4미터쯤인데 웅덩이에 흙탕물이 잔뜩 고여있다.

타잔 놀이 종합 세트 장 같다.



“PT 체조 10번 ‘쪼그려 앉아 뛰며 돌기’ 다. 준비동작은 쪼그려 앉아서 상체는 곧게 펴고 손은 옆구리에 붙인다. 실시!”


일단 쪼그려 앉으면 겁부터 난다.

무릎에 힘이 가해질 다음 동작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하나 둘에 제자리에서 10센티 이상 뛰었다 내리고, 셋에 뛰면서 몸을 왼쪽으로 90도 돌려 넷에 착지한다.”


조교가 시범을 보이며 한 바퀴 도는데, 절도 있게 잘한다.

폴짝폴짝 뛰면서 빙글빙글 도니까, 생각보다 덜 힘들고 재미도 있다.


“그네를 타고 출발하면서 다리를 쭉 뻗고,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가 뛰어내린다.”


조교가 직접 시범을 보이는데,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내려 앉는다.


소싯적에나 타고 놀던 그네를 오랜만에 타려니까 웬 지 어색하다.

그네 줄 끝이 건너편에 1미터쯤 덜 미치므로, 자칫하면 웅덩이에 빠지기 십상이다.


혹시 물에 빠져도 볕에 말릴 시간이 필요하다 싶어 자원해서 맨 먼저 그네에 앉았다.

뒤로 최대한 물러선 다음 다리 쭉 뻗어 출발하며 어릴 때 하던 기억을 살려,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고 최고 높이에서 손을 살짝 놓았다.

가속도 받은 몸이 가볍게 공중에 떠서 건너편에 사뿐히 내려섰다.


“우와~ 잘한다! 기계체조 했는가 보네.”


동료들이 박수를 치면서 부러운 찬사를 보낸다.

유격훈련 와서 박수도 다 받고 할만 하네. 으쓱 기분이 좋다.

조교와 내가 쉽게 건너는걸 보고는 분대원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그네타기에 앞장선다.


위태위태 하면서도 모두들 잘 건넜는데, 맨 뒤로 물러서 있던 체중 나가는 분대원이 결국 타이밍을 놓치고 철버덕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오전 훈련은 이렇게 종료되고 즐거운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했다.




오후에는 화생방 훈련이다.

방독면을 지참하고 연병장에 집합했다.

벌써들 울상이 되어 웅성거린다.


“아이, 씨~ 이거 진짜. 화생방 안 하는 유격대도 있다던데..”


신병훈련소에서도 제일 힘들고 더럽던 과정이 화생방이었다.

나는 복식호흡으로 그나마 수월하게 통과했던 경험이 있어,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PT 11번 ‘쪼그려 뛰기’다.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쪼그려 앉으면서 왼발이 앞으로 나오게 하여 준비동작을 취한다. 실시!”


다시 바뀐 조교가 후덕해 보이는 인상답지 않게 깐깐한 목소리로 시작한다.


“하나에 깍지 낀 채로 상체를 곧게 펴고 점프하면서, 왼발이 들어가고 오른발을 앞으로 낸다. 둘에 착지하면서 오른발이 들어가고 왼발이 다시 앞으로 나온다. 실시!”


구분동작과 연결동작으로 진행된 신참조교의 시범을 보고 우리는 따라 한다.


“하나 둘.”


“셋은 하나와 같고, 넷은 둘과 같다. 여기까지가 1회다. 2회 실시!”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점프는 20센티 이상 뛴다. 덜 뛰는 병사는 열외시킨다. 넷에 횟수를 세고, 10회까지 실시한다. 실시!”


“···하나, ···둘, ~ ···아홉, ···열.”


뒷머리에 깍지 낀 채로 왼발과 오른발을 교대해서 뛰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힘들다.

20여명의 분대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뛰는 높낮이가 쉽게 구별되므로 요령을 부릴 수도 없다.


“이번에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고 준비동작을 취한다. 실시!”


왼쪽 무릎이 더 아프다 싶은데, 교대해주니 고맙다. 그만하고 10분간 휴식이나 주면 더 고마울 텐데..


“하나에 뛰면서 왼발이 앞으로 나왔다가 둘에 착지하며 오른발이 앞이다. 셋 넷은 하나 둘과 같다. 복창은 전과 동. 10회 실시!”


“···하나, ···둘, ···셋, ..에쿠! ···아홉,···열.”


“00번 올빼미, 앞으로!”


“예, 00번 올빼미. 유격!”


오전에 그네 타고 건너다 웅덩이에 빠진 대원이다.

자기 딴에는 고문관 소리 안 들으려고 열심히 했을 텐데, 그 체중에 공중에서 양 발을 엇박자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열외 시켜서, PT 8번 ‘온몸 비틀기’ 준비동작으로 땅에 누워 푹 쉬게(?) 해준다.


좌우 바꿔서 10회씩 더 했는데, 10센티도 못 뛰어 오를 정도로 무릎이 맥을 못 춘다.



10분간 휴식을 두 번 할 동안에 땡볕에서 뒹굴어,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후에야 화생방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아까 열외 했던 대원 옆으로 다가가 귀 뜸을 해주었다.


“논산에서 화생방 할 때, 입을 벌리고 배로 숨을 쉬니까 훨씬 낫던데요.”


열외병은 힐끔 쳐다보며, 네가 뭔데 나한테 이러냐 하는, 못 마땅한 표정이다.



방독면을 잘 매어 쓰고 철모를 눌러 쓴 채 각오를 단단히 하며, 밀폐된 가스실로 들어갔다.


환기를 시켰을 건데도 뿌연 먼지 같은 게 창살로 비치는 햇살을 받아 피어 오르고, 앞에 하고 간 분대의 흔적이 바닥에 끈적거린다.

판초우의까지 입고 방독면을 쓴 교관과 두 명의 조교가 버티고 서있다.


“좌우로 정열! 허리에 손을 얹고 좌에서 우로 반동 시작! 반동간에 노래한다. 노래는 ‘어머님 은혜’, 나실 제 괴로움. 노래 시~작!”


“나실 제 괴~로움 다~잊으시고~···”


안 그래도 눈물 날 텐데 눈물 짜는 노래를 시킨다.

엉덩이 좌우로 흔들고, 겁나면서도 목청 높여 노래 부르는 착한 올빼미들인데.. 그 사이 CS 가스는 스며들겠지.


“동작 그만! 정화통 분리하여 머리위로 높이 든다. 실시!”


숨을 크게 들이쉬어 멈추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방독면 볼에 부착된 정화통을 돌려서 연다.

움직임은 최소로 하고 호흡은 최대로 참아야 한다.

정화통을 귀 옆에 들자 말자 호흡 멈춘 코 속으로 매운 가스가 파고든다.

10초도 안되어 몇 명이 캑캑거린다. 방독면을 잘못 입었거나 숨을 참지 못한 게다.


1분쯤 지나자 여러 명이 캑캑거리고 고통에 몸을 뒤튼다.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입을 열고 참던 숨을 파~하고 내뱉는다.

입으로 조금만 들이 마셔도 목젖이 따끔거린다.

입을 크게 벌리고 천천히 조금씩 배로 호흡한다.


“캑캑, 꾸~엑!”


눈물에 콧물까지 줄줄 흘리며 주저앉아 몸부림 치다가, 고통을 참지 못한 병사는 방독면마저 벗어버린다.


“방독면 벗으면 즉사한다! 끝까지 참고 버텨라!”


교관의 말이 엄포가 아니다.

실제상황에선 절대로 벗으면 안 된다.


길게만 느껴지던 지옥의 시간이 3분쯤 지났을까? 문이 활짝 열리고 가여운 올빼미들은 비로소 방생되었다.


문 앞에 몰려 앉아 바닥을 헤매던 대원들이 원숭이처럼 밖으로 뛰쳐나간다.

나는 두어 명과 함께 방독면을 벗으며 맨 뒤에 걸어서 나왔다.


대원들 거의가 분비물로 범벅이 된 몰골로, 조상인 침팬지들처럼 땅바닥에 퍼 질러 앉아있다.


앞서 나가던 그 열외병이 뒤돌아 나를 보며 눈물 자국뿐인 얼굴로 계면쩍게 씨익 웃는다.

화생방.png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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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9 정복(禎福)
    작성일
    15.07.25 22:58
    No. 1

    자까님, 씨익!!! ^ㅇ^/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15.07.26 18:24
    No. 2

    네, 정복 대작가님 방문 감사합니다
    "무툼바" 승승장구 하기를 기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0 이리강
    작성일
    15.07.25 23:08
    No. 3

    맘세하루님은 유격을 약간 즐기셨든 것 같습니다. 하하. 아닌가여?
    화생방은 진짜. 전 이러단 죽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때가 오더군요. 그 다음부턴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구요. ㅎㅎ
    잘봤습니다. 맘세하루님. 화이팅!!!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맘세하루
    작성일
    15.07.26 18:28
    No. 4

    네, 이리강님 감사합니다.
    그때는 유격도 재미 있었던 것 같네요. ㅎㅎ
    화생방은 입으로 복식호흡 하면 훨씬 낫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sk******..
    작성일
    20.10.24 17:20
    No. 5

    재밌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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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유격 올빼미 (4) +5 15.07.27 831 11 10쪽
» 9. 유격 올빼미 (3) +5 15.07.25 766 9 11쪽
8 8. 유격 올빼미 (2) +5 15.07.23 962 8 11쪽
7 7. 유격 올빼미 (1) +7 15.07.22 907 22 9쪽
6 6. 승자와 패자 +10 15.07.21 974 35 10쪽
5 5. 쿼바디스 +10 15.07.20 847 41 9쪽
4 4. 군인의 길 +12 15.07.19 1,074 50 7쪽
3 3. 달밤에 체조 +10 15.07.18 1,041 61 12쪽
2 2. 새끼 발가락 +12 15.07.17 1,263 60 6쪽
1 1. 논 산 +34 15.07.16 2,069 8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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