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새끼 발가락
2. 새끼 발가락
내무반 막사 건물의 돌 담장 입구에 시멘트로 지은 별도의 위병소가 있다.
지름 1미터로 높이 50센티의 동그란 보초 근무 초소가 있고, 조그만 파라솔이 머리 위에 달려있는데 정오 때가 아니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초소에 서면, 정면에 원주시내로 뻗은 큰길 저만 치에 대대본부 위병소가 빤히 보이고, 큰길과 T자로 초소 바로 앞에도 도로가 있어서 차량과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닌다.
“지프차 지나가면 받들어 총 자세로, ‘충성’ 큰 소리 지르고 경례 붙여야 돼! 얼마 전에 별이 지나가는데 제대로 안 했다가 꽂을 대 나갈 뻔 했어.”
처음 위병소 보초 설 때 사수 황일병이 겁을 주었다.
칼빈 총 개머리판을 왼쪽 옆구리에 대고, 중간쯤 잡은 총신을 45도 벌려 열중쉬어 자세를 취한다.
양다리를 곧게 뻗고 정면을 주시하면서 부동자세를 취하면 제법 자세가 잡힌다.
군화를 신으면 완전히 폼이 날 텐데, 국방색 농구화에 발가락 덮는 부위만 까만 고무로 된 작업화를 신어야 하므로 영 별로이다.
자동차 오는 소리 들린다 싶으면, 시야에 들자 말자 누가 탔는지 구별도 하기 전에, 부릉~ 지나가버린다.
‘에라 모르겠다. 차 소리 들리면 미리 받들어 총으로 차려 했다가 앞에 오면 ‘충성’ 소리 지르자.’
-부웅~ “충성”, -브앙~ “충성”, -부르릉~”충성”
장교가 탑승 했을 때만 경례하면 되는데 지나가는 군용차량은 무조건 ‘충성’ 이다.
“야~ 잘 하는데. 빈 트럭도 ‘충성’ 이냐?”
점심 먹으러 열 맞춰 오던 중대원들이 신참 보초의 꼴을 보고 놀린다.
오뉴월 땡볕에 부동자세로 2시간을 서있노라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작업화 앞부분의 고무덮개는 태양열을 받아 뜨겁게 달아 오른다.
보충교육대에서 도랑을 치다 베인 왼쪽 새끼 발가락이 자꾸만 간지러워진다.
나중에는 발가락을 오므려도 신발 안쪽에 붙은 것처럼 새끼 발가락은 내려오질 않는다.
보초 교대를 하고 우물가에서 양말을 벗는데, 피가 배어서 달라 붙는다.
거의 아물던 발가락 상처가 햇볕에 화상을 입은 모양이다.
발을 씻고 양말은 빨아 널고 내무반 고참들 눈치 보다가, 의료함에서 빨간 머큐롬을 얼른 꺼내어 막사 뒤꼍에서 발랐다.
거즈로 발가락을 감싸 동여매어 새 양말을 신고, 늦은 점심 식사하러 취사장 겸 식당으로 뛰어갔다.
우리 중대는 상주하는 인원이 적어서 자주 보초를 서야 하는데, 그마저 저녁 나절은 고참들이 서고 한 낮에는 신참들인 나와 황일병이 서다 보니, 나는 하루걸러 땡볕에서 보초를 서야 한다.
“심이병, 다리 아프냐? 저는 것 같은데..”
아픈 발가락을 보호하느라 왼발을 안쪽으로 디디다 보니 걸음걸이가 어색 했나 보다.
“아, 아닙니다. 약간 삐었는데 괜찮습니다.”
졸병이 아프다는 소리 하는 게 아니다 싶어서 얼른 둘러대었다. ‘곧 낫겠지 뭐’ 하고.
삼일 째 되는 날 땡볕에 다시 보초를 서고 양말을 벗어보니, 발가락 끝에 살점이 5미리 쯤 떨어져 나오고 피고름이 흐른다.
아프지는 않는데 무척 간지럽다.
별 수가 없어서 씻고 약 바르고, 거즈로 감아 매고 근무를 계속했다.
다음날 저녁에 여느 때처럼 거즈 풀어 비누로 약물 흔적까지 눈에 안 띄게 깨끗이 씻고, 취침 점호 준비하러 맨발로 침상정리를 하는데,
“야, 이거 무슨 냄새야! 누가 발 안 씻었냐? 썩는 내가 나는데.”
내무반장 정중사가 눈살을 찌푸리고 두리번거린다.
내 발가락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아, 네. 제가.. 발가락이 좀 아파서요.”
“뭐? 어디 봐.. 야, 이런 곰탱이 같은 자식! 살이 썩고 있잖냐?”
무안하고 죄송스러워 얼굴이 빨개진 채 어쩔 줄 모르고, 내민 다리를 움츠렸다.
“야, 황일병. 넌 임마 조수 관리도 못해? 낼 아침에 당장 의무실에 데려가서 보여!”
“네, 알겠습니다! 심이병, 어찌 된 거야? 삔 게 아니었어?”
황일병이, 부끄러워 오므린 발가락을 들춰보다가 코를 잡는다.
상병들은 몰려와 들여다 보고, 병장들은 끌끌 혀를 찬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의무실로 가서 군의관 장교에게 보였다.
황일병 말로는 ROTC 장교인데, 의과대학이 아니고 농과대학 축산과 출신이라고 했다.
중위 계급장에 비해 나이가 들어 보이고, 선입견 때문인지 치료가 미덥지 않다.
“이런..이틀만 지났으면, 발가락 잘라낼 뻔 했네!”
찬찬히 살펴보며 핀셋으로 여기저기 찌르며 아픈지 물어 보는 게, 겁 줄려는 빈말은 아닌 것 같고 신뢰가 되었다.
마취약 바르고 잠시 후, 메스로 ‘사그락’ 소리가 나도록 살점을 도려 낸다.
위생병에게 소독하고 가루약 뿌려 거즈뭉치 덮은 발가락을 반창고로 잘 동여매게 지시하면서, 축산과 출신 의무장교가 나직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군대생활 열심히 하는 것도 좋겠지만..온전한 몸으로 부모님한테 돌아가는 게 더 중요할거야.”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고향동네 큰 형님처럼 여겨진다.
의무실 침상에 누웠다가 내무반에 와서 쉬고 있는데, 점심 먹으러 온 황일병이 반가운 얼굴로 묻는다.
“안 죽고 살아난대? 축산과 도축 실력 좋더나?”
“예, 황일병님. 3일만 보초 안 서면 낫는 답니다.”
마취가 풀린 새끼 발가락이 무지 아프게 찌른다.
- 작가의말
이번 글은 무척 짧습니다.
새끼 발가락 처럼요.
군대에서 이등병이 바로
말단 졸병, 새끼 발가락 이지요.
아프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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